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윤, 쓰로워와 피처 사이

[야구공작소 김경현] 2008년 8월 18일. 2009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 회의장에서 김재윤의 이름은 끝까지 불리지 않았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주전 포수였던 김재윤이었지만 프로는 그에게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8일. 김재윤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마이너리그 통산 타율 .221의 초라한 기록을 남긴 채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5년 5월 17일. ‘포수’ 김재윤은 그토록 밟고 싶어한 1군 무대에 ‘투수’로 데뷔했다. 1이닝 3K라는 충격적인 기록과 함께.

2015년 김재윤은 1승 2패 6홀드 평균자책점 4.23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세부 스탯을 본다면 ‘준수’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모자란 시즌이었다. 2015년 김재윤의 9이닝당 탈삼진(K/9) 14.1은 그 해 투수 중 가장 좋았고 역대로도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40이닝 이상 투구 기준) 슬라이더를 장착한 2016년에는 팀 내 최다승을 올렸고 구단 최다 세이브 기록까지 경신했다. K/9 12.1이라는 아름다운 숫자는 덤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2017년, 김재윤은 시즌 개막전부터 무실점 세이브를 올리더니 6월 2일까지 18경기 연속 평균자책점 0을 기록했다. 2012년 이후 개막일부터 6월 2일까지 10경기 이상 던진 마무리 투수 중 평균자책점 0을 유지한 선수는 김재윤이 유일하다. 시즌이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kt 팬들은 일찌감치 김재윤의 대관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승환 이후 리그 최고의 마무리라는 수식어와 함께. 그러나 김재윤은 이후 23경기 평균자책점 9.97로 무너졌다.

 

김재윤의 추락

하늘에 너무 높이 올라간 것일까? 김재윤은 이카로스처럼 속절없이 추락했다.(사진=kt wiz 제공)

2017년 김재윤의 성적은 처참했다. 평균자책점 5.79는 개인 커리어에서 최악의 성적이며 리그에서 10세이브 이상 올린 투수 중 가장 나쁜 성적이었다.

2017년 김재윤이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kt의 수비를 생각해봐야 한다. 2017년 kt의 수비는 여전히 최악이었다. 2017년 kt는 리그 최다 실책 1위, DER 7위를 기록했다.(DER: 수비 효율, 인플레이 된 타구를 얼마나 아웃시켰는지를 나타냄)

(표1) 2016~2017년 김재윤 비율 스탯 변화

또한 운의 영향은 없었을까? ‘2016년과 2017년 김재윤의 주요 비율 스탯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유독 잔루율만은 2016년에 비해 13%p 가까이 줄었다. 실력보다는 운의 영향을 크게 받는 잔루율 때문에 김재윤의 성적이 나빠진 건 아닐까.

그러나 김재윤의 성적 하락은 평균 이하급 수비나 불운보다는, 실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 원인일 가능성이 더욱 크다. 김재윤은 2015~2016년 2년 연속으로 12.0 이상의 K/9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7년에는 이닝당 8개도 안되는 삼진을 잡았다. (7.5) 리그 최상의 탈삼진 능력을 갖춘 투수가 갑작스레 리그 평균급으로 추락한 것이다. (2017년 KBO리그 평균 K/9 7.1)

 

부진의 이유

김재윤은 최고 구속 152km에 달하는 속구가 투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탈삼진 능력이 떨어졌다면 속구의 구위 저하부터 의심해보는 것이 먼저이다. 속구가 주무기인 투수답게 김재윤의 속구 구사 비율은 매년 70%를 웃돌고 있으며 2017년이라고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구속 역시 2016년에 비해 소폭 감소하긴 했으나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긴 힘들다.

(표2) 연도별 속구 스탯 변화

문제는 속구 스트라이크 비율(zone%)과 헛스윙%의 감소이다. 김재윤은 속구를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존에 꽂아 넣는 투수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총 5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 중 김재윤의 zone%는 55.6%로 리그 7위였다. 하지만 2017년 김재윤의 zone%는 46.3%로 낮아졌다. 물론 김재윤이 2016년 이후 존 바깥으로 휘어나가는 슬라이더를 구사하기 때문에 zone%의 감소가 일어날 수는 있다. 하지만 슬라이더의 구사율은 가장 높았던 2016년이 23.7%이며 2017년은 12.6%에 불과하다.

