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시즌 리뷰] 숨고르기에 들어가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팬그래프 예상 성적: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2위(85.7승 76.3패),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3위
시즌 최종 성적: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2위(86승 76패),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3위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박기태] 디비전시리즈에서 시카고 컵스에 1승 3패로 탈락하며 오프시즌에 돌입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결과제는 FA로 풀린 우익수 제이슨 헤이워드, 선발 존 래키의 계약이었다. 래키의 경우 일찌감치 컵스가 최적의 행선지로 떠올랐고, 결국 그대로 컵스와 계약을 맺었다. 여기까진 예상대로. 그런데 6일 뒤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컵스가 2번의 옵트아웃이란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헤이워드까지 데려간 것. 세인트루이스는 순식간에 팀 투타의 기둥을 지구내 가장 강력한 라이벌에게 내줬다(헤이워드 팀내 야수 fWAR 1위(6.0), 래키 팀내 투수 fWAR 1위(3.6)).

충격적인 이탈 후 세인트루이스는 큰 소득 없이 겨울을 마무리 지었다. 데이빗 프라이스 영입전에서 패배한 뒤 선발 마이크 리크(5년 8000만 달러)를 영입했다. 샌디에이고와는 2루수 제드 졸코를 트레이드, FA 포수 브라이언 페냐(2년 500만 달러)를 영입했다. 마지막으로 미지수였던 불펜 오승환을 영입하며 시장에서 손을 뗐다. 100승의 재현은 요원해 보였다.

시즌이 시작하자 상황은 너무나도 예상에 맞게 돌아갔다. 컵스가 광폭 질주를 이어간 탓에 중부지구의 성패는 5월 말 일찌감치 판가름난 것처럼 보였다. 몇 년동안 중부지구의 패권을 다투던 피츠버그는 6월 동력을 잃었다. 세인트루이스의 목표는 자연스럽게 와일드카드 쟁탈전으로 향했다.

타선은 급증한 홈런 수에 힘입어(2015년 137개(25위) → 2016년 225개(2위)) 지난해보다 더 많은 점수를 뽑아냈다(2015년 647득점(24위) → 2016년 779득점(4위)). 겨울 영입한 제드 졸코(30홈런), 지난해 여름 데려온 브랜든 모스(28홈런)가 홈런 증가를 이끌었고, 헤이워드가 빠져나간 자리에서는 풀타임을 소화한 스티븐 피스카티가 나름 선전했다(fWAR 2.8). 또한 유격수 자리에서는 초반 돌풍을 일으킨 알레드미스 디아즈가 등장했다(fWAR 2.7). 노쇠화가 우려됐던 야디에 몰리나의 타격도 살아났다(OPS 2015년 0.660 → 2016년 0.787).

문제는 붕괴된 투수진. 특히 선발진의 성적이 작년보다 크게 떨어졌다(팀 ERA 2015년 2.94(1위) → 2016년 4.08(12위)). 아담 웨인라이트는 건강했지만 예전의 에이스가 아니었고(198.2이닝 4.62ERA), 마이크 리크는 커리어 최악의 ERA를 기록하며 팀의 기대를 배신했다(176.2이닝 4.69ERA). 마이클 와카는 어깨 부상 여파인지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으며 부상에서 돌아온 하이메 가르시아도 기대에 미진했다. 불펜에서는 그동안 중심을 잡아줬던 마무리 트레버 로젠탈이 충격적인 부진에 빠졌고, 급기야 시즌중 마무리 보직을 박탈당했다. 오승환이 계획에 없던 성공적인 활약을 해준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세인트루이스가 매년 ‘가을 좀비’가 될 수 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매년 60승 이상을 기록해주던 선발진이었다. 그러나 선발이 무너지며 세인트루이스는 예전과 다른 야구를 해야만 했다. 무보직에서 승리조로 승격한 오승환은 어느새 팀의 승리와 관계없이 아무때나 호출되는 ‘애니콜’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가을 좀비’ DNA는 살아있었는지, 9월 첫날까지 세인트루이스는 와일드카드 진출이 유력해보였다. 그러나 이후 무섭게 치고 올라간 뉴욕 메츠에 밀리며, 1경기 차이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가을에 휴식을 가져야 했다.

 

최고의 선수 –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오승환

래키가 사라진 1선발 자리는 웨인라이트가 대신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다. 그러나 올해 무너진 선발 로테이션에서 유일한 버팀목이 된 것은 ‘C-Mart’ 카를로스 마르티네스였다. 5선발 로테이션에서 홀로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3.04), 커리어 하이인 195.1이닝을 소화하며 이닝이터로서의 자질 또한 보여줬다.

