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양정웅] 1982년 3월 28일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 양 팀의 창단 첫 경기는 14대2로 롯데가 대승을 거두었다. 이날 실업야구의 강타자 김정수를 우익수로 밀어내고 선발 6번타자 겸 1루수로 출장한 김일환은 5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날 이후 롯데는 34시즌 동안 4330여 장의 타순표에 수많은 1루수의 이름을 올렸다.
그 동안 롯데 팬들은 1루수에 대해서는 많은 걱정을 하지 않았다. 기본이 올스타, 잘하면 골든글러브 수상이나 최우수선수(MVP)까지 노렸던 것이 롯데의 1루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호가 떠난 2012년 이후 롯데의 1루는 팀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그 중심에 박종윤이 있다. 이전에도 타격에서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그가 연속 타석 무볼넷 리그 신기록을 세운 2015년 이후로는 이런 목소리들이 더욱 커졌다. 그렇다면 박종윤을 위시한 최근 몇 년간의 롯데 1루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타 팀의 1루수들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새로 등장한 김상호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
어제, 아름다’웠던’ 롯데의 1루수들
‘빅 보이’ 이대호는 롯데 역사상 최고의 타자였다. 한국이 좁았던 ‘조선의 4번 타자’는 NPB를 거쳐 MLB에서도 본인의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다. /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제공
앞서 언급했듯이 역대로 롯데 1루수들은 꾸준히 리그에서 중상위권 이상의 성적을 기록해 왔다. 1루수 골든글러브를 김성한과 이승엽이 도합 12번을 수상한 와중에도 롯데에서는 김용철이 한 번(1984), 이대호가 세 번(2006, 2007, 2011)을 차지했다. 이는 같은 원년 팀 중에서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이상 3회)보다 많은 것이다.
롯데의 1루수 계보는 크게 김용철(1983 ~ 1987) – 김민호(1988 ~ 1994) – 마해영(1995 ~ 2000) – 이대호(2002 ~ 2011, 일부 시즌은 3루수) – 박종윤(2012 ~ 2016)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 클린업트리오도 겸했던 이들의 주요 성적은 다음과 같다.
롯데 역대 주요 1루수들의 성적 (괄호 안은 동 시기 연 평균 300타석 이상 선수 기준 리그 내 순위)
표에서도 보여지듯 롯데의 역대 1루수들은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강타자들이었다. ‘용-용포’의 한 축이었던 김용철은 홈런 가뭄이었던 80년대 초중반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거포라 불리기 손색없는 타자였다. 김민호는 우수한 선구안을 바탕으로 훌륭한 득점생산력을 보여준 선수였고, 마해영도 한 차례의 타격왕(1999)을 차지하는 등 중심타자로 꾸준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전문 1루수로 전향한 이후 골든글러브 3회 수상 및 타격 트리플 크라운 기록의 영예를 안았던 이대호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대호가 떠난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오늘, 롯데 1루수의 현실은
박종윤은 리그 최상급의 포구능력을 지녔고 대타로는 괜찮은 타격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성실하다. 하지만 풀타임 1루수는 그런 것들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다. /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제공
박병호, 테임즈, 김태균, 구자욱.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1루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하나는 2012 ~ 2015년 MVP와 신인왕에 노미네이트된 선수들이라는 것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최근 5년간 각 시즌의 공격지표를 보면 위 선수들 외에도 박정권, 정성훈, 로사리오 등이 상위권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각 팀의 1루수 자리에는 꽤나 방망이 좀 돌린다는 선수들이 기용되고 있다.
하지만 롯데의 1루수들은 달랐다. 지난 시즌 리그 OPS는 .787, 그 중 1루수의 OPS는 .888이었다. NC 다이노스의 1루수들은 테임즈의 존재로 인해 무려 1.244라는 엄청난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같은 시즌, 롯데 1루수들의 OPS는 NC의 절반에 가까운 .643에 불과했다.
2014 ~ 2016년 리그 1루수의 OPS
이런 기록이 나오게 된 데에는 OPS의 존재를 모른다는 듯이 타격하는 박종윤의 책임이 크다. 그는 풀타임 주전으로 뛰었던 2012 ~ 2014년 3년 연속으로 최소 볼넷을 기록했다(규정타석 이상). 박종윤은 통산 25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에서 타석당 볼넷의 비율이 가장 낮은(4%) 선수이며 최근 5년으로 좁혀 봐도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 이지영만이 그의 밑에 있을 뿐이다.
