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칼 댄 남자들, 네 번째 야구인생을 시작하다

[야구공작소 양정웅] 지난 4월 26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경기, 탬파베이의 한 좌완투수가 6회 말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크리스 데이비스를 4구 만에 유격수 땅볼로 처리한 후 마운드를 내려갔다. 33세의 LOOGY*가 던진 공 네 개, 플레이 자체는 평범한 축에도 끼지 못했다. 그가 평범한 투수였다면 말이다.

* LOOGY (Lefty One Out GuY) : 우리나라에선 ‘원 포인트 릴리프’라고 표현한다.

이 좌완투수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기까진 2,028일이 걸렸다. 한때 메이저리그에서 최고로 손꼽힌 불펜 트리오의 일원이었지만 부상에 울어야 했던 선수. 세 번의 팔꿈치 인대 파열을 겪으며 그때마다 수술대에 올라야 했고, 유니폼까지 바꿔입어야 했다. 그런데도 재기의 의지를 놓지 않고 다시 마운드에 오른 그 투수는 바로 조니 벤터스다.

이 등판이 있기 약 9개월 전, KBO 리그에서도 세 번의 수술을 받고 마운드에 다시 오른 선수가 있었다. 2,583일 만에 1군에 돌아온 이 우완투수는 오랜만에 밟아보는 마운드에 서서 사직의 하늘을 바라봤다. 첫 두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실책으로 주자를 내보냈지만, 다음 타자를 범타로 처리하며 실점 없이 1이닝을 깔끔하게 막고 내려왔다. 이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의 조정훈이다.

투수의 팔꿈치에 칼을 대는 것은 과거보단 덜할지라도 여전히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최소 1년을 투자해야 하는 토미 존 수술(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이라면 더할 것이다. 그런데 두 투수는 무려 세 번이나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세 번의 수술 끝에 네 번째 야구인생을 사는 두 투수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화려했던, 위험했던

벤터스(오른쪽에서 두번째)는 2011시즌에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출장선수로 선정되었다. (사진=Flickr)

 

벤터스는 2005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된 직후 토미 존 수술을 받고 2007시즌부터 실전에 나섰다. 마이너리그에서 차근차근 과정을 밟으며 메이저리그 승격 준비를 마친 벤터스는 2010년 4월 18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마이너리그에서 60경기 중 9경기만 구원등판했던 벤터스는 데뷔 첫해부터 활약하면서 애틀랜타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2010시즌 79경기에 등판한 벤터스는 1점대의 평균자책점과 24홀드를 기록했다. 팀이 10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부름을 받았지만 내셔널리그 최다 등판 6위를 기록했다(1위 페드로 펠리시아노 92경기). 셋업맨 사이토 다카시와 마무리 빌리 와그너가 빠져나간 2011시즌에는 리그 최다 기록인 85경기에 등판, 37홀드를 올리며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의 불펜투수 중 한 명이 됐다. 크렉 킴브럴, 에릭 오플래허티와 함께 ‘오벤트럴 트리오(OVENTREL TRIO)’로도 불렸다.

2010~2012년 벤터스의 기록(괄호는 동 기간 불펜 투수 중 순위)

눈부신 활약 속에도 위험요소는 있었다. 무엇보다도 많은 경기에 등판했다. 데뷔 후 3년간 연평균 77경기에 등판한 건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삼은 벤터스의 팔꿈치엔 치명타였다. 2012시즌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전년도보다 1마일 넘게 떨어지면서(95.0 → 93.7마일) 벤터스는 2013시즌 시작 후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조정훈은 포수로 뛰다가 비교적 늦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투수로 전향했다. 발목 부상으로 1년 유급한 게 오히려 스카우트의 눈에 띄었고, 롯데 자이언츠는 그를 200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에 지명했다. 프로 초기엔 코치진의 무관심과 본인의 자기관리 실패로 인해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007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기회를 얻었고, 2008시즌 12번의 선발등판에서 5승과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외국인 선발의 부재로 힘겨워했던 롯데엔 희망과 같았다.

 

선발로 활약하던 당시의 조정훈.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이어진 2009시즌에서 조정훈은 에이스로 거듭났다. 2군 시절 장착한 포크볼을 새로운 주 무기로 삼으며 그는 新 ‘닥터 K’로 등극했다. 늘어난 탈삼진을 바탕으로(9이닝당 탈삼진 6.08 → 8.64) 8월 말까지 탈삼진 1위를 질주했다. ‘괴물’ 류현진이 한국에서 탈삼진왕을 차지한 5시즌 중 2위와 두 번째로 근소한 차이를 보였던 게 바로 2009시즌의 조정훈이다(류현진 188탈삼진, 조정훈 175탈삼진).

