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함과 의문 사이, 샌프란시스코 오라클 파크

(출처=Wikimedia Commons)

[야구공작소 김동민] 샌프란시스코 만을 배경에 둔 아름다운 야구장,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 구장 오라클 파크(Oracle Park). 올해 초 비즈니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시스템을 개발하는 다국적 기업인 오라클(Oracle Corporation)이 구장 명명권(Naming Rights)을 사들이면서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메이저리그 팬들에겐 AT&T 파크라는 이름이 친숙한 곳이다. 외야 우측에 위치한 7.3m 높이의 벽돌로 된 스탠드,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바다(맥코비 만)와 겹쳐지는 아름다운 경관은 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의 두터운 팬 베이스에 힘입어 530경기 연속으로 티켓 매진(MLB 역대 2위)이 될 정도로 매년 사람이 넘쳐났던 핫 플레이스 중 하나였다.

[차트] 최근 10년간(2010~2019.5.10) 오라클 파크의 경기당 평균 관중수(출처=Baseball-Reference)

그러나 최악의 부진이 시작된 2017년부터 오라클 파크를 찾는 관중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프런트의 안일했던 판단과 미션 락 프로젝트(Mission Rock Project)*에 눈이 먼 구단주 그룹이 리빌딩에 돌입할 시점을 놓치면서 팀 성적이 몰락한 것이 주된 원인이지만, 샌프란시스코 팬들은 구장의 특이한 형태가 리그 최하위 타격에서 비롯된 “고문 야구(Torture Baseball)”에 한몫했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구장의 특이한 형태가 팀 성적을 망치고 있을까? 오라클 파크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몇몇 쟁점을 짚어보자.

* 미션 락 프로젝트란 홈구장인 오라클 파크 옆 주차장 부지 약 3만 4000평을 대규모 주상복합 단지로 개발하는 사업을 말한다. 지난 2015년 한인인 제인 김 시의원이 발의한 이 프로젝트에는 1327세대의 주택과 약 1만 1000개의 영구 일자리가 걸려있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선 꾸준한 흥행몰이는 필수였고, 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리빌딩에 돌입하지 못했다.

펜스…당긴다고 해결될까?

(출처=Wikimedia Commons)

1997년 겨울 기공식을 하여 2000년 4월 개장한 오라클 파크(당시 퍼시픽 벨 파크)는 바다를 매립하여 12.5에이커(약 50,586m2)의 인공 대지를 만들고 그 위에 구장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매립 방식의 특성상 건설부지가 네모난 형태일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의 제한적인 투자 규모로는 좀 더 보편적인 형태의 구장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매립지의 면적을 확장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는 원래 계획되었던 대지에 그대로 구장을 짓되 짧은 우측 담장을 높이고 일반적인 펜스가 아닌 벽돌로 처리를 하는 독특한 구조의 스탠드를 계획했다. 오라클 파크 특유의 아름다운 우측 관중석이 탄생한 배경이다. 좌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팬들은 초록색 잔디가 뒤덮인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보다가 뒤를 돌아보면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가 맞이하는, 그야말로 매우 훌륭한 경관을 볼 수 있었다. 구장의 개장과 함께 우측 스탠드는 오라클 파크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명소가 됐다.

그러나 경기를 보러 온 팬들에겐 최고의 장소일지 몰라도 샌프란시스코 타자들에겐 그렇지 못하다. 공간상의 문제로 인해 한없이 높아진 담장과 한없이 멀어진 우중간으로 인해 샌프란시스코 타자들은 큰 손해를 보고 있다.

