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야구공작소 조우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1선발 매디슨 범가너는 꽤나 자주 타자들을 제치고 대타 타석에 들어 설 만큼 타격에도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투 웨이 플레이어(Two-way Player) 혹은 ‘이도류’라 부르지 않는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야구는 자연스레 발전을 거듭하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투수나 타자 한쪽에 집중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 수준이 되었다. 결국 베이브 루스를 끝으로 투 웨이 플레이어는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뒤, 2018년 쇼헤이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투 웨이 플레이어의 부활
오타니는 NPB 시절부터 쭉 타자와 투수 역할을 겸해왔다. 일본에서의 5시즌 동안 타자 오타니의 커리어 OPS는 0.859, 투수 오타니의 커리어 평균 자책점은 2.52로 투타에서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MLB 진출을 두고 세간에서는 베이브 루스의 재림이라고 평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LA 에인절스와 계약한 오타니는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심각한 부진을 겪으며 투 웨이 플레이어는 고사하고 마이너리그로 가야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정규 시즌에 돌입함과 동시에 투타 모두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면서 양키스의 글레이버 토레스와 미구엘 안두하를 제치고 AL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다.
타자 오타니는 대부분의 타자들 보다 나은 타격을 보여줬다. 휴식일과 부상으로 규정 타석(502타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준수한 타율과 안정적인 출루 능력, 22개의 홈런을 쳐낸 파워, 그리고 10개의 도루를 기록한 빠른 발은 메이저리그 올스타 야수로 뽑혀도 손색없는 모습이었다.
투수 오타니는 부상으로 인해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지만 비율 스탯에서는 굉장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51⅔ 이닝은 선발 투수를 평가하기엔 너무 적다고 할 수도 있지만 50이닝에 큰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포지션이 존재한다. 바로 불펜 투수다.
무거운 불펜의 어깨
최근 메이저리그는 ‘패전(처리)조’라는 위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불펜을 구축하는 것이 게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불펜이 강한 팀들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컨텐딩이 가능한 팀들은 매 시즌 부지런히 불펜 보강을 하고 있다.
모든 불펜 투수들이 마무리 투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구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발 투수들에게 약간의 위기만 찾아와도 감독은 불펜 투수를 등판시켜 승부를 결정지어 버린다. 해를 거듭할수록 선발 투수들이 소화하는 이닝은 줄어들고 한 경기에 사용되는 불펜 투수들의 수와 이닝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메이저리그 로스터의 정원은 25인으로 일정했다. 지난 CBA 협상 당시에도 선수 노조측은 선수들에게 휴식을 좀 더 부여할 수 있도록 로스터를 늘리거나 경기수를 줄이자는 의견을 내세웠지만 이렇다 할 결과를 이뤄내진 못했다.
이에 대한 차선책으로 IL(Injured List)을 15일에서 10일로 줄였지만 생각만큼의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지난 시즌 템파베이 레이스를 시작으로 새로운 투수 운용 전략으로 떠오른 ‘오프너’의 시작은 불펜 과부하를 새로운 세계로 밀어 넣어 버렸다.
투수를 갈아 넣는 오프너 전략이 여러 팀들을 통해 시도 될 때 등장한 오타니의 50이닝은 생각보다 시사하는 바가 컸다. 올스타급 타자가 준수한 불펜이 소화할 만한 이닝과 성적을 거둬줌과 동시에 팀에게 로스터 한자리의 여유를 허락해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타니의 Off* 수치는 위트 메리필드와 트레버 스토리 사이에 있고 72이닝을 던진 T.J. 맥파랜드나 71이닝을 던진 라이언 프레슬리와 같은 셋업맨들 보다 높은 WPA를 적립했다.
*팬그래프에서 사용하는 타격 세이버 지표로 수비 세이버 지표인 Def와 합쳐져서 fWAR를 구한다.
물론 오타니만큼의 성공을 거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신시네티 레즈와 오타니로 재미를 본 에인절스는 이번 오프 시즌 동안 또 다른 투 웨이 플레이어를 육성하고 있었다. 신시네티의 마이클 로렌젠과 에인절스의 케일럽 코와트는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투 웨이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스프링 트레이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규정이 발표된다.
사무국의 지나친 간섭
2020년부터 시행될 새로운 룰에는 투 웨이 플레이어와 관련된 조항이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선수가 아무리 투타에서 좋은 재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투 웨이 플레이어로 등록이 되어야 마운드 등판이 가능하게 규칙이 변경되었다.
투 웨이 플레이어로 등록되기 위해 선수는 바로 전 시즌 최소 20이닝을 소화해야 하고 야수 혹은 대타로 선발 출장해 3타석 이상을 소화한 경기가 20경기 이상이어야 한다. 등록되지 않은 타자는 경기가 6점차 이상이 나지 않는 한 9회가 끝날 때까지 마운드에 오를 수 없다.
현재까지 밝혀진 투 웨이 플레이어 관련 규정이 효과가 있기 위해선 로스터 제한이 필수적이다. 26인 로스터로 늘어나는 대신 로스터의 구성, 즉 각 팀이 몇 명의 투수와 타자를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한이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투수로 등록한 뒤 야수나 지명타자의 역할을 시키면서 필요에 따라 등판 시키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Free 이도류
최근 시행되었거나 곧 시행될 새로운 규칙들 대부분은 획일화를 강요하고 있다. 사치세 규정이 바뀜에 따라 구단들은 사치세 한도를 기준으로 페이롤을 짜기 시작했다. 피치 클락 도입은 투수들 모두가 20초 안에 투구를 시작하게 하며 수비 시프트 제한은 매 타석마다 수비들이 같은 위치에서 수비를 하게 한다. 머지 않아 모든 팀들이 같은 수의 타자와 투수를 로스터에 포함할 날도 올 것이다. 매년 들려오는 내셔널리그의 지명타자 제도 도입 역시 이런 획일화의 큰 틀에서 시행되는 변화다. 수십 년 만에 부활한 투 웨이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오프너 전략의 독특함도 한 경기당 쓸 수 있는 투수의 수를 제한 하려는 움직임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여기서 수십 년 만에 부활한 투 웨이 플레이어 쇼헤이 오타니는 뭔가 새로웠다. 마운드에서 시속 100마일의 공을 뿌리고 타석에서 홈런을 치는 그는 뭔가 다른, 특별한 선수였다. 공정한 경쟁과 경기시간 단축이라는 명분 하에 벌어지고 있는 변화가 달갑지만은 않은 요즘이다.
기록 출처: Fangraphs, Baseball Reference, MLB.com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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