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시즌 성적: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공동 2위(89승 73패)
Fangraphs 시즌 전 예측: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5위(77.5승 84.5패)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박민규] 2015 시즌을 정확히 5할의 승률로 마친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오프시즌 동안 전력 보강에 박차를 가했다. 우선, 대런 오데이(4년 3100만 달러), 크리스 데이비스(7년 1억 6100만 달러)와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집안 단속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어서 지난해까지 인터리그에서 17홈런, OPS .856를 기록한 페드로 알바레즈(1년 575만 달러)와 반등을 노리는 우타 거포 마크 트럼보(트레이드)를 영입하면서 타선의 파괴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한편, 퀄리파잉 오퍼를 덥석 수락한 맷 위터스는 볼티모어에서의 활약을 한 시즌 더 연장하게 되었다.
그렇게 맞이한 2016 시즌, 볼티모어 타선의 파워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데이비스(38홈런), 매니 마차도(37홈런), 애덤 존스(29홈런), 조나단 스콥(25홈런)이 포진한 기존의 강타선에 홈런 선두를 차지한 트럼보(47홈런)와 알바레스(22홈런)가 가세한 라인업은 상대 투수들의 공을 무자비하게 담장 밖으로 날려보냈다. 2016 시즌의 메이저리그가 역대 2위에 해당하는 5610개의 리그 홈런 기록을 수립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던 볼티모어의 타선은 올 시즌, 지난해보다도 36개가 늘어난 253개의 홈런과 .188의 순장타율(ISO)을 기록했다. 둘 모두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그만큼 볼티모어의 타선이 선보인 장타력은 압도적이었다.
허나 엄청난 장타력을 뽐냈던 타선은 한편으로 저조한 출루율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품고 있었다. 올 시즌 .350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한 선수가 김현수(.382) 한 명에 불과했던 볼티모어의 팀 출루율은 .317에 그쳤다(AL 10위). 부진한 출루율 탓에 득점의 효율이 크게 떨어진 볼티모어는, 늘어난 홈런 개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난해보다 적은 팀 득점을 기록하고 말았다(744점 -> 713점).
강점과 약점이 모두 뚜렷했던 타선과 달리, 불펜에서는 이렇다 할 약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재계약을 맺고 팀에 잔류한 셋업맨 오데이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의 상당 기간을 결장했지만, 볼티모어의 불펜진은 마무리 잭 브리튼과 새로운 셋업맨으로 자리 잡은 브래드 브락 그리고 마이클 기븐스를 중심으로 팀의 뒷문을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볼티모어가 시즌 전의 예측을 한참 뛰어넘는 89승을 거두며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2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기대보다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 불펜의 대활약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 다른 포지션의 전력이 빠르게 보강되는 동안에도 지난해 볼티모어의 최대 약점이었던 선발투수 분야에 대한 보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시즌, 볼티모어의 선발투수들은 아메리칸리그에서 두 번째로 높은 평균자책점(4.53)을 기록하면서 8.9의 fWAR(리그 11위)을 합작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지난 오프시즌 동안 볼티모어가 보강한 선발투수 자원은 요바니 가야르도 한 명이 고작이었다(2년 2200만 달러). 설상가상으로 이 선택은 이론의 여지조차 없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선발진의 보강은 시즌 중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하루 남기고 시애틀로부터 웨이드 마일리를 영입했지만, 볼티모어로 건너와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11경기 ERA 6.17 54이닝 fWAR 0.9). 그렇게 볼티모어의 선발투수진은 이번 시즌에도 4.72의 평균자책점(리그 13위)과 9.6의 fWAR(리그 9위)을 기록하면서 아쉬운 모습을 이어 갔다.
최고의 선수 – 잭 브리튼
시즌 성적: 69경기 2승 1패 47세이브 ERA 0.54 67이닝 74탈삼진 18볼넷 WPA 6.14
올 시즌의 볼티모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활약을 펼친 선수는 바로 잭 브리튼이었다. 69경기에 등판해 67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허용한 자책점은 단 4점뿐. 평균자책점은 무려 0.54로, 시즌 50이닝 이상을 소화한 메이저리그의 역대 불펜투수 가운데 가장 낮은 기록이었다. 시즌 40세이브 이상을 기록하면서 단 하나의 블론세이브도 허용하지 않은 것 역시 에릭 가니에, 브래드 릿지, 호세 발베르데에 이은 역대 네 번째의 업적이었다. 이들 중 0점대의 시즌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선수는 브리튼이 유일하다.
