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 저지와 누의 공과

[야구공작소 박기태] 2017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 기묘한 장면이 4회말 등장했다. 1루에 2번 아론 저지가 주자로 나가있는 상황, 타석에 뉴욕 양키스의 4번 타자 개리 산체스가 등장했다. 초구를 공략한 산체스의 타구는 우익수 방향으로 날아갔고,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우익수 조시 레딕이 아슬아슬하게 공을 잡아냈다. 이대로면 평범하게 2사 1루로 바뀌게 되어야 했다.

여기서 1루주자 저지의 판단 착오가 있었다. 공이 잡힐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저지는 2루를 지나쳤고, 우익수가 공을 잡자 급히 1루로 향했다. 귀루하는 저지를 겨냥해 공이 날아왔고, 1루수 율리 구리엘이 공을 잡아 저지를 태그했다. 1루심은 아웃을 선언했다.

 

당시 상황을 나타낸 그림. 1루 주자(1R) 저지는 2루를 밟았지만, 우익수(RF) 레딕이 공을 잡자 다시 1루로 돌아갔다 (사진=MLB 게임데이 캡쳐)

 

양키스는 곧바로 챌린지를 신청했다. 비디오에는 저지의 발이 태그보다 먼저 베이스에 닿는 장면이 나와있었다. 이대로면 저지는 1루에서 세이프가 될 터였다.

그러나 그 다음 상황이 또 기묘하게 돌아갔다.

(1) 챌린지가 끝난 뒤, 휴스턴의 투수가 2루로 공을 던졌다.
(2) 그러나 2루심이 무언가를 말하자 다시 투수가 공을 되돌려 받았다.
(3)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플레이 볼이 선언되자, 1루 주자 저지가 2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4) 투수가 황급히 2루로 공을 던졌고, 공이 주자보다 먼저 도착했다. 유격수는 주자를 태그, 아웃을 만들어냈다. 기록은 도루 실패.

야구 규칙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라는 질문이 떠오를 수 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휴스턴 투수는 왜 2루로 공을 던졌을까? 발이 빠르지도 않은 저지는 왜 초구를 던지기도 전에 도루를 감행했을까?

비밀은 누의 공과(壘의 空過), 그리고 어필에 대한 복잡한 규칙에 있다. 의문점을 하나씩 살펴보자.

 

2루로 공을 던진 이유 – 돌아갈 길을 잘못 선택한 저지

먼저 휴스턴 투수가 2루로 공을 던진 상황에 대해 살펴보자. 단순히 2사 1루가 됐다면 투수가 2루로 공을 던질 필요는 없었다. 견제구였다면 1루로 공을 던져야 했을 것이고, 연습 투구라기엔 타자가 이미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던 때였다.

이미 많은 기사가 이 부분을 설명한 바 있다. 저지가 1루로 귀루하는 과정에서 우익수 포구 후 2루를 다시 밟지 않았기 때문에 ‘누의 공과’가 일어난 것이다. 휴스턴은 ‘누의 공과’를 어필하여 아웃을 만들기 위해 2루로 공을 던진 것이었다. 저지가 2루를 지나치는 장면은 앞서 챌린지 과정에서 양키 스타디움의 전광판에 크게 드러났기 때문에 양팀이 모두 누의 공과를 알 수 있었다.

누의 공과에 대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플라이 볼이 떠있는 동안 주자가 다음 베이스로 진루했을 때, 수비 측에선 주자가 원래 있던 베이스(여기서는 1루 베이스)를 리터치하기 전에
(1) 주자를 태그하거나
(2) 원래 있던 베이스를 태그한 뒤
‘심판에게 어필을 하여’ 주자를 아웃시킬 수 있다. 반대로 주자가 아웃을 피하기 위해선, 밟았던 베이스를 역순으로 밟으며 원래 출발했던 베이스로 돌아가야 한다. 저지의 경우는 2루를 밟은 뒤 1루를 다시 밟아야만 했는데 귀루 과정에서 2루를 놓친 것이다.

따라서 규칙대로라면 챌린지가 끝난 직후 휴스턴 측에서 2루 베이스를 태그하거나 저지의 몸을 태그한 뒤 심판에게 어필을 했을 때 바로 3아웃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투수는 2루 베이스 태그를 위해 2루로 공을 던진 것이었다.

