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야구장 이야기

리글리 필드(좌)와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우)는 시카고의 대표적인 지역 라이벌 구단인 시카고 컵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구장이다.

 

[야구공작소 김가영] 야구장의 입지는 크게 근린형, 교외형, 도심형 야구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각각의 입지 유형별로 장단점이 있는데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근린형 야구장의 장점이라면 야구장 주변의 지역 주민과 가장 긴밀히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의 황금기였던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시카고 컵스의 리글리 필드와 시카고화이트 삭스의 코미스키 파크(현재는 철거되고 맞은편에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가 들어섰다)는 이러한 초기 야구장 입지의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두 구장은 소위 ‘쥬얼 박스(Jewel box, 1909~1915년 사이에 지어진 메이저리그 야구장을 지칭)’에 속한다는 점, 야구장의 설계에 지역 건축가 재컬리 T. 데이비스가 참여했다는 점, 팀에 대한 팬들의 충성도 못지 않게 구장도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 등 여러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야구장이 들어서 있는 모습은 매우 대조적이다. 리글리 필드는 그 주변으로 촘촘한 도시 조직이 개장 초기 그대로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면 코미스키 파크는 시카고시의 도시계획과 구단의 구장 시설 확충을 겪으면서 야구장 주변부가 한 번 정비가 됐다.

두 야구장의 사례를 통해 야구장과 그 주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리글리 필드

리글리 필드(Wrigley Field)는 1914년에 개장했다. 리글리 필드가 있는 지역은 시카고 북쪽의 레이크 뷰(Lake View) 지역이다. 이 지역은 리글리 필드가 들어서기 전부터 타운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큰 규모의 타운은 아니어서 정식으로 시카고 행정구역으로 편성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신학대학이 있는 조용한 교외지였고, 1890년대부터 조금씩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리글리 필드는 처음 지어질 당시 이미 주변에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 때의 도로 구조와 건물들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지역의 도시 조직은 이전과 비교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과거 야구장 입구 쪽에 배치되어 있던 주차장이 현재는 시민들을 위한 소규모 광장으로 탈바꿈했고 길 건너편에 호텔이 들어선 정도의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친근한 울타리(Friendly Confine)’라는 리글리 필드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 주민들에게 야구장은 마치 울타리가 쳐진 이웃집을 대하는 느낌이다.

리글리 필드 주변의 도시 조직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주변으로 어떤 도시계획 사업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야구장 주변에 있는 건물들의 주인들도 야구장으로 인해 이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야구장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루프탑’이다. 루프탑은 야구장 주변의 건물 옥상에 설치된 일종의 야외 관람석이다. 야구 경기의 중계권이 중요한 메이저리그에서 루프탑은 구단과 지역 주민 모두가 이득을 이끌어내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야구장 주변으로 예전의 도로 구획과 부지 형태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출처=Flickr)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Guaranteed Rate Field, 구 U.S. 셀룰러 필드)는 1991년에 개장했다. 리글리 필드와 다르게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는 새로 지어진 구장이다. 개장 전까지 화이트삭스가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구장은 코미스키 파크(Comiskey Park)로 현재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의 바로 맞은편에 세워져 있었다.

코미스키와 파크와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가 들어선 지역은 아무르 스퀘어(Amour Square)이다. 아무르 스퀘어 지역은 오래 전부터 다양한 인종이 유입된 지역이었다. 이는 야구장 디자인에도 반영됐는데, 코미스키 파크의 외관은 건축 당시 근처에 있던 여러 민족들의 교회의 모습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지역은 시카고에서 흑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흑인들의 유입은 1910년 이후부터 시작됐는데 이러한 지역의 특색을 보여주듯 코미스키 파크는 니그로 리그의 시카고 아메리칸 자이언츠(The Chicago American Giants)가 홈 구장으로 사용했던 구장이기도 했다.

리글리 필드와 다르게 코미스키 파크는 야구장 주변의 토지 이용과 도시 골격이 변해 왔다. 우선 야구장 양 옆으로 고속도로와 철로가 생기면서 주변 지역과의 단절을 초래했다. 1960년대에 야구장 서쪽으로 댄 라이언 앤드 스티븐스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서쪽 지역인 파크 블러바드와 단절됐고 야구장 왼쪽의 철로는 브릿지포트에서의 접근성을 떨어뜨렸다.

