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최경령)
팬그래프 시즌 예상: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3위(77승 85패)
시즌 최종 성적: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3위(80승 82패)
프롤로그 – 활활 타올랐던 전반기, 하얗게 불태워버린 후반기
필라델피아가 2018 시즌 전반기에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선두로 치고 나간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2년 전 4월에도 14승 10패 0.583로 시즌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줄타기를 하듯 불안 했던 2년 전과 올해는 확실히 달랐다.
미래를 함께할 코어 선수들이 점점 모여서일까? 필라델피아의 투수진은 예년보다 더 힘을 냈다. 먼저, 선발투수진의 발전(2018 fWAR 15.5(7위) ERA 4.12 FIP 3.76 / 2017 fWAR 7.9(21위) ERA 4.80 FIP 4.82)은 더 많은 경기를 우세하게 가져갈 수 있게 해줬다.
불펜진의 활약은 선발 투수진에 미치지 못 했지만(2018 fWAR 4.1(11위) ERA 4.19 FIP 3.95 / 2017 fWAR 4.0(15위) ERA 4.18 FIP 4.15), 근 몇 년간 보유하지 못했던 애런 놀라라는 확실한 에이스 카드는 애틀란타를 압박하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시즌 종료 시점에선 애틀랜타에 비해 10승이나 떨어지는 성적을 거둔 원인은 역시 작년에 비해 큰 발전 없는 팀 타선(17년도 fWAR 13.1(23위) -> 18년도 fWAR 12.4(23위)과 메이저리그 최악(DRS -146 최하위, DefWAR -45.6 28위)의 수비력 때문이었다.
정말 혼자 열심히 쳤다. (사진 = flickr David)
여름 트레이드 시장에서 보인 행보 또한 좋은 평가를 하긴 어려웠다. 매니 마차도, 브래드 핸드, 잭 브리튼 같은 팀의 약점을 채워줄 수 있는 좋은 선수들이 있었음에도, 필라델피아는 소극적인 움직임만을 보이며 플랜 B를 실행하는데 그쳤다.
토론토에서 데려온 좌완 원포인트 애런 루프는 9경기 평균자책점 4.50의 평범한 성적, 같은 지구 마이애미와 메츠에서 데려온 저스틴 보어(0.224 1홈런), 아스드루발 카브레라(0.228 5홈런)는 스파이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부진했다.
그나마 윌슨 라모스와 여러 팀을 거쳐 필라델피아로 온 호세 바티스타는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라모스의 건강 문제(햄스트링 부상)와 오랜 시간 팀과 함께 할 수 없는 바티스타의 나이(1980년생)는 그들의 활약에도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게 한다.
주전 야수 8명 중 4명이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르다 보니 후반기로 갈 수록 팀의 동력이 떨어지는(전반기 승률 0.558 후반기 0.403) 점은 어쩔 수 없었다. 위기 때 팀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슈퍼스타의 존재가 더 뼈아프게 느껴졌다. 구단이 여름 트레이드 시장에서 조금 더 과감한 투자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9월 20일부터 28일까지 필라델피아는 9연패를 당하며 그나마 남아 있던 실낱 같은 가을야구의 희망도 없어졌다. 그렇게 5할 승률도 사수하지 못한 채 필라델피아는 그대로 시즌을 끝마쳤다.
최고의 선수: 애런 놀라
33경기 33선발 17승 6패 2.37 212.1이닝 58볼넷 224삼진 17피홈런 fWAR 5.6
두꺼워진 하체만큼 더욱 탄탄해진 놀라. (사진= flickr Ian D’andrea)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놀라를 팀 내 최고의 선수로 선정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지난 시즌이 문제점을 보완하며 선발 투수로 입지를 다지는 해였다면 이번 시즌은 놀라가 한 단계 더 올라섰을 때 어떤 피칭을 할 수 있는지 몸소 증명한 해였다.
