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포수 정상호, 희비가 교차했던 2016시즌

[야구공작소 오정택] 2015시즌 LG는 유강남이라는 좋은 포수 유망주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제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른 선수에게 모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유강남에게 부족했던 것은 투수들을 이끌어 나갈 경험, 그리고 준수한 수비 능력이었다. 그런데 마침 이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선수가 FA시장에 나타났다. 바로 정상호였다.

LG는 정상호의 영입으로 신구 경쟁구도를 형성하며 포수진을 강화했다. 4년 32억원이라는 계약규모는 LG가 정상호에게 거는 기대감의 크기를 말해줬다. 그러나 기대와 함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은 정상호의 2016년은 명암이 엇갈린 한 해로 남았다.

 

희(喜): 포스트시즌에서의 맹활약

희비가 교차한 올 한 해, 가을은 정상호에게 기분 좋은 계절로 남았다.

 

정상호의 가을은 화려했다. (사진제공=LG트윈스)

 

포스트시즌 내내 정상호는 팀 전체를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며 LG가 플레이오프까지 활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타자로서 KIA와의 와일드카드 2차전에서 끝내기 득점을 견인한 안타,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해커에게 때린 솔로홈런 등 중요한 순간마다 뇌리에 박히는 활약상을 남겼다. 포수로서는 21이닝 무실점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4번의 만루 위기에서 단 1실점을 기록했을 정도로, 그의 미트는 안정감이 있었다(47.1 수비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2.28).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은 포수 정상호의 노련함을 잘 보여준 대목이었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 4회 1사 만루에서 박동원과 임병욱의 타석의 연속 투구기록. 타자 시점에서 바라본 그림(일러스트=야구공작소 최경령)

 

4회 1사 만루에서 상대한 박동원의 타석을 복기해 보자. 선발투수 소사는 볼카운트 3-1으로 위기에 몰렸다. 이때 정상호는 우측 하단 직구를 요구한 뒤, 좌측 중앙 슬라이더라는 과감한 수를 던졌다. 마지막으로는 우측 상단 직구를 던지게 해 파울 플라이로 상대를 요리했다. 존 곳곳을 활용하는 과감성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그 다음 타석에선 신중함이 돋보였다. 6구까지 소사는 모든 공을 존에 걸치거나 바깥으로 빠지도록 던졌다. 그러나 긴 승부 끝에 들어온 7구는 한가운데 꽂히는 스트라이크.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다시 한 번 시도한 과감한 승부는 삼진, 잔루 만루로 이어졌다. 여기서 위기를 넘긴 LG는 상승세를 타며 다음 공격에서 대량 득점에 성공했고, 소사는 6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신중한 한 수와 과감한 한 수를 적절히 섞은 정상호는 포스트시즌에서 투수들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잇따른 활약으로 정상호는 가을에 강한 ‘빅게임 캐처’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팬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한다.

 

비(悲): 추락한 정규시즌 성적

그러나 가을의 활약이 있기 전까지, 정상호의 2016년 정규시즌은 본인과 팬들 모두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정상호는 여러 면에서 커리어 최악의 해를 보냈다.

가장 심각하게 무너진 것은 타격 성적이었다. 개막 첫 한달 동안 정상호는 0.162의 타율을 기록하는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정상호는 이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시즌 타율 0.182, 150타석 이상 기준 최하위). SK시절 통산 0.255의 타율을 기록한 그에게 정교함을 기대한 이는 적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 무너질 것이라 생각한 이는 없지 않았을까.

또한, ‘걸리면 넘어간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던 파워도 실종됐다. 정상호는 2008년 이래 2012년(0.136) 한 해를 제외하면 매년 0.140가 넘는 ISO(순수 장타율)를 기록했다. 그러나 LG에서는 홈런 단 하나만을 때리는 데 그치며 ISO가 0.061까지 떨어졌다.

 

 

무너진 것은 타격만이 아니었다. 포수로서 꾸준했던 수비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양상문 감독이 경기 후반 정상호를 교체투입하며 승부를 굳히는 ‘1점차 리드 지키기’ 전략으로 효과를 보고자 했지만, 준수했던 그의 수비마저 무너져버리며 실패했다.

정상호는 리그에서 수준급 도루저지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LG는 정상호에게 유강남의 부족한 도루저지(2015년 도루저지율 25%)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바와 달리 정상호는 커리어 최악의 도루저지율을 보여줬다. 또한 블로킹 실력도 지난 2년에 비해 떨어졌다.

 

도루저지는 정상호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도루저지율 뿐만 아니라 블로킹 수치도 함께 나빠졌다.

