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왕’ 알렉스 브레그먼, 또다른 휴스턴의 미래

[야구공작소 김형준] 올시즌 아메리칸리그에서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는 팀은 휴스턴 애스트로스다. 휴스턴은 리그 내 득점 1위(623점), 실점 4위(455점)를 기록 중일 정도로 투, 타가 균형잡혀 있는데다, 에이스 댈러스 카이클의 부상 복귀나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앞선 보강에 따라 전력은 더욱 상승할 전망이다. 그러나 휴스턴이 진짜로 무서운 것은 호세 알투베(27), 조지 스프링어(27), 카를로스 코레아(22) 등과 같이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어 현재의 전력이 오랜 기간 지속 가능하다는 점이다.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알투베, 스프링어, 코레아만큼의 위치는 아니지만 잠재력은 그들에 충분히 비견할 수 있는 94년생의 내야수 한 명이 더 있다. 바로 알렉스 브레그먼(23)이다. 브레그먼은 시즌 초반 단 12경기만에 2번 타순에서 하위 타순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268 / .349 / .450 (rWAR 2.5)라는 성적을 기록, 준수한 2년차 시즌을 보내며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유망주 시절

휴스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알렉스 브레그먼(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SA 2.0)

브레그먼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자신이 속했던 대부분의 집단에서 ‘특출난’ 활약을 보인다는 평가와 함께 2013년 베이스볼아메리카에서 최고의 대학 신입생 선수(Freshman of the Year)으로 선정된 바 있다. 2015년 드래프트 당시에는 “이번 드래프트에서 위험이 가장 적은 선수”, “최악의 경우에도 빅리그에서 생산력 있는 미들인필더로 성장할 선수”라 평가받았으며, 전체 2픽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지명을 받아 팀 역사상 2번째 규모에 해당하는 59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브레그먼은 배트스피드가 뛰어나고 컨택 능력이 좋아 꾸준히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생산해냈다. 그런 타구가 필드 전체에 골고루 분산돼 오늘날의 향상된 쉬프트에도 취약점을 보이지 않는다는 평을 받았다. 마이너리그 통산 볼넷이 삼진보다 많을 정도로 볼을 골라내는 능력이 좋았으며(볼넷 74개, 삼진 68개), 출루한 순간부터는 베이스러닝을 잘하는 까다로운 주자로 돌변한다.

싱글A에서 프로 데뷔를 한 브레그먼은 모든 마이너리그 레벨을 폭격하며 빠른 승격을 거듭했다. 2016시즌에는 더블A와 트리플A에 걸친 80경기 동안 .306 / .406 / .580의 슬래쉬라인을 기록하였는데, 장타를 44개나 때려내면서 파워가 향상되었다는 평가가 잇따르기도 했다. 결국 드래프트된 지 1년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해 7월 25일,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뤄냈다.

물론 처음 맞는 메이저리그 무대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첫 10경기에서 38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휴스턴의 콜업이 너무 빨랐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놀랍게도, 8월 OPS 0.812, 9월 OPS 0.973로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우려를 스스로 잠식시켰다. 이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2017시즌을 앞두고 ‘브레이크아웃’ 후보로 브레그먼을 거론했고, 휴스턴의 감독 AJ 힌치도 그러한 기대에 걸맞게 그를 개막전 2번 타순에 기용했다.

 

한번 더 마주하게 된 메이저리그의 벽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브레그먼은 이번 시즌 초반에도 부진을 겪었다. 다른 강타자들이 많은 휴스턴은 첫 12경기에서 .238 / .373 / .286라는 슬래쉬라인을 기록한 그를 두고 하위 타순으로 강등시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이 결정은 브레그먼에게 성적을 만회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으로 작용했고 성적 또한 좋아지지 않았다.

브레그먼의 4월
첫 12경기 : .238 / .373 / .286, 삼진 비율 17.3%, 볼넷 비율 11.5%
이후 12경기 : .262 / .304 / .333, 삼진 비율 19.6%, 볼넷 비율 6.5%

다급해진 브레그먼에게 상대 투수들은 존을 벗어나는 브레이킹볼의 구사 비율을 높여나갔다. 불리한 카운트를 자주 마주하다보니 삼진, 볼넷 비율도 자연스럽게 악화됐다. 또다른 문제점은 라인드라이브, 플라이볼의 비율이 낮아지고 많은 타구들이 그라운드를 향했던 것이다. (그라운드볼 비율 42.4% → 58.8%) 일반적으로 그라운드볼은 플라이볼보다 안타가 될 확률이 낮으며, 장타가 될 확률도 희박하므로 타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편이다.

