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 여러분, ‘분식’ 좀 드셔 보셨나요?

[야구공작소 오연우]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라도 상한 재료로는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다. 잘못된 교과서로는 좋은 수업을 할 수 없고 오염된 도구로는 제대로 된 수술을 할 수 없다. 야구 기록도 마찬가지다. 분석 기법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분석 대상이 되는 기초 데이터가 잘못되었다면 올바른 분석이 불가능하다.

자책점은 투수의 실점 중 실책과 패스트볼에 의한 것을 제외한 것으로 정의된다. 이는 실책과 패스트볼에 의한 실점은 투수가 책임질 부분이 아니라는 의미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실책과 패스트볼에 의한 것이 아닌 실점은 반드시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앞 투수가 남기고 간 주자가 다음 투수에 의해 득점할 경우, 일반적으로 그 득점에 대한 책임은 앞 투수에게 돌아간다. 일견 당연해 보인다. 다음에 나온 투수가 물려받은 주자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면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 투수 입장에서는 어떤가? 2아웃 1루에서 1루 주자가 최종적으로 득점에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2아웃 1루에서 강판된 뒤 다음 투수에 의해 1루 주자가 득점한다면 앞 투수는 자신이 계속 던졌다면 막았을지도 모르는 주자에 대해 1점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현행 자책점 산정 방식은 뒤 투수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다 보니 앞 투수에게 덤터기를 씌운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앞 투수가 남겨 놓고 간 주자를 ‘남겨 놓은 만큼만’ 책임지게 하면 어떻게 될까? 2아웃 1루에서 강판되고 이후 1루 주자가 득점한다면 1루까지의 진루만 앞 투수가 책임지게 하고 1루~홈까지의 진루는 책임지우지 않는 것이다. 물론 뒤 투수가 책임지는 것도 불합리하므로 이 부분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다만 팀 기록으로만 남게 된다.

<박근홍은 승계주자 실점으로 가장 많이 손해를 본 선수다. 사진 제공 = 삼성 라이온즈>

 

상황별 주자 득점 확률

앞 투수가 남긴 주자가 다음 투수에 의해 득점하였을 때 앞 투수에게 구체적으로 몇 점을 책임지울 것인가? 주자는 한 루 진루할 때마다 득점 확률이 상승해 최종적으로 홈에 도착하면 득점 확률은 1이 된다. 따라서 투수가 특정 루까지 주자의 진루를 허용했다는 것은 주자의 득점 확률을 그만큼 높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투수가 주자를 남겨 놓고 강판됐다면 그 주자가 최종적으로 득점할 확률을 이용하여 투수가 그 주자에 대해 얼마나 책임져야 할지를 가늠할 수 있다.

 <표1, 아웃카운트, 주자 상황별 주자 득점 확률>

표1은 2016년 정규시즌 720경기의 데이터를 사용해 아웃카운트와 주자 상황에 따라 특정 주자가 그 이닝 중에 최종적으로 득점할 확률을 추출한 것이다. 가장 위쪽 가로줄의 아웃, 주자, 1, 2, 3루는 각각 아웃카운트, 주자상황, 1, 2, 3루에 있는 주자의 득점확률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2아웃 1, 2루에서 1루 주자가 최종적으로 득점에 성공할 확률을 알고 싶다면 2아웃에 12루가 쓰여 있는 가로줄에서 1루가 쓰여 있는 세로줄을 찾으면 된다. 이 경우 0.140임을 알 수 있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특정 상황이 발생한 이후 최종적으로 몇 점이 들어왔는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계산하였으므로 약간의 오차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1아웃 1, 2루에서 최종적으로 1점이 들어왔다면 2루 주자는 득점에 성공했고 1루 주자는 득점에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해 계산한 것이다.

 

선수별 승계주자 실점

이제 2016년 각 투수들이 몇 점이나 승계주자(투수가 강판됐을 때 남겨놓은 주자)를 실점’당했는지’ 알아 보자. 먼저 주자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은 승계주자 실점 순위는 표2와 같다.