 

2007~2010년 조정훈의 기록

하지만 벤터스와 마찬가지로 조정훈도 불구덩이 속에서 석유통을 안고 뛰는 것 같은 위험성을 안고 투구를 했다. 2007~2009시즌 조정훈은 매년 40%씩 이닝 수가 증가했다. 특히 2009시즌에는 포스트시즌을 포함해 190이닝을 던지면서 전년보다 60이닝이나 더 던졌다. 이는 포크볼을 주 무기로 했던 조정훈에겐 치명적이었다. 2009시즌이 끝나고 어깨 염증 진단을 받은 조정훈은 이듬해 아시안게임 발탁을 위해 무리하면서 팔꿈치 인대가 파열됐다. 그리고 그해 8월, 첫 번째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머나먼 마운드, 기나긴 재활

2013년 벤터스는 두 번째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메이저리그에 토미 존 수술을 두 번 받은 선수는 많았고, 당시 벤터스의 상태도 나쁘지 않다고 알려졌다.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던 그는 2014년 또 한 번 팔꿈치 인대 파열을 겪었다. 결국, 애틀랜타 구단도 벤터스를 포기하고 2014년 12월 그를 방출했다.

2015년 탬파베이와 계약을 맺고 재활에 나섰지만 2016년에 또다시 팔꿈치에 문제가 생겼다. 자칫 네 번째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벤터스는 집도의의 권유로 다른 수술방식을 택했다. 인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대를 뼈에 붙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수술 후 2017시즌 마이너리그에서 24경기에 등판한 그는 메이저리그 복귀 준비를 마쳤다.

(참고글) 기적적인 복귀를 바라는 자니 벤터스 (링크)

 

소집해제 후 2013년 스프링캠프에서 투구하는 조정훈. 이후 두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했다.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2010년 첫 토미 존 수술을 마치고 병역의 의무를 수행한 조정훈은 2013년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그런데 팔꿈치에 또 문제가 생겼다. 시즌 내내 투구조차 하지 못한 조정훈은 시즌이 끝난 후 또 한 번의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결과를 받았다. 두 번째 토미 존 수술이었다. 신고선수로 전환하면서까지 재활에 몰두했던 조정훈은 2015년이 돼서야 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5시즌 복귀한 조정훈은 시범경기 2번째 등판에서 갑작스러운 불편함을 호소하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2군으로 내려간 조정훈은 실전 투구시 팔꿈치에 물이 차는 증상이 생겼다. 결국 그는 2016년 1월 세 번째로 토미 존 수술을 받아야 했다. 7년간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선수, 더 이상 희망은 없는 듯했다.

 

이제는 돌아와 관중 앞에 선

벤터스는 자신을 지켜보는 가족을 위해서 복귀에 힘썼다. (사진=비비아나 벤터스 인스타그램)

 

벤터스와 조정훈, 두 선수는 세 번 이상 팔꿈치에 칼을 댔다. 토미 존 수술 3회 후 복귀한 사례는 토미 존 수술의 40년 역사에서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걸어갈 길 앞엔 제이슨 이슬링하우젠과 권오준이 있었다. 두 선수 모두 3번의 토미 존 수술 후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나갔다. 낮은 확률이지만, 벤터스와 조정훈은 포기할 수 없었다.

마이너리그 재활 경기를 마친 벤터스는 예전 같진 않지만 괜찮은 팔 상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8시즌 드디어 메이저리그에 돌아왔다. 5월 22일 현재 9경기에 등판 중인 벤터스는 평균자책점 1.13으로 호투 중이다. 지난 16일에는 2,097일만에 첫 승을 거두기도 했다. 예전처럼 폭발적인 구위로 삼진을 잡아내진 못하지만 건재한 슬라이더를 통해 타자를 잡아나가고 있다.

 

복귀전에서 이닝을 마무리한 후 팬들의 환호에 화답하는 조정훈.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조정훈 역시 복귀에 성공했다. 2017시즌 2군 경기에 자주 등판하며 팬들에게 ‘올해는 다르다’는 인상을 심어준 조정훈은 그해 7월 7일, 7년 만에 1군에 올라왔고 이틀 뒤인 9일에는 2,583일 만에 1군 마운드에 올라 복귀를 신고했다. 지난해 필승조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던 조정훈은 올 시즌 무리하지 않으며 천천히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2주일 차이로 세상에 태어난 두 선수는 공통점이 많다(벤터스 1985년 4월 20일생, 조정훈 1985년 5월 3일생). 여러 이유로 같은 출발 선상에 있던 선수들보다 늦게 궤도에 올랐다는 점, 전성기에 자신의 주 무기로 타자를 추풍낙엽처럼 돌려세웠다는 점, 그리고 그 무기가 팔에 좋지 않다고 알려진 점, 그래서 토미 존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다는 게 두 선수.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너무 많이 던졌다’는 것이다. 벤터스는 3년간 꼬박꼬박 70경기 전후로 나왔고, 2년 연속 80이닝을 투구했다. 조정훈 역시 이닝을 매년 늘려갔고 뒤늦은 감독의 관리에도 돌이킬 수 없었다.

최근 NC 임창민의 토미존 수술 소식이 알려지며 투수 혹사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임창민은 인터뷰를 통해 “데이터는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사람이니까, 순리를 거스를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벤터스와 조정훈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휩쓸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 번의 수술에도 굴하지 않고 마운드로 돌아온 것은 그들이 새로 개척한 운명이다.

많은 이들이 가보지 못한 네 번째 길. 이 길을 개척할 그들이 어떤 발자국을 남기게 될지, 어떤 선수로 남게 될지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기록=STATIZ, 2007~2009 KBO 연감, Fangraphs

에디터=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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