 

게다가 투수들과의 좋은 호흡과 마운드의 안정화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LG 포수진 주요 기록을 보자.

 

정상호는 유강남보다 낮은 WAA를 기록했다.

 

정상호 영입으로 휴식을 더 챙길 수 있었던 유강남은 오히려 도루저지에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2015년 124경기 도루저지율 25% → 2016년 100경기 40.6%).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높은 WAA로 이어졌다.

반면에 정상호는 유강남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WAA와 함께, 출전기회가 적었던 최경철, 유망주 박재욱보다도 낮은 도루저지율을 기록했다. 결국 수비 때문에 정상호를 영입한 LG의 구상은 그 명목을 잃었다.

공격과 수비 외에도, SK시절부터 붙어 다니던 ‘유리몸’ 딱지도 떼지 못했다. 5월 23일 눈병을 이유로 1군에서 말소되며 유강남에게 주전자리를 내줬고, 다시 콜업 2주째인 6월 24일엔 SK시절부터 안고 있던 고질적인 허리 부상을 이유로 말소되며 7월 한달을 결장했다. 결국 정상호는 백업포수와 대타로 남은 시즌을 보냈다. 77경기에 출장했지만 대다수가 교체 출장이기에 132타수(수비 367.2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정리하자면, 커리어 최악의 공수를 보이며 무너졌고 정상호를 기용해야 하는 큰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팀내 타자 종합 WAR* 최하 4위(-0.33), 팀내 타자 종합 WPA 최하 2위(-1.11)를 기록했다.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수준 대비 승리기여도,
WPA(Win Probability Added): 승리 확률 기여도

 

정상호는 부상으로 인해 단 한번도 풀타임 경험이 없다. (사진제공=LG트윈스)

 

정규시즌 부진의 원인

그렇다면 그는 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을까.

먼저 고질적인 부상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상호는 올해 초 시무식에서 풀타임 출전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스프링캠프부터 시즌이 시작까지 제 컨디션을 찾지 못했다. 몸이 좋지 않았고, 이는 시범경기에서 포수 중 가장 나은 활약을 보여주었던 그가 개막 시리즈 내내 출장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개막 시리즈 이후 4월말 유강남의 말소로 한달 동안 주전의 기회를 가졌지만 그 마저도 눈병으로 날려버렸고, 다시 콜업되었지만 2주만에 허리 부상으로 다시 말소, 한달 동안 결장하게 된다.

부상을 달고 살았으니 제 실력을 내는 것도, 많은 기회를 받는 것도 불가능했다.

두번째 이유는 통계적으로 나타난 ‘불운’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정상호의 기록을 보면 기존과는 달리 비정상적으로 나빠진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전보다 훨씬 ‘운이 없었다’라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

그 중 하나는 BABIP(타구의 인플레이시 안타 확률) 지표의 폭락이다. 정상호가 올해 기록한 0.245의 BABIP는 2002년 이후 커리어 최저이며, 올해 리그 평균인 0.331보다 훨씬 낮았다.

또 하나는 내야안타의 실종이다. 지난 2014년과 2015년 모두 정상호는 10개의 내야안타를 기록했는데, 2016년 들어서는 내야에 머무른 타구가 단 하나도 안타로 연결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는 지나치게 떨어진 장타력이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정상호의 ISO는 2008년 이후 매년 꾸준히 0.140 이상을 기록했다. 올해 기록은 0.14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0.061이었다. 물론 잠실구장은 문학구장보다 훨씬 넓기 때문에 ISO의 감소는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올해 그는 원정경기 76타석에서 장타를 하나도 치지 못했다. 실력의 결과로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상호 자신에게 달린 ‘32억의 가치’

부상도 있었고 운도 따르지 않았다. 여러모로 최악의 한 해였다.

리그 최하위권의 타격을 보여주었고, 수준급이었던 수비도 리그 평균수준으로 내려갔다. 2016년의 정상호는 공수 양면에서 매력이 없는 선수로 변했다.

가을에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정규시즌에서의 부진을 만회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의 활약이기에 다음 시즌을 밝게 전망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리고 경쟁상대인 유강남은 정상호의 공백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수비를 보여주며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미 최악의 성적을 맛보았고, 이제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기에 오히려 반등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과거보다 타석에서 더 신중하게 볼넷을 골라내는 등(볼넷 비율 SK시절 통산 6.9%, 올해 10.7%) 변화의 가능성도 엿보였다.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이다. 앞으로의 3년, 올해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기록 출처: STATIZ, KBReport

(사진 제공=LG 트윈스)

1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