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영구결번, 국내에서는?

[야구공작소 양정웅] 지난 1월 4일, 우리나라에서는 선동열 감독의 스승으로 알려진 일본의 호시노 센이치 전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호시노 감독의 영면은 야구계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에서도 파장을 일으켰다. 평소에는 호되게 선수를 질책하는 무서운 감독이었으면서도 그라운드 밖에서는 선수에게 동기부여를 해줄 줄 아는 리더였던 호시노 감독은 일본 사회에서 이상적인 상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호시노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아 호시노 감독이 커리어 최초로 일본시리즈 제패의 기쁨을 느꼈던(2013년) 팀인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는 호시노 감독의 등번호 77번을 영구결번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현재도 라쿠텐에서 호시노 감독의 사임 이후 77번은 준(準) 영구결번 상태이기는 하나 이를 공식적으로 기념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영구결번은 아니지만 호시노의 전 소속팀인 한신 타이거스도 호시노 추모경기에서 77번을 달고 뛰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렇듯 해외에서는 자주는 아니지만 감독들의 등번호가 영구결번되곤 한다. 그러나 현재 KBO 리그에서 영구결번으로 기념하는 14명의 인물은 모두 선수로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영구결번 된 인물들이다. KBO 리그 36시즌 동안 거쳐간 59명의 정식 감독 중 단 한 명도 등번호를 자신의 것으로 가진 감독이 없었던 것이다.

 

해외의 감독 영구결번 사례는?

바비 콕스 전 애틀란타 감독. 14회 지구 우승을 이끌었던 콕스 전 감독의 등번호 6번은 2011년 영구결번 되었다. (사진=MLB.com 제공)

 

그렇다면 미국이나 일본은 어떨까. 현재 메이저리그의 감독 영구결번은 모두 24개(22명)이다. 그중에서 해당 팀에서의 선수 커리어가 있는 4명을 제외한다면 순수하게 감독 커리어로만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등번호는 모두 20개(18명)다.

감독 영구결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이다. 우승이 있다면 좋고 많으면 더 좋다. 20개의 영구결번 중 16개가 월드 시리즈 우승 감독의 영구결번이었다. 케이시 스텡겔(양키스)처럼 7번씩 월드 시리즈를 우승한 감독도 있지만 8개의 등번호(7명)는 월드시리즈 1회 우승으로도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선수 시절 활약으로 영구결번을 받은 루 부드로(인디언스)와 레드 셰인딘스트(카디널스) 역시 감독으로 우승 경험이 있다.

우승하지 않더라도 영구결번이 된 예도 있다. 케이시 스텡겔은 양키스에서는 7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의 결과로 영구결번이 되었지만 메츠에 와서는 3할 승률을 간신히 넘어서며 영구결번의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뉴욕의 레전드 감독인 데다 창단 초기 팀의 밑바탕을 만들어준 공로를 높이 사서 구단은 이례적으로 영구결번을 지정했다. 이 외에도 자니 오츠(텍사스)나 프레드 허친슨(레즈)은 좋은 성적과 더불어 이르게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 동정표가 되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오 사다하루 회장(사진 오른쪽). 그가 감독 시절 달았던 등번호 88번은 현재 준영구결번 상태다. (사진=소프트뱅크 호크스 제공)

일본은 현재 감독 커리어로 영구결번 된 인물은 공식적으로는 없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15년간 감독을 역임한 나가시마 시게오의 3번도 영구결번이고 감독 시절에도 이 번호를 단 적이 있다. 하지만 나가시마의 영구결번은 선수 은퇴 직후인 1974년 11월 이루어졌으므로 감독 영구결번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신 일본은 준영구결번을 통해 특정 등번호를 비워 놓아 감독들을 기념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호시노 감독 외에도 오 사다하루가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 재임 기간 달던 89번의 경우 2008년 사임 이후 현재 아무도 달고 있지 않다. 이 외에도 니혼햄 파이터스의 오사와 케이지 감독의 번호 역시 1995년 이후 결번 상태이다.

 

우리나라에선 왜 감독의 영구결번이 드물까?

