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최경령)
팬그래프 시즌 전 예상: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3위(81승 81패)
시즌 최종 성적: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4위(73승 89패)
[야구공작소 김남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2017년은 샌프란시스코에 자리 잡은 이래 최악의 시즌이나 다름 없었다. 지난해 기록한 64승 98패는 1985년 62승 100패 이후 가장 나쁜 성적이다. 33년 전의 샌프란시스코는 가을야구를 맛 본 지 오래 된 약체였지만 지난해는 달랐다. 연봉으로만 1억 8천만 달러가 넘는 돈을 지출한 팀이었다. 무엇보다 1위 LA 다저스와의 승차가 40경기나 벌어졌다. 샌프란시스코로 연고를 옮긴 이래 가장 크게 벌어진 승차였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 불과 3년 만에 여기까지 떨어졌다.
이런 끔찍한 시즌을 보낸 팀은 몸집 줄이기를 시도할 법하다. 특히 고액 연봉의 팀은 더하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몸집을 줄이기보다는 전력을 보강하는 데 집중했다. 단순 보강이 아닌 ‘빅네임’의 영입을 목표로 했다. 2010년대 최다 우승팀이란 타이틀, 팬들의 높은 기대치, 전성기가 얼마 남지 않은 장기 계약자들. 이런 상황은 쉽게 리빌딩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빅네임 영입을 노린 이면에는 미션 락 프로젝트(Mission Rock Project)가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홈구장인 AT&T 파크와 피어48 주변에 대규모 주상복합단지를 건설하려는 사업이다. 이를 추진하는 주체가 바로 구단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서라도 인기 구단으로 남아있어야 했다. 지금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성적을 거두거나 인기 스타의 영입이 필요했다. 2017년 겨울, 구단의 목표는 일본프로야구 최대어로 꼽히는 오타니 쇼헤이와 지난해 내셔널리그 MVP 지안카를로 스탠튼의 영입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꿈과 달랐다. 포스팅 최종 후보까진 들었지만, 오타니는 조건 없이 투수와 야수를 시켜주겠다는 LA 에인절스를 선택했다. 트레이드 성사 직전까지 갔던 스탠튼은 LA 다저스 팬이라는 이유를 들어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신 바비 에반스 단장은 템파베이 레이스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부터 올스타 출신 에반 롱고리아와 앤드류 맥커친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나름대로 빅네임 영입에 성공하면서 부족한 장타력을 메운 셈이다.
선발진 또한 이름값으론 어느 팀에 내놔도 부족함이 없다. 매디슨 범가너, 쟈니 쿠에토, 제프 사마자에 지난해 가능성을 보여줬던 크리스 스트라튼, 타이 블락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베테랑 투수 데릭 홀랜드와 마이너리그에서 출격 대기 중인 앤드류 수아레즈, 타일러 비디 등 수적으로도 괜찮은 로테이션을 갖췄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부상 악령에 시달렸다. 개막전 선발을 맡아야 했던 범가너는 시범경기 중 타구에 맞아 왼손이 골절 됐고, 사마자는 개막 직전에 흉부 부상을 입었다. 지난해 주춤했지만 여전히 팀의 마무리 투수인 마크 멜란슨도 부상으로 빠졌다. 1, 3선발과 마무리 투수 없이 개막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악재 속에서도 샌프란시스코는 3, 4월에 5할이 넘는 승률(0.517, 15승 14패)을 기록하며 ‘짝수 해’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특히 브랜든 벨트의 활약이 돋보였다. 3, 4월에 6개의 홈런과 14타점, OPS 0.994의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며 타선을 이끌었다. 새로 팀에 합류한 롱고리아도 초반 부진을 딛고 홈런포를 가동했다. 투수 쪽에서는 쿠에토가 전성기와 같은 활약을 펼쳤고, 헌터 스트릭랜드와 토니 왓슨이 버틴 뒷문은 튼튼했다.