마르티네스가 지난해 처음 선발 투수로 보직을 바꿨을 때만 해도, 그의 롱런 가능성에 의문을 표하는 전문가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올해 마르티네스는 그런 의문을 모두 일축했다. 작년보다 더 많은 이닝을 던지면서도 평균자책점을 유지한 것은 물론, 상대적으로 약했던 좌타자 상대 성적도 개선됐다(좌타 상대 피OPS 2015년 0.756 → 2016년 0.729).

선발에 마르티네스가 있었다면, 불펜에는 오승환이 있었다. 트레버 로젠탈의 부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오승환이 공석이 된 마무리 자리를 거머쥔 것은 충분히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5월이 지났을 때 오승환은 이미 세인트루이스의 불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보직을 빼놓고 보더라도 오승환의 데뷔 시즌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불펜 ERA 메이저리그 9위(1.92, 50이닝 이상), fWAR 5위(2.6), 탈삼진 비율 13위(32.9%), 삼진/볼넷 비율 11위(5.72) 등의 기록은 오승환이 메이저리그 최상급 불펜 투수임을 증명한다.

역사적으로도 오승환은 대단한 기록들을 세웠다. 먼저 세인트루이스 구원 투수 신인으로서는 역대 2번째로 첫 해에 100개 탈삼진을 잡아냈다(최초는 2013년 트레버 로젠탈). 또한 범위를 넓혀 메이저리그 사상 16번째로 첫해 두자릿수 세이브와 세자릿수 탈삼진을 잡아낸 신인 선수가 됐다. 2000년 김병현, 2006년 다카시 사이토에 이어 아시아 출신 선수로는 세번째로 이뤄낸 쾌거였다.

끝판왕에게 아시아는 비좁은 땅이었다.

 

주목할만한 선수 – 알렉스 레예스, 알레드미스 디아즈, 제드 졸코

레예스는 세인트루이스 팀내 최고 투수 유망주였다. 아니, 메이저리그에서도 다섯손가락에 드는 특급 투수 유망주였다(<베이스볼 아메리카> 2016년 미드시즌 유망주 랭킹 전체 2위, 투수 1위). 그러나 그는 지난해 11월 마리화나 흡입이 적발돼 마이너리그 5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징계를 마친 뒤에는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14경기에 선발로 나서 65.1이닝 동안 4.96의 평균자책점과 32볼넷 93탈삼진을 기록했다. 빅리그 데뷔 시기를 조율하던 레예스는 8월 10일 마침내 세인트루이스의 호출을 받았다.

빅리그에서 레예스는 마이너리그에서의 기대를 충족할 만한 모습을 보여줬다. 46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1.57을 기록하는 동안 23볼넷 52삼진을 기록했고, 12경기 중 5번은 선발로 나섰다. 최고 시속 100마일의 패스트볼에서 뿜어져나오는 구위로 상대를 압도했지만, 불안한 제구력도 그대로였던 점은 아쉽다.

레예스의 데뷔는 여러모로 세인트루이스 선배들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아담 웨인라이트,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트레버 로젠탈처럼 레예스도 불펜으로 빅리그에 데뷔했다. 데뷔 시점이 시즌 중반을 넘어선 때라는 것도 같다. 이제 만 22세(1994년생)에 불과한 레예스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한편, 야수 쪽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선수는 단연 유격수 알레드미스 디아즈였다. 과거부터 지적받던 수비 불안은 여전했으나(16실책, 수비율 0.961, DRS -3, UZR -8.4) 수비에서 잃은 점수를 타석에서 만회했다. 디아즈의 wRC+ 132는 팀내 2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 맷 카펜터(135) 다음으로 높았다.

디아즈의 주가는 데뷔 첫 24경기에서 4할 타율을 유지하며 높아졌다(메이저리그 신기록이었다). 자니 페랄타의 공백을 메운 새내기 디아즈는 내셔널리그 신인 중 코리 시거, 트레아 터너, 트레버 스토리에 이어 4번째로 높은 2.7의 fWAR를 기록했고, wRC+는 트레아 터너, 코리 시거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디아즈는 신인왕 투표 5위에 오르며 모두에게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명암도 극명했다. 뜨거웠던 시즌 초반과 달리, 시간이 흐르며 디아즈의 방망이는 식어갔다. 전반기 0.915를 기록했던 OPS는 후반기 0.782로 내려앉았다. 9월 15경기 타율 0.216에 그쳤던 타격감을 내년에는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신인은 아니지만 디아즈만큼이나 놀라웠던 선수도 있었다. 겨울 샌디에이고와의 트레이드로 넘어온 2루수 제드 졸코였다. 졸코는 2013년 23홈런과 0.745의 OPS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내셔널리그 신인왕 6위). 그러나 지난 2년간 OPS 0.612, 0.694를 기록하며 점점 ‘식어가는’ 선수 취급을 받고 있었다.

