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두 번째 스무살] 1985년 – 한 여름밤의 꿈, 떠나간 우승의 희망

  •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1985년 롯데 자이언츠는 많은 기대를 안고 시작했다. 우선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인 최동원과 임호균, 김용철, 홍문종 등의 건재했다. 여기에 부산고 시절부터 제2의 최동원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좌완 신인 양상문을 비롯, 국가대표 잠수함 박동수와 내야수 한영준 등 유망한 신인들이 대거 입단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수입한 재일교포 투수 김정행의 합류는 화룡점정이었다.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롯데는 4월 중순 1위에 오르며 1984년 후기리그에 이어 또 한 번 기별 우승을 차지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는 ‘2일 천하’에 불과했다. 4월 16일 경기에서 패배하며 2위로 떨어진 롯데는 전반기 내내 1위를 탈환하지 못했다. 특히 5월에는 5연패를 두 차례나 기록하며 4승 14패에 머물렀다. 6월에 다시 반등을 노렸지만 결국 롯데는 전기리그를 4위로 마감했다.

전열을 가다듬은 롯데는 후기리그 시작과 함께 질주하기 시작했다. OB 베어스와의 2연전을 승리로 장식한 것을 시작으로 롯데는 7월까지 후기리그에서 15승 5패, 승률 0.750을 기록하며 1위에 등극했다. 7월 15일부터 21일까지 6연승을 달렸고 같은 달 26일부터 31일까지 5연승을 거두며 그야말로 ‘진격의 거인’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최동원-임호균-박동수-김정행의 투수 로테이션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굴러갔고, 1984년 한국시리즈 MVP였던 유두열도 맹타를 휘두르며 타선을 이끌었다.

이대로만 흘러간다면 롯데의 후기리그 우승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8월 초 OB와의 3연전에서 2승 1패를 거둔 롯데는 2위와의 승차를 4.5경기 차로 벌리며 선두 자리를 굳히는 듯 보였다. 바로 그 2위인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운명의 장난처럼 롯데는 8월 6일부터 삼성과의 5연전을 진행하게 됐다. 8월 6일과 7일은 부산에서, 9일과 11~12일은 대구에서 치르는 일정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도 ‘후기우승의 분수령’(경향신문)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 5연전은 양 팀에는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이었다. 4.5경기 차로 뒤지던 삼성은 5연전을 모두 이긴다면 오히려 선두를 탈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최동원이 한 경기는 나온다는 점에서 현실성 없는 시나리오로 여겨졌다.

하지만 삼성은 그리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었다. 이미 전기리그에서 10연승과 8연승 한 차례씩을 기록하며 40승 14패 1무(승률 0.741)의 압도적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한 팀이었다. 전년도의 실패를 거울삼아 1985년에는 ‘야바위 게임’ 없이 아예 한국시리즈를 무산시킬 기세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삼성은 롯데와의 5연전에서 그 의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첫날부터 롯데는 9회 초 투수 박동수의 실책으로 말미암아 4점을 내주며 5대 7로 패배한 데 이어 2차전에서도 삼성의 황규봉-김일융-김시진 황금계투에 막히며 0대 3으로 무기력하게 졌다. 롯데는 두 경기에서 중견수 홍문종과 이희수 코치가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을 당하는 등 여러모로 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양 팀의 승차는 2.5경기였고, 롯데는 드디어 1984년 한국시리즈의 영웅 최동원이 출격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장소를 대구로 옮겨 치러진 9일 경기에서 롯데는 최동원을, 삼성은 김시진을 투입했다. 김시진이 이틀 전 비록 1이닝이지만 투구를 했던 반면 최동원은 4일을 쉬고 마운드에 올랐다. 비록 1985시즌 성적은 김시진이 더 좋았지만 승부를 쉽사리 예측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기대대로 최동원은 4회까지 삼성 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기분 좋은 출발을 보여줬다. 그 사이 롯데는 1회 초 먼저 1점을 얻으면서 리드를 잡았다. 삼성이 5회 한 점을 얻기는 했으나 최동원과 김시진 두 선수가 갑작스럽게 무너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삼성은 달랐다. 삼성은 6회 말 타자일순하며 4점을 올려 최동원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지난 한국시리즈에 대한 완벽한 복수였다. 삼성 선발 김시진은 8회 2사 후 마운드를 내려갈 때까지 롯데 타선을 5안타 2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시즌 18승째를 거뒀다. 이제 양 팀의 승차는 1.5경기, 점점 역전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롯데는 11일과 12일 경기에서 각각 5대 12, 1대 3으로 패배하며 7월 16일 이후 약 한 달 만에 2위로 떨어졌다. 이후 롯데는 삼성의 패배로 인해 어부지리로 두 번 1위에 오르기는 했으나 계속 유지하지는 못했고, 삼성은 그사이 8월 25일부터 9월 17일까지 무려 13연승을 거두면서 후기리그 우승에 한 걸음 다가갔다.

9월 17일, 삼성은 김시진의 4실점 완투와 함학수, 이만수, 김성래의 홈런을 앞세워 7대 4로 승리하고 후기리그 우승을 확정했다.(맨 위 사진) 이로써 삼성은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래 4시즌 만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를 무산시켰다. 공교롭게도 상대팀은 롯데였다. 이미 전기리그 우승 확정 경기에서도 희생양이 되었던 롯데는 삼성 선수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경기 후 김시진은 “다른 팀은 몰라도 롯데만큼은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승하고 나니까 굉장히 기쁩니다”라며 롯데에 대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는 김시진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PS. 사실 롯데는 삼성의 후기리그 우승을 그냥 지켜보지만은 않았다. 롯데는 경기가 끝난 후 곧바로 구덕야구장의 조명을 꺼버리는 추태를 보여줬다. 결국 삼성은 우승 시상식을 하지 못하고 코칭스태프 헹가래만 진행하고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고, 삼성 역시 25년 뒤인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에 패배 후 대구구장의 조명을 끄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2013년, 롯데를 울린 김시진이 롯데 감독으로 부임했고, 그해 10월 2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2대 10으로 패배하며 삼성의 페넌트레이스 3연패를 지켜봐야만 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

1985년 8월 9일 롯데-삼성전 박스스코어

사진=삼성 라이온즈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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