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식 6선발 활용 방안

[사진: LG Twins 제공]

 

[야구공작소 오주승] 한국, 미국, 일본 3국의 야구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선발 로테이션이다. 고정적인 휴식일이 없는 메이저리그에서는 선발투수가 4일을 쉬고 5일째 되는 날 다시 등판하는 5인 로테이션이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된다. 반면 고정적으로 휴식일을 가지는 일본의 경우에는 선발투수가 6일을 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등판하는 6인 로테이션이 주로 활용된다.

KBO 리그의 로테이션 운용 방식은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월요일을 고정 휴식일로 삼는 것은 일본과 동일하지만, 대부분의 KBO 리그 팀들은 메이저리그와 마찬가지로 5인 로테이션을 선호한다. 따라서 화요일에 등판한 선발투수는 4일을 쉰 뒤 일요일에 다시 선발등판하고, 다른 요일에 등판했을 경우에는 5일간의 휴식일을 가진 뒤 다음 선발등판을 맞이하게 된다.

KBO 리그의 선발투수들 중에는 이러한 4일 휴식 후의 등판에 부담감을 느끼는 선수가 적지 않다. 문제는 5선발도 제대로 갖추기 어려울 정도로 선수층이 얇은 리그 사정으로 인해 일본식의 6인 로테이션이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해결책의 실마리는 오히려 메이저리그의 최근 동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상자 명단(DL)의 최소 등재 기간이 15일에서 10일로 줄어든 올 시즌, 이 점을 이용해 선발투수들에게 ‘DL을 통한 휴식’을 제공하며 논란을 일으켰던 LA 다저스의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KBO 리그에는 메이저리그의 DL에 대응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대신 구단들은 별다른 조건 없이 선수를 2군으로 내려보낼 수 있다. 그리고 2군으로 내려보낸 선수를 다시 1군에 등록하기까지 필요한 날짜는 메이저리그 DL의 최소 등재 기간인 10일과 일치한다. 이와 같은 제도상의 유사성을 감안하면, 선발진의 부하를 줄이기 위한 다저스의 전략은 KBO 리그에서도 충분히 참고해볼 여지가 있는 전략이다. 이를 토대로 ‘KBO 리그식 6선발 체제’를 구상해볼 수 있다.

 

5선발, 6선발을 교대로 기용하는 방안

먼저 5선발과 6선발을 교대로 등판시키는 방안을 생각해볼 있다. 일반적으로 KBO 리그의 선발 로테이션은 외국인 투수 두 명과 내국인 에이스 한 명으로 1선발부터 3선발까지가 구성되고, 신인과 나이 많은 베테랑들로 4선발 이하의 자리가 채워진다. 이들 중 4일 휴식을 보다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후자, 즉 4선발 이하의 선수들이다. 이 방안의 핵심은 4선발의 4일 휴식 후 등판을 피하고, 5선발과 6선발을 교대로 기용하는 데 있다.


시즌이 화요일부터 시작된다고 가정하고 구상해본 KBO 리그식 6선발 체제의 등판 일정은 위와 같다. 각 칸의 중앙에 적힌 숫자는 선발투수의 순번을 의미한다(1선발=1, 2선발=2). 그 양 옆에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적혀 있는 I 와 O는 IN 과 OUT의 약자로, 각각 1군 엔트리 등록과 말소를 의미한다. 이러한 일정대로 6선발을 구성해 10주(60경기)를 진행할 경우, 팀의 선발투수들은 다음과 같은 등판 횟수를 기록하게 된다.

 

1, 2, 3선발 12회

4선발 10회

5, 6선발 8회

 

1, 2, 3 선발의 출장 빈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4선발의 휴식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것이 이 방안의 장점이다. 그러나 휴식일 보장보다도 더 주목해서 봐야 하는 이점이 있다. 바로 ‘엔트리 확장’이다. KBO 리그의 선수들은 10일간의 유예 기간 외에는 아무 제약 없이 1군과 2군을 드나들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활용해 5, 6 선발을 필요한 기간에만 1군에 등록해 기용한다면, 반대로 두 명 모두 2군에 내려가 있을 동안에는 1군 엔트리에 한 명분의 여유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5인 로테이션을 활용할 때보다 6인 로테이션을 활용할 때 더욱 효율적으로 엔트리를 운용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표에서 노란색으로 색칠되어 있는 30개의 칸들은 바로 이 ‘확장 엔트리’를 확보할 수 있는 경기들을 나타낸다. 현재 KBO 리그의 1군 엔트리가 27명이므로, 이 전략을 활용하면 60경기 중 절반인 30경기에서 28명분의 로스터를 운용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9월 동안의 엔트리 확장이 로스터 운용에 야기하는 변화를 생각하면, 대주자 요원이나 불펜 요원을 한 명 더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이점인지를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엔트리 확장 효과를 최대로 활용하는 방법

 


앞서 소개한 로테이션에서 4주차 수요일에 6선발 대신 5선발을 그대로 기용할 경우에는 위와 같은 로테이션을 구성할 수 있다. 이 경우, 엔트리 확장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경기가 30경기 가운데 19경기까지 늘어나게 된다. 무려 63%의 경기에서 28명분의 로스터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적인 수정안

