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최종성적: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4위 (69승 93패)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봉상훈] 2015 시즌이 막을 내린 뒤, 오프시즌을 가장 뜨겁게 달군 팀은 단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였다. 4시즌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애리조나는, 랜디 존슨과 이뤄냈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시기로 2016년을 선택했다.
애리조나는 겨울 동안 파격적인 영입들을 연달아 성사시켰다. 12월 8일자로 특급 우완 잭 그레인키와 6년 2억 650만$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선발투수 FA 계약을 체결한 애리조나는, 이어서 2015년 드래프트 전체 1번 픽이었던 댄스비 스완슨을 포함한 3명의 선수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내주는 충격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또다른 A급 선발투수 쉘비 밀러를 영입했다. 패트릭 코빈이 이끌던 기존의 로테이션에 두 투수가 가세하며 리그 정상급의 로테이션을 갖추게 된 애리조나는, A.J. 폴락과 폴 골드슈미트가 버티는 타선에 막강한 선발진을 더하면서 순식간에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그러나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최고의 유망주를 내주면서까지 영입한 두 선발투수는 그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타선을 이끌어줘야 했던 폴락마저 부상으로 시즌의 대부분을 결장했고, 애리조나의 과감했던 투자는 자연스레 완벽한 실패로 마무리되었다. 시즌 전 팬그래프가 예상했던 애리조나의 성적은 77.7승, 84.3패. 실제 성적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69승 93패(서부지구 4위)였다. 하지만, 과감한 투자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애리조나에게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최고의 선수 – 진 세구라
과거 LA 에인절스가 밀워키 브루어스로부터 잭 그레인키를 트레이드해왔을 당시, 브루어스로 넘어간 선수들 중에는 에인절스 최고의 유망주였던 진 세구라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둘은 4년 뒤, 애리조나에서 같은 팀 동료로 만나게 된다. 그동안 역대 선발투수 최대 규모의 FA 계약을 맺을 정도의 투수로 거듭난 그레인키와 달리, 세구라는 밀워키에서 잠재력을 폭발시키지 못하며 그저 그런 선수로 전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6 시즌에 보여준 모습으로 한정하면, 둘 중 보다 고무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는 단연 세구라였다.
커리어 최초로 3할 타율을, 그리고 20홈런을 기록한 세구라는 올시즌 대부분의 공격지표에서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특히 장타력에서 장족의 발전을 보였다. 이전의 2시즌 동안 기록한 장타가 도합 52개인데, 2016 시즌에 기록한 장타만 68개에 이른다. ISO(순수장타율) 또한 각각 0.080, 0.079를 기록했던 지난 2년에 비해서 2배가 넘는 수준(0.181)으로 상승했다. 그렇게 세구라는 2016 시즌에 쏟아져 나온 뛰어난 2루수들의 대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을 수 있었다.
지난 3년 간 세구라의 성적 변화
2014시즌: .246/.289/.326 / 5홈런 / 20도루 / 67 wRC+ / 0.0 fWAR
2015시즌: .257/.281/.336 / 6홈런 / 25도루 / 63 wRC+ / 0.3 fWAR
2016시즌: .319/.368/.499 / 20홈런 / 33도루 / 126 wRC+ / 5.0 fWAR
시즌 내내 리드오프로서 뛰어난 생산력을 보여준 세구라는 리그에서 단 9명뿐이었던 세 자릿수 득점자의 명단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또한 폴 골드슈미트와 함께 2000년 이후의 애리조나 내야수로는 유이하게 20홈런-20도루를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애리조나 선수들 가운데 가장 높았던 5.0의 fWAR은 그의 활약이 얼마나 빼어났는지를 입증해준다(폴 골드슈미트 4.8 fWAR).
기대되는 선수 – 로비 레이, 제이크 램
지난해 준수한 성적을 올리며 기대를 모았던 25세의 좌완 선발투수 로비 레이는 이번 시즌,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난 시즌에는 뛰어난 구위를 바탕으로 3.5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첫 풀타임 시즌을 맞이한 올해는 평균자책점이 4.90으로 급등하면서 선발진의 부진에 일조하고 말았다.
하지만 레이는 겉으로 보이는 성적에 비해 훨씬 빼어난 세부 성적을 남겼다. 데뷔 시즌이었던 2014년 평균 92.44mph를 기록했던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은 2016 시즌 95.25mph까지 상승했고, 헛스윙 비율 역시 13.07%에서 23.79%로 상승하면서 9이닝 당 탈삼진비율이 무려 11.25까지 올라갔다. 이번 시즌 정규이닝을 소화한 투수 중에서 레이보다 9이닝 당 삼진율이 높았던 투수는 불운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호세 페르난데스 하나뿐이었다. 174.1이닝만에 218개의 삼진을 기록한 레이는, 이 뛰어난 구위를 바탕으로 내년 시즌 반등하는 모습을 기대해볼 수 있는 투수이다.