올해 세인트루이스로 이적한 졸코의 활약은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깨버렸다. 30홈런과 0.801의 OPS는 모두 커리어 하이. 순수 장타율(ISO) 0.253은 400타석 이상 타자 중 내셔널리그 1위, 메이저리그 2위였다(1위 브라이언 도저 0.278). 8월에는 23개 안타 중 10개를 홈런으로 기록하는 엽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원체 낮은 출루율(0.306) 때문에 전체적인 생산력은 높지 않았지만, 졸코는 지난해 세인트루이스에 부재했던 ‘한방’이라는 득점 공식을 추가해준 알토란 같은 선수였다.

 

최악의 선수 – 자니 페랄타, 트레버 로젠탈

디아즈가 부상할 수 있던 건 결국 페랄타의 부상 때문이었다. 페랄타는 손가락 인대 부상으로 개막전에 출장하지 못했고, 6월 7일에야 팀에 복귀했다. 복귀 후에는 3루수로 나서면서 313타석에서 0.260/0.307/0.408의 성적을 기록, fWAR은 -0.5로 2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 팀내 최악의 수치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계약 마지막해인 내년 페랄타의 잔여 연봉은 1000만 달러다. 4년 계약의 3년차에 접어들었는데 OPS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수비에서도 2014년 17 DRS, 12.0 UZR에서 2016년 -8 DRS, -10.1 UZR로 겉잡을 수 없는 하락세를 보인다. 디아즈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큰일날 뻔했던 세인트루이스다.

로젠탈의 부진은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했다. 패스트볼, 변화구 가릴 것 없이 커맨드가 망가지면서 로젠탈은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그나마 구위는 살아있던 탓에 탈삼진은 많이 잡아냈지만(9이닝당 탈삼진 12.5개) 제구가 없는 투수는 ‘pitcher’가 아닌 ‘thrower’에 불과했다. 평균자책점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뛰어 올랐다(2.10 → 4.46). 중심이 무너지자 불펜 전체가 삐걱거렸다.

로젠탈은 지난 3년 동안 팀 불펜진에서 가장 많은 이닝(214.1이닝)을 소화했기 때문에, 올해를 쉬어가는 해로 볼 수도 있다. 로젠탈의 빈 자리를 메워준 오승환 역시 한국에서 ‘쉬어가는 해’가 있었다. 그동안 팀에 해준 걸 생각하면 로젠탈을 비난할 수는 없다.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이 다음이다. 로젠탈은 꾸준히 선발에 대한 욕심을 표현해왔고 올해는 팀에서도 이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물론 쉽게 보직을 변경하지는 않겠지만.

 

총평 & 전망

그동안 팀에 막대한 공헌을 한 맷 홀리데이가 팀을 떠난다. 그와 함께 ‘가을 좀비’의 전성기를 보낸 애덤 웨인라이트(35세), 자니 페랄타(34세), 그리고 야디에 몰리나(34세)는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바라보고 있다. 홀리데이가 마지막 해를 성대하게 마무리짓지 못한 것이 아쉬울 팬들이 많을 듯하다. 어찌 됐든 이제 알렉스 레예스, 스티븐 피스카티, 랜달 그리척,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등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대’가 다가오고 있다.

세인트루이스는 그동안 시장의 강자가 아닌 팜의 강자로서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이 기조가 쉽게 바뀌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이너리그 유망주 랭킹은 점점 떨어져가고 있지만(<베이스볼 아메리카> 팜 랭킹 2015년 15위, 2016년 14위), 이는 그동안 공들여 키운 유망주들이 데뷔한 탓이기도 하다. 즉 아직 추운 겨울이 닥치지는 않았다는 뜻. 세인트루이스는 리빌딩과는 거리가 한참 떨어져있다.

다만 보강이 필요한 포지션은 꽤 많은 편이다. 웨인라이트, 와카, 가르시아가 부진한 선발진, 홀리데이가 이탈하며 중견수-좌익수 깊이가 얕아진 외야수가 우선순위다. 깊이가 얕은 FA 시장 때문에 트레이드 루머가 계속 흘러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 언론에서는 소소하게 찰리 블랙몬, A.J. 폴락, 아담 이튼 등을 트레이드로 데려오는 시나리오가 제기됐다.

그동안 꾸준히 가을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던 세인트루이스에겐 굉장히 낯선 조용한 가을이 됐다. 한동안 같이 경쟁했던 피츠버그와 함께 주춤했던 한해. 메이저리그 최강 컵스가 버티는 중부지구에서 다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동안 존 모젤리악 단장은 조촐한 지출에 대한 비판이 일자 ‘쓸 돈이 남아있다’는 뜻의 ‘페이롤 머슬(payroll muscle)’이란 문구로 반박해왔다(물론 제대로 돈을 쓴 적은 없었다). 이제 그와 카디널스는 오랜만에 어려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기록 출처: 팬그래프, 베이스볼 레퍼런스, 베이스볼 아메리카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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