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공작소 시즌 리뷰] 보스턴 레드삭스 – 킬러 B가 그리는 ‘멋진 신세계’

팬그래프 시즌 전 예상 성적: 동부지구 1위 (88.5승 73.5 패)
시즌 최종 성적: 동부지구 1위 (93승 69패)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남통현] 2014년부터 두 시즌 내리 지구 최하위를 기록했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지갑을 열었다. 확실한 에이스 없이 2~3선발급의 투수들로 가득했던 선발진에는 7년 2억 1700만 달러의 거액을 들여서 데이비드 프라이스를 영입해 왔고, 계투진에도 특급 마무리 크레이그 킴브렐을 데려오면서 타자와 준이치, 카슨 스미스, 우에하라 코지 그리고 킴브렐로 이어지는 막강한 필승조를 구축했다. 확실한 1선발과 최고의 마무리를 영입한 레드삭스는 단숨에 강력한 우승 후보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보스턴의 선발 로테이션은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가 스프링캠프 도중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출발하기도 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로드리게스의 공백은 새로운 너클볼러 스티븐 라이트의 등장으로 메웠지만, 이번에는 에이스인 프라이스가 5월까지 4.74의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하면서 기대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보스턴의 선발진을 그나마 지탱해준 것은 라이트와 릭 포셀로의 기대 이상의 활약이었다. 그전까지 건강하기만 하면 기본은 해냈던 클레이 벅홀츠는 건강하기만 했을 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고(선발등판 시 ERA 5.01), 조 켈리(선발등판 시 ERA 8.46)는 등판 때마다 극심한 부진을 거듭한 끝에 시즌 중반 마이너리그로 강등되기까지 했다. 선발 로테이션의 연쇄적인 부진은 결국 시즌 중반, 샌디에이고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드류 포머란츠를 영입해 오는 악수로 이어졌다. 포머란츠는 그전까지 펜웨이 파크에서 28이닝을 투구하면서 6.4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보스턴과의 궁합에서 우려할 만한 점이 적지 않았던 선수였다. 실제로도 포머란츠는 이적 후, 팀에 거의 보탬이 되지 못했다.

선발투수들의 부진으로 인해 보스턴은 올 시즌, 시즌 전의 예상과는 달리 몹시 험난한 여정을 겪었다. 실제로, 동부지구 단독 선두로 올라선 9월 7일 이전까지 보스턴이 지구 단독 선두를 차지하고 있었던 기간은 단 16일뿐이었다. 그 정도로 보스턴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라는 격전지에서 시즌 내내 치열한 혈투를 펼쳤다.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선발투수들 대신 팀을 이끈 것은 타선이었다. 40세의 나이에 38개의 홈런과 1.021의 OPS를 기록한 오티즈를 중심으로 무키 베츠, 잰더 보가츠,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로 이어지는 ‘뉴 킬러 비’의 화력이 불을 뿜었고, 1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헨리 라미레즈의 타격도 어느 정도는 예전의 위력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더스틴 페드로이아까지 건강하게 라인업을 지킨 올 시즌, 보스턴의 타선은 신구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리그 최고의 타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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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팬그래프의 시즌 전 예상처럼 보스턴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를 차지하면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보스턴이 자랑하는 타선은 디비전시리즈에서 만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너무도 꾸준하게 침묵을 지켰다. 사투 끝에 진출한 포스트시즌이었으나, 그 결과는 너무나도 허무한 3전 3패의 탈락이었다. 그럼에도, 보스턴이 지난 2년간 지구 최하위를 기록한 팀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번 시즌을 소기의 목적 정도는 달성한 시즌이었다고 평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최고의 선수 – 무키 베츠, 릭 포셀로