류현진과 매디슨 범가너가 맞대결을 펼쳤던 지난 5월 2일(한국시간) 경기에서 벌어진 일이 대표적이다. 1회말부터 스티븐 더가와 타일러 오스틴의 연속 안타로 무사 주자 2, 3루의 기회에 타석에 들어선 3번 타자 브랜든 벨트는 우중간으로 큼지막한 타구를 때려냈다. 스탯캐스트(Statcast)가 측정한 예상 비거리는 무려 417피트(127m). 다른 구장이었으면 홈런이 되고도 남았을 타구였다. 그러나 오라클 파크는 그렇지 않았고, 결국 벨트의 타구는 우익수 코디 벨린저에게 잡히면서 고작 1타점 희생플라이에 그치고 말았다. 문제는 이런 경우가 지금까지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벨트의 희생플라이 장면. 바로 뒤에 421피트 사인이 보이는가? (출처=mlb.com)

샌프란시스코 타자들이 구장으로 인해 입는 피해는 비단 우측 담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바로 뒤에 바다를 둔 구장의 위치 특성상 오라클 파크에서 열리는 낮 경기에서는 해풍으로 인해 타구의 비거리가 줄어든다. 그렇기에 다른 구장에선 담장을 넘길 만한 타구를 쳐내도 오라클 파크에선 홈런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잦다. 이에 따라 오라클 파크의 좌측 및 중앙 펜스를 넘기는 타구도 비슷한 길이인 다른 구장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다른 구장에선 홈런이 될 타구가 담장 앞에서 잡히는 장면이 매 경기마다 나오고 있기 때문에 현지에선 펜스를 앞으로 당겨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오라클 파크 개장 이래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타자들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구장으로 인해 타격이 더욱 침체되고 재미없는 투수전이 펼쳐지는 경우가 잦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의견도 많다. 샌프란시스코 타자들이 홈런을 못 치는 것은 비단 홈 구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가 오라클 파크를 홈으로 써온 이래 홈 구장에서의 타격 성적과 원정 구장에서의 타격 성적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거의 없거나 오히려 홈에서의 성적이 좋다. 이 말인 즉, 그 동안 타자들은 홈에서 못한 게 아니라 원정에서 더 못했거나 그냥 리그 평균보다 못한 성적을 냈다는 이야기이다.

[표1] 2017~2019 샌프란시스코의 타격 홈/원정 스플릿 (출처=Fangraphs)

한편 타자에게 불리하다는 말은 곧 투수에게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투구 성적 역시 홈과 원정으로 나누어 보면 샌프란시스코에서 뛰었던 투수들이 그 동안 얼마나 구장 덕을 많이 보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수비무관 평균자책점(FIP)을 구장의 중립화로 재정립한 xFIP와 ERA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표2] 2017~2019 샌프란시스코의 피칭 홈/원정 스플릿 (출처=Fangraphs)

정리하자면 펜스를 앞으로 당기게 될 경우 자칫 타자들이 못하는 건 그대로인데 투수 성적만 나빠져서 오히려 재미없는 경기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로 구장 구조를 변경한다고 해서 관중수가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불펜의 위치, 이건 참을 수 없다

(출처=Wikimedia Commons)

이번엔 담장 바로 옆으로 눈을 돌려보자. 현재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플레이하고 있는 30개의 구장 중 불펜이 분리되지 않은 채 인플레이 구역(in-play area)에 위치한 구장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는가? 정답은 아래 세 구장이다.

[표3] 답 없는 세 구장 (출처=mlb.com)

위의 두 구장은 건립된 지 오래 되었으며 리모델링 의사도 없기 때문에 방치 상태에 있다. 그러나 오라클 파크의 경우 지어진 지 20년도 되지 않은 비교적 신식 구장임에도 불구하고 불펜이 그라운드와 분리되지 않은 채 파울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게 별 문제가 있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크게 보면 선수들의 안전이 달린 문제다.