박종윤의 장타 생산력 역시 1루수라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2012년 이후 절대 장타율(장타율-타율) 상위권에 테임즈, 박병호, 김태균 등이 뭉쳐 있는 와중에 같은 1루수인 박종윤은 키스톤 플레이어들과 비슷한 수치를(.116) 보여주고 있다. 타율 .309를 기록했음에도 그 해 3할타자 중 이대형과 함께 유이하게 OPS 0.8을 넘지 못했던 2014년은 박종윤의 성적에 ‘타율’이라는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다.
박종윤은 매우 적극적인 스윙을 하는 선수이다. 최근 3년간 1000타석 이상을 소화한 선수 중에서 박종윤의 스윙%는 8위, 스트라이크 존 밖으로 오는 공에 방망이를 내는 비율은 10위이다. 물론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볼에 배트가 많이 나온다고 나쁜 선수인 것은 아니다. 나성범이나 필, 김주찬 등도 박종윤만큼이나 그런 볼들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과 박종윤은 다르다.
(왼쪽부터) 올해 박종윤, 필, 나성범의 투구위치 별 OPS(타자시점) / 출처 = STATIZ
위 그림은 올 시즌 박종윤, 필, 나성범의 투구 위치별 OPS를 나타낸 것이다.(타자시점) 세 선수 모두 낮은 쪽으로 빠진 볼에 대해서는 기록이 좋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선수와 박종윤의 차이는 바로 존으로 들어오는 공에 대한 성적이다. 필이나 나성범 모두 존 안의 어느 한 쪽을 잘 공략하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필은 바깥쪽 공에 1.0 이상의 OPS를, 나성범은 낮은 공에 1.1 이상의 OPS를 기록했다. 이들이 볼에 방망이가 많이 나감에도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박종윤은 스트라이크 존을 9분할했을 때 절반이 넘는 코스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볼 가리지 않고 배트를 내면서 스트라이크조차 제대로 치지 못한 박종윤에게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유치원생이 리만 가설을 증명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내일, 김상호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신고선수까지 떨어졌던 김상호는 군 전역 이후 1군 레귤러가 되었다. /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제공
지난 스토브리그 때 조원우 롯데 감독은 박종윤에게 주전의 기득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팀의 현실 때문이었다. 박종윤이 주전을 차지한 이래 장성호, 히메네스, 김대우, 오승택 등이 1루 자리를 노렸지만 결국은 그를 밀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올해도 계속될 것만 같았던 박종윤의 1인 독주체제는 지난해 상무에서 돌아온 김상호의 등장으로 허물어지는 모양새다.
올 시즌 김상호는 장족의 발전을 보였다. 그는 대학 4년 동안 217타석에서 1홈런, 퓨처스 첫 4시즌 동안 연 평균 4홈런을 기록하며 1루수로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퓨처스리그에서 단 17경기 만에 홈런 7개를 기록하더니 1군 승격 이후에도 397타석에서 7홈런을 기록했다. 또한 대학시절에 보여주었던 선구안(절대 출루율 .106)을 바탕으로 박종윤의 커리어하이를 넘어서는 37볼넷을 기록했다. 타석당 볼넷 비율은 올 시즌 박종윤보다 4.5%P 높은 9.3%이다.
김상호의 대학교, 프로 초창기, 올 시즌 성적 비교
수비에서도 김상호는 자신만의 분야에서 톡톡히 활약하고 있다. 바로 송구 부분이다. 아마 시절 2루수와 3루수로 뛰기도 했던 김상호는 올 시즌 자신에게 온 12개의 병살성 타구를 6개나 병살로 연결시켰다. 500이닝 이상 출전한 1루수 중 단연 1위다. 특히 이는 수비형 1루수라 불리는 박종윤도 가지지 못한 능력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43번 중 3번 성공). 김상호는 수비에서도 충분히 자기 몫을 해 줄 수 있는 선수이다.
감독님, 1루수의 승부처는 언제인가요?
조원우 감독은 지난 7월 10일 사직 LG 트윈스전에서 4번 박종윤, 5번 이우민, 6번 손용석이라는 라인업을 들고 나와 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은 “현재는 승부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였다. 그리고 이날 전까지 .474(5위)이던 롯데의 승률은 조원우 감독이 승부처라고 밝힌 2연전 기간(8월 9일 ~ 9월 19일)에는 .394(9위)로 떨어졌다.
한편 자력 5강이 어려워진 이후 조원우 감독은 새로운 얼굴들을 많이 기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수들의 활약으로 9월 15일 이후 6승 3패라는 의외의 선전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1루수 자리에는 여전히 박종윤이 출장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인 최준석이 9월 단 한 번의 선발출장을 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박종윤의 기용은 팀에게 ‘미래에 대한 준비’라는 명분과 ‘현재 성적’이라는 실리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는 선택지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내일을 위한 ‘승부처’는 바로 지금이다.
(모든 기록은 9월 30일 기준.)
기록 출처 :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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