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의 해묵은 숙제, 그 답은 ‘우리 동네 야구’다

(사진= Flicker, TFurban)

인천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한국에 첫발을 내디딜 때(Landing) 거치는 첫 번째 관문이자 대한민국에 야구가 처음으로 상륙한(Landing) 도시다. 신세계그룹 야구단 랜더스(LANDERS)엔 이 같은 연고지 인천의 특색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마치 대한민국의 ‘구도’를 두고 경쟁하는 모 구단과 지역에 ‘구도는 인천이다’라고 선전포고를 하는 듯하다.

지금까지 한국에는 ‘우리 동네’만의 야구가 없었다. 지역 팬들은 고향팀에 열광하지만, 정작 구단은 연고지와 친해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예컨대 기존 구단들의 구단명에선 연고지를 떠올릴 만한 단서를 찾기 힘들다. 창원에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는 NC 다이노스만이 연고지와 관련된 구단명을 썼을 뿐 대부분의 구단들은 ‘멋있어 보이는’ 혹은 ‘강해 보이는’ 존재들로 구단명을 꾸며왔다. 지역 연고제를 채택한 KBO 리그에서 연고지를 전면에 내세운 구단이 두 곳뿐이라는 사실은 KBO 리그에 ‘진짜’ 연고제가 정착하지 못했다는 걸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진짜’ 지역 연고제라니. 이미 KBO 리그엔 지역 연고제가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한번 생각해 보자. 연고지에 경기장이 있다는 것과 구단 홈페이지에 연고지를 써둔 것 외에 야구단과 연고지를 연결 지을 만한 요소는 거의 없다. 단순히 구단 이름에 연고지가 없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KBO 리그엔 ‘이 도시 사람이면 이 팀을 응원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구단과 연고지 간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구도’라 불리는 부산이나 창원, 광주 등 지방 연고지는 다른 연고지에 비해 야구 열기가 뜨겁지만, 이마저도 지역민들의 애향심에만 의존하는 반쪽짜리 제도에 불과하다. 팬들이 보내는 사랑에 비해 구단이 돌려주는 건 많지 않다. 지역 야구팬들의 고향 팀 사랑은 호구의 사랑이 돼 버렸다.

이상적인 지역 연고제에선 구단과 지역 간의 연계가 활발히 이뤄진다. 구단과 지역이 끊임없이 소통하며 야구 인프라가 확충되고 구단과 관련된 콘텐츠가 랜드마크로 거듭난다. 지역의 상징이 된 야구는 팬들에게 다른 지역에선 누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한다. 구단이 지역에 베푼 만큼 팬들은 더 많이 더 자주 야구장을 찾는다. 이는 구단과 모기업, 지자체 모두에게 이익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지역에 스며든 야구는 중요하다. 팬들의 기쁨이 되는 것은 기본이요, 프로야구의 해묵은 숙제를 푸는 해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만의 야구가 중요하다

(사진=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제공)

매년 비시즌이면 구단의 낮은 자립도를 골자로 한 ‘프로야구 위기론’이 재점화된다. KBO 리그의 프로구단들은 독자적인 수익 창출 능력이 부족하고 모기업 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모기업의 지원이 끊길 경우 리그가 존폐의 기로에 놓인다는 이야기다. 이상적인 지역 연고제가 자리 잡는다면 구단은 관중 동원력을 키우고 새로운 수익 창출 경로를 만들어 자립도를 키울 수 있다.

 일례로 일본 프로 축구 J리그를 살펴보자. J리그 클럽들은 경제 버블이 꺼지던 1990년대 중후반부터 모기업 의존도를 낮추고 지역을 기반으로 클럽을 운영하기 위한 지역 밀착형 마케팅을 구상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홈타운 활동’이다. 홈타운 활동은 유소년 클럽을 운영하고 축구장을 짓는 등 축구를 활용한 지역 중심의 사회 공헌 활동이다. J리그만의 문화가 된 홈타운 활동은 리그 흥행의 원동력이 됐다. 1만 명까지 떨어졌던 J리그 평균 관중은 홈타운 활동이 자리 잡은 후 1만 7천 명 수준까지 뛰어올랐다.