놀라는 2014년 드래프트 당시, 즉시 전력감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제구력이 안정된 완성형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드래프트 당시 기량이 메이저리그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얘기였을 뿐, 선발 투수로서 큰 편이 아닌 185cm의 신장과 90마일대 초반에 머무는 평균 구속 때문에 놀라가 장차 팀의 1선발을 맡아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부족한 구속을 보완하기 위한 하체 위주의 트레이닝을 하면서 놀라는 급성장을 이뤘다. 92마일까지 평균 구속을 끌어올린 포심은 더 이상 그의 발목을 잡는 공이 아니며(구종가치 17.8, ML 전체 8위) 커브의 예리함은 여전했다(구종가치 23.1 ML 전체 1위).
드래프트 당시 3선발 혹은 2선발이 예상되던 선수가 리그를 대표하는 3번째 선발투수(사이영상 3위)로 성장했다. 반등을 노리는 필라델피아로선 놀라라는 에이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발전한 선수: 닉 피베타
33경기 32선발 7승 14패 4.77 164이닝 51볼넷 188삼진 24피홈런 fWAR 2.8
그만한 공을 던질 수 있으면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사진= flickr Ian D’andrea)
패전이 승보다 두 배 더 많고 4점대 중반을 기록한 평균 자책점, 간신히 채운 규정이닝까지. 피베타의 표면적인 성적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FIP(3.80)와 fWAR(2.8)을 보면 표면적인 성적은 운이 따르지 않은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피베타의 투구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9이닝 당 볼넷은 17시즌 3.86개에서 올 시즌 2.80개까지 줄였으며 삼진 또한 늘었다(K/9 17시즌 9.47개 18시즌 10.32개). 등판 한 번 한 번이 전부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일단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풀 시즌을 견뎌낸 점만으로도 칭찬해 줄 만 하다.
피베타의 올해는 표면적인 성적이 아닌 ‘성장’에 초점을 둔다면 분명 나쁘지 않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시즌이었다. 물론 기복(5이닝 이전 강판 9회)과 이닝 소화능력(32선발 163이닝)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마이너리그 당시만 해도 기대치가 하위 로테이션이던 선수가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를 이용해 힘으로 찍어 누르는 매력적인 투수가 되었다는 점은 실로 놀랍다(500구 이상 기준 커브 회전 수 2840회로 상위 30명 중 6위).
아쉬운 선수: 오두벨 에레라 & 애런 알테어
에레라: 148경기 550타수 140안타 22홈런 71타점 38볼넷 122삼진
0.255/0.310/0.420 wRC+ 97 fWAR 0.9 DRS -11
알테어: 105경기 243타수 44안타 8홈런 38타점 36볼넷 91삼진
0.181/0.295/0.333 wRC+ 75 fWAR -0.4 DRS +1
더 잘 쳤어야 했고, 최소한 수비는 잘했어야 한다.(사진= flickr Ian D’andrea)
전반적으로 선전한 투수진에 비해 야수진에는 아쉬운 선수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3년 6,000만 달러라는 규모의 계약을 맺고 온 산타나도, 데뷔 전부터 연장계약을 맺어준 킹거리도 팀 내 1위 유망주라는 꼬리표가 붙은 J.P. 크로포드의 부진도 이 두 선수의 부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팀이 가장 빠르게 추락하던 2015년 데뷔한 오두벨은 룰5드래프트라는 독특한 이력, 엉성해 보이지만 나쁘지 않은 타격 그리고 견실한 중견수 수비를 통해 단숨에 필리스의 중심점에 섰다. 구단 또한 그에게 5년 3,050만 달러의 연장계약을 안겨주며 함께할 의사를 내비쳤다.
지난 시즌부터 급락한 볼넷 비율과 출루율을 지적하며 오두벨의 타격을 문제 삼는 의견들은 종종 있어 왔지만, 수비만큼은 리그 평균 이상이었기에 오두벨은 지난해까진 준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17시즌 wRC+101 fWAR 2.9). 그러나 올 시즌은 글러브에서조차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17시즌 DRS +4 / 18시즌 DRS -11).
