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대한 당신의 초심은 무엇인가요

봄! 야구! 새로운 시작!

[야구공작소 전광호] 4월.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이제는 나와도 될까?” 조심조심 눈치를 보며 꽃눈들이 눈을 뜹니다. 꽃들이 만개했을 때 “이 꽃도 언젠가 또 지겠지?”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지금 시기가 더 좋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선가 언젠가 항상 손님처럼 올 포근한 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2018년 봄. 벚꽃 / 사진 전광호

지난 3월 24일 프로야구가 개막전을 치렀습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시즌이 마무리 되면 팬들은 좋았던 성적을 돌아보며 즐거운 겨울을 보내기도 하고 아쉬웠던 성적을 뒤로하고 새로운 희망거리를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자유계약선수의 계약을 기다리며 매일 스포츠뉴스를 새로 고침 하기도 하고, 내가 응원하는 팀에 올해는 어떤 외국인 선수가 활약을 해줄 것인지 기대하고 우려하기도 합 니다. 어쩌면 뜨거운 감자 자유계약선수와 허니 버터를 바른 스윗뜨 포테이토 외국인선수가 야구 보릿고개를 이겨낼 유일한 구황작물이랄까요?!

보릿고개를 이겨내고 시즌이 시작하고 나니 처음 냄비 밥을 해보는 자취생처럼 뚜껑을 열기가 두렵습니다. 분명히 잘해 줄 거라 생각했던 외국인 선수는 생각보다 저조하고, 구단에서 야심 차게 영입한 FA(자유계약)선수도 예열중인 것인지 활약이 미미한 것 같습니다. 생각한 것보다 잘 하고 있는 구단 팬들은 초기 성적은 크게 의미가 없다며 조심스럽고,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내고 있는 구단 팬들은 ‘역시나’라며 혀를 끌끌 찹니다.

우리가 겨울 내내 기다렸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던 야구가 휴식기에 들어갔을 때 오후 6시 30분이되면 공자 맹자 석가모니 예수가 되어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대하고 바랐습니까?

“이기거나 지거나 야구나 했으면 좋겠다.”

 

매향리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그곳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한미군의 공군사격장이었습니다. 55년동안, 그것도 일 년 가운데 거의 전부를 비행기에서 쏟아지는 포탄의 폭격을 받아내야 했죠. 그곳에서는 자연도 사람도 모두 시들어갔습니다. 쉴 새 없는 폭격에 꽃 한 송이 피어날 땅이 없었습니다. 이곳의 이름은 ‘매향리’인데 말입니다.

55년간 매향리에 떨어진 폭탄의 잔해들 / 사진제공 = 개미뉴스

2005년 주한미군은 국방부로 사격장을 공식반환 했습니다. 주한미군 사격장으로 이용되던 55년동안 매향리 주민들은 오발사고로 인해 직접적인 인명피해를 입기도 했고, 소음공해 때문에 난청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심각한 스트레스장애로 스스로 다른 세상을 선택하신 분들도 계시고요. 그저 소음이 없어진 것만으로 살만하다고 이야기 하시는 주민 분들을 생각하니 얼마나 그 고통이 끔찍했을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매향리! 야구! 새로운 시작!

매향리에 건립된 화성드림파크의 항공사진 / 사진제공 = 화성시

주한미군의 공식반환이 이루어지고 난 10여년 뒤 국가와 화성시가 함께 나서서 매향리에 생태공원을 건립하기로 했습니다. 그 계획 속에는 ‘화성드림파크야구장’이라는 대규모 야구공원이 포함되어 있었죠. 한국리틀야구연맹의 본부와 리틀야구장 4면, 주니어야구장 3면, 그리고 여성야구장 1면까지 총 8면의 야구장이 들어서는 동아시아 최대의 야구공원을 목표로 말입니다. 2017년 6월, 계획대로 이 아름다운 야구장은 개장했습니다.

화성시장기 결승을 마친 리틀야구선수들 / 사진제공 = 한국리틀야구연맹

이후 이곳 화성드림파크에서는 가장 먼저 리틀야구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마치 매화가 다른 꽃들보다 먼저 향을 피우는 것처럼 말이지요. 올해도 프로야구가 시작되기 전 3월 17일 아직은 조금 쌀쌀한 때 <제1회 화성시장기 전국리틀야구대회>가 막을 올렸습니다. 전국각지에서 127개 리틀야구팀이 땅 끝 마을 해남군부터 가장 가까운 화성시까지 매향리로 모였습니다. 대회가 시작되면 야구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아이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서로 파이팅을 외치고 응원가를 부르며 야구를 즐기기 시작합니다. 어리지만 진지하고, 진지하지만 해맑습니다.