(출처=mlb.com)

2018년 4월 24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좌익수를 맡고 있던 맥 윌리엄슨은 수비 도중 파울 타구를 쫓아가다 불펜 마운드에 걸려 넘어져 관중석 펜스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그 후 일어서서 경기를 계속 뛰긴 했지만 어지러움을 느끼는 등의 뇌진탕 증세를 보였고, 결국 2018시즌 내내 뇌진탕과 싸우며 시즌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그로부터 갓 1년이 지난 2019년 4월 26일. 이번에는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우익수 스티븐 더가가 DJ 르메히유의 파울볼을 쫓다가 불펜 마운드 위로 굴러 허리 통증으로 몇 경기를 쉬게 되었다. 이때 부상에서 회복해 최근 콜업된 윌리엄슨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불펜을 무조건 옮겨야 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이 구장은 매우 특별합니다. 독특하고 신기한 특징들이 참 많이 있어요…(그러나) 저는 선수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독특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윌리엄슨이 말한 대로다. 오라클 파크가 상당히 독특한 구장이긴 하지만, 현재의 위치에 있는 불펜은 선수들을 부상 위험에 처하게 하는 요소다.

“이게(불펜) 이 위치에 있어서 쿨하지도 않고 특이하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아요. 물론 전 그 위치에 불펜이 있는 것에 대해 그 동안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것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이기고 지고가) 포인트가 아니에요. 불펜을 옮겨서 우리가 이기고, 불펜을 옮겨서 홈런을 쉽게 칠 수 있다,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부산물로 따라올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제 말은, 안전을 위해 옮겨야 한다는 겁니다.”

인플레이 구역, 그것도 원래의 수비 위치에서 파울 타구를 따라가다 보면 먼 거리를 오로지 공에 집중하고 달려가야 하는데 그 와중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에 걸려 넘어지거나 다른 것에 부딪히게 되면 매우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윌리엄슨은 그런 케이스들 중 하나였던 뇌진탕을 이겨내고 돌아온 셈이다. 그랬기에 느끼는 것이 상당히 많았을 것이며 그것이 위와 같은 인터뷰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불펜 위치 이동 문제는 논의 중에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야구 부문 사장 파르한 자이디는 “오프시즌에 관련된 조치를 계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확정된 사안은 아니지만 진전이 되었다는 부분에서 선수 보호를 위해 한 걸음 나아간 셈이다.

2016년 시카고 컵스는 리글리 필드의 대규모 리모델링 3단계에 불펜 위치 이동을 포함시켰다. 이유는 역시 선수들의 부상 예방 차원이었다. 100년이 훨씬 넘은 전통의 구장도 선수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오라클 파크의 구장 관계자들도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성적은 어쩔 수 없으나, 안전만은

(출처=Wikipedia)

최근 샌프란시스코의 부진으로 인해 팀 안팎에서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 중 구장인 오라클 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결론적으로 팀의 성적과 구장의 상관관계는 낮다. 어느 팀이든 각양각색의 구장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으며 어떻게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경우 해발 1580m에 있는 “투수의 무덤” 쿠어스 필드를 이용함에도 지난 몇 년 동안 내부 육성을 통해 카일 프리랜드, 저먼 마르케즈 등의 에이스급 투수들을 길러내면서 좋은 성적을 내는 데 성공했다. 사실 이런 모습은 팀 린스컴, 매디슨 범가너를 배출했던 10년 전의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보였던 것들이다.

필자의 의견은 이렇다. 구장 탓을 하기보다는 선수 보는 눈이 없는 과거의 프런트를 탓하자. 최정상에서의 5년을 믿고 자만했고, 늙어가는 선수들을 생각하지 않은 채 “우린 여전히 강하다”라고 외치며 앞뒤 가리지 않고 선수를 영입한 그들의 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현재의 프런트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자이디의 행보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만 그 현재의 사람들이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선수 보호다. 그렇기에 가장 큰 위험 요소인 불펜의 위치 변경은 무조건 필요하다. 위에서 윌리엄슨과 더가의 사례를 이야기했지만 과거에도 불펜으로 인해 몇몇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좋은 성적을 기록하려면 그 성적을 내는 데 기여하는 선수들을 지켜야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구장의 독특함을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윌리엄슨이 말했듯 이것은 독특함이 아닌 해악에 가깝다. 오라클 파크의 번창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부활을 위해서 불펜 이동이라는 조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에디터=야구공작소 권승환 & 이현우

출처=mlb.com, Baseball-Reference, Fangraphs, San Francisco Chron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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