물론 오두벨은 필라델피아에 오기 전 텍사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는 주로 2루수로 출전했고, 본격적으로 외야수로 경기에 나선 건 팀을 옮기고 난 뒤의 일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해왔기에 급작스럽게 떨어진 오두벨의 수비력은 보는 사람들도 구단의 입장에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따라서 오두벨은 올 시즌 필라델피아의 처참한 수비력에 꽤 큰 부분 책임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팀 내에서 제일 가는 운동신경을 가진 애런 알테어의 올 시즌 또한 처참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팀 내 최고의 타자로 거듭나며 호스킨스와의 듀오를 이룰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국 부진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 0.181의 타율은 20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들 중에서 8번째로 좋지 않았고 지난 시즌 0.856을 기록했던 OPS는 0.628로 곤두박질쳤다.
알테어는 능력 자체는 뛰어난 선수지만 역시 매번 발목을 잡는 것은 그의 건강이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격년제로 부상을 당하며 시즌을 망치고 있다. 올 시즌도 꾸준하게 경기에 출장하며 작년 같은 페이스만 보여줬더라도 빈약한 타선 문제가 이렇게까지 대두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재 필라델피아의 25인 로스터와 마이너리그 팜을 봐도 이 둘의 부진을 단시간에 채워줄 선수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닉 윌리엄스, 로만 퀸 등이 있지만 이 두 선수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하기엔 더욱 부족하다. 결국 플랜 A였던 이 두 명이 해줘야 한다.
키 포인트 및 결론 – 수비 그리고 슈퍼스타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빌 클린턴은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역사에 남을 선거 문구를 내세워 4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올 시즌 지구 선두경쟁을 했던 애틀란타가 필라델피아에게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문제는 수비야 이 바보야!”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올 시즌 투수력은 애틀란타에 뒤지지 않았다. 타선은 꽤 차이가 났지만 결정적으로 두 팀의 차이가 드러난 부분은 역시 수비력이었다(애틀란타 Def WAR 7위 – 23.9, DRS 4위 +59).
그렇다면 필라델피아의 수비가 이렇게 꼬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오두벨의 수비력 하락 및 멤버 개개인이 뛰어난 수비수가 아닌 점도 물론 꽤 큰 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호스킨스의 좌익수 기용과 킹거리의 유격수 포지션 고정은 필라델피아의 수비를 아주 심각하게 망가뜨렸다.(호스킨스 DRS -24 / 킹거리 DRS -6)두 선수가 수비로 인해 팀에 30점의 손해를 끼쳤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수비력이 뛰어나지 않으며 마이너 시절부터 1루수를 주로 소화했던 호스킨스를 단기간에 가르쳐 좌익수로 기용한 것은 요행을 바란 것일지도 모른다. 마이너 시절 2루수로 기용됐고 주전 유격수 재목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은 킹거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필라델피아는 올겨울 호스킨스와 포지션이 겹치는 산타나의 트레이드 가능성을 열어놨다.
타자는 키워서, 투수는 사서 쓴다는 컵스의 우승 전략을 비슷하게 벤치마킹 중인 필리스가 이 시점에서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FA선수와 수비력 보강. 이 두 가지 과제가 가장 급선무다. 이미 외야 수비코치는 다저스 마이너리그에서 타격 코디네이터를 하던 파코 피게로아를 새로 선임했다
이미 시즌 중후반부터 패트릭 코빈, 류현진 등 좌완투수에 대한 필라델피아의 관심은 공공연하게 보도되었다. FA 최대어인 하퍼와 마차도에 관한 루머도 꾸준히 돌고 있다. 내년 시즌 어떤 선수가 팀에 합류할지는 알 수 없지만 선수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만 있다면 확실하게 한 마디는 할 수 있지 않을까
Tell me how much you want (얼마면 되겠나)
기록 출처: Fangraphs, Baseball Savant, Baseball-reference
에디터: 야구공작소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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