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홍기훈] ‘라이징 패스트볼(rising fastball)’이란 단어가 있다. 타자 앞에서 꿈틀대며 솟아오르는 위력적인 강속구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공은 박찬호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했다. 칠 테면 쳐보라는 듯 ‘떠오르는 직구’를 한복판에 욱여넣어 메이저리그의 강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곤 했다. 김병현이 던진 업슛이란 구종도 홈플레이트에서 떠오르며 타자를 속이곤 했다. 하지만 사람이 던진 공은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 2000년대 중반 PITCHf/x 데이터가 대중에 공개되면서 공이 떠오른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밝혀졌다.
예전 PITCHf/x는 투구마다 x, y, z축별로 가속도, 초기 속도, 초기 위치값을 제공했다. 투구는 타구와 달리 등가속 운동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9P라고도 불리는 이 아홉 가지 계수를 이용해 투구가 어떤 궤적으로 날아오는지 계산한다. 실제로 레이더가 측정한 값을 보면 투구는 이차함수의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 스탯캐스트가 그 자리를 대체한 뒤에도 여전히 투구 데이터는 위의 9P 값이 제공된다. 9P 중에서 수직 방향인 z축의 가속도 데이터에 따르면 사실상 모든 투구가 음의 값을 가진다. 공기나 다른 요소가 미치는 미세한 영향을 제외하면 떠오르는 공은 없다고 봐도 좋다.
실재하지 않는 단어, 라이징 패스트볼과 레이트 브레이크
이처럼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개념 중에 ‘레이트 브레이크(late break)’란 것이 있다. 공이 날아오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방향을 바꾼다는 의미다. 비슷한 뉘앙스로 drop off a table이란 표현도 있다. 탁자 위를 굴러오던 공이 가장자리에서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레이트 브레이크의 예시로 많이 쓰이는 게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은 그 공이 타자 앞에서 급격히 휘어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역시 물리적으로 라이징 패스트볼만큼 어폐가 있다.[1]
야구공은 물리 법칙을 따른다. 아이작 뉴턴 앞에 떨어진 사과가 그랬듯이 말이다. 뉴턴의 제2운동 법칙[2]을 생각해보자. 투수는 자신의 손을 떠난 공에 더는 힘을 가할 수 없다. 0.5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야구공엔 바람과 같은 외부적인 힘이 개입하기 어렵다. 따라서 공에 가해지는 힘은 방향과 크기가 항상 일정한 중력을 제외하면, 공기저항에서 발생하는 ‘항력(drag force)’, 회전에서 발생하는 ‘마그누스 힘(magnus force)’뿐이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항력은 공의 진행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마그누스 힘은 회전축의 방향과 수직 방향으로 작용한다. 앨런 네이선 일리노이 주립대 물리학 교수는 ‘투구의 회전축이 투구가 진행되는 동안 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초고속 촬영 등 여러 방법으로 확인됐다.
항력의 크기는 속력의 제곱에 비례하고 마그누스 힘의 크기는 회전수에 비례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투구는 갑자기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일정한 회전축과 회전수를 가지고 있으며 날아가는 속도도 일정하게 감소하기 때문이다.
단어의 오류, 거기서 배울 수 있는 점
라이징 패스트볼이나 업슛이 중력을 거슬러 떠오른다는 건 거짓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단어가 생겼을까? 다른 공에 비해 덜 떨어지는 구종이 있기 때문이다.
수직 무브먼트는 회전 없이 중력만 작용했을 때 공이 홈플레이트를 지나갔을 위치와 실제 위치를 비교하는 수치다. 이를 통해 실제로 공이 얼마나 덜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백스핀이 주인 포심 패스트볼은 양의 값, 탑스핀이 걸리는 커브는 음의 값을 가진다. 이 값이 클수록 공이 떨어지는 양이 적다. 지난해 MLB 수직 무브먼트 상위권에 위치한 저스틴 벌렌더나 블레이크 스넬의 빠른공이 ‘라이징 패스트볼’의 묘사와 가장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레이트 브레이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공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타자들은 입을 모아 어떤 공의 움직임이 ‘레이트 브레이크’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이 현상에 대해선 아직 명쾌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이 글에서는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짚어보고, 제 3의 가능성도 짧게 언급해 보려 한다.
