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한민희] 지난주 삼성라이온즈의 외야수 박해민이 수비 중 뒷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확인하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다른 삼성의 외야수들도 수비 중 종이를 꺼내 살펴보곤 했다. 보도에 의하면 이 종이는 상대팀 타자들의 타구방향이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외야수가 수비 시프트 정보를 기재한 종이를 참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중계화면이 이슈가 된 후 KBO는 곧바로 삼성에 이러한 종이의 사용을 금지했다. 몇몇 구단이 KBO에 종이를 참고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자 우선 삼성의 사용을 중지시킨 뒤 다음 실행위원회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KBO가 삼성의 종이 사용을 금지시킨 것은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일까. 우선 2019년 KBO 리그규정·야구규약·야구규칙에는 ‘선수가 경기장에 수비내용이 적힌 종이를 소지하고 참고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다. 그나마 가장 유사한 것이 리그규정 제26조 2항이다. 이 항의 괄호 부분을 보면 경기 중 외부로부터 페이퍼 등 기타 정보 전달을 금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뜻 삼성의 종이가 이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항을 다시 잘 읽어 보자. ‘경기 중’에 ‘외부’로부터 ‘페이퍼 등 기타 정보 전달’을 금지하고 있다. 삼성의 종이가 이에 해당되지 않는 이유를 문답으로 풀어 보자.
Q1. 삼성의 종이가 경기 중에 전달되었는가?
A1.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다만 경기 전에 전달된 종이라면 문제가 없다.
Q2. 경기 중에 전달된 종이라고 가정하자. 그것이 외부로부터 전달되었는가?
A2. 우선 여기서 외부는 벤치와 그라운드를 제외한 장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라운드는 직접 경기가 이루어지는 곳이니 당연하고, 벤치는 경기 중에 선수가 공식적으로 대기하는 곳이니 역시 ‘내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직전 문구에서도 벤치 외 외부 수신호 전달 금지라는 표현으로 간접적으로 벤치를 ‘내부’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경기 중에 종이가 전달되었더라도 벤치에서 받았다면 문제가 없다.
Q3. 경기 중에 외부에서 종이를 받았다고 하자. 종이의 내용이 금지될 내용인가?
A3. 26조의 제목은 ‘불공정 정보의 입수 및 관련 행위 금지’다. 종이의 전달을 금지하고 있지만 빈 종이를 전달했다고 제재할 수는 없다. 종이에 불공정 정보가 있는 경우에만 제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불공정 정보인가. 26조의 다른 항에서는 투수 구종이나 배터리 사인을 말하고 있다. 이를 아무리 넓게 해석한다고 해도 ‘상대 팀의 사인 일체’ 이상으로는 해석하기 어렵다. 상대 타자의 타구 분포는 전혀 문제가 없다.
사실 삼성의 종이가 정말로 규정 위반이라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징계를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KBO는 상벌위원회를 소집하는 대신 실행위원회에서 이 내용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규정 위반이 아님의 방증이다.
그럼에도 KBO는 다음 실행위원회의 결정 전까지 수비정보가 있는 종이의 사용을 금지했다. 어떤 행위를 금지할 때는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실행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KBO가 임의로 어떤 행위를 금지시킬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KBO규약 제4조는 ‘총재는 리그의 발전과 KBO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리그 관계자에게 필요한 지시를 내릴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수비정보가 있는 종이의 소지를 금지하는 것이 이에 해당하는지는 KBO의 높으신 분들을 제외하면 누구나 알고 있다.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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