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람이 말한다, 답은 하나가 아니다

[야구공작소 박기태] 당신이 투수라 가정해 보자. 처음 만나는 타자에게 가장 안전한 코스로 던져야 한다면 어디로 던질 것인가. 혹, 바깥쪽 낮은 공이라고 답하진 않으셨나.

‘바깥쪽 낮은 공’은 가장 안전한 코스의 대명사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투수가 가장 많이 공략하는 지점도 바깥쪽 낮은 코스다. 투수가 바깥쪽 낮은 코스를 선호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바깥쪽 낮은 공은 방망이와 몸의 중심에서 멀기 때문에 강하게 때리기 어렵다. 둘째, 바깥쪽 코스는 눈에서 멀기 때문에 들어오는 공이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 분간하기 더욱 어렵다. 즉 유인구를 던지기에 최적의 장소다.

이런 이유로 투수에게 바깥쪽 낮은 코스는 반드시 정복해야 할 고지로 여겨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교과서적인 공략법이 항상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재 KBO리그를 대표하는 구원 투수 중 한 명이 이 정석을 따르지 않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한화 이글스의 수호신 정우람이다.

 

낮은 곳에 집착하지 않는 정우람

일반적으로 왼손 투수는 왼손 타자의 바깥쪽 낮은 코스로 빠른 공을 던지는 것이 정석이다. 정우람도 이 점에서는 교과서적인 지도법을 따랐다. 문제는 오른손 타자를 상대할 때다.

정우람은 오른손 타자를 상대할 때도 바깥쪽 위주의 승부를 선호했다. 그러나 코스의 높낮이는 교과서의 그것과 달랐다. 정우람은 낮은 코스 대신 높은 코스, 타자의 가슴팍 높이를 즐겨 공략했다. 적어도 올해, 2016년에는 그랬다.

 

정우람의 투구 위치 선택(2016년) (기록 제공=STATIZ)

 

타자의 가슴팍 높이로 오는 공은 장타로 연결되기 쉽다. 하지만 강한 구위의 공을 높은 코스에 던지면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기도 쉽다. 그러나 정우람의 빠른 공 평균 구속은 시속 140km로 느린 편이다. 그럼에도 그는 강속구 투수처럼 높은 공을 자주 던졌다.

그렇다면 저 높은 코스의 공들을 실투로 봐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오른손 타자 상대로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간 볼의 비율이 25%가 넘는데, 이만큼 많은 실투를 던지는 투수는 아마도 프로 선수 중에는 없을 것이다. 결국 이는 의도를 가진 투구의 결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흔히 말하는 정석과는 다른 패턴이지만.

 

정우람의 선택, 교과서와 달랐다

정우람의 투구 결과가 의도된 것이라는 전제 하에 그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과연 정우람의 투구 전략은, 그와 비슷한 스타일의 투수 사이에 보편적인 선택이었을까? 이를 알아보기에 앞서 정우람의 ‘스타일’을 짚어 보자.

정우람은 빠른 공과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즐겨 던진다. 그리고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반대 손, 즉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는 빠른 공과 체인지업만 90% 가까이 던졌다. 오른손 타자 입장에서 정우람을 상대하는 것은 체인지업과 빠른 공의 2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찾는 비교대상은 ‘반대 손 타자에게 빠른 공-체인지업 위주로 던지는 투수’가 된다. KBO리그의 경우 체인지업과 같이 아래로 떨어지는 공인 스플리터를 던지는 투수가 많다. 그래서 편한 비교를 위해 ‘빠른 공-체인지업&스플리터’ 조합을 많이 선택한 투수를 찾았다.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허프, 밴헤켄, 보우덴, 김진성, 이태양이 정우람과 마찬가지로 2가지 구종을 즐겨 쓴 것으로 나타났다.