하지만 위의 방안에는 현실적인 걸림돌이 존재한다. KBO 리그의 실제 선발 로테이션은 기량 순으로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올 시즌 개막 3연전에 나섰던 선발투수들의 명단만 살펴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3연전 동안 1선발부터 3선발 전부를 등판시킨 팀은 한 팀도 존재하지 않았다. 2차전까지는 1, 2선발 또는 1, 3선발을 활용하고 3차전에는 4선발급 투수를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단 원정에서 개막을 맞은 팀은 홈 개막전에 에이스급 투수를 내기 위해 등판 순서를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또, 불펜을 보다 수월하게 운용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1 -> 2 -> 3 -> 4 -> 5 순으로 로테이션을 운영할 경우에는 수준급 선발투수와 그렇지 못한 선발투수들이 서로 무리 지어 등판하는 만큼, 승리조와 추격조의 불펜투수들이 각자 연투라는 부담을 짊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KBO 리그의 구단들은 1 -> 2 -> 4 -> 3 -> 5 등의 순서로 로테이션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반영한 현실적인 6인 로테이션은 아래와 같다.

 

이렇게 로테이션을 구성할 경우, 28명의 엔트리를 활용할 수 있는 경기는 56%(17/30)로 감소한다. 그러나 위의 두 모델에서처럼 5선발과 6 선발이 연속으로 등판하는 경우가 사라지므로 불펜이 과부하에 시달릴 확률도 그만큼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투수 보호 효과

팔꿈치와 어깨에 수술을 받는 투수들이 늘어나고 버두치 리스트가 세간의 화제로 떠오르면서 투수 보호는 현대 구단들의 ‘숙명’으로 자리 잡았다. 구단들은 부상 위험도가 높은 투수들의 투구 이닝을 제한하고 투구 간격을 조정한다. 일례로 LA 다저스는 2016시즌 만 19세의 유리아스에게 120이닝의 이닝 제한을 뒀다. SK 와이번스는 내년 시즌 팔꿈치 수술을 받고 복귀하는 김광현의 투구 이닝을 100이닝으로 제한할 예정이다. 이때, 6인 로테이션은 유리아스나 김광현 같은 ‘관리 대상’들의 기용 방식에도 효과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줄 수 있다. 만약 이들을 6선발로 기용한다면 이들은 어느 정도의 이닝을 투구하게 될까?

두 번째와 세 번째 모델에서 6선발의 등판 횟수는 첫 번째 모델보다 2회가 줄어든 60경기당 6회 정도를 형성한다. 이를 정규시즌 경기수인 144경기로 환산하면 14.4경기가 된다. 등판마다 평균 6이닝을 투구한다고 가정하면 한 시즌 동안 84~90이닝 남짓을 투구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추가로 한두 경기에 더 선발로 나설 경우, SK의 목표인 100이닝에 자연스럽게 근접하게 되는 셈이다.

신인이나 부상에서 복귀한 선발투수들에게 이닝 제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등판 간격이다. 똑같은 이닝을 던진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5일씩을 휴식하면서 반 시즌을 던지는 것과 10일 간격으로 한 시즌을 던지는 것의 피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부상에서 갓 복귀한 선수라면 보통의 선수들에 비해 회복 속도가 느려 5일만으로는 휴식이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 모델에서 6선발은 8일, 11일, 13일을 간격으로 등판하게 된다. 선수가 등판 후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체력을 회복해 다음 등판을 준비하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또 하나의 장점, FA 자격 연수

KBO 리그의 FA 자격 연수는 한 시즌 동안 규정 투구 이닝의 2/3(96이닝) 이상을 투구하거나 145일 이상 1군에 등록되어 있었을 때 충족된다. 만약 신인 투수가 위 모델의 6선발로 한 시즌을 보낸다고 가정해보자. 이 투수는 한 시즌 동안 90이닝 남짓을 던지고 60일 남짓의 일수를 1군에서 보내게 된다. 1군에서 적잖은 경험을 쌓았음에도 자격 연수를 적립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구단 입장에서 보면, 이는 특급 유망주에게 한 시즌 동안의 1군 경험을 안겨주면서도 FA 자격 취득을 앞당기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KBO 리그의 구단들은 아직 이와 유사한 기용을 시도하지 않고 있지만, 슈퍼 2*를 피하기 위해 특급 신인들의 등록 일수를 조절하는 기용 전략이 보편화되어 있는 메이저리그의 사례를 참고하면 앞으로 KBO 리그에서도 유사한 시도를 목격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슈퍼 2: 서비스 타임이 2년 이상 3년 미만인 선수들 중 서비스 타임이 높은 상위 22%의 선수들에게 연봉조정 신청 자격을 주는 메이저리그의 제도.

 

‘자리 하나’ 이상의 의미

물론, 견고한 5선발을 보유한 팀은 이러한 6인 로테이션 전략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당한 4선발과 그저 그런 선발 후보들을 보유한 팀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KBO 리그식 6인 로테이션은 팀의 선발 자원과 엔트리를 효율적이고 건강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거양득의 전략으로 기능할 것이다.

1군과 2군 사이의 자유로운 이동은 KBO 리그만의 독특한 규정이다. 그러나 아직 이 규정을 제대로 활용하는 구단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리그 규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해 ‘선발투수 육성’과 ‘엔트리 확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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