브리튼의 투심(싱커)은 올 시즌 그야말로 ‘언히터블’이었다. 스탯캐스트 자료를 제공하는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올해의 브리튼은 지난해보다 0.3마일가량 상승한 평균 97.1마일의 투심을 앞세워 타자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브리튼의 투심은 200타수를 기준으로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낮은 피안타율(.160)을 기록했으며, 투심 구종가치(Pitch f/x 기준)에서도 2위인 크리스 세일(14.7)을 큰 폭으로 따돌리고 여유롭게 1위를 차지했다(23.2). 단 67이닝을 소화하고서 말이다.
볼티모어는 브리튼을 2019년까지 팀에 묶어 둘 수 있다. ‘스포트랙’에 따르면 올 시즌 메이저리그 마무리 투수들의 평균 연봉은 약 369만 달러였다. 볼티모어가 올해 브리튼에게 지불한 연봉은 675만 달러였는데, 브리튼의 성적과 팀 기여도를 고려하면 전혀 아깝지 않은 수준의 액수이다. 포스트시즌에서 불펜투수들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최근의 경향까지 더해지면서, 최강의 마무리 투수 브리튼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최악의 선수 1 – 크리스 데이비스
시즌 성적: 157경기 .221/.332/.459/.791 38홈런 84타점 99득점 88볼넷 fWAR 2.7
볼티모어는 지난 오프시즌, FA 계약을 위해 2억 350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지출했다. 이 중 68.5%에 해당하는 1억 6100만 달러의 금액은 피터 앤젤로스 구단주의 의사를 반영하여 데이비스와의 7년짜리 재계약을 체결하는 데 투입되었다. 데이비스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시즌 동안 연평균 .256/.342/.533 40홈런 103타점의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특히 지난해 후반기에는 .293/.409/.669, 28홈런 65타점의 대활약을 펼치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나 재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온 올 시즌, 데이비스는 시즌 내내 왼손 엄지손가락 통증에 시달렸다. 지난해에 비해 라인드라이브 타구는 줄어들었고(24.7%→19.8%), 대신 그라운드볼 타구가 늘어나면서(31.8%→36.5%), 결과적으로 BABIP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말았다(.319→.279). 88개나 되는 볼넷을 얻어냈으며 팀내 2위에 해당하는 38개의 홈런을 때려냈으나, 떨어진 타율 탓에 슬래시 라인은 .221/.332/.459로 무너져버렸다(2015 시즌 .262/.362/.562). 특히 후반기에는 .200/.313/.412, 16홈런에 그치면서 한층 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내년이면 31세가 되는 데이비스는 이제 7년 계약의 첫 번째 시즌을 마쳤다. 노쇠화가 시작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인 만큼, 내년에는 반드시 반등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팀의 공격을 주도해야 할 선수인 데이비스의 성적이 앞으로도 올해와 유사한 수준에 머무른다면 볼티모어의 근심은 점차 깊어질 것이다.
최악의 선수 2 – 요바니 가야르도
시즌 성적: 23경기 6승 8패 5.42ERA 118이닝 85탈삼진 61볼넷 fWAR 0.6
지난해 텍사스에서 뛰면서 13승과 평균자책점 3.42, fWAR 2.4의 준수한 성적을 남겼던 가야르도. 그러나 이 성적의 이면에는 이전에 비해 확연하게 떨어진 구위라는 불안요소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볼티모어에서 첫 시즌을 맞은 올해, 가야르도는 메이저리그 데뷔 이래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구위가 떨어진 가야르도의 슬라이더는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최악의 구종 중 하나였다. 피안타율과 장타율은 각각 .337과 .577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높았으며(150타수 기준), 구종 가치 역시 -11.1로 모든 슬라이더 가운데 가장 나빴다. 삼진 비율은 12.2%로 지난해에 비해 소폭 상승했으나, 나머지 단점을 상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빠진 것은 구위만이 아니었다. 컨트롤 역시 불안한 모습이었다.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의 볼넷 비율(11.6%)을 기록했으며, 제구 난조와 구위 하락이 집약되어 나타나는 피홈런 개수에서도 확연한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184.1이닝을 소화하면서 허용한 홈런이 15개였던 가야르도는, 올 시즌 118이닝만에 16개의 피홈런을 허용했다.