 

정우람과 비교대상 투수들의 반대 손 타자 상대 시 선택 구종. 빠른 공과 떨어지는 공의 합이 80% 혹은 그 이상에 달했다. (기록 제공=STATIZ)

 

비교대상 5인은 대부분 반대 손 타자를 상대로 2가지 구종을 적극 활용했다. 두 구종의 구사율 합은 대부분 80%가 넘었다. 이 중 허프는 체인지업을, 나머지 밴헤켄-보우덴-김진성-이태양은 스플리터를 적극 활용했다. 이들의 반대 손 타자 상대 투구 분포도는 아래와 같다.

 

비교대상 5인이 반대 손 타자를 상대했을 때 투구 위치. 김진성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높은 코스로 공을 던지는 것을 기피했다. (기록 제공=STATIZ)

 

거의 모든 투수가 높은 코스를 선호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김진성(우투)만이 낮은 곳보다 높은 코스를 선호했다. 만약 정우람의 선택이 체인지업/스플리터 투수에게 정석적인 해법이었다면 대부분의 투수들이 비슷한 투구 분포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정우람의 선택이 구종 조합에 따른 ‘교과서적인 선택’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째서 높은 코스였을까

왜 독특한 선택을 했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본인에게 답을 듣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떨어지는 공의 움직임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빠른 공이 높은 코스에서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아니면 빠른 공과 체인지업의 높낮이 조절로 타자를 현혹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우람의 체인지업은 ‘높이’를 활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우람이 던진 체인지업은 가운데 높이에 걸치기 일쑤였다. 정말 빠른 공과의 움직임 차이를 활용하고 싶었다면 철저하게 낮은 코스로 던졌어야 한다. 오히려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으로 더 많이 던진 것이 눈에 띄었다.

 

정우람의 체인지업은 낮게 깔리기보다는 타자의 바깥으로 도망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기록 제공=STATIZ)

 

정우람의 빠른 공과 체인지업 위치 분포를 나란히 놓고 보면, 투수들이 흔히 중요시하는 ‘낮은 투구’와 ‘바깥쪽 투구’ 중 후자에 더 신경을 썼다는 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결과가 정우람이 의도한 바라면 ‘높이 조절’은 정우람에게 중요한 과제가 아니었다는 뜻이 된다. 어쩌면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간 공은 특별한 의도에 의한 것도, 실수에 의한 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답은 하나가 아니다

데이터는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정우람의 투구 데이터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은 ‘일반적인 전략과 달리 높은 코스에도 많은 공을 던졌다’는 사실뿐이다. 때문에 정우람의 의도를 확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이상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추측의 영역이다.

정말로 정우람에게 중요했던 것은 높이가 아닌 좌우, 즉 타자 바깥쪽 투구였을까? 바깥쪽으로 많은 공을 던진 것은 확실하다. 자신의 공이 바깥쪽으로 던졌을 때 더 강해진다는 것을 파악하고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단지 리그 최고 수준의 마무리에 걸맞는 배짱을 가지고 과감하게 던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딱 떨어지는 결론은 내리기 어렵지만 한 가지 교훈은 얻을 수 있다. 야구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수많은 변수에 의해서 정답은 그때그때 바뀐다. 우리는 가끔 야구에서 너무 많은 곳에 하나의 정답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깥쪽 낮은 코스’라는 교과서 같은 가르침도 상황에 따라 잘못 쓰인 클리셰에 그칠 수 있다. 강속구 투수만이 높은 코스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야구에 답은 하나만 있을 거라고, 그렇게 당연하게 여겨선 안된다.

 

※ 이 글은 STATIZ에서 제공한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2 Comments

  1.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정답은 정우람 선수만 알고 있겠지만, 추측 해 볼 실마리는 있을 것 같습니다.

    1. 높은 공이 볼카운트 유리한 상황에서 들어갔는지 vs 불리한 상황에서 들어갔는지 살펴볼 수 있을것 같구요,

    2. 데이터가 허락한다면 피칭간 sequence 를 분석해서 편차를 구해보면 다른 선수들과 정우람이 높낮이를 활용하는 스타일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글 쓰신 분 분석력도 대단하고 데이터 구하기 좋은 위치에 계시는 명망가로 보여서 개인적인 궁금함까지 담아 댓글 남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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