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하는 오수나(사진=Wikimedia Commons CC BY-SA 2.0)
[야구공작소 이해인] 메이저리그 스프링트레이닝 기간은 어떤 선수가 25인 로스터에 진입할지 관심이 쏠리는 시점이다. 서비스 타임 조정을 위해 시즌이 시작한 뒤 25인 로스터에 합류하게 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유망주 로날드 아쿠나, 메이저리그 데뷔도 하기 전에 6년 2,400만 달러 규모의 연장계약을 체결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스캇 킹거리 등이 주목받았다.
이 시기에 관심이 집중되는 대부분의 선수가 유망주인만큼 다른 선수와 자주 비교된다. 킹거리의 경우, 메이저리그 한 타석도 없이 연장계약을 맺은 존 싱글턴이나 단 6번의 메이저리그 경기를 치르고 연장계약에 성공한 에반 롱고리아와 함께 언급된다. 이 두 선수는 커리어가 매우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전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흑역사로, 후자는 탬파베이 레이스의 전설과 같은 존재로 남았기 때문이다.
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주는 선수가 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우완투수 조던 힉스다. 그는 엄청난 강속구와 커브를 앞세워 상대 타자를 압도하는 기량으로 2018시즌 MLBPipeline 선정 세인트루이스 유망주 7위에 선정됐다. 그러나 아직 제구력과 써드피치 장착에 약점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그의 메이저리그 합류 시기가 2019시즌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스프링트레이닝 마지막 경기에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힉스의 25인 로스터 합류가 확정된 것이다. 그가 경험한 가장 높은 단계의 리그가 하이A였고, 팀의 행사와 훈련에 지각하는 문제도 일으켰던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다. 이와 비슷한 개막전 콜업의 전례가 있다. 바로 2015시즌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로베르토 오수나 콜업이다.
로베르토 오수나의 2015시즌
오수나 역시 힉스와 마찬가지로 2015시즌 전까지 마이너리그 하이A까지만 밟아봤던 투수였다. 2011시즌 멕시칸리그에 출전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나 2015시즌 스프링캠프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12.1이닝 평균자책 2.19, 탈삼진 14개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25인 로스터에 들었다. 구단은 그를 중간계투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토론토의 결정은 도박이었다. 선발투수 유망주로 평가 받던 그를 불펜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은 기회비용으로 미래에 최고 100마일까지 뿌리는 강속구 선발투수를 지출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게다가 2013시즌 도중 6월에는 팔꿈치인대접합(토미존) 수술까지 받았다. 수술 후 2014시즌 후반에 복귀했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표1. 오수나의 마이너리그 성적
그러나 2015시즌 콜업된 이후 그는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데뷔 후 첫 상대였던 뉴욕 양키스의 간판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등 7경기에서 9.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부진했던 팀 내 다른 구원투수들과 명암이 엇갈리는 결과였다. 오수나와 마찬가지로 하이A까지만 뛰고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마무리투수로 낙점됐던 미겔 카스트로는 부진을 거듭하면서 트리플A로 강등됐다. 결국, 해당 시즌 도중에 트로이 툴로위츠키 트레이드의 반대급부로 콜로라도 로키스로 팀을 옮겼다. 그를 이어 임시 소방수로 나섰던 브렛 세실도 본인이 셋업맨 체질이라는 것만 입증하고 말았다.
여기서 토론토는 오수나를 마무리투수로 지명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리고 그는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투구를 펼쳤다. 존 기븐스 감독은 마무리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오수나에 대해 “그는 정말 좋은 투구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 위에 엄청난 평정심과 자신감을 느끼고 있어 어려운 상황을 감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극찬을 쏟아냈다. 마무리투수가 자리를 잡자 계투진 역시 안정을 찾았고, 팀의 상승세는 가속화됐다. 덕분에 토론토는 22년 만의 지구 우승과 플레이오프 진출을 달성했다.
