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 윌슨,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우투우타, 180cm, 93kg, 1990년 7월 29일생
2019시즌
(AAA) 0.313 / 0.408 / 0.615
54경기 195타수 61안타 15홈런 48타점 40득점 31볼넷 42삼진
[야구공작소 송동욱] 최하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일까? 롯데는 카를로스 아수아헤에 이어 제이크 톰슨을 웨이버 공시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마지막 외국인 교체를 단행했다. 아수아헤의 대체 외국인 타자로 한국 무대를 밟을 제이콥 윌슨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수년간 롯데는 센터라인 수비를 볼 수 있는 외국인 내야수를 원했다. 시즌을 앞두고 영입한 아수아헤에게도 1년차 번즈만큼의 견실한 수비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했던 컨택, 출루능력을 기대했다. 하지만 아수아헤는 두 부분 모두(타율 0.252 / 출루율 0.356)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완주하지 못하고 바통을 넘기게 됐다.
롯데의 이번 선택도 2루와 3루를 전부 소화할 수 있는 내야수였다. 올 시즌 윌슨은 AAA에서 소화한 46경기 가운데 3루수로 가장 많이 출장했지만(33경기), 커리어 통산(2루수 2095.2이닝/ 3루수 2936.2이닝)을 보면 두 포지션이 전부 가능하다고 보는 쪽이 맞을 것이다.
배경
미국 테네시 주 바트릿에서 태어난 윌슨은 멤피스 대학 재학 중이던 2012년 MLB 신인 드래프트 10라운드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윌슨은 팀 내에서 큰 주목을 받진 못했고 2017년 룰5 드래프트(KBO리그로 치면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워싱턴 내셔널스로 이적했다.
2012년 지명 후 7년간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던 데에서 알 수 있듯 윌슨은 촉망받는 유망주와는 거리가 있었다. 마이너리그 통산 타율은 0.257에 불과하며 커리어 대부분 동안은 AA와 AAA를 오가는 그저 그런 내야수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롯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은 역시 장타력이다. 윌슨은 작년 시즌 3개 팀을 전전하며 392타석 동안 7홈런에 그쳤지만 올 시즌에는 196타석 만에 작년의 두 배인 15홈런을 기록했다. OPS 또한 1.023으로 리그 전체 6위를 마크하고 있다. 이름을 가리고 본다면 같은 타자의 기록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발전이다.
그렇다면 윌슨은 정말로 20대의 끝에서 야구의 새로운 경지를 터득한 것일까?
스카우팅 리포트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해보자면, “아니다”에 더 가까울 것 같다. 물론, 윌슨이 타격에 눈을 떴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외부환경은 그의 현재 성적을 온전히 실력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게 한다.
- 극심한 타고투저의 PCL
메이저리그를 즐겨보지 않는 팬이라면 PCL이라는 단어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PCL이란 AAA팀들이 모여 있는 리그 중 하나인 Pacific Coast League의 약자이다. 이제는 윌슨의 前소속팀이 된 Fresno Grizzlies도 PCL에 참가하는 AAA팀 중 하나이다. 물론 외국인 타자를 메이저리그에 가장 근접한 레벨에서 데려오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 리그가 올해 유독 극심한 타고투저 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PCL의 리그 OPS는 0.816이다. 역대 가장 많은 홈런을 쏟아내며 공인구 교체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만든 2018시즌 KBO리그의 OPS도 0.803이었다(최고 14시즌 0.807). 윌슨이 올 시즌 기록하고 있는 호성적을 숫자 그대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이전부터 타고투저 성향을 띠는 리그로 유명한 PCL이지만 올 시즌은 그 정도가 예년에 비해 많이 심하다. 특히 커리어 내내 0.4 초/중반대 장타율을 보여주던 윌슨의 장타력이 올 시즌부터 갑작스럽게 증가한 점은 공인구 교체의 영향을 받았을 확률이 높다.
지난해 PCL에서는 2230동안 2097개의 홈런이 나왔다(경기당 0.94개). 하지만 올 시즌부터 ML 무대의 공인구가 PCL에서도 쓰이게 되었고 그 결과는 급격하게 늘어난 장타, 특히 홈런이었다(경기당 1.41개). 그렇다, 대 홈런 시대를 지나고 있는 ML의 모습이 PCL에서 그대로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2. 지킬 앤 하이드 급으로 다른 성적, 무엇을 믿어야 할까?
<제이콥 윌슨의 통산 마이너리그 타격 성적>
좀 더 자세히 윌슨의 커리어 성적을 살펴보자. 올 시즌 전까지 단 한 번도 통산 20홈런, 혹은 0.5 이상의 장타율을 기록한 적이 없다. 장타력만 부족하다고 보기에는 통산 타율 0.257도 눈에 띄는 기록은 아니다. AA 이상에서만 뛰었던 2015년부터의 성적으로 끊어보면 통산 타율은 0.241로 더 떨어진다.
이처럼 윌슨은 바로 작년까지 크게 눈에 띄는 성적을 기록한 적이 없던 타자가 갑자기 기량이 만개한 케이스다. 그런데 올해 PCL전체의 장타 생산이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바로 위의 문단에서 언급했다. 급성장한 그의 기량에 대해 충분히 의심을 가져볼 만한 상황이다.
3. 과도한 기대는 금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롯데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 그렇다면 조금 더 과감한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KBO 리그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외국인 타자들은 저마다의 확실한 툴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확실한 파워의 제이미 로맥, 다재다능한 5툴 플레이어 제라드 호잉이 좋은 예시다. 아직 KBO리그에 데뷔조차 하지 않은 선수지만 본인만의 무기가 부족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무색 무취에 가까웠던 전임자 아수아헤의 결말을 생각해보자.
롯데는 아수아헤의 타격에서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괜찮을 성적을 내고 있는 윌슨을 선택한 것이 이해 못할 선택은 아니다. 다만 환경의 변화라는 찝찝한 변수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 윌슨이 정말 타격에 눈을 뜬 게 아니라면, 롯데와의 동행은 새드엔딩으로 끝날 지도 모른다.
전망
올 시즌 롯데의 핫코너를 맡았던 한동희와 강로한은 모두 실망스러웠다. 어쩌면 슈퍼 루키에게는 조금 더 시간이, 라이징 스타에게는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양상문 감독은 윌슨을 3루수로 기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작은 3루수지만 전임자의 공백인 2루도 맡길 수 있는 윌슨의 멀티포지션 능력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신시내티 레즈의 1루수 조이 보토는 이런 말을 남겼다. ‘‘커리어는 1년은 거짓말을 해도 2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올 시즌의 호성적으로 기대치를 한껏 올려놓은 윌슨이다. 6월 더위에 한국에 상륙한 그는 찝찝한 뒷맛을 남길까, 아니면 날씨만큼 뜨거운 타력으로 롯데의 상승세를 이끌게 될까? 윌슨의 앞날을 주목해보자.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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