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속구, 화려하고도 위험한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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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AFKN(주한 미군 방송)을 통해서만 메이저리그를 접할 수 있었던 시절, 시속 150km 이상의 강속구는 우리에겐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메이저리그를 접할 수 있는 매체가 늘어남에 따라 강속구를 던지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났다. 어느덧 시속 150km는 우리에게 익숙한 구속이 되었다. 익숙해진 것은 매체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던지는 구속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증가하는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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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야구 통계 사이트 팬그래프(Fangraphs.com)에 의하면 올해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92마일(약 시속 148km)에 달한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을 제공하기 시작한 2002년에 비해 무려 시속 3마일 정도 빨라진 속도이다. 2001년 데뷔한 알버트 푸홀스나 이치로는 과거 시속 89마일의 공을 상대했지만 지금은 시속 92마일의 공을 상대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과거에도 빠른 구속을 자랑하는 투수들이 존재했지만 최근의 강속구 투수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평균 구속이 제공되기 시작한 2002년부터 올해까지 규정이닝을 소화한 투수들 중 패스트볼 평균 구속 상위권에는 최근 3년간의 기록이 대거 포진해있다. 확실히 과거보다 지금의 투수들이 더 빠른 공을 던지고 있다. 특히나 만 25세 이하 어린 투수들의 평균 구속은 전체 평균을 1마일 정도 웃도는 시속 93마일을 기록했다.

 

최근 15년간 평균구속 순위(규정이닝 이상)
1. 노아 신더가드(2016): 시속 98.1마일
2. 네이선 이오발디(2016): 시속 97.0마일
3. 요다노 벤추라(2014): 시속 97.0마일
4. 요다노 벤추라(2015): 시속 96.4마일
5. 가렛 리차즈(2014): 시속 96.3마일

 

최근 15년간 만 25세이하 평균구속 순위(규정이닝 이상)
1. 노아 신더가드(2016): 시속 98.1마일
2. 요다노 벤추라(2014): 시속 97.0마일
3. 요다노 벤추라(2015): 시속 96.4마일
4. 우발도 히메네즈(2009): 시속 96.1마일
5. 맷 하비(2013) : 시속 95.8마일

 

투수들의 구속이 증가하게 된 원인은 세이버메트릭스의 발달과 함께 투수의 탈삼진 능력을 중요시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타자를 돌려세우는 데 있어 빠른 구속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때문에 구단에서 빠른 공을 구사하는 유망주들에 대한 수요가 증가 중이고, 자연스레 강속구 투수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메이저리그 전체 평균 구속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타자를 상대하는 데 있어 가장 위협적인 빠른 공은 투수 자신에게 가장 큰 위협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구속 증가와 함께 늘어난 토미 존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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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존 수술을 받은 메이저리그 투수들 숫자(출처=베이스볼히트맵)

 

지금보다 느린 공을 던졌던 과거에는 투수들의 팔꿈치 수술보다 어깨 수술이 더 많았다. 70년대만해도 선발투수의 완투는 흔했고, 한 해 이닝수가 300이닝을 넘어가기도 했다. ‘퓨져네틱스포츠사이언스’가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80년대까지만해도 투수들의 부상 부위는 어깨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투수들의 투구 이닝을 철저하게 관리해주고 있다. 경기당 평균 투구수도 100구 내외를 거의 지키고 있으며, 200이닝 이상을 던지는 투수도 많지 않다. 과거에 비해 투구 이닝과 투구수 관리를 잘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투수들은 과거에 비해 어깨 부상을 잘 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팔꿈치 부상은 과거에 비해서 눈에 띄게 늘었다.

팔꿈치 부상을 당한 투수들은 대부분이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을 받는다. 일명 ‘토미 존 수술’이라 불리는 수술이다. 투수들의 구속 증가와 함께 토미 존 수술을 받는 선수의 수가 급증했다. 토미 존 수술을 받는 원인으로는 여러 의견들이 있으나 최근에 가장 많이 나오는 의견은 강하게 공을 던지면 무리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토미 존 수술의 대가인 제임스 앤드류스 박사는 팔꿈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100%의 힘으로 공을 던지지 말 것을 주문했다.

지금까지 토미 존 수술을 받은 메이저리그 투수는 총 374명이다. 이 중에 만 25세 이전에 수술을 받은 수는 105명이다. 토미 존 수술이 처음으로 행해진 1974년 이후 42년이 흘렀지만 어린 나이에 수술을 받은 105명 중에 최근 10년간 59명, 최근 3년간은 18명의 선수가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최근에 수술을 받은 어린 투수 중에는 맷 하비, 잭 휠러, 맷 무어 등 강속구를 무기로 하는 투수들이 많다. 토미 존 수술이 아닌 재활을 선택하긴 했지만 올해 팔꿈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LA 에인절스의 가렛 라치즈도 평균 시속 95마일이 넘는 공을 던지는 파이어볼러다.

유독 어리고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의 토미 존 수술이 늘어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선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구단과 선수들은 지금의 강속구 선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야구에 대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 150km/h 이상의 강속구를 가지진 못했지만 통산 305승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톰 글래빈이 남긴 말이다. 구속을 포기한 대신 그는 토미존 수술은 물론 큰 부상 없는 21년의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얻었다. 어쩌면 스피드건에 찍히는 건 공의 속도가 아니라 토미존 수술로 가는 속도 일지도 모른다.

 

출처: 팬그래프, 베이스볼히트맵

 

야구공작소

김남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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