김인식 전 감독은 두산에서 두 번의 우승을 이끌었고 국가대표 감독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냈다. (사진=KBO 제공)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선수만이 영구결번의 대상자로 지정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한 팀에서 장수하는 감독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KBO 리그 37년의 역사에서 한 팀에서만 7년 이상 감독을 역임한 사람은 김응용(해태, 18년), 김재박(현대, 11년), 김인식(두산, 9년), 김경문(두산, 8년), 강병철(롯데, 8년) 다섯뿐이다.

이와 연관 지어 감독이 한 팀에서만 지도자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성근 감독의 경우 통산 1,247승을 거두며 역대 감독 다승 2위에 올라있다. 그렇지만 김성근 감독은 무려 7팀에서 감독생활을 했기 때문에 어느 한 팀의 감독이라는 이미지는 크지 않다. 해태에서 무려 18년이나 있었던 김응용 감독도 해태 이외 두 팀에서 감독생활을 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바비 콕스 감독은 애틀란타에서만 25년을 감독으로 있었고 존 맥그로는 뉴욕 자이언츠 감독으로 무려 31년이나 있었다. 메이저리그 영구결번 감독의 경우 평균적으로 12.8년을 한 팀에서 감독생활을 했다. 10년 이상 한 팀에서 근속한 감독이 절반을 넘는 것이다. 10년 미만 한 팀에 있던 감독들도 대부분 해당 팀에서만 감독생활을 한 경우다. 이와 비교해보면 현재 한국에서는 특정 팀이 감독을 기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구결번이 가능한 감독은 누가 있을까?

김응용 전 감독(사진 오른쪽)은 ‘프로야구 감독’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감독이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그렇다면 정녕 한국에서는 영구결번이 가능한 감독을 찾을 수 없을까? 그래도 떠오르는 인물들이 몇 있다. 우선 김응용 감독을 꼽을 수 있겠다. 비록 한화 시절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끝마치진 못했지만 김응용 감독은 해태 18년 동안 9번의 우승컵을 들었고 삼성으로 이적해서는 팀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숙원을 풀어주었다. 구단 CEO로서의 활약상까지 감안한다면 KIA와 삼성 두 구단 모두에서 영구결번이 가능한 인물이다.

류중일 감독(삼성)과 김성근 감독(SK)은 재직 연수는 적지만 그 기간 각각 4번과 3번의 통합우승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는 영구결번 후보로 손색이 없다. 다만 류중일 감독은 삼성 프랜차이즈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LG로 옮긴 점, 김성근 감독은 재임 시절 혹사와 기타 구설에 시달린 점이 걸리는 부분이다.

강병철 전 롯데 감독. 롯데의 두 번뿐인 우승을 모두 이끈 감독이다.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우승 횟수가 많지는 않지만 강병철 감독(롯데)과 김인식 감독(두산) 역시 기념할 만한 감독이다. 강병철 감독은 승률 자체는 높지 않지만 두 번뿐인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해준 업적이 있고, 김인식 감독은 9년 동안 감독을 지내면서 어지러운 팀의 분위기를 수습하고 특유의 팀 컬러를 심어주었다는 측면에서 후보에 들기 충분한 감독이다.

영구결번의 자격은 충분하나 현실적으로 영구결번이 어려운 감독도 있다. 김재박 감독은 현대 유니콘스 창단 감독으로 11년 동안 있으면서 6회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4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현대 왕조를 세운 감독이다. 그러나 김재박 감독이 물러난 직후 현대가 해체되면서 그를 기념해 줄 구단이 없어졌다. 현대 선수단을 인수한 넥센 히어로즈 역시 섣불리 김재박 감독을 기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는 감독도 영구결번을 해주자

최근까지 감독의 영구결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포커스가 선수들에게 집중되었고 감독들이 술자리 안주처럼 가볍게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기념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KBO 리그도 40년 가까운 역사를 쌓아왔다. 그동안 지나간 수많은 감독 중에서 기념할 만한 감독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일까. 이제는 어느 정도 감독들의 영구결번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할 때가 되었다. 과연 최초로 자신의 등번호가 구장 한 켠에 걸리게 될 감독은 누구일까.

 

기록 출처 : STATIZ, Baseball-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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