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로테이션의 수장’ 크리스 아처의 도전

Rays at Orioles 4/8/16

크리스 아처(사진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야구공작소 권승환] 1984년, 리그 최고 승률을 기록하며 40년 만에 내셔널 리그 동부 지구 1위로 올라선 시카고 컵스는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한 선수를 지명한다. 이 선수의 이름은 그렉 매덕스. 그는 1987 첫 풀 시즌을 시작으로 꾸준히 두 자리 승수를 챙기며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로 승승장구한다. 1991년, 그렉 매덕스는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15승을 기록한다. 그해 선발 출장한 경기는 37경기로, 지금까지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메이저리그의 선발 출장 횟수는 1991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7시즌의 최다 출장 횟수는 34경기로 단 두 명의 선발 투수만 기록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2018시즌 4인 선발 로테이션 체제를 예고한 탬파베이 레이스의 에이스 크리스 아처다.

탬파베이 담당 기자인 마크 톰킨은 지난 7일, SNS를 통해 탬파베이 감독 케빈 캐쉬가 4인 로테이션을 운영하며 5선발 경기에선 불펜 투수를 선발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약 아처가 2018시즌 동안 꾸준히 5일마다 선발로 등판한다면, 그가 소화해야 할 경기 수는 3월에 1경기, 4월부터 9월까지 각 6경기로 총 37경기다. 매덕스가 1991년에 기록한 경기 수와 같다. 단 4명뿐인 선발진의 맏형으로서, 근 27년간 나오지 않았던 기록에 도전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시카고 컵스 시절 그렉 매덕스(사진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아처를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

지난 시즌 아처와 함께 탬파베이의 2, 3 선발을 맡았던 알렉스 콥과 제이크 오도리찌가 팀을 옮겼다. 이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블레이크 스넬, 네이선 이발디, 제이콥 파리아가 선발진에 합류했다. 탬파베이는 아처-스넬-이발디-파리아 순서로 로테이션을 계획하고 있다. 아처와 스넬이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이발디와 파리아는 각 타자를 최대 3차례까지만 상대하는 게 탬파베이의 계획이다.

아처의 2017시즌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평균자책점이 다소 높고(4.07) 패가 승보다 많았지만(10승 12패), 그의 fWAR는 2017시즌 투수 중 10위(4.6)로, 다른 팀의 에이스에 뒤지지 않는 기록이다. 고무적인 것은 9이닝당 삼진 비율이 그가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2013년 이후로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17시즌에 아처가 기록한 11.15개의 K/9는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 투수 중 5위로 리그 최상위급 기록이다.

 

<아처의 시즌별 9이닝당 삼진 비율>

 

문제는 아처 이외의 선수에게 많은 물음표가 달려있단 점이다. 네이선 이발디는 팔꿈치인대접합(토미존) 수술로 인해 2017시즌 전체를 쉬었고 복귀 일정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블레이크 스넬과 제이콥 파리아는 2017년 이따금 선발로 나온 경험이 있지만, 아직 한 팀의 2, 3선발 감으로 보기 어렵다. 팀의 에이스로서 준수한 활약을 해온 아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알렉스 콥과 제이크 오도리찌가 없는 선발진은 아처에게 부담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다. 탬파베이는 2014시즌 중반 에이스 데이빗 프라이스를 트레이드로 떠나 보냈고, 2015시즌에는 알렉스 콥, 맷 무어, 드류 스마일리 등을 부상으로 전력에서 잃은 경험이 있다. 아처는 그 과정에서 탬파베이의 굳건한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벌써 4년째 묵묵히 팀을 이끄는 그가 있기에 탬파베이는 과감한 실험을 시도할 수 있다.

 

명백한 위험성

4인 로테이션 체제는 아처에게 큰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그의 투구 스타일을 봤을 때, 37경기 선발 등판은 위험성이 따른다. 아처는 2015시즌부터 2017시즌까지 꾸준히 매 시즌 3400구 이상을 던져 왔다. 지난 시즌엔 총 3406구를 던져 저스틴 벌랜더, 크리스 세일에 이어 3번째로 많은 공을 던진 선수였다. 투구 수가 많은 선수의 특성상 체력 안배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4인 로테이션을 고수하기 위해 탬파베이는 아처를 많은 경기에 등판시켜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아처의 ‘투 피치’ 스타일 역시 위험요소다. 90마일 중반대의 패스트볼과 각이 큰 슬라이더는 삼진을 잡아내는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경기 후반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위력 저하는 우려할 부분이다. 투구 수 과다로 인한 완급 조절의 부족은 빠른 에너지 소모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아처의 체력 안배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아처는 지난 시즌 5회 이후 체력이 떨어지면서 구속이 줄어들고 슬라이더의 변화가 적어져 장타를 많이 내주는 모습을 보였다.

약해진 타선 역시 아처의 어깨를 짓누른다. 작년 탬파베이의 평균 득점은 4.28로 메이저리그 25위를 기록했다. 올해도 득점 지원을 받기 어렵다. 에반 롱고리아, 코리 디커슨, 로건 모리슨과 같이 팀에서 중심 타자 역할을 맡았던 선수들이 대거 빠졌기 때문이다. 팬그래프에 따르면 내년 탬파베이의 예상 평균 득점은 4.30으로 작년과 비교하면 소폭 상승했지만, 메이저리그 전체 순위는 27위로 오히려 두 단계 내려갔다. 팬그래프의 예상대로라면, 아처 뿐 아니라 선발진 모두에게 힘든 시즌이 될 것이다.

 

1991년 매덕스, 2018년 아처

전성기 매덕스는 정확한 제구력과 변화가 심한 투심 패스트볼을 장기로 삼았다. 아처의 무기는 빠른 공과 강력한 슬라이더이기 때문에 둘을 같은 유형의 투수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37경기 선발에 나섰던 1991년의 매덕스와 올 시즌의 아처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약체로 꼽히는 팀에서 취약한 선발진의 대들보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1990년 매덕스는 지구 4위를 기록한 컵스 선발진의 유일한 200이닝 투수였다. 1991년에도 컵스는 지구 4위를 기록했고 매덕스는 여전히 유일한 200이닝 투수였다.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선발도 매덕스뿐이었다. 매덕스가 37경기 동안 263이닝을 소화할 동안, 2선발이었던 마이크 빌레키의 172이닝(39경기 25선발)이 그 다음으로 많은 기록이었다. 스넬, 이발디, 파리아 등 안정감이 떨어지는 카드들의 앞을 아처가 책임져야 하는 탬파베이의 상황과 비슷하다.

아처가 37경기 선발이라는 극단적인 스케줄을 소화할지는 알 수 없다. 시즌 중 여러 변수로 선발 스케줄이 바뀔 가능성도 높다. 다른 선수들이 마이너리그와 10일 DL을 오가며 선발진의 구멍을 메워줄 예정이다. 그러나 브렌트 허니웰, 호세 델 리온이 팔꿈치인대접합 수술로 이탈하며 그의 짐은 더 무거워졌다. 37경기 등판이 현실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이미 아처에겐 그에 준하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과연 아처와 탬파베이의 도전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기록 출처: Fangraphs, Baseball-Reference.com

 

에디터=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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