국내의 경우 남자 프로배구의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가 지역 밀착형 마케팅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천안을 연고지로 하는 현대캐피탈은 천안에 지은 훈련 시설을 유소년 선수와 배구 동호인들에게 공개한다. 또 지역 기업과 컬래버레이션 마케팅을 펼치고 그 수입을 유소년 배구팀에 기부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 사회에 공헌해왔다. 꾸준한 투자 끝에 천안의 상징으로 거듭난 현대 캐피탈은 최근 5년간 관중 수 1위를 차지하며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구단 경영의 신세계를 열어라

지역 연고제 활성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야구장 개발에 대한 이야기다. 앞서 살펴본 사회 공헌 중심의 마케팅도 효과적이지만, 궁극적으로 구단에 가장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건 관중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를 살펴보자. 메이저리그 구단은 구단과 야구장을 지역의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야구를 지역 주민만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듦으로써 입장권 판매 수익을 늘리는 한편 지역 방송사와 비싼 중계권 계약을 체결한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선 야구장에 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지자체와 협력해 야구장을 신축하고 주변 일대를 테마파크로 개발하는 사업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국내법상 야구장은 전문체육시설로 규정되어 있어 국가나 지자체가 소유권을 가진다. 따라서 구단이 구장에 투자하기 위해선 장기 임대 방식으로 소유권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조차 쉽지 않다. 스포츠산업 진흥법이 개정돼 최대 25년간 구장을 임대할 수 있게 됐지만 지자체마다 장기 임대에 관한 조례가 제각각이라 실제 장기 임대를 하는데 변수가 많다. 결국 구장 개발을 위해선 지자체의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대부분의 지자체가 미온적이다. 이미 구장 사용료 등의 고정 수입이 있고 장기 임대를 허락해 준다면 ‘세금으로 지은 시설을 구장에게 빌려주다니, 이건 특혜야!’라는 비판을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개발 불모지 한국에서 구단과 지자체 간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곳이 바로 인천이다. 10개 구단 연고지 중 가장 구단 친화적이었던 인천시는 SK와이번스 시절 구단에 문학 구장 관리를 위탁했다. 덕분에 구단은 구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빅보드, 바비큐 존 등 새로운 시설을 선보였고 문학 야구장은 팬 친화적인 구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SK가 그랬듯 신세계그룹도 인천시와 긴밀한 협력을 이어간다면 KBO 리그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관중 경험’을 기대해볼 만하다. 구장 개발에 대한 신세계그룹의 의지가 뜨거운 만큼 야구장 주변에 쇼핑몰, 레스토랑, 호텔 등이 위치한 ‘배터리 애틀랜타’ 같은 테마파크형 야구장이 들어설지도 모를 일이다. 야구장 개발 계획이 실현되어 인천시의 지역 경제 활성화와 세수 증가에 보탬이 된다면 다른 연고지 지자체들도 구장 임대 및 개발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바야흐로 KBO 리그 구단 경영에 신세계가 열리는 셈이다.

 

더 오래 야구를 사랑하는 방법

지역 중심의 사업 확장이 신세계그룹과 같은 유통 기업을 모기업으로 둔 구단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다. 하나의 지역 문화로 자리 잡은 야구는 지역 팬들이 매일 같이 야구장을 찾고 구단을 검색하게 만든다. 이는 수익 증대는 물론 모기업 홍보에도 도움이 된다. 훌륭한 마케팅 수단으로 거듭난 구단은 ‘밑 빠진 독’이란 오명을 벗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 유통업과 접점이 없는 구단도 경기 당일은 물론 경기가 없을 때도 사람들이 야구장을 찾도록 만들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프로야구는 국내 프로스포츠 중 가장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엔 구단의 자립이 불가능한, 부실한 생태계가 숨어있다. 그동안 별일 없었다는 안일함에 지난 40년의 역사를 답습한다면 앞으로의 40년을 장담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구단과 협회가 머리를 맞대고 프로야구 존속을 위한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지역 연고제 활성화는 그 고민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언젠가 이 땅의 10개 구단 모두가 ‘우리 동네’의 상징이 된다면, 그렇게 모인 ‘우리 동네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내가 구도다’라며 나서는 날이 온다면, 더 많은 이들이 더 뜨겁게 더 오래 야구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야구공작소 김진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박두산, 차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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