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시즌 리뷰] 저 높은 산에도 봄날은 올까 – 콜로라도 로키스

팬그래프 예상 성적: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4위(73.1승 88.9패)
시즌 최종 성적: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3위(75승 87패)

 

프롤로그

[야구공작소 임선규] 개막을 앞둔 콜로라도 로키스를 NL 서부지구의 ‘주연’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숙명의 두 라이벌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탄탄한 전력을 자랑하는 가운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대대적인 전력 보강에 나서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로키 산맥을 비껴 나갔다. 오죽하면 겨우내 콜로라도가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유일한 시간은 호세 레이예스가 가정 폭력으로 체포되었던 순간이었을 정도였다. 이렇다 할 전력 상승 요인이 없는 상황에서, 경험 많은 주전 유격수까지 잃어버리게 된 뼈아픈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콜로라도 로키스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치열한 지구 탈꼴찌 다툼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예상은 비슷하게 흘러갔다. 지구 선두 LA 다저스에 16게임 뒤쳐진 75승 87패를 최종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 근접한 순간이 딱히 없었다. 승패라는 객관적인 기준을 보았을 때 그들의 한 해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개개인 면면을 보면 희망적이었다. 부상을 달고 살던 거포 카를로스 곤잘레스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건강한 시즌을 보내는데 성공했다. 준수한 주전급 선수였던 찰리 블랙몬과 DJ 르메이휴는 이제는 올스타급의 선수로까지 성장했다. 3루수 놀란 아레나도는 공수에서 완벽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다. 가장 반가운 소식은 여러 신인 선수의 발굴이었다. 트레버 스토리는 호세 레이예스의 공백을 300% 메꾸었고, 데이빗 달 등 주요 신인들은 단숨에 주전 자리를 꿰찼다.

매년 바닥을 맴돌았던 투수진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오랜 시간 홀로 쿠어스 필드의 마운드를 지켜온 호르헤 데라로사가 부진에 빠졌지만, 존 그레이, 타일러 챗우드, 채드 배티스 3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하반기 메이저리그에 올라왔던 전 1라운더 타일러 앤더슨의 활약도 준수했다. 하루하루 어떤 선발투수를 등판시켜야 하느냐로 힘겨웠던 콜로라도에 시즌 막판 안정적인 5인 로테이션을 돌렸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었다. 불펜에서는 탬파베이로부터 야심 차게 영입했던 제이크 맥기가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토미 존 서저리에서 돌아온 아담 오타비노의 활약으로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최고의 선수 – 놀란 아레나도, DJ 르메히유

토드 헬튼의 은퇴 이후 콜로라도의 상징과 같은 선수는 트로이 툴로위츠키였다. 그는 댄 오다우드 단장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다. 05년 1라운드 1번 픽으로 콜로라도에 지명된 이래, 핵심 포지션인 유격수 자리에서 매년 5이상의 fwar을 기록해주던 리그 최고의 유격수였다. 하지만 오다우드 단장이 사임하고 한 시대가 저묾과 동시에 툴로위츠키도 토론토 블루 제이스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그의 빈 자리는 이제 놀란 아레나도가 이어받았다.

아레나도는 15년 42홈런 130타점에 이어 올 시즌에는 41홈런 136타점을 기록하면서 꾸준한 파워를 보여주었다. 아쉬운 점으로 지적받았던 볼넷 비율은 2배 가깝게 대폭 상승했다(15년 5.1% -> 16년 9.8%). 홈에서의 성적이 월등하기는 했지만, 원정에서의 성적(81경기 .277/.340/.492 16홈런)만 떼어놓고 봐도 A급 3루수로 손색이 없었다. 수비에서는 4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차지하면서 NL 3루수 부문의 장기 집권 체제를 굳히기 시작했다.

아레나도의 활약이 ‘예상된’ 것이었다면, 르메이휴의 활약은 예상을 깬 ‘의외의’ 것이었다. .348의 타율을 기록하며, 다니엘 머피와 조이 보토의 추격을 뿌리치고 NL 타격왕 자리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예년에 비해 삼진율은 크게 감소했고(17.3% -> 12.6%), 볼넷율은 상승하는 등 (8.1%->10.4%) 종합적으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이었다. 컵스 시절 스탈린 카스트로, 다윈 바니, 이학주 등의 내야수에 밀려 헐값에 트레이드 되었던 과거를 상기한다면 인생지사 새옹지마와도 같았다.

이밖에 찰리 블랙몬 역시 .324/.381/.552 29홈런 111타점 3.9 fwar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중견수 중 하나로 자리 잡는데 성공했다.

