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KBO리그는 단축 운영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지난해 팀당 144경기를 소화하기 위해 경기가 이뤄진 날이 총 161일이었다(휴식일 제외). 5월부터 9월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아도 150일 남짓이다. 포스트시즌까지 생각한다면 144경기는 현실적으로 무리다.
2020시즌이 어떻게든 열린다는 가정 하에 페넌트레이스 우승팀을 맞힌다고 해 보자. 두산, 키움이 첫 손에 꼽힐 것이고 한화나 롯데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개막 2연전 성적만으로 우승팀을 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이 경우도 두산, 키움이 먼저 나오겠지만, 조금만 운이 따른다면 롯데도 우승 가능성이 생긴다. 말 그대로 ‘단기전에서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축 시즌은 시즌이 상대적으로 단기전이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단기전에서는 장기전에서 볼 수없는 의외의 일들이 생기곤 한다. 의외의 팀이 상위권으로 잠시 올라갔는데 떨어지기도 전에 시즌이 끝날 수도 있고, 반대로 의외의 팀이 하위권으로 쳐졌는데 반등하기도 전에 시즌이 끝날 수도 있다. 지난해 시즌이 전반기로 끝났다면 페넌트레이스 우승은 여유롭게 SK의 차지였다.
선수 입장에서 보면 누적 기록에서는 손해를 보겠지만 비율 기록에서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대기록을 남길 가능성이 생긴다. 1982년 백인천은 80경기 시즌에서 72경기에 출전해 불멸의 타율 0.412를 남겼다. 1994년 이종범은 104경기(팀 기준)까지 4할 타율을 유지했고 2012년 김태균은 89경기까지 4할이었다.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둘 모두 1982년이었다면 4할 타자가 될 수 있었다.
단축시즌의 효과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난해 시즌이 더 짧았다면 페넌트레이스 순위는 어떻게 바뀔 수 있었을까? 최근 몇 년간 높은 타율을 기록했던 타자들은 경기수가 더 적었다면 4할을 칠 수도 있었을까? 팀 순위와 4할 가능성에 대해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봤다.
2019시즌이 더 짧았다면?
먼저 단축 시즌에서 팀 성적이 어떻게 바뀔지 살펴보자. 144경기 체제에서는 팀 간 16차전씩 진행한다. 홈/원정 비율을 공평하게 맞추기 위해 팀 간 경기수를 짝수 단위로 줄인다면 팀 간 14차전(총 126경기), 12차전(108경기), 10차전(90경기), 8차전(72경기) 등의 옵션을 생각할 수 있다.
2019년에 페넌트레이스 경기가 실제로 벌어진 날은 총 161일이었다. 161일 전체를 선택한 순위는 두산이 1등이고 롯데가 꼴찌였다. 이제 161일 중에서 단축 경기수에 맞춰 무작위로 일부만 선택해 팀 순위를 매긴다. 가령 팀 간 14차전 체제를 가정할 경우 무작위로 161*(14/16)=141일의 경기 결과만을 선택해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해 12차전이면 121일, 10차전이면 101일, 8차전이면 81일을 선택한다. (5경기가 다 열리지 않은 날도 똑같이 처리) 그리고 이렇게 무작위로 경기 결과를 선택해 순위를 매기는 행위를 각각 10000번씩 반복했다.
결과로 넘어가자. 먼저 126경기인 경우다. 숫자는 10000번 중에 각 순위가 몇 번이나 나왔는지를 나타낸다.
서로 승률 차이가 크지 않았던 두산, SK, 키움의 변동폭이 가장 컸다. 키움도 10번 중에 한 번은 우승할 수 있었고 두산도 10번 중에 한 번은 3위였다. 반대로 인접 순위 팀과 승률 차이가 컸던 LG, 롯데는 거의 대부분의 시도에서 같은 순위를 유지했다. 롯데는 10000번 중 9991번이 10위였다.(필자는 롯데 팬이다)
108경기 체제에서는 변동성이 좀 더 커졌다. 단 한 번이지만 KT가 2위에 오르거나 SK가 포스트시즌에도 나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화도 5강에 턱걸이하기 시작했다.