3, 4월 주요선수 성적
브랜든 벨트: 25경기 6홈런 14타점 OPS 0.994
에반 롱고리아: 27경기 6홈런 16타점 OPS 0.804
자니 쿠에토: 5경기 3승 ERA 0.84
토니 왓슨: 12경기 6홀드 ERA 0.71
헌터 스트릭랜드: 14경기 7세이브 ERA 1.32
하지만 5월 들어서 선발투수진에 구멍이 생기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에이스 역할을 하던 쿠에토가 팔꿈치 부상으로 한 달 이상 결장했고, 부상에서 돌아온 사마자는 최악의 투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범가너의 복귀와 함께 6월 들어 다시 분전한 샌프란시스코는 18승 10패를 거뒀다. 브랜든 크로포드와 맥커친의 맹타, 신인 투수들의 활약 덕분이었다. 지구 4위까지 떨어졌던 순위도 2위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선전은 여기까지였다.
팀에서 가장 잘 치던 벨트는 충수염 수술을 받은 뒤 타격 페이스가 떨어졌다. 조 패닉은 사타구니 부상, 홈런을 책임져준 롱고리아도 손가락 골절을 당하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쿠에토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으며 내년 시즌까지 나올 수 없게 됐다. 악순환은 계속됐다.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대변이라도 하듯 황당한 부상도 나왔다. 스트릭랜드가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고 홧김에 주먹을 휘두르면서 손가락이 골절됐다.
샌프란시스코는 주요 전력의 부상 속에서도 8월이 끝난 시점에 68승 68패로 5할 승률을 지키며 나름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팀의 간판 선수인 버스터 포지가 엉덩이 부상으로 8월 말 시즌 아웃이 결정되면서 사실상 시즌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웨이버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앞두고 맥커친을 양키스로 보내며 사치세 기준을 넘겼던 페이롤을 낮추는 데는 성공했다.
호흡기를 뗀 샌프란시스코는 9월의 시작과 함께 12연패를 당했다. 9월 성적 5승 21패, 최종 73승 89패라는 초라한 성적만이 남았다. 9월에 기록한 승률 0.192는 구단 역사상 3번째로 낮은 월간 승률이며,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긴 뒤로 처음 받아보는 기록이었다. 결국 에반스 단장은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해고를 당하며 샌프란시스코의 흑역사로 남게 됐다.
최고의 선수 & 발전한 선수 – 데릭 홀랜드, 데릭 로드리게스
지난해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6.2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시즌 중 방출됐던 데릭 홀랜드의 부활이 눈 여겨볼 만하다. 스프링캠프 당시만 해도 5선발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홀랜드는 선발투수들의 부상으로 생긴 자리를 훌륭하게 메우며 사실상 1선발 역할을 해줬다. 팀에서 규정이닝을 넘긴 유일한 선수기도 하다.
36경기에 출장해 선발등판 30회, 171.1이닝 동안 평균자책점은 3.57을 기록했다. 슬라이더의 비중을 늘린 것이 신의 한 수였다. 9이닝당 탈삼진을 8.88개까지 끌어올리며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갱신했다.
홀랜드와 함께 데릭 로드리게스도 기량을 뽐냈다. 2011년 미네소타 트윈스에 6라운드로 지명 받을 때만 해도 그는 외야수였다. 3년 동안 별다른 성적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투수로 전향하게 됐다. 투수 경험은 처음이었다.
4년 동안 루키리그에서 더블A까지 경험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남겼지만, 콜업의 기회는 멀어 보였다. 결국 지난 겨울 마이너리그 FA가 된 그는 새로운 소속팀을 구하지 못했다. 마이애미에 있는 캠프에서 훈련하던 그를 샌프란시스코로 부른 것은 파블로 산도발이었다. 로드리게스는 그의 권유를 받아들여 샌프란시스코에 합류했다.
2018년에도 로드리게스는 트리플A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부상이 이어지던 팀의 상황 속에서 그는 마이너리그 등판 9경기 만에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뤄냈다. 시즌 21경기에 출장하면서 선발로 19경기를 뛰었다. 118.1이닝 2.8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로드리게스는 워커 뷸러, 잭 플래허티와 함께 올해 가장 눈에 띄는 신인 투수가 됐다.
