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체스와 비아지니, 조금 더 지켜봅시다

(사진=Keith Allison,
Creative CommonsAttribution-Share Alike 2.0 Generic 라이센스를 따름. )

[야구공작소 이해인]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팀을 옮긴 애런 산체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적하자마자 첫 경기에서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노히터를 합작해내는 등 강한 임팩트를 남겼기 때문이다. 산체스는 휴스턴에 합류한 후 2경기에서 11이닝 동안 평균자책 0.82를 기록했다. 반면 동시에 휴스턴에서 토론토로 팀을 옮긴 외야수 데릭 피셔는 데뷔전에서 타구 판단 착오로 얼굴로 공을 받아내며 교체되어 그 대비가 선명해졌다.

산체스와 함께 휴스턴으로 이적하며 팀 노히터를 합작해 낸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조 비아지니다. 룰5 드래프트로 토론토에 합류했던 비아지니와 산체스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체격이 좋고 빠른공 구속이 94마일을 웃돌며 높은 회전수의 커브볼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히터가 조명되면서 외신들은 자연스럽게 휴스턴에서 또 하나의 마법이 일어났다며 두 선수의 바뀐 부분을 짚었다. 커브와 포심 패스트볼의 구사율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표1. 산체스, 비아지니의 변화

하지만 정말로 휴스턴이 마법을 부렸다고 하려면 먼저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 구종 구사율의 변화가 휴스턴에서 처음 일어난 일인가?
둘째, 구종 구사율의 변화가 긍정적인 변화인가?

 

커브 늘리기는 토론토에서도 시작되고 있었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슬라이더, 커브와 같은 브레이킹볼의 구사율을 높이고 패스트볼의 구사율을 낮추는 것이 트렌드다. 이유는 간단하다. 브레이킹볼이 더 많은 헛스윙을 유도하며, 패스트볼에 비해 장타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토론토 역시 이런 트렌드를 인지하고 있었다. 지난 오프시즌과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영입한 두 명의 투수 유망주 트렌트 손튼과 앤소니 케이에서 이를 알 수 있다. AAA 성적이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고 패스트볼 구속도 평범했지만 커브의 회전수에 주목했다. 엘리트 스핀을 가진 커브로 상대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복안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토론토의 이런 방침은 메이저리그 팀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토론토는 2017, 2018 시즌에는 각각 패스트볼 구사율 6위와 3위를 기록했으나 올해는 25위로 급격히 낮아졌다. 새로운 투수들을 영입한 영향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기존 선수들의 레퍼토리 수정이었다. 그리고 레퍼토리를 수정한 선수들의 명단에는 애런 산체스 역시 포함돼 있다. 올해 들어 주무기인 커브의 구사율이 이전까지 가장 높았던 2017년의 16.2%를 한참 넘어 22.3%까지 뛰어오른 것이다.

그래프1. 산체스의 월별 커브 구사율

위 표는 올해 산체스의 커브 구사율이 매월 어떻게 변했는지 나타낸 것이다. 산체스는 3월부터 5월까지 꾸준히 커브의 구사율을 높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술로 좋아진 줄 알았던 손가락이 기어코 탈이 났다. 4월에 중지 손톱이 부러지고 5월에는 물집이 잡히자 6월부터는 커브 구사율을 도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즉 산체스의 커브 구사율 증가는 휴스턴에서 새롭게 진행된 것이 아니다. 토론토에서 먼저 시도했으나 물집이라는 장벽에 막혀 주춤했을 뿐이다. 만약 물집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2019시즌 ‘토론토의 산체스’가 위 그래프 8월에 해당하는 ‘휴스턴의 산체스’만큼의 커브를 구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아지니는 어떨까? 사실 비아지니의 커브 구사율은 휴스턴에 와서 높아진 것이 맞다. 그러나 토론토가 브레이킹볼을 늘리는 팀 방침과는 반대로 오히려 비아지니의 커브 구사율을 낮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얻어맞는 공 늘리기

휴스턴이 산체스에게 준 또 하나의 변화는 포심 패스트볼의 증가다. 토론토에서는 매년 30%도 넘지 못했던 포심 패스트볼의 비율이 휴스턴에 가자마자 43.3%까지 늘어났다.

이는 토론토 팬들이 한번쯤 꿈꿨던 비율이기도 하다. 산체스의 투구 레퍼토리가 포심을 제외하면 싱커, 커브, 체인지업으로 모두 떨어지는 구종이며 스트라이크 존 낮은 쪽을 공략했을 때 효과적인 공이기 때문이다. 결국 존의 상하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포심이 필수적이다.