먼저 지각(perception)의 한계를 이유로 들 수 있다. 궤도가 비슷한 두 공을 생각해보자. 이차함수의 곡선을 그리며 오는 두 공의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벌어질 것이다. 육안으로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궤도를 그리던 두 공이 어느 순간 차이를 보인다. 최고의 타자라 해도 공을 끝까지 보고 때리지는 못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 그 시점에서 공이 갑자기 꺾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직구와 비슷한 궤도로 오는 리베라의 커터가 레이트 브레이크의 예시로 꼽히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데이빗 케건 캘리포니아 주립대 물리학 교수는 “레이트 브레이크가 없다고 말하기 보다 모든 브레이크가 레이트 브레이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4].
그렇다면 이는 타자의 동체시력과 반응 속도에 달린 문제다. 특히 피치 터널링 이론(Pitch tunneling)을 생각해보면 더욱더 그렇다. 비슷하게 보이는 구종을 섞어 던지면 더욱 효과적이란 주장인데, 현장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커브는 그 휘어짐을 눈으로 구별할 수 있는 지점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높은 쪽으로 오는 빠른공과 짝을 이룬다.
두 번째 가설은 위의 물리적인 설명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에서 시작한다. 중력과 평행, 수직인 x, y, z축을 기반으로 하는 좌표계에서 회전축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의 운동 방향을 중심으로 한 좌표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좌표계에 따라 작용하는 힘이 변한다면 공의 궤도를 단순히 등가속운동만으로 설명하기도 어려워진다. 네이선 교수는 지난 여름에 이와 관련된 글을 썼다. 공이 중력 때문에 진행 방향이 바뀌면서 수직으로 항력이 생길 수 있다는 요지였다[5]. 하지만 그 항력이 공의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현재 제공되는 데이터론 알기 어렵다.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쓰인 흥미로운 글[6]에서 새로운 의견을 찾아볼 수 있다. 실밥으로 인해 생기는 공 단면의 차이가 무브먼트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크리켓에서 이런 방법으로 변화구를 던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엉뚱한 얘기는 아니다. 이 현상이 사실이라면 공의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공이 공기와 닿는 면의 모양이 바뀔 때 무브먼트도 변하게 된다.
한껏 가까워진 야구와 물리, 그리고 데이터
야구는 이제 머니볼의 시대를 넘어 방대한 양의 데이터로 겨루는 데이터 사이언스의 장이 됐다. 물리학 교수가 야구와 관련된 글을 쓰는 건 더는 낯선 일이 아니다. 야구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이 요직에 앉는 일도 빈번해졌다. 3년 전, 구글 출신의 앤디 갤디는 고작 30살의 나이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분석 팀장의 자리에 올랐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분석팀을 이끄는 제이 사토리는 애플 출신이고, 최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부단장이 된 시그 메달은 NASA 출신 엔지니어다. 스탯캐스트의 근간을 이루는 트랙맨에서도 이런 ‘너드(nerd)’의 까다로운 요구에 맞춰 보다 정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경향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레이트 브레이크의 비밀도 풀리지 않을까.
에디터 = 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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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www.baseballprospectus.com/news/article/19994/bp-unfiltered-is-late-break-real/
[2] F = ma, 힘 = 질량 * 가속도
[3] http://spiff.rit.edu/richmond/baseball/traj/traj.html
[4] https://tht.fangraphs.com/the-physics-of-late-break/
[5] 원문: https://tht.fangraphs.com/pitch-movement-spin-efficiency-and-all-that/ 번역문: http://naver.me/5TMXdeL2
[6] https://www.baseballaero.com/2019/02/01/a-different-idea-on-the-laminar-express/?preview=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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