 

가장 발전한 선수 – 존 그레이

13년 드래프트 당시 1라운드 1픽을 두고 3명의 선수가 경쟁했다. 12년 1라운드 8픽에 지명되었으나 피츠버그와 계약에 실패한 후 드래프트 재수에 나섰던 스탠포드 대학의 우완투수 마크 아펠, 대학 최고의 거포였던 샌디에이고 대학의 크리스 브라이언트, 오클라호마 대학의 우완 투수 존 그레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중에서도 존 그레이는 100마일의 빠른 구속과 함께 괜찮은 제구력(126이닝 147삼진 24볼넷)까지 보여주며 실질적 최대어로 꼽혔다. 유망주 평가 기관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아마추어 선수 랭킹에서도 그는 나머지 두 선수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드래프트를 앞두고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만다. 금지 약물인 에데랄 복용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에 1픽을 가졌던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다른 투수 마크 어펠을 뽑았고, 시카고 컵스는 크리스 브라이언트를 뽑았다. 결국 존 그레이의 종착지는 3픽을 가지고 있던 콜로라도 로키스로 결정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콜로라도 입장에서 전화위복이었다. 마크 어펠은 프로에서 피칭 시퀀스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며, 자신의 구위를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군다나 올 시즌에는 개막 한 달 만에 시즌 아웃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반면 존 그레이는 마이너리그를 차근차근 통과하며 메이저리그의 풀타임 선발 투수로 자리 잡는데 성공했다. 평균 95마일이 넘는 구속으로 9이닝당 9.91개의 삼진을 잡은 것은 올 시즌 투구 내용의 백미였다. 경기중 급격히 흔들리는 등 경기 운영에서의 미숙함을 보인 탓에 다소 높은 4.61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지만,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를 기준으로 본다면 3.60으로 훨씬 더 우수했다.

그간 콜로라도 로키스를 대표하는 투수에는 여러 선수가 있었지만 구위면에서 타자를 압도한 선수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전성기 시절 우발도 히메네즈 정도뿐이다. 존 그레이의 올 시즌 투구는 마치 08~09년의 설익은 우발도 히메네즈를 보는 듯했다. 그레이가 지금의 성장세를 이어나간다면 제2의 2010년의 히메네즈(19승 8패 2.88)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이 밖에도 올 시즌 콜로라도는 유격수 트레버 스토리(97경기 .272/.341/.567), 중견수 데이빗 달(63경기 .315/.359/.500), 포수 톰 머피(21경기 .273/.347/.659)등 수비 라인의 핵심인 센터라인에서 팀의 미래를 발굴하는데 성공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선수 – 헤라르드 파라, 호르헤 데 라로사

시즌을 앞두고 콜로라도는 15년 커리어 최고의 타격을 뽐낸 헤라르드 파라와 3년간 275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부상에 시달리며 102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남긴 기록 역시 .253/.271/.399에 불과했다. 파크팩터를 반영한 wRC+ 기준으로 보면 올 시즌 300타석 이상 들어선 268명의 선수 중 262등에 그친 기록이었다. 그의 부진 탓에 예정보다 빨리 올라온 데이빗 달이 펼친 활약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호르헤 데 라로사는 2008년 이래 9년째 덴버의 마운드를 든든히 지켜왔다. 수많은 투수가 쿠어스필드의 악령에 시달릴 때도 언제나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 팀 에이스와의 승부에서도 부족함 없이 맞섰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두고 ‘산 커쇼’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콜로라도는 지난 6년간 6600만 달러의 연봉을 주며 신뢰를 보였다.

하지만 계약 마지막 해에 접어든 데라로사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커리어 최악인 5.51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고, 선발 로테이션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젊은 투수들의 약진과 더불어 팀 내 입지가 크게 축소되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노쇠화에 있었다. 36살, 투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든 그의 평균 구속은 90.1마일에 그쳤다.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시속 2마일 이상 낮은 수치다. 빠른 공의 구속이 떨어지자 구종 구사도 역시 크게 변했다. 13년만 해도 50%가 넘었던 패스트볼 비율이 올해에는 35%에 그쳤다. 변화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의 섭리를 극복하지 못한 덴버 에이스의 뒷모습이 유난히도 쓸쓸해 보이는 시즌이었다.

이 밖에 2015년 활약하며 윌린 로사리오를 태평양 건너 머나먼 한화 이글스로 떠나 보내는데 큰 역할을 한 두 선수, 포수 닉 헌들리와 1루수 벤 폴슨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총평

내실을 충실히 다진 2016년의 콜로라도는 그 나름대로 성공적인 한 해였다. 투타에 걸쳐 많은 신인을 발굴해냈으며, 이들의 활약속에 전년도에 비해 7승 더 많은 75승을 기록할 수 있었다. 리빌딩 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팜의 상황도 괜찮았다. 지난해 1라운더였던 브랜든 로저스는 뛰어난 장타력을 뽐내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두 투수 유망주인 제프 호프만과 헤르만 마케즈의 활약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제 어둡기만 했던 로키 산맥에 햇볕이 내리쬘 날도 멀지 않았다. 올 시즌 새로 발굴한 자원들이 성공적인 2년차를 보내며 메이저리그에 완벽히 정착하고 추가적인 보강이 이뤄진다면 제2의 롹토버 돌풍, 꿈만은 아닐 것이다.

 

기록 출처: 팬그래프, 베이스볼 레퍼런스, MLB.com, 베이스볼 아메리카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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