zone% 감소의 직접적인 영향은 속구에 있다. 슬라이더가 완성되지 않았던 2015년에도 이닝당 14.1개의 탈삼진을 기록한 비결은 속구 구위에 있었다. 그런데 그 구위가 눈에 띄게 떨어진 것이다. 이는 2015년에 비해 10%p 가까이 떨어진 헛스윙%에서도 알 수 있다. 제구와 구위의 동시 하락으로 짐작하건대 김재윤의 속구에 분명히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김재윤의 위닝샷인 슬라이더는 어땠을까? 2015년 김재윤의 슬라이더는 구속도 떨어지고 슬라이더의 존재 이유인 헛스윙 유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구종이었다. 존 밖으로 빠져나가야 할 공이 존으로 들어가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기 일쑤였다.

(표3) 연도별 슬라이더 스탯 변화

유인구성 슬라이더의 필요성을 느낀 김재윤은 2016년 스프링 캠프부터 슬라이더를 갈고닦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그의 슬라이더는 존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며 헛스윙을 유도하는 본연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기 시작했다. (표3) 2스트라이크 이후 슬라이더 구사율이 2015년에는 16.8%에 그쳤지만 2016년은 32.4%로 크게 상승했다.

그러나 2017년, 속구와 마찬가지로 슬라이더에도 문제가 생겼다. 슬라이더의 구속과 zone%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타자들은 김재윤의 슬라이더를 더 적극적으로 타격하고 또 잘 맞추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슬라이더 제구에 있다.

(표4) 슬라이더의 스트라이크존 내 높이별 구사율

2016년과 2017년의 차이는 바로 슬라이더가 통과하는 스트라이크 존의 높이에 있다. 2016년의 슬라이더는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와도 낮게 깔리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2017년은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슬라이더의 절반 이상이 높게 들어왔다. (표4)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해 던진 공이 소위 말하는 ‘행잉 슬라이더’로 들어가니 타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2016~2017년 김재윤 슬라이더 피장타율 S존 상중단 .600, S존 하단 .372)

 

실패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

2017년 커리어로우를 기록한 김재윤, 하지만 부진 속에서도 수확은 있었다. 2015년부터 꾸준히 연습하던 스플리터를 드디어 실전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투수의 슬라이더는 좌타자가 상대하기 쉬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2016년 김재윤의 슬라이더는 우타자에겐 악마(OPS .320), 좌타자에겐 천사(OPS 1.333)였다. 이렇게 좌타자에게 애를 먹던 김재윤에게 좌타자 바깥으로 떨어지는 구종인 스플리터는 단비와 같았다.

(표5) 김재윤의 좌타자 상대 변화구 구사율

스플리터를 앞세운 김재윤의 투구는 지난해 8월 11일 KIA전이 백미라 할 수 있다. 6 대 7로 kt가 앞서고 있던 9회 초, 김재윤의 앞에는 리그 최강의 좌타자 최형우가 서 있었다. 초구 바깥쪽 속구는 파울. 2구 역시 바깥쪽 속구. 공이 조금 높았지만 최형우의 방망이가 따라 나와 다시 한 번 파울. 심호흡 후에 김재윤은 바깥쪽 낮은 존을 향해 스플리터를 던졌다. 결과는 헛스윙 삼진. 물론 김재윤의 스플리터는 더 가다듬을 필요는 있다. 하지만 최고의 좌타자 최형우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모습에서 김재윤표 좌타자 파훼법이라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지난 2015~2016년 김재윤은 타자들을 힘으로 찍어누르는 이른바 ‘하드 쓰로워’의 표본과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모습을 유지할 수는 없다. 속구의 힘이 떨어지자 부진에 빠진 2017년이 바로 그랬다. 현재 김재윤은 쓰로워와 피처 그 사이에 서 있다. 이제는 공만 빠른 쓰로워를 넘어 어떤 상황에서도 타자를 요리할 수 있는 피처의 모습을 보여줄 때다. 물론 이것이 투수 전향 4년차에 불과한 선수에게 과한 요구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본인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변신이다.

2012년 마이너리그에서 방출된 후 3년 만에 kt에서 손꼽히는 투수로 다시 태어난 김재윤. 그가 그동안 흘렸을 피눈물과 땀을 생각해본다면 그 변화는 머지않았을지도 모른다.

 

기록 출처: STATIZ

에디터=야구공작소 강연선, 양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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