* 무키 베츠의 최근 2년간 성적

2015년 타율 0.291 출루율 0.341 장타율 0.479 OPS 0.820 18홈런 fWAR 4.8 bWAR 6.0
2016년 타율 0.318 출루율 0.363 장타율 0.534 OPS 0.897 31홈런 fWAR 7.8 bWAR 9.6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 전체 172순위로 레드삭스에 지명된 무키 베츠는 아마추어 시절 야구는 물론 농구와 볼링에도 재능을 보였을 정도로 운동능력이 뛰어난 유망주였다. 드래프트 당시에만 해도 2루수로 평가 받았지만, 그 무렵 보스턴의 2루는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페드로이아가 버티고 있는 자리였던 만큼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차근차근 마이너리그 단계를 밟아 나가며 성장을 거듭한 베츠는 올 시즌, 풀타임 2년차를 맞아 본격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개화시켰다. 31개의 홈런을 바탕으로 0.534의 장타율, 0.216의 순장타율을 기록하면서 “파워를 갖춘 페드로이아”라는 꿈만 같았던 평가를 현실로 이끌어낸 것이다. 시즌을 마친 뒤, 베츠는 아메리칸리그 우익수 부문에서 골드 글러브와 실버 슬러거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심지어 MVP 투표에서도 마이크 트라웃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베츠의 급성장에서 특히 놀라운 점은 ‘삼진의 증가’라는 대가 없이도 큰 상승세를 보인 장타력에 있다. 지난 시즌에 비해 홈런이 18개에서 31개로, 장타율이 0.479에서 0.534로 급등하는 동안에도 베츠의 시즌 K%는 12.5%에서 11.0%로 오히려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베츠의 발전은 수비에서도 인상적으로 나타났다. 2015 시즌 우익수 포지션에서 -1.6의 UZR을 기록했던 베츠는 이번 시즌 17.8이라는 놀라운 UZR을 기록했다. 이는 메이저리그의 전체 야수 가운데서도 5위에 해당하는 성적으로, 베츠의 수비력이 이번 시즌 얼마나 급격한 상승세를 그려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 릭 포셀로의 올 시즌 성적

22승 4패 222.3이닝 189삼진 ERA 3.15 fWAR 5.2 bWAR 5.0

2015 시즌이 개막하기 이전의, 즉 보스턴으로 막 이적해 왔을 무렵의 포셀로는 그때까지 계속해서 기량이 발전하고 있던 젊고 유망한 선발투수였다. 그러나 보스턴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맞이한 2015 시즌, 포셀로는 8승 15패 평균자책점 4.92로 부진하면서 적응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직전 시즌의 0.79개에서 1.31개로 눈에 띄게 증가한 경기당 피홈런을 감안하면 타자 친화적인 구장이 즐비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와 포셀로는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 시즌, 포셀로는 본래의 기량을 되찾으면서 오히려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빼어난 시즌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굉장한 시즌을 보낼 수 있었던 최대의 비결은 앞서 언급했던 경기당 피홈런을 1.31개에서 다시 0.93개까지 끌어내렸다는 데 있었다. 이번 시즌, 포셀로의 플라이볼 대비 홈런 비율(HR/FB%)은 지난 시즌 기록한 14.5%의 2/3 남짓인 9.3%에 불과했다. 리그의 홈런 숫자가 전반적으로 증가한 시즌에 거꾸로 피홈런을 줄이는 데 성공한 포셀로가 훌륭한 시즌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포셀로의 성공은 투구패턴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 시즌, 포셀로는 산도발로 대변되는 보스턴의 불안한 내야 수비를 우려한 탓인지 자신 있게 투심을 구사하지 못했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투심의 비율을 다시 끌어올리기 시작한 포셀로는 올 시즌, 포심의 구사율을 줄이고(35.5% -> 24.3%), 투심은 늘리면서(29.8% -> 35.4%), 본격적으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나갔다. 작년과는 사정이 달라진 보스턴의 내야는 괄목상대한 수비력으로 포셀로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가장 발전한 선수 –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

빅리그에 데뷔한 2013 시즌 이래 수많은 기회를 부여 받고도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는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분명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0.354/0.429/0.734의 슬래시 라인과 1.163의 OPS를 기록하면서 대활약한 8월을 기점으로 후반기에만 9개의 홈런을 몰아치면서 빅리그 적응 완료를 선언하는 듯한 후반기를 보낸 것이다. 올해 스프링캠프 기간에도 0.377의 타율과 3개의 홈런으로 정규시즌을 향한 기대감을 키워간 브래들리는, 올 시즌 29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등 타격에 제대로 눈을 뜬 모습을 보여주면서 주전 선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졌다.

*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의 지난 3시즌 타격 성적 변화

2014 시즌: .198/.265/.266 1홈런 0.5 fWAR
2015 시즌: .249/.335/.498 10홈런 2.4 fWAR
2016 시즌: .267/.349/.486 26홈런 4.8 fWAR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낸 브래들리지만, 앞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부분은 여전히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좌완을 상대로 확연하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고(우완 상대 0.277 23홈런, 좌완 상대 0.244 3 홈런), 다른 하나는 체력저하 탓인지 후반기에는 현격하게 타격 페이스가 떨어졌다는 점이다(후반기 타율 0.233).