 

브레이킹볼 약점을 이겨내 반등에 성공하다

그랬던 브레그먼이 5월 들어 달라지기 시작했다. 5월 1일 이후 그의 성적은 .273 / .352 / .496에 11홈런, 메이저리그 평균보다 26% 더 우수한 생산력을 보여주었다. 삼진과 볼넷뿐 아니라 타구 유형, 발사 각도 및 타구 속도 등 모든 면에서 개선된 수치를 기록했다. 마치 지난 시즌의 “부진 이후 급격한 반등”이란 패턴을 재현하는 모습이었다.

5월 이전/이후 브레그먼의 성적 변화

그렇다면 그가 반등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4월 부진에 관해 언급하면서 문제점을 ‘미흡한 브레이킹볼 대처’와 ‘높아진 그라운드볼 비율’, 크게 2가지로 요약한 바 있다. 반등에는 바로 그 2가지 문제점을 극복해낸 것이 주효했다.

시즌 초반 브레그먼이 브레이킹볼 대처에 약점을 드러내자 상대 투수들은 5월 들어서 그 구사 비율을 계속해서 높였다. (4월 31% → 5월 36%) 이를 간파한 브레그먼은 투수와의 승부에서 브레이킹볼을 노리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브레이킹볼에 배트를 휘두른 비율이 4월 31.6%에서 5월 46.3%로 급증한 데에서 유추할 수 있다. 눈에 띄는 점은 바로 그 스윙들 중 헛스윙의 비율(Whiff per Swing)이 37.8%에서 27.4%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브레그먼의 스윙 중 헛스윙 비율 변화

위의 그래프를 통해 7월로 갈수록 매월 브레이킹볼 공략에 개선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커브에 대한 성적 변화는 놀라운 수준이다. 4월에는 40%였던 커브에 대한 스윙 중 헛스윙 비율이 5월 이후에는 13.3%로 하락했고, 타자가 해당 구종에 얼마만큼의 강점을 보이는지를 나타내는 구종 가치 또한 4월 -1.2에서 5월 이후 5.8로 수치가 크게 개선됐다.

볼넷, 삼진 비율이 좋아진 것도 이를 통해 일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브레이킹볼 위주로 승부하는 투수들에 대한 대처법을 터득하면서도 패스트볼에 대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헛스윙률을 유지하였던 그는 이렇게 순식간에 까다로운 타자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탯캐스트도 그의 편

스탯캐스트의 발달로 이전에는 확인 불가능했던 타구 속도, 발사 각도에 관한 자료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이런 수치들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타자가 생산해낸 타구의 질에 대해 평가할 수 있고, 투수와의 승부에서 타자가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해당 타구가 안타가 될지 혹은 장타로 이어질 지의 문제에는 운과 수비라는 요소가 가미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타구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를 얻어내는 것을 선호한다는 이야기이다.

타구 속도와 발사 각도를 이용하여 고안된 스탯으로 xwOBA(expected weighted on-base average)가 있다. 우리는 타구 속도와 발사 각도를 통해 매 타구가 안타 및 장타로 이어질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데, 그에 따라 매 타구를 1루타, 2루타, 3루타, 홈런으로 세밀하게 분류하게 된다. 그 분류 결과 및 타자의 실제 볼넷, 삼진 개수를 wOBA(weighted on-base average, 타석당 득점 기대치)를 구하는 공식에 대입하여 계산한 것이 바로 xwOBA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브레그먼이 갈수록 질좋은 타구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변화구 대처 능력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갈수록 나은 수치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한 달간 그의 xwOBA 수치는 .287로 40타석 이상 출장한 선수 283명 중 206위 수준에 머물렀다. 그라운드볼 비율이 높아 발사 각도의 평균이 8.6도밖에 되지 않았던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5월 이후 브레그먼의 xwOBA는 0.366까지 치솟았으며(5월 .360, 6월 .361, 7월 .379 기록 중) 이는 150타석 이상 출장한 선수 259명 중 39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플라이볼 비율이 4월 28% → 5월 이후 44%, 그라운드볼 비율이 4월 51% → 5월 이후 32%로 개선되어 발사 각도 평균도 18.6도로 이상적인 수준에 근접할 수 있었다.

즉, 그는 스윙의 수정을 거쳐 안타가 될 확률이 높은 타구를 생산해내고 있으며, 올시즌 메이저리그를 통타한 “공을 띄우라”는 플라이볼 혁명의 또다른 수혜자였던 것이다.

얼마 전 휴스턴은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6~8주간 코레아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가 빠진 유격수 자리에는 브레그먼이 대신하여 출장하고 있는데, 7월 .329 / .413 / .608, 코레아가 부상을 당한 이후로는 .361 / .429 / .750의 성적을 기록하며 코레아의 빈자리를 잘 메꾸고 있다. “적응왕” 브레그먼의 올시즌 성장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자신이 속한 또 다른 집단인 애스트로스에서의 ‘특출난’ 활약을 끝까지 보여줄 수 있을까. 또다른 휴스턴의 미래인 그를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기록 참조: Fangraphs, brooksbaseball, Baseball Sav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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