구단에서도 구장 시설을 적극적으로 정비했다. 1950년대부터 화이트삭스 구단은 야구장 주변의 토지를 조금씩 매입해 주차장 시설을 확충했는데 이 때문에 야구장 주변부의 모습이 과거와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

여기에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 건설은 변화를 한층 더 가속시켰다. 코미스키 파크 주변에도 리글리 필드처럼 주거지가 있었지만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를 건설하기 위해 그 일대를 철거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가 준공되 후에는 코미스키 파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주차시설을 완비했다.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의 바로 맞은편(사진에서 북쪽 방향)에 코미스키가 파크가 있었지만 지금은 철거되고 그 자리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야구장 좌우로는 철로와 고속도로가 놓여져 있다.(출처=BuiltinChicago)

 

서로 다른 도시 조직, 두 구장은 무엇이 다를까?

두 야구장이 보여주는 차이점은 야구장 주변의 활력감과 적막감이다. 이러한 분위기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는 야구장 주변의 토지이용과 관련이 있다. 리글리 필드는 야구장 주변으로 주차시설이 완비되어 있지 않다(주차장은 있지만 야구장과 인접하여 있지 않고 한 블록 또는 세네 블록을 이동해야 한다). 1990년까지만 해도 야구장 정문 옆의 삼각형 부지를 주차시설로 사용했지만 프로젝트1060(리글리 필드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차장을 광장으로 재정비했다. 반면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는 지속적으로 주차장 시설을 확충해 왔다.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 주변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편의시설이나 오락시설, 근린시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 주변의 지나친 주차장 시설이 토지의 생산적인 사용을 떨어뜨린 반면 리글리 필드는 야구장 이외에도 다양하게 즐길 시설들이 많기 때문에 야구 시즌뿐만 아니라 비시즌 기간에도 주변 오피스 시설을 이용하고 여가 시설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리글리 필드는 그 주변 일대를 아울러 리글리빌(Wrigleyville)이라고 부를 정도로 지역과 잘 융화되어 있다.  두 야구장 주변의 상점을 비교하면 그 수나 다양성에서 리글리 필드가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를 압도한다.

 

 

리글리 필드(위)와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아래) 주변*의 숙박시설, 오락시설, 음식점 분포(출처=TripAdvisor)

*지도에는 이전 구장명으로 등록되어 있음 

 

이와 같은 토지이용은 보행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보행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장 빈번하게, 쉽게 할 수 있는 이동 방법이다. 리글리 필드나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와 같이 도시의 촘촘한 골격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시설의 경우, 보행환경의 접근성과 편의성은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보행활동이 빈번히 일어나는 도시일수록 활력감이 넘치는 도시라는 것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보행은 단순히 ‘걷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보행활동을 통해 많은 활동들이 부차적으로 발생한다. 사람들은 걸으면서 낯선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거나 거리의 소리를 듣기고 하고 음식점의 요리향을 맡는 등 오감으로 공간을 탐색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도시를 즐기는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이다.

리글리 필드는 간선도로나 철로에 의해 구획되어 있지 않아 야구장의 어느 방향으로든지 보행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반면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는 좌우의 철로와 간선도로로 인해 접근 가능한 보행 동선이 제한되어 있고 야구장 주변이 주차장으로 되어 있어 보행 시 체험할 수 있는 경험도 단조롭다. 리글리 필드 주변은 활동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지만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는 그렇지 않다. 그 결과 리글리 필드 주변은 항상 활력이 느껴지는 반면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 주변은 상대적으로 적막하다.

 

 

리글리 필드(위)와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아래) 주변(위 사진=WikimediaCommons, 아래 사진=Flickr)

 

같은 야구 경기를 보지만 즐거움에는 차이가 있다

두 야구장이 보여주는 대조적인 분위기와 매력은 야구장과 야구장 주변과의 시설 계획에 대한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야구장은 사람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이러한 에너지를 도시의 활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야구장 자체의 시설만으로는 야구장과 시민간의 유대관계를 형성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구장 주변의 세밀한 계획은 결국 야구장의 장소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야구장과 그 주변의 상호작용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의미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근린형 야구장인 다른 야구장과의 비교도 야구장과 주변 지역간의 상호관계를 좀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기사: Chicago Sun-Times, Chicago Tribune

문헌: A Tale of Two Stadiums(Vitor Matheson, 2006)

사이트: ballparksofbaseball.com, encyclopedia.chicagohistory.org, thisgreatgame.com

 

에디터=야구공작소 오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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