최악의 선수 – 제프 사마자, 오스틴 잭슨
시즌 개막을 부상과 함께 시작한 사마자는 재활 후에도 좋지 않은 투구를 이어갔다. 결국 어깨 부상마저 겹치며 10경기 평균자책점 6.25란 초라한 성적을 보이며 조기에 시즌을 마감했다.
부진의 원인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쳐버린 그의 어깨이다. 흔히 투수의 어깨는 분필과 같다고 한다. 5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던진 그의 어깨는 지칠 대로 지쳤을 것이다. 한때 시속 95~96마일을 웃돌았던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은 시속 93.1마일까지 떨어졌다.
구단의 걱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구속 하락과 함께 어깨 부상을 당한 사마자와의 계약기간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남은 계약 규모만 해도 2년 3,600만 달러 규모에 이른다. 현시점에서 내년의 선전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에 구단이 속을 끓일 수밖에 없다.
타선에선 오스틴 잭슨이 ‘X맨’ 역할을 했다. 자유계약으로 샌프란시스코에 합류한 잭슨은 당초 기대와 달리 최악의 성적을 남기며,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 됐다. 잭슨은 샌프란시스코에서 59경기를 뛰는 동안 홈런 0개, 36안타만을 남기며,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1.1을 기록했다.
새 출발의 갈림길에 서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샌프란시스코지만 여름까진 희망을 그렸다. 7월만 해도 선두에 2.5게임 차, 8월엔 다소 벌어지긴 했지만 5.0게임 차에 승률 5할을 유지했다. 시즌내내 다저스를 괴롭히면서 마음을 놓지 못하게 했다. 물론 이는 속사정과 다른 겉 모습에 불과했다.
팀 내부적으로 살펴보면 이 대신 버텨오던 잇몸이 견디지 못하며 한계에 부딪혔다. 장기 계약자들과 팜이 부실한 팀 사정을 고려해 한번 더 대권에 도전한 것은 좋았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주력 선수들의 부상, 벨트의 급격한 페이스 하락, 포지의 장타력 실종은 팀에 큰 타격을 입혔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내년에도 페이롤에 큰 변화가 없을 거라는 점이다. 팀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포지의 부진도 고민거리다. 포지는 매년 장타력이 감소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장타율이 0.382에 머물며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리그 최고의 공수 겸장 포수로 불리던 그가 수비형 포수로 바뀐 것이다.
이제 샌프란시스코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경쟁 팀인 LA 다저스는 적정선의 페이롤을 유지하며 장기 집권이 가능한 팀이 됐다. 좋은 팜 시스템을 통해 매년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놓은 상태다.
내년 시즌을 대비해 샌프란시스코가 가장 먼저 한 일은 LA 다저스의 단장인 파르한 자이디를 야구 부문 사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자이디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빌리 빈 단장과 함께 데이터 분석관과 부단장으로 일했다. LA 다저스에선 앤드류 프리드먼 야구 부문 사장 아래에서 단장을 역임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세이버 매트릭스 전문가라 볼 수 있다. 올드스쿨에 가까운 샌프란시스코가 전혀 다른 성향인 인물을 사장으로 영입한 셈이다. 빌리 빈, 앤드류 프리드먼과 같은 거물들을 보좌하던 자이디가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가 거쳐온 구단들의 행보 때문인지 현지에선 범가너의 트레이드 가능성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꾸준히 브라이스 하퍼에 대한 영입 루머가 도는 것을 보면 샌프란시스코의 방향이 세대교체를 통한 리빌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섣불리 리빌딩을 선택하게 되면 그동안 다져온 팬층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션 락 프로젝트와 같은 큰 사업을 앞둔 샌프란시스코 입장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자이디가 거쳐온 구단들은 리빌딩 보다는 고액연봉자와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선수들을 트레이드해가면서 성적을 유지해왔다. 이를 생각했을 때, 지금 샌프란시스코의 상황에 더 없이 어울리는 사람이 자이디 사장일지도 모른다. 과연 자이디 신임 사장은 어떤 청사진을 그리게 될까. 귀추가 주목된다.
기록 출처: Fangraphs
에디터=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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