* 가야르도의 기록 변화
타구 평균 비거리: [2015] 201피트 (61.3미터) / [2016] 225피트 (68.6미터)
타구 평균 각도: [2015] 8.5도 / [2016] 14.9도
팀의 결정적인 순간 –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승부
시즌 중반까지 치열한 순위싸움을 펼쳤던 볼티모어는 9월 말,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3연전에서 2승 1패를 거두면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공동 2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또 한 번의 위닝시리즈를 작성하면서 와일드카드 단판 승부 진출을 확정지었다.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단판 승부에서 만난 상대는 나란히 동부지구 공동 2위를 차지했던 토론토 블루제이스. 선발투수로 크리스 틸먼을 내세운 벅 쇼월터 감독은 위기 때마다 적재적소에 불펜투수를 기용하면서 브리튼을 투입하지 않고도 2-2로, 경기를 연장까지 팽팽하게 끌고 나갔다.
그러던 11회 말, 1사 상황에서 등판한 우발도 히메네스가 연속 안타를 허용하면서 볼티모어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브리튼의 등판을 예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쇼월터 감독은 브리튼을 끝까지 마운드에 올리지 않았다. 결국 히메네스는 에드윈 엔카나시온에게 끝내기 쓰리런 홈런을 허용하면서 패전투수가 되었고, 볼티모어는 최강의 마무리 투수를 기용해보지도 못한 채로 허망하게 2016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쇼월터 감독은 경기 후의 인터뷰에서 리드를 잡은 후에 브리튼을 기용하려는 생각이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 볼티모어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애덤 존스가 경기 전 그라운드를 거닐고 있다. / 사진 = 박민규
총평
전력을 확실하게 보강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내년 시즌의 볼티모어에게 올해 이상의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트럼보와 위터스의 이적은 거의 기정사실이 되었고, 지난 겨울 이미 2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FA 시장에 지출한 만큼 새로운 대형 FA를 영입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2018 시즌 종료 후 FA가 되는 마차도를 잡기 위한 ‘총알’도 슬슬 마련해 두어야 한다. 다른 팀으로 넘겨서 즉시전력감을 물어올 만한 유망주도 충분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현재의 FA 시장에는 볼티모어가 가장 필요로 하는 A급 선발투수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구석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드디어 그간의 기대에 부응하기 시작한 케빈 가우즈먼(30경기 ERA 3.61 179.2이닝 fWAR 3.0)과 딜런 번디(선발 14경기 ERA 4.52 71.2이닝 fWAR 0.4)의 성장은 볼티모어의 선발진이 현재로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반등 요소이다. 크리스 틸먼 역시 후반기에 페이스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건강하게 시즌을 소화하면서 지난해의 부진을 딛고 일어섰다(2015년 11승 ERA 4.99 fWAR 1.8 / 2016년 16승 ERA 3.77 fWAR 2.4). 가우즈먼과 번디 그리고 틸먼이 올 시즌 이상의 활약을 이어 가줄 수 있다면, 볼티모어 선발진의 자력구제도 그리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이번 스토브리그 동안에는 무리한 영입을 자제하는 것이 볼티모어의 미래를 위한 합리적인 결정이 될 듯하다. 당장은 위험 요소가 큰 매물들 대신 팀의 출루율을 보완해줄 만한 준척급 타자들을 영입하여 무난하게 다음 시즌을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본격적으로 투자할 만한 가치를 지닌 대어들이 FA 시장에 나오는 그 이후를 기다려야 한다. 볼티모어의 지상과제는, 무엇보다도 팀을 이끌어 나갈 에이스급 선발투수를 영입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기록 출처: Baseball Reference, Baseball Savant, Fangraphs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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