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심판은 마법의 단어가 아니야

스트라이크 존은 어떻게 변해왔나?

야구규칙은 경기의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문제점들을 보완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변해왔다. 팬들을 위해 자극적인 변화를 택하기도 했으며 상업적 목적에 의해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야구 경기 판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규칙 변화는 지양해왔다.

이는 스트라이크 존도 마찬가지다. 가까이 KBO리그에서도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타고투저가 계속 이어지자 KBO는 2017시즌을 앞두고 전년도보다 스트라이크 존을 넓히려고 시도했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시범경기에서 넓어진 존에 타자들이 적응을 못 하고 불만을 표출하자 정규시즌에는 존이 다시 조금 좁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럼 최초의 스트라이크 존은 어떻게 설정되었을까? 19세기 야구 전문가인 리차드 허쉬버거에 따르면 1850~60년대의 투수는 단지 타자가 치기 쉽게 공을 던져주는 사람일 뿐이었다고 한다. 투수들이 점점 타자가 치기 어렵게 공을 던지자, 1871년에는 타자가 원하는 곳에 던져야만 한다는 취지에서 홈플레이트를 지날 때의 최고/최저 높이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재밌는 건 이 최초의 규칙도 포구할 때가 아닌 홈플레이트 앞부분을 통과할 때가 기준이었다는 점이다.

로봇 심판의 규칙존 반대, 실제존 찬성

얼마 전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글을 썼다. 야구규칙 문자 그대로의 스트라이크 존은 위 그림에서 주황색의 입체이며, 방송사에서 표출되는 스트라이크 존은 파랑색으로 규칙존의 일부분인데 이 둘은 실제 존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또한 평면을 기준으로 파란색 지역보다 뒤쪽인 빨간색 지역을 기준으로 잡으면 격차가 줄어든다는 내용이었다. MLB는 홈플레이트 투수 쪽 끝변보다 0.9피트, KBO는 1.7피트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구종별 스트라이크 존의 중심점이 비슷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KBO는 다음달 8월부터 퓨처스리그에서 로봇 심판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규칙 그대로 입체의 기준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라면 홈플레이트 앞쪽 지역도 존에 포함되기 때문에, 타자 무릎 높이로 홈플레이트를 통과했지만 포수가 원바운드로 포구하는 공도 스트라이크가 된다.

로봇 심판을 도입하게 된 계기는 스트라이크 존 일관성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기존에 심판들이 내렸던 판정이 실제 규정과 달랐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도 심판이 왜 규정대로 엄밀하게 스트라이크를 판정하지 않는지에 대해 지적한 적은 없다. 그러나 현재 KBO는 MLB와 마찬가지로 규칙 그대로의 존을 로봇 심판에 적용하려고 한다.  이미 독립리그와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투수와 타자를 가리지 않고 불만의 소리가 굉장히 높았는데도 말이다. 규칙 그대로의 존은 기존에 선수들이 적응된 스트라이크 존과 전혀 달라서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방송사 화면을 보는 팬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으로

필자는 지난 글과 이번 글에서 스트라이크 존이 입체가 아니라 평면이라고 가정하고 분석을 했다. 이는 원 데이터를 가공하는 과정에서의 편리성 때문이었다. 평면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규칙 그대로 홈플레이트 앞쪽에 스트라이크 존을 세우기보다 포수 방면으로 수십 cm 이동한 면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기존의 개념과 크게 상충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스트라이크 존은 2차원이 아니라 3차원이라거나 좌우로 휘어나가는 공을 차별해서 보아야 한다는 등의 의견도 있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문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개 ‘로봇 심판’이라고 하면 스트라이크 존 경계선을 그려놓고 그 안에 걸치면 무조건 스트라이크, 그 밖에 나가면 무조건 볼로 선언하는 방식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인간 심판이 판정할 때 한가운데 공은 스트라이크 확률이 99%, 경계선에 걸친 공은 50%로 차등화되는 것처럼 구역별로 스트라이크 판정 확률을 달리 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경계선을 기준으로 스트라이크/볼로 단순 구분하는 방식은 단순하고 직관적이지만 타자가 경계선에 적응한 뒤엔 스윙을 소극적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원래는 존을 벗어난 공도 스트라이크로 판정될 가능성이 있어 일단 휘둘러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새로운 방식 하에선 그럴 필요없이 선구안으로 골라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역마다 차등적인 스트라이크 판정 확률이 적용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양 팀에게 평등한 조건이고, 우리가 백년 이상 봐왔던 익숙한 스트라이크 존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절충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다수의 야구 관계자 인터뷰에서 ‘로봇 심판 도입 시 야구가 많이 바뀔 것이다’, ‘재미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반대로 팬들은 로봇 심판 등장이 모든 불만을 해소해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팬들의 기대대로 로봇 심판이 마법의 단어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계 도입만으로는 부족하다. 스트라이크 존의 기준을 어떻게 잡는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야구공작소 정대성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나상인, 홍기훈

사진 출처= boldbusiness.com,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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