90경기로 오면 두산도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고, NC와 KT가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롯데는 5강커녕 6위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시즌을 절반(72경기)만 소화하는 경우다. 변동성이 커지다 보니 SK는 본래 순위인 2위보다 1위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삼성, 한화도 2위 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단 3번이지만 드디어 롯데도 5강에 진출했다.
4할 타자는 나올 수 있을까?
유사한 방식으로 타자의 타율도 시뮬레이션했다. 대상은 2014-2019년 동안 타율 0.350 이상 기록한 17개의 타자-시즌이다(‘2015년 테임즈’). 이 17개의 타자-시즌에 대해 각각 무작위로 126경기, 108경기, 90경기, 72경기만 골라 타율을 계산한다. 그리고 이렇게 10000번을 반복해 4할이 넘는 경우가 몇 번인지 센다. 예를 들어 2015년 테임즈는 142경기에 나왔는데, 이 중 무작위로 126경기를 골라 타율을 계산하는 것을 10000번 반복한 것이다. 결과는 아래와 같다. (실제 시즌에서 126경기, 108경기 미만 출전한 경우는 X로 표시)
예상대로 15테임즈의 성적이 가장 좋았다. 126경기에서도 4할이 확인되었으며 72경기에서는 4번에 1번은 4할을 기록했다. 다만 그 밑으로는 4할 가능성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는데, 당장 0.376의 16최형우부터 126경기 4할이 없었고 108경기 4할은 0.362의 유한준이 마지막이었다.
한편 실제 타율은 거의 같은데 4할 결과가 서로 크게 차이 나는 경우가 눈에 띈다. 14서건창과 17김선빈은 실제 타율은 모두 0.370이었으나 17김선빈이 현저히 4할 횟수가 많았다. 14김태균과 16김태균 역시 실제 타율은 0.365로 같았으나 16김태균의 결과가 훨씬 좋았고, 똑같이 0.362인 14손아섭, 18김현수, 15유한준 중에는 15유한준이 두드러지게 좋았다.
이런 결과에는 크게 2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각 선수들의 타수 차이다. 같은 타율이라도 더 적은 타수에서 만들어진 것일수록 4할의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실제 타율이 4할인 타자에게서 타수 2개만 골라서 그 결과가 5할 이상(2타수 1안타, 2타수 2안타)이 될 가능성을 계산한다고 해 보자. 만약 4할이 5타수 2안타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 중 2개를 골라 5할 이상이 나올 확률은 70%다. 반면 4할이 10000타수 4000안타로 만들어졌다면 이 중 2개를 고른 결과가 5할 이상인 확률은 64%다.
둘째는 안타 분포 차이가 작용할 수 있다. 표본을 경기 단위로 추출했으므로 한 경기에서 몰아치기를 하는 선수가 4할이 나오기에는 유리하다(반대로 2할이 나오기도 쉽다).
예를 들어 A, B가 각각 10경기에 출장해 경기당 5타수, 총 50타수를 소화했다고 하자. 이때 A는 10경기에서 모두 5타수 1안타를 쳤고 B는 첫 두 경기에서 10안타를 몰아친 친 뒤 나머지 8경기에서는 무안타였다면 종합 타율은 A와 B 모두 2할이다. 하지만 이 10경기 중 임의로 2경기를 골라서 타율을 계산한다면 A는 어떻게 뽑더라도 항상 2할이지만 B는 뽑기에 따라서는 5할이나 10할이 될 수도 있다. 물론 0할인 경우가 훨씬 많지만, 극단적인 수치가 나오기에는 몰아치기를 많이 하는 선수가 유리하다.
지금까지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단축 시즌의 길이에 따라 특이 기록이 발생할 가능성을 점쳐 봤다. 이런 특이 기록들을 포함해 단축 시즌도 단축 시즌만의 다양한 볼거리가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어떤 시나리오든 우선 개막이 이뤄져야 의미가 있다. 너무 늦기 전에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만날 수 있길 희망한다.
야구공작소 오연우 칼럼니스트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아이고 의미없다…
과연..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