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최원영)
[야구공작소 장원영] 위 순위표는 작년 KBO리그 볼넷 비율 상위 10명을 나열한 것이다. 이들은 곧 타석에서의 참을성이 좋은 타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타자들보다 볼넷을 많이 골라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골라낸 볼넷은 다 같은 볼넷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로부터 간신히 뽑아낸 볼넷과 제구력이 나쁜 투수로부터 쉽게 얻어낸 볼넷은 다르다. 스트라이크 존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볼과 포수 머리 위를 한참 넘어간 볼은 질적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조경환 전 KIA 타이거즈 타격코치에 따르면,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3개 이상 벗어나는 볼은 대체로 타자들이 쉽게 구분해낸다고 한다. 동시에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한두 개 정도 빠지는 볼을 골라내는 것은 타자의 성향과 역량, 그리고 경기 상황 등에 달렸다는 말도 전했다.
유혹을 견뎌낸 자들
그렇다면 지난 시즌 ‘스트라이크 같은 볼’의 유혹을 가장 잘 견뎌낸 타자는 누구였을까? 조경환 전 타격코치의 발언을 바탕으로, 유인구가 스트라이크 존에서 최대 2개 가량 벗어난 경우에 이를 효과적으로 골라낸 타자들을 찾아봤다. 이 글에서 ‘유인구’는 [그림1]이 나타내는 영역에 투구된 볼로 정의하며, 야구공의 지름은 3인치(7.62cm)로 계산했다. 심판의 볼 판정은 반영하지 않고 타자의 스윙 여부만 고려했다.
결과는 볼넷 비율 순위와 많이 달랐다. 지난 시즌 구종을 불문하고 유인구를 가장 잘 참아낸 타자는 김재호였다. 그 뒤를 이어 김하성, 박경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박경수가 타석에서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볼넷 비율이 5%대에 불과한 허경민과 김상수가 순위권에 오른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패스트볼 계열 유인구와 변화구 계열 유인구를 분류한 결과는 [그림2]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달랐다. [그림2]와 마찬가지로, 패스트볼 계열 유인구를 가장 잘 참아낸 타자는 김재호였다. 하지만 변화구 계열 유인구를 상대로는 나지완이 가장 낮은 스윙 비율을 기록했다. [그림3]과 [그림4] 두 명단에 모두 이름을 올린 선수는 김재호와 박경수뿐이었다. 패스트볼 계열 유인구를 골라내는 일과 변화구 계열 유인구를 골라내는 일은 별개의 영역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표와 명확한 상관관계는 없지만
사실 볼넷 비율과 유인구 스윙 비율 사이의 상관관계는 약했다. 두 지표 간의 통계적 상관관계는 0.40에 불과했다. 앞서 언급했듯 유인구 스윙 비율이 낮았던 허경민과 김상수 모두 볼넷 비율은 높지 않았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더군다나 박병호, 오재일, 최정 등 볼넷 비율 상위 3명의 이름은 그 어느 명단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두 지표 간 상관관계가 약한 이유는 다양하게 추측해볼 수 있다. 첫째는 타자의 타격 성향이다. 허경민처럼 유인구를 곧잘 골라낸 동시에,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온 공은 적극적으로 타격했다면 볼넷 비율은 높지 않을 수 있다. 둘째는 상대 타자에 따른 투수들의 변화다. 투수는 일반 다른 타자들을 상대할 때 보다 박병호같이 강한 타자를 만났을 때 스트라이크존에서 더 확실히 벗어난 공을 던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밖에 출루율 등의 다른 지표 역시 유인구 스윙 비율과 명확한 상관관계를 보여주지 못했다. 따라서 유인구 스윙 비율의 높고 낮음만으로는 그 선수가 좋은 타자인지 아닌지 단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유인구 스윙 비율은 타자의 배트 적극성을 부분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난 볼을 판별하는 역량까지 내포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위 선수들이 올해도 비슷한 전략을 갖고 타석에 들어설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에디터=야구공작소 도상현, 이예림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