그의 활약은 2016, 2017시즌에도 이어졌다. 그 덕분에 팀 역시 2014년 케이시 잰슨의 부진과 2015시즌 카스트로의 부진으로 이어졌던 마무리투수 잔혹사를 끊어낼 수 있었다. 계속해서 흔들리던 팀의 계투진에 젊고 강력한 중심축이 생기면서 구단은 갈수록 비싸지는 S급 마무리투수의 FA시장에 큰돈을 쓸 필요가 없게 됐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힉스
힉스 역시 오수나와 마찬가지로 최대 시속 100마일까지 이르는 빠른 공으로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마이너리그 생활 2년 동안 하이A 보다 위로 올라가지 못했지만, 스프링캠프에서 잠재력을 터뜨리며 빠르게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합류했다. 그는 오수나에 비해 마이너리그 성적이 좋다. 2년 동안 34경기(31경기 선발 등판 포함)에 등판해 165.2이닝 평균자책 2.74를 기록했다.
두 선수가 콜업된 시즌의 불펜진 구성도 서로 비슷하면서 다르다. 2015시즌 토론토와 마찬가지로 2018시즌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마무리투수 없이 시즌을 시작했다. 세인트루이스는 시즌이 개막한 후에야 FA 시장에서 그렉 홀랜드를 영입했다. 하지만 2015시즌 토론토는 개막 당시 습자지 두께 정도의 구원투수를 보유했지만 이번 시즌의 세인트루이스는 두터운 뎁스를 구축하고 여러 마무리투수 후보를 갖고 있었다. 오수나의 경우 마이너리그 커리어가 메이저리그 콜업의 걸림돌이 됐던 반면, 힉스는 같은 포지션의 선수들과 펼쳐야 하는 경쟁이 주된 걸림돌이었다.
또한, 세인트루이스 역시 토론토처럼 지난 2년 동안 마무리투수 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다. 2016시즌엔 트레버 로젠탈, 2017시즌엔 오승환이 부진에 빠졌다. 2018시즌 역시 마무리투수 자리에 아직 불안요소를 안고 있다. 마무리투수로 합류한 그렉 홀랜드는 최근에 계약을 맺어 몸 상태를 끌어올릴 시간이 필요하다. 과거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9회를 맡아주던 루크 그레거슨은 마무리투수로 불안함을 한 차례 노출했었고, 현재 햄스트링 부상과 씨름하고 있다. 도미닉 리온과 타일러 라이온스 역시 마무리 경험은 일천한 수준이다. 따라서 불안 요소들이 산재해 있는 팀의 구원진을 생각했을 때, 매우 희박한 확률로 힉스가 팀의 주요 불펜 자원으로 활약할 가능성이 있다.
희망적인 시나리오를 언급했지만, 당연히 힉스의 2018시즌 성공은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그가 성공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안착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년 시즌이다. 토론토 역시 오수나를 두고 선발투수로 육성할지 계속해서 마무리투수로 기용할지 고민한 바 있다. 구단의 선택은 후자였다. 반면 세인트루이스는 현재 팀의 에이스인 카를로스 마르티네스를 2014시즌에 불펜으로 활용하다가 선발투수로 보직을 전환시키며 육성에 성공한 바 있다. 이 결정의 주요 쟁점은 힉스의 써드피치 개발 여부다. 기존 불펜 투수의 선발 전환도 이 부분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수나처럼
오수나는 팀의 임시 마무리를 맡았던 2015시즌부터 지금까지 97세이브를 올리며 메이저리그 최연소 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가 만 24세 246일에 세운 최연소 100세이브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오수나는 이제 만 23세로 이변이 없다면 무난히 기록을 경신 할 것으로 보인다.
힉스 역시 96년생 9월생으로 겨우 만 21세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어린 투수를 두고 세인트루이스의 마이크 매덕스 코치는 “그는 메이저리그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강속구를 던지지만 커맨드도 잘 되며 공의 움직임 역시 살아있다.”고 말했다.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친구’라고 극찬은 그의 활약을 기대하게 한다. 과연 이 선수가 오수나처럼 자신의 이름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혹은 메이저리그의 어떤 리더보드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그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 역시 올 시즌 메이저리그의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MLB.com, Milb.com, Elias Sports Bureau
에디터=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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