 <표2, 2016년 승계주자 실점 순위>

한화 박정진과 삼성 박근홍이 21점으로 가장 많이 승계주자를 실점당했다. 3위는 18점의 한화 송창식이었고, 윤지웅이 4위, 고영표, 장필준, 이준형, 윤규진이 공동 5위에 올랐다. 한편 헥터, 장원준은 규정이닝을 채운 선수 중에서는 유이하게 승계주자 실점이 하나도 없었고, 규정이닝은 채우지 못했지만 해커, 김광현 등도 승계주자 실점이 없는 운 좋은 투수들이었다.

 

보정 평균자책점(adjERA)

다음으로 실점당한 승계주자들을 남겨놓고 내려온 위치에 따라 분류하고, 위치별로 표1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했다. 예를 들어 실점당한 승계주자가 총 3점인데 각각 0아웃 만루에서 3루주자, 1아웃 1, 2루에서 2루 주자, 2아웃 2, 3루에서 3루주자라고 하면, 표1에서 해당 위치의 점수를 찾아 모두 더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라면 0.900+0.470+0.298 = 1.668점이 된다. 원래라면 3자책점이지만 보정 뒤에 약 절반으로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남겨 놓은 승계주자의 위치를 분류할 때는 ‘이닝 재구성’ 방식을 사용했다. 이닝 재구성이란 자책점을 계산할 때 사용되는 기법으로, 하나의 이닝을 실책과 패스트볼이 없었다는 가정 하에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재구성하는 방법이다. 그에 따라 만약 실책으로 나간 주자가 있다면 해당 주자는 없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예를 들어 선두타자가 내야수 실책으로 출루하고 다음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강판되었다면 0아웃 1, 2루에서 강판된 것이 아니라 1아웃 1루에서 강판된 것으로 보았다.

이런 방식으로 승계주자 실점에 의한 자책점을 보정한 후 새롭게 평균자책점(adjERA)을 구하면 평균자책점 순위는 표3과 같다.(30이닝 이상)

<표3, 2016년 보정 평균자책점(adjERA) 순위(30이닝 이상)>

NC 임창민과 넥센 김세현이 평균자책점(ERA)과 보정 평균자책점(adjERA)에서 모두 1, 2위를 차지했다. 두산 정재훈이 9위에서 3위로 올랐고, 롯데 이정민은 6위에서 4위, SK 박희수는 10위에서 5위로 올라 조금씩 순위에 변동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1, 2위에 오른 임창민과 김세현이 모두 마무리 투수라는 것이다. 마무리 투수는 주자를 다음 투수에게 승계시킬 일이 거의 없으므로 adjERA를 적용하면서 얻는 이득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 투수인 두 투수가 adjERA에서도 1, 2위를 차지한 것은 그만큼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승계주자 실점으로 평균자책점에서 손해를 많이 본 선수는 누구일까? 표4는 ERA와 adjERA의 차이가 큰 선수들을 순서대로 나타낸 것이다.(30이닝 이상)

<표4, 승계 주자 실점으로 손해를 많이 본 선수들(30이닝 이상)>

앞서 단순 승계주자 실점에서도 1위를 차지한 삼성 박근홍이 가장 차이가 컸다. 박근홍은 득점확률 0.311에 불과한 1아웃 1루에서만 5번이나 승계주자 실점을 당해 3.445점을 억울하게 자책점으로 가져갔다. 상위10명 중 8, 9, 10위 팀인 롯데, 삼성, kt 선수만 6명으로 절반이 넘었다. 그만큼 하위팀에서는 후속 투수들이 앞 투수들의 주자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듯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 승계주자 실점 순위에서는 박정진, 송창식, 윤규진 등 한화 선수가 3명이나 있었는데 반해, 평균자책점 차이에서는 한 명도 순위 안에 없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는 이 셋의 이닝이 많다 보니 전체 자책점도 많고, 그 결과 전체 자책점에서 승계주자에 의한 자책점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선발투수가 순위에 없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분식회계, 이제는 그만!

앞 투수에게서 물려받은 주자를 실점하는 것을 속어로 ‘분식한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물려받은 주자는 홈에 들여보내도 자신의 자책점으로 기록되지 않는 것을 기업들의 ‘분식회계(粉飾會計)’에 빗댄 것이다. 새해에는 어떤 선수가 분식회계로 팬들을 울리고 웃길지, 구원투수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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