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한 자들에게 느끼는 안타까움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야구공작소 장원영] 어느새 프로야구 개막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보통 FA 계약 소식 외에는 조용했던 프로야구가 겨울의 적막을 깨고 조금씩 기분 좋은 소음을 낼 때다. 하지만 올해는 조용해야 할 겨울에도 유달리 기분 나쁜 잡음이 많았다. 야구팬들은 안우진의 학교폭력 사건, 이장석 대표의 선고 공판, 배지환의 2년 유예 징계, 강정호의 국내 복귀설 등 각종 논란에 연신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1단계: 분노와 배신감

야구팬으로서 이런 소식을 접하면 처음엔 ‘분노’가 치민다. 그리고 그 분노의 화살은 자연스레 사건의 피의자, 혹은 가해자에게 향하게 된다. 가장 피부에 와닿았던 건 역시 안우진의 학교폭력 사건이었다. 야구팬 대다수가 학창시절을 겪었기에 분노의 공감대도 짙고 빠르게 형성됐다. 가해자의 잘못된 인터뷰 이후로는 ‘방출’, ‘영구제명’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원색적인 비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일전에 강정호의 사례에서는 분노만큼 ‘배신감’도 많이 느꼈다.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첫 번째 야수로 2년간 맹활약하던 찰나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 역시 과거 부적절했던 인터뷰와 최근 넥센 복귀설까지 겹치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고사하고 국내 무대로의 복귀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2단계: 안타까움과 의문

그러다 서서히 일차적인 감정이 가라앉으면 그 다음엔 ‘안타깝다’는 느낌이 든다. 사건 당사자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안타까움이다. 안우진과 강정호는 강력히 처벌받아 마땅한 선수들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왜 애꿎은 팬들이 이런 상황을 자주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이어서 일련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왜 야구부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걸까? 학교가 교육에 좀 더 신경 썼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왜 야구선수들의 음주운전 문제가 끊이지 않을까? 징계수위가 잘못된 걸까? 등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3단계가 ‘냉소’가 되지 않기를

정말로 두려운 건 이런 소식을 ‘그럼 그렇지’ 하며 무심히 넘기게 되는 순간이다. 야구계에 사건·사고가 쉴 새 없이 터지면 그것을 지켜보는 팬들도 감정의 피로를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일전에 느꼈던 분노와 안타까움의 감정도 무뎌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음주운전, 도박, 폭력, 승부 조작 등이 만연한 프로야구’라는 이미지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뿌리박히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그렇기에 앞으로 또 다른 사건·사고가 터지더라도 지금과 같은 안타까움을 계속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안타까움이 모여서 KBO, 선수협, 구단들에 닿았으면 하고 더 늦기 전에 재발 방지에 더욱 신경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클린베이스볼 정착을 위한 노력이 야구장 안팎으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이런 노력이 더해지다 보면 언젠가 도덕적으로 한 단계 성숙한 프로야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프로야구를 바라보는 최후의 감정이 ‘냉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