표2. 산체스의 연도별 싱커와 포심의 피OPS

실제로 2016시즌 어느 정도 포심 패스트볼이 좋은 성적을 거두자 토론토는 2017시즌에 포심 비율을 8%P 가량 늘렸으며, 2018시즌에도 2017시즌과 비슷한 구사율을 기록했다. 물론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 그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특히 포심을 늘리는 대신 싱커를 줄였는데 정작 포심이 싱커보다 성적이 나빴다. 휴스턴은 산체스에게 비효율적인 공을 더 많이 구사하도록 한 셈이다.

비아지니의 커브 역시 산체스의 포심만큼이나 우려되는 부분이다. 앞서 말한 대로 올해 토론토는 팀 전체 방침과 반대로 비아지니의 커브를 줄이고 싱커, 커터, 체인지업을 더 많이 던지게 했다. 왜 엘리트 회전수의 커브를 두고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래프2. 비아지니의 연도별 커브 피장타율
그래프3. 비아지니의 연도별 커브 헛스윙률

비아지니의 커브는 2018시즌부터 피장타율 측면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0.355에 머물렀던 피장타율이 0.588로 급격히 상승한 것이다. 이는 상대 타자들이 비아지니의 커브를 상대로 많은 플라이볼을 양산해내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이전까지 20% 초반에 머무르던 뜬공 비율이 2018년에는 42.1%까지 치솟았다.

올해는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뜬공 비율은 지난해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지만 상대 타자들의 헛스윙을 전혀 유도해내지 못한 것이다. 그에 따라 5월부터 커브 구사율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커터에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올해 산체스의 포심과 비아지니의 커브는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물론 볼 배합 등을 고려하지 않고 구종별 구사율과 타격 결과만으로 휴스턴이 준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낼지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 두 가지 공의 구위가 현재 떨어질 만큼 떨어져 있는 상태라는 점은 분명하다. 휴스턴에서의 변화를 긍정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이유다.

 

휴스턴의 마법은 너무 이른 판단

메이저리그를 오래 본 팬들이라면 이번 트레이드에서 자연스럽게 게릿 콜이 떠올랐을 것이다. 트레이드 당시 가치가 저점이었고, 엘리트 회전수의 커브를 갖고 있으며, 원소속팀에서 싱커를 많이 던지다가 휴스턴에서 포심을 많이 던지게 된, 그런 유형 말이다. 특히 휴스턴으로 건너갈 당시에 포심 패스트볼의 회전수가 보통 이하였다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것이 다르기도 하다. 콜이 이적할 당시는 오프시즌으로 휴스턴에게 콜의 여러 문제점을 수정할 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트레이드는 시즌 중에 이뤄져 둘을 마이너리그에라도 보내지 않는 한 여유가 충분치 않다. 트레이드 전까지 콜이 쌓은 커리어와 비아지니, 산체스가 쌓은 커리어도 많이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콜은 위 두 가지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이다.

콜의 커브 구사율을 늘리려 한 것은 휴스턴이 처음이었다. 또한 트레이드 직전 시즌인 2017시즌 콜의 커브가 피장타율(0.412), 헛스윙 유도율(9.19%)에서 커리어 최악이었다고는 하나 최악인 수치조차도 그렇게 나쁜 수치는 아니었다. 포심 패스트볼 역시 피츠버그 시절 준수한 장타 억제력을 보였고 2017시즌에는 싱커에 비해 낮은 피OPS를 기록하는 등 싱커를 줄이고 포심을 늘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즉, 기본적으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재료들이 산체스, 비아지니와는 한 차원 다른 선수였다.

산체스는 휴스턴에서의 3번째 경기에서 4피홈런, 6실점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홈런을 헌납한 공이 바로 휴스턴이 비율을 늘렸던 커브 2개, 그리고 포심패스트볼 2개였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에서는 복부 부상을 당하며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비아지니 역시 팀 노히터 경기 이후로는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 9이닝당 탈삼진은 토론토 시절 9개에서 휴스턴 이적 후 6.23개로 감소했고 9이닝당 볼넷은 3.06개에서 5.19개로 늘어났다. 결국 한 차례 마이너리그 강등까지 경험해야 했다.

산체스, 비아지니의 커브 및 포심 패스트볼 구사율이 증가한 것은 분명 휴스턴이 이들에게 취하고 있는 변화다. 그러나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 또 휴스턴이 마법을 부린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특히 변화의 맥락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분석이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에디터=야구공작소 도상현, 오연우
기록 출처=fangraphs.com, baseballsavant.mlb.com, brooksbaseba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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