 

실망스러웠던 선수 – 파블로 산도발

체중조절에 거듭 실패하면서 한계를 모르고 늘어나기만 하는 뱃살, 경기 중 화장실에서 인스타그램을 사용한 것이 발각되어 팀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을 정도로 엉망인 워크 에씩, 연봉은 1760만 달러, 내년 시즌 역할은 주전 3루수. 그렇다. 파블로 산도발 이야기다.

지난 오프시즌, 산도발이 여전히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었을 무렵 같은 포지션의 유망주 트래비스 쇼가 잠재력을 터뜨릴 기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보스턴의 프런트는 결국 산도발을 벤치 멤버로 분류하여 주전 라인업에서 제외시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시즌 개막을 벤치 멤버로서 맞이한 산도발은 정확히 7타석에 들어선 다음 부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팀에 조금의 도움도 주지 못하는 고액 연봉자로 전락한 산도발에게는 아직도 3년이나 되는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 근래에 SNS를 통해서 명예회복을 위해 담금질하는 모습을 게시하고 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키포인트 – 스티븐 라이트의 대주자 투입

LA 다저스와의 8월 7일자 경기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6회초, 2점차로 뒤지고 있는 보스턴이 2사 1,2루의 기회를 잡았다. 보스턴의 존 패럴 감독은 여기서 2루 주자 데이비드 오티즈를 대주자로 교체했다. 안타 하나면 동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니, 발이 느린 오티즈를 교체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마침 로스터에는 마르코 에르난데스라는 대주자 자원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날 패럴이 내세운 대주자는 다름아닌 투수, 스티븐 라이트였다.

대주자 경력이 2004년이 마지막이었던 투수를 무리해서 투입시킨 패럴의 결정은 결국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다. 스티븐 라이트는 견제구를 피하려고 슬라이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어깨에 부상을 입었고, 그대로 시즌 아웃이 되었다. 보스턴은 그렇게 156.2이닝 동안 13승 6패, 평균자책점 3.33을 기록하고 있던 견실한 선발투수를 잃어버렸다.

 

총평

내년 시즌 보스턴이 맞이하게 될 가장 큰 변화는 단연 ‘빅 파피’ 오티즈의 부재이다. 오티즈가 보스턴에서 때려낸 483개의 홈런은 테드 윌리암스 다음가는 프랜차이즈 역대 2위의 기록이며, 2079개의 안타와 1530개의 타점은 각각 6위와 3위에 해당한다. 그는 보스턴의 유니폼을 입은 뒤로 3차례나 우승 반지를 손에 끼웠고, 그 3번의 우승 전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오티즈의 시대도 막을 내리고, 보스턴은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보스턴의 현 단장인 데이브 돔브로스키는 유망주를 트레이드 칩으로 활용해서 스타 선수를 영입하는 전략을 자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돔브로스키의 이러한 경향은 이번 오프시즌에도 여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타일러 쏜버그를 데려오기 위해 트레비스 쇼와 마우리시오 듀본, 조쉬 페닝턴을 밀워키로 넘긴 보스턴은, 이 영입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크리스 세일을 데려오면서 쟁쟁한 유망주들을 화이트삭스에 내주는 초강수를 두었다. 팀내 최고의 유망주였던 요안 몬카다를 필두로 마이클 코펙, 루이스 알렉산더 베사베, 빅터 디아즈가 세일의 대가로서 팀을 떠났다.

이제 보스턴의 내년 시즌 목표는 분명해졌다. 오로지 우승이다. 보스턴은 이번 오프시즌 동안 기존의 과제였던 지명타자와 셋업맨에 더해서 사이영급의 검증된 좌완 에이스까지 보강을 마쳤다. 대신, 팜 랭킹에서도 상위권을 기록했던 유망주 자원은 이전에 비해 턱없이 빈약해졌다. 유망주들이 모두 기대대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 하지만, 보스턴은 다른 어떤 팀보다도 극단적으로 미래를 담보 삼아 현재에 ‘올인’하는 노선을 취했다. 결과가 영광이든 굴욕이든, 돔브로스키는 그 책임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기록 참조: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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