 

순수함. 회복

대회 중입니다. 5학년 선수의 몸 쪽 깊은 곳으로 볼이 날아오자 덕아웃에서 지시가 나옵니다.
“몸에 맞았잖아. 얼른 1루로 뛰어가야지!”
감독이 애가 타는 목소리로 선수를 채근합니다. 제가 묻습니다.
“00야 맞았니?”
감독님과 저를 번갈아보던 이 어린 선수는 수줍게 웃으며 대답합니다.
“음.. 안 맞았는데요?”
감독은 고개를 젖히고 이마를 짚습니다.
어리지만 순수하고 정직한 친구에게 아무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몰래 이야기합니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사실 저는 옷깃에 살짝 스친 정도까지는 육안으로 판단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베테랑 심판들은 옷깃에 스치는 소리까지도 잡아 내지만요. 하지만 저는 ‘이제 막 초보딱지를 떼는 중이니까’라고 스스로 민망한 변명을 해봅니다. 모자라고 어설퍼도 공정하게, 그리고 나의 실수로 마음이 다치는 학생이 없을 수 있도록. 아직 이 너무나도 무겁고 어려운 책임을 오롯하게 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정말 그 무거운 책임을 가볍게 질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요.

시간이 필요한 것은 상처받은 이 땅도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분명 이 곳도 생명력을 찾고 회복될 거라고 믿습니다. 다른 어떤 방법도 효과적이지 않겠지만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이라면 분명 이 땅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겁니다.

 

리틀야구. 로컬룰.

리틀야구에는 야구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프로야구와는 다른 룰이 존재합니다.

“3:3 6회말 마지막 공격입니다. 2사 2루에 주자가 있고 중견수 앞으로 잘 맞은 타구가 안타가 됩니다. 중견수는 있는 힘껏 홈으로 공을 뿌립니다. 접전! 주자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 합니다. 태그! 주자의 손이 한 참 빠릅니다.”

“아웃!”

네. 아웃입니다. 안전을 위해 선수들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진루의 경우에 한합니다. 점유한 누로 귀루를 할 때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허용하지만, 접전이 벌어질 수 있는 진루의 경우엔 시도하기만 해도 아웃이 됩니다. 야구보다 안전이 우선입니다.

리틀야구에서는 경미한 부상이 생길지라도 그 즉시 게임을 중단합니다. 경기장 밖에는 항상 응급의료차량이 대기하고 있고 응급의료진도 2명 대기합니다. 의료진은 선수의 상태를 확인하고 바로바로 부상자를 조치합니다. 부상 때문에 잠시 주루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임시 대주자를 기용할 수도 있고요. 어린 선수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로컬룰입니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고 우리의 미래니까요.

몸에 맞는 볼이 나오면 1루에 도착한 주자와 투수는 서로 모자를 벗고 인사합니다. 투수는 타자에게 미안함을 표현하고 타자 역시 괜찮다고 응합니다. 또한 투수는 한 경기에 6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으면 마운드를 내려가야 합니다. 잘하는 한 명의 선수를 혹사하지 않으면서 되도록 여러 선수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6회 경기인 리틀야구에서는 대부분 한 경기에 3명의 투수가 등판합니다. 지명타자 제도는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투수고 타자입니다. 마운드와 타석에서 서로를 함께 야구하는 친구로 받아들입니다. 몸에 맞는 볼을 던진 친구와 맞은 친구가 가끔 1루에서 만나면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아까 아팠냐? 미안하다”
“아니. 하나도 안 아프던데 커브냐?”
“아니 직군데..(시무룩)”

 

리틀야구. 프로야구. 나의 야구

프로야구가 태어난 해에 태어났던 저는 여러 길을 돌고 돌아 결국 야구장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나의 꿈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찾는 일에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야구가 좋아 야구의 일부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지금 이 야구장에서 아이들을 매일 만납니다. 여기에 야구를 하러 오는 친구들은 저의 손짓과 몸짓에 울기도 웃기도, 낙담하기도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이런 친구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도록 공정하고 안전하게 경기를 이끌어 주는 것뿐이겠지요. 아이들은 어떠한 영화나 소설보다도 시시때때로 예고 없이 감동을 줍니다. 그에 보답하는 길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항상 이곳을 오고 갑니다. 결론은 항상 같습니다.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매 경기에 임하자.’

 

화성드림파크야구장의 바람개비들 / 사진 전광호

이곳 화성드림파크 한 편에는 수 백 개의 바람개비가 돌고 있습니다. 수 백 개의 바람개비들은 각기 도는 속도도 다르고 크기와 색깔도 다양합니다. 이 바람개비들처럼 매향리에서 야구를 하는 우리 어린 선수들도 각기 다른 방향과 속도, 색깔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 갈 것입니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야구와는 전혀 관계없는 예술가가 될 수도, 아니면 직장인이 될 수도 있겠지요.

요즘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이들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크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도록 어른들이 그런 세상을 먼저 만들어야겠지요. 아이들이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있어 야구가 큰 도전이 되고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야구가 너무 즐거운 아이들 / 사진제공 = 화성시

2018년 봄.

상처가 많았던 매향리는 아이들, 그리고 야구로 회복 중입니다. 응원하는 프로야구 팀이 승리하고 좋은 성적 내기를 기대하는 만큼 우리 아이들에게도 많은 격려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가졌던 야구에 대한 초심은 그저 야구가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초심을 매 순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프로야구를 즐기시다가 야구에 대한 초심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시는 순간, 이곳 매향리에서 뵙겠습니다!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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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omments

  1. 야구에 대한 애정이 뜨거우신 심판님, 아이들도 아껴주시는 깊은마음이 글에서도 느껴지네요. 야구장에서 꾸준히 뵙기를 바라고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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