1982년 6개의 팀으로 출범한 KBO리그는 10구단 체제가 정착된 현재까지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KBO리그는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KBO리그의 역사는 40년 남짓이지만, 한국 야구의 그것은 1905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황성 YMCA 야구단을 조직했던 1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야구의 긴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해 한국 야구 명예의 전당의 필요성이 지속해서 대두되었고, 2010년대 초반에는 KBO와 KBA를 필두로 명예의 전당 건립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 진행되었던 여러 사건을 타임라인에 따라 알아보자.
2011.10.04 – 부산광역시,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유치 제안서」 제출
한국 야구에도 명예의 전당 건립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자, 부산광역시는 2011년 10월 04일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유치 제안서」를 한국야구위원회(KBO)측에 제출하며 이미 유치 의사를 밝힌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와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부산시는 동래구 사직동 사직야구장 광장 옆 VIP 주차장 부지를 활용하여 ‘한국 야구 명예의 전당’을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명예의 전당 내에는 한국 야구의 역사를 담은 전시관을 비롯한 박물관, 영상관, 도서관, 연구실 등이 위치할 예정이며, 그 외에도 카페와 기념품점과 같은 부대시설이 운영될 예정이다. 또한, 명예의 전당 주변에 ‘볼 파크(Ball Park)’ 구역을 만들어 시민참여가 가능한 야구 체험장, 야구 교실 등, 일상속에서 시민들이 야구와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예정임을 밝혔다.
2012.03.12 – 부산광역시,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수정 유치제안서 제출
부산광역시는 사직야구장 광장 옆 주차장 부지를 활용하겠다는 기존의 계획과는 다르게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의 부지를 활용하겠다는 새로운 내용을 담은 수정 유치제안서를 KBO에 제출했다. 명예의 전당 건립과 더불어 정규 야구장 4면, 리틀 야구장 1면 건설 계획이 추가되며 약 1200㎡의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었던 명예의 전당은 규모가 19만6515㎡로 대폭 확대되었다.
부산시는 부지와 관련한 문제가 일찌감치 해결되었기 때문에 부산시가 명예의 전당 최종 건립 장소로 선정된다면 2년 안에 완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고, 명예의 전당의 입지가 기존의 관광지들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을 유치해 KBO에 큰 홍보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2012.03.16 – KBO-KBA, 공동으로 야구박물관준비위원회(現 야구박물관자료수집위원회) 발족
2011년 4월부터 대한야구협회(KBA)의 윤정현 전무와 하일 전 KBA 전무를 중심으로 자료 수집이 시작되어 5월에 야구박물관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여기에 2012년 3월 KBO가 뜻을 함께하기 시작하며 야구박물관자료수집위원회로 전환되었다. 야구박물관자료수집위원회 활동 4년째인 2015년, 약 2만점 이상의 자료를 수집하였고, 최근까지도 SSG 랜더스로 새출발을 시작한 전 SK와이번스의 자료를 수집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2.12.21 – KBO, 아카이브 센터 구축
KBO가 야구 사료 수집과 체계적 보관을 목적으로 한 아카이브 센터를 구축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한국야구회관빌딩 지하 1층에 위치해 있으며, Date Search, 문서 보관실, 의류 보관실, 장비 보관실, 수장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만 점이 넘는 야구 관련 수집품이 항온 항습 시스템하에 관리되고 있으며, 수집품을 온라인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보관하는 등 수집품의 체계적이고 안전한 보관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일반인에게는 개방되어 있지 않으나, 명예의 전당이 건립된 이후, 수집품들을 명예의 전당으로 이동시켜 시민들에게도 전시할 예정임을 밝혔다.
2013.04.09 – KBO 이사회, 부산광역시 기장군을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2013년 4월, 긴 경쟁 끝에 부산시가 명예의 전당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사실상의 유치 경쟁이 마무리되었다. 이후 2013년 8월, KBO와 부산시, 기장군은 3자 간의 실무협상을 거쳐 명예의 전당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3자 간의 합의를 이루었고, 2014년 8월, 3자 간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명예의 전당 건립에 필요한 준비 과정을 마쳤다.
2015년 이후 – 감감무소식
KBO가 제시한 명예의 전당 추진 일지에 따르면, 명예의 전당은 2015년에 착공해 2016년 10월에 완공될 예정이었다. 앞서 유치 장소 선정 및 박물관 건립을 위한 자료 수집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예정대로 건립이 될 것으로 보였지만, 2021년 4월 현재 명예의 전당이 들어서야 할 기장-현대차 드림 볼파크의 부지는 텅텅 비어 있는 상황이다.
명예의 전당 건립을 방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금전적인 문제이다. KBO, 부산시, 기장군 3자 간 작성한 실시 협약서에 의하면, 부산시가 명예의 전당 건립을, 기장군이 1850㎡의 명예의 전당 부지 제공과 부대시설 조성을, KBO가 명예의 전당 운영을 각각 담당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완공 뒤 운영을 위해 필요한 운영비가 연간 20억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KBO측에서 이를 맡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자 명예의 전당 건립을 위한 후속 작업에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며 착공이 점점 미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몇 년째 이어지자, 부산시도 2018년 부산시 의회의 예산안 의결 과정에서 명예의 전당 설계비로 책정되었던 2억 1천 700만원을 전액 삭감하는 등 명예의 전당 건립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오규석 기장 군수가 2020년 10월 한국야구회관빌딩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운영비 지출 또한 기장군이 전액 부담할 의지가 있음을 밝혔으나 아직 건립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기장에 명예의 전당이 건립되지 않을 확률은 0.1%도 안 된다.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으나, 착공 시기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으며 기약 없는 희망고문만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야구 명예의 전당이 필요한 이유
명예의 전당 건립이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한국 야구 역사의 보존을 위해서 명예의 전당은 완성되어야 한다. 한국 야구의 역사는 미국과 일본의 그것보다는 짧지만, 우리나라의 야구는 역사, 리그의 규모 및 수준, 국제 대회 성적, 야구에 대한 팬들의 열정 등 다방면으로 보았을 때 세계에서 손꼽힐 만한 정도의 수준을 자랑한다. 이런 수준의 야구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에서, 야구를 소개할 수 있는 변변한 시설 하나조차 없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상황이다. 서귀포시에 한국야구명예전당이 위치해 있지만, 내부의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자료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으며, 2000년대 이후의 야구 관련 자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시의 수준, 관리 정도, 규모로 보았을 때 긴 역사를 지니고 있는 한국 야구를 대표할 수 있는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정도의 시설이었다.
한국 야구가 가진 역사와 명예에 걸맞는 기념 시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명예의 전당 착공이 시급한 상황이다. 한국 야구가 스스로 역사와 명예를 되새기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역사와 명예를 가진 한국 야구에게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야구공작소 이준희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오주승, 홍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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