얼마전에 26살이 된 애리조나의 3루수 제이크 램 역시 내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29개의 홈런으로 야스마니 토마스에 이어서 팀내 두번째로 많은 홈런을 만들어낸 램은, 팀내 최고인 0.509의 장타율을 기록하면서 남다른 펀치력을 과시했다. 후반기 들어 컨택에 어려움을 겪으며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졌지만, 첫 풀타임 시즌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는 매우 훌륭한 시즌을 보낸 셈이었다. 올해 전반기의 페이스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면, 다가오는 2017 시즌에는 골드슈미트를 받쳐줄 또 한 명의 중심타자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제이크 램의 전혀 다른 전반기와 후반기
첫 89경기 : 0.302/0.380/0.635/ 21홈런 / 65타점
이후 62경기 : 0.176/0.266/0.338/ 8홈런 / 26타점
가장 실망스러웠던 선수 & 키 포인트 – 잭 그레인키, 쉘비 밀러
애리조나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한 전제조건은 분명했다. 바로 선발진의 활약이었다. 애리조나에서 분석한 2015 시즌의 실패 원인 역시 내셔널리그에서 평균자책점 11위(4.37), FIP 12위(4.41), fWAR 12위(6.2)를 기록한 선발투수들의 부진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리조나는 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잭 그레인키와 쉘비 밀러의 영입에 나섰다. 하지만 2016 시즌 애리조나의 선발투수들이 기록한 성적은 평균자책점 15위(5.19), FIP 11위(4.50), WAR 11위(8.0)로, 이전보다 조금도 나아진 바가 없었다. 그 원인은 물론 잭 그레인키와 쉘비 밀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피칭에 있었다.
지난해 사이 영 상을 수상했던 2009년에 버금가는 뛰어난 투구를 선보였던 그레인키는, 1년만에 완전히 상반되는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4.37의 평균자책점은 팀과 자신의 부진에 실망하여 1년이나 마운드를 떠나도록 만들었던 2005 시즌(5.80) 이래로 가장 좋지 못한 성적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겹치면서 풀타임 선발투수로 나선 이후 최저인 158.2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쳤다.
1년 사이에 5.00에서 3.27까지 하락한 K/BB에서 드러나듯이, 올시즌의 그레인키는 가장 큰 장점이었던 제구력에서 예전만큼 날카롭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높아진 평균자책점의 직접적인 원인은 급증한 9이닝당 피홈런에 있었다. 2007년 이후로 단 한번도 1.00을 넘지 않았던 그레인키의 9이닝당 피홈런은 이번 시즌 무려 1.3까지 상승했다.
전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자였던 댄스비 스완슨을 보내면서까지 영입해온 밀러는 이보다도 훨씬 심각했다. 지난 시즌 205.1이닝을 투구하는 동안 3.02의 ERA를 기록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밀러는, 2016 시즌 고작 101이닝을 투구하면서 6.15의 ERA를 기록하는 등 1년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올시즌의 밀러는 1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들 중 미네소타의 타일러 더피 다음으로 높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부진한 기록을 남긴 선발투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 중심에는 여러모로 확연했던 구위의 약화가 있었다. 패스트볼의 구속은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94마일에서 93마일로 떨어졌으며, 라인드라이브 타구의 허용 비율은 18.2%에서 22.6%로, 공이 강하게 맞아나가는 비율을 보여주는 Hard%의 비율은 26.7%에서 35.8%로 급등하는 등 공의 위력을 나타내는 수치들이 전체적으로 크게 악화되었다.
아직 26세의 젊은 나이인 밀러가 반등할 가능성도 그리 낮지는 않지만, 애리조나가 밀러를 영입하기 위해 포기했던 댄스비 스완슨, 엔더 인시아테 등의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을 생각하면 밀러의 영입은 애리조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책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총평
애리조나의 2016 시즌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시즌이었다. 그들은 9000만$의 총 연봉 가운데 3000만$가 넘는 돈을 그레인키 한 명에게 지불하는 리스크 큰 모험을 감수했으며,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서 팀의 10년을 책임져줄지도 몰랐을 천재 유격수 유망주를 쉘비 밀러의 3년과 맞바꾸었다. 하지만 그렇게 맞이한 2016 시즌은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다. 무모한 도박으로 구단을 위기에 빠뜨린 토니 라루사 사장은 그 책임을 지고 보직 축소를 받아들였고, 데이브 스튜어트 단장과 칩 헤일 감독은 아예 애리조나를 떠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글의 서두에서도 밝혔듯, 애리조나에게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연 3000만$에 이르는 그레인키의 계약이 5년이나 더 남았으며, 곧 밀러를 비롯해 9명에 이르는 선수들이 연봉 조정 대상자가 된다. 내년도의 총 연봉이 1억$가 넘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애리조나는, 연봉 규모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나기 전에 반드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늦어도 밀러와 폴락이 FA 자격을 얻는 2019 시즌 이전까지 말이다.
다행히 애리조나의 타선은 젊고 강하며, 발전의 여지도 충분하다. 폴 골드슈미트, 야스마니 토마스, 제이크 램이 이끄는 클린업에 각성한 진 세구라, 돌아온 A.J. 폴락이 더해진 애리조나의 타선은 당장 다음 시즌부터 지금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기대해볼 만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결국 애리조나의 앞으로의 성패는 다름아닌 선발 투수들의 활약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선발진의 면면에 변화를 주는 것은 지금의 애리조나에게는 너무 벅찬 일이다. 이번 시즌 애리조나의 선발진에서는 그레인키와 밀러는 물론, 패트릭 코빈, 루비 데라로사, 로비 레이, 아치 브래들리 같은 기존 구성원 전부가 부진을 면치 못했다. 다음 시즌 애리조나 선발진의 활약은 아마 새로운 영입보다도 이 기존 선수들의 반등 여부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기록 출처: MLB.com / Fangraghs / Baseball-Reference / Brooksbaseball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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