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버메트릭스는 야구를 재미있게 만들고 있을까?

[야구공작소 오주승] 2000년대 초반 머니볼 신화를 탄생시키면서 이름을 알린 세이버메트릭스는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매우 보편적인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근래에는 스탯캐스트와 웨어러블 장비가 경기에 도입되면서 세이버메트릭스의 근간인 야구와 통계의 결합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처음 세이버메트릭스가 세간의 주목을 모았을 무렵에는 이러한 시도가 야구의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먼저 제기된 우려는 세이버메트릭스가 추구하는 야구의 성향에 대한 다소 단순한 비판이었다. 머니볼식 운영의 핵심은 당시 저평가되었던 출루 능력에 주목해 저비용 고효율의 야구를 구현해내는 데 있었다. 비판론자들은 이처럼 출루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운영이 ‘기다리는 야구’를 조장해 야구를 보다 지루하게 만들 것이라는 비판을 가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잘 알려진 마이클 샌델 교수는 보다 고차원적인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통해 세이버메트릭스와 같은 계량경제학적 접근이 야구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는 세이버메트릭스를 선구적으로 도입하며 선점효과를 보았지만, 이후로는 세이버메트릭스가 보급되면서 선점효과가 사라지고 오히려 가난한 팀에게 불리한 상황들이 도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이버메트릭스의 종착역은 ‘변수 없는 야구’?

세이버메트릭스 이전 시대의 야구단 운영은 상당 부분이 사람의 감에 의해서 이뤄졌다. 때문에 큰 투자를 하고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반대로 과소평가된 선수를 저렴하게 영입해 좋은 결실을 거두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문제는 야구에 대한 계량경제학적 접근이 정밀해질수록 이와 같은 변수들이 발생할 확률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야구라는 스포츠의 가장 핵심적인 매력은 다름아닌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야구는 “공은 둥글다”는 표현이 금언처럼 통용될 정도로 무수한 변수들을 지닌 스포츠이다. 1위 팀과 꼴찌 팀이 3연전을 펼치더라도 꼴찌 팀에게 1승 이상을 기대해볼 수 있는 독특한 종목이다.

세이버메트릭스 연구는 야구 시즌에 작용하는 이와 같은 변수들을 최대한 밝혀내고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기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플레이의 가치를 측정해 선수의 기여도를 산출하고, WAR이라는 종합 지표를 통해 선수가 실제로 팀에 기여한 ‘실적’을 정확하게 제시해준다. 얼마 전부터는 대량의 트래킹 데이터가 추가로 도입되면서 선수의 순수한 ‘실력’과 향후 활약에 대한 연구들도 활발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만약 미래의 세이버메트릭스가 시즌의 구체적인 향방을 완벽하게 예측해내는 수준에 도달한다면 어떤 상황들이 벌어지게 될까? 아마 구단들은 오프시즌부터 팀과 선수들의 향후 성적을 완벽하게 파악한 채로 시즌 개막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승은 시즌을 어떻게 치르는지가 아닌, 필요한 만큼의 WAR을 얼마만큼의 투자와 영입으로 마련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즉 WAR 수집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페이롤의 크기가 리그 순위를 결정짓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세이버메트릭스의 발전이 아직 별다른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영역도 존재한다. 2010년대 들어 도리어 급등한 젊은 투수들의 수술 빈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구단들은 여전히 선수의 건강에 대해 확실한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메디슨 볼(Medicine Ball)’이라는 용어가 떠오르고 있다는 데서 드러나듯이, 메이저리그는 이제 부상이라는 변수를 파악하고 억제하는 것을 중대한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게 선수의 부상마저도 계산하고 억제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야구는 정말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결과가 완전히 드러나는 재미없는 스포츠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로 세이버메트릭스의 보급은 야구를 재미없게 만들고 있을까?

 

여전히 유효한 “야구 몰라요”

위의 그래프는 메이저리그에 30구단 체제가 도입된 1998시즌부터 2016시즌까지를 대상으로 개막 시점에서의 팀 페이롤과 시즌 승률의 상관계수를 다루고 있다. 만약 샌델 교수의 우려대로 세이버메트릭스가 야구를 지출에 따라 성적이 결정되는 스포츠로 만들었다면, 페이롤과 시즌 승률의 상관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한결 뚜렷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프에 드러나는 양상은 사뭇 다르다. 1999시즌부터 2001시즌까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영향으로 크게 낮아진 수치를 기록했던 페이롤과 승률의 상관계수는, 이후 한동안 샌델 교수의 예견대로 다시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다. 허나 우려와는 달리 세이버메트릭스가 보편화되고 활성화될수록 이러한 경향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2005시즌 이후로는 페이롤과 성적의 상관관계가 꾸준히 약해지고 있는 추세다.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저비용 고효율’의 구단들은 세이버메트릭스 시대의 성패가 페이롤보다는 운영의 합리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역시 리그 29위의 페이롤로 전체 승률 2위를 기록했던 2001~2002시즌의 애슬레틱스다. 2010시즌 전후의 템파베이 레이스와 근래의 피츠버그 파이리츠 또한 자신들만의 분야를 탐구함으로써 꾸준하게 팀 연봉에 비해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지난 시즌 우승팀인 시카고 컵스의 사례도 참고해볼 만하다.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만 같던 염소의 저주를 풀어내기 위해 컵스가 내린 결정은 FA를 통한 거물급 선수들의 영입이 아니었다. 세이버메트릭스에 능통한 테오 엡스타인 단장의 영입이었다. 이 투자는 그리 오래지 않아 바라던 그대로의 결실을 맺었다. 지난해 압도적인 승률로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올린 컵스의 페이롤 순위는 리그 중위권인 15위에 불과했다.

최근에는 KBO리그에서도 몇몇 팀들이 세이버메트릭스를 도입하여 재미를 보고 있다. 대표적인 구단이 넥센 히어로즈와 NC 다이노스다. 넥센은 이전부터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특별한 FA 영입 없이도 좋은 성적을 꾸준히 유지해왔고, NC는 세이버메트릭스에 기초한 팀 운영으로 1군 진입 2년차부터 계속해서 우승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SK 와이번스가 세이버메트릭스의 영향을 받은 ‘홈런 야구’와 과감한 시프트를 팀 컬러에 접목시켜 시즌 전의 기대치를 뛰어넘은 성적을 올리는 중이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야구를 보다 예측 가능한 경기로 만들고자 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아직도 한없이 요원하기만 하다. 야구는 여전히 탐구해야 할 영역들과 다채로운 변수들로 가득하고, 어쩌면 이 탐구에는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세이버메트릭스가 불러올 ‘재미없는 야구’를 염려하지 않아도 좋은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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