 

왜 심판은 공을 돌려주라고 했을까 – 어필 플레이의 타이밍

이렇게 첫 번째 상황[(1) 챌린지가 끝난 뒤, 휴스턴의 투수가 2루로 공을 던졌다.]에 대한 의문은 해소됐다. 그런데 그 다음에 심판은 어필을 받아주지 않고 다시 투수에게 공을 돌려줬다. 이는 처음 공을 던졌던 순간이 볼 데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필 플레이는 인플레이 상황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투수가 2루에게 공을 넘겼을 때는 챌린지 때문에 볼 데드가 됐을 때였고,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아 구심이 플레이 볼 선언을 하기 전이었다. 때문에 휴스턴의 첫 2루 베이스 태그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이제 2번째 상황[(2) 그러나 2루심이 무언가를 말하자 다시 투수가 공을 되돌려 받았다.]까지 설명이 됐다.

 

아론 저지(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저지는 왜 2루로 달려갔을까 – 어필에도 공소시효가 있다

그 다음 상황을 복기해보자. [(3)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플레이 볼이 선언되자, 1루 주자 저지가 2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지는 구심이 ‘플레이 볼’ 선언을 한 뒤 2루로 달리기 시작했다.

휴스턴의 어필이 확실시되던 상황. 즉 저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저지는 죽기살기로 2루를 향해 뛰었다. 어차피 저지는 역순으로 베이스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2루를 밟아도 다시 1루로 돌아와야만 살 수 있는 신분이었다. 그렇다면 저지의 필사의 질주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시도였을까?

그렇지는 않다. 저지와 양키스 벤치가 노린 것은 휴스턴이 ‘새로운 플레이’를 하는 것이었다. 도루를 저지하던가, 혹은 투수가 2루로 공을 던지려다가 보크를 범하는 것을 노린 것이다. 둘 중 하나가 일어났다면 휴스턴은 누의 공과에 대한 어필 권리를 잃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유는 누의 공과와 관련된 어필의 ‘공소시효’, 즉 유효한 시간 제한에 있다. 누의 공과와 관련된 어필은 투수가 다음 투구를 하기 전 또는 다른 플레이를 하거나 플레이를 시도하기 전에 하여야 한다. 여기서 ‘플레이’는 투수의 플레이 혹은 야수의 플레이를 뜻한다. 그리고 투수의 보크 혹은 도루 저지 시도는 ‘플레이’에 해당한다. 즉 둘 중 하나가 일어난 순간 휴스턴은 누의 공과에 대한 어필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휴스턴의 선택은 도루 저지 시도였다[(4) 투수가 황급히 2루로 공을 던졌고, 공이 주자보다 먼저 도착했다. 유격수는 주자를 태그, 아웃을 만들어냈다. 기록은 도루 실패.]. 어필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즉시 사라졌지만, 다행히(?) 저지보다 공이 먼저 도착해 휴스턴은 3아웃을 잡아낼 수 있었다.

 

만약에 – 주자가 아닌 베이스를 태그했다면? 저지가 도루에 성공했다면?

양키스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변수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라도 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휴스턴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휴스턴은 주자 태그를 선택하면서 누의 공과에 대한 어필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만약 주자가 아니라 베이스 태그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이때는 주자의 움직임에 대해 수비 측이 반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필 기회가 여전히 유효한 것이 된다. 저지가 2루에 먼저 도착했든 아니든 간에, 야수가 2루를 밟고 심판에게 어필을 했다면 저지의 달리기는 허무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

또다른 가능성은 저지가 태그보다 빨리 2루 베이스를 밟아 도루에 성공했을 경우다. 이때도 휴스턴은 이미 주자 태그, 다시 말해 도루 저지를 시도했기 때문에 새로운 ‘플레이’를 한 것이 된다. 따라서 누의 공과에 대한 어필 권리는 즉시 소멸하게 되고, 저지를 2루에서 아웃시킬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지게 된다. 즉, 저지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말한대로 도루가 성공했다면 그는 2루에서 세이프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경우의 수를 살펴보면 결국 양키스는 유일한 선택지를 택한 것이지만, 휴스턴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도박(도루 저지)을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한 셈이다. 혹여나 저지의 도루가 성공했다면 야구 판정 역사에 길이 남을 독특한 사례가 탄생할 뻔했다.

(감수=오연우, 정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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