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안혜원 >
2024년 최악의 시즌을 보낸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현재보다 미래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팀 기조를 잡았다. 주축 선수들을 다른 팀에 트레이드하고 유망주를 수집했다. 그중 팀 에이스 개럿 크로셰가 향할 새 팀은 많은 메이저리그 팬들의 관심사였다.
2020년 빅리그 데뷔 당시 크로셰는 좌완 파이어볼러 불펜 요원이었다. 그러나 불과 10이닝도 던지지 못하고 팔꿈치 불편을 호소했다. 결국 2022년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토미 존 수술에서 복귀한 2023년에도 어깨 문제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데뷔 초반 부상에 시달린 크로셰는 확실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유리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2024년에는 처음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했다. 시즌 초반 폭발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올스타 승선에도 성공했다. 시즌이 끝난 12월에는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됐다. 현재는 지난 시즌보다 뜨거운 활약으로 보스턴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메커니즘 교정의 나비 효과
크로셰의 진화는 메커니즘을 수정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2021년 약 56°였던 팔 각도를 해마다 조금씩 낮췄다. 2025년에는 평균 33°까지 내려갔다.
팔 각도를 낮추면 어깨와 팔꿈치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여 부상 위험도 낮출 수 있다. 물론 모든 선수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억지로 팔 각도를 바꾸는 건 오히려 부상 위험을 높일 수 있다. 크로셰는 팔 각도를 낮추는 동시에 상하체 분리 자세를 강화했다. 자연스럽게 상체와 팔의 부담이 줄었다.
익스텐션을 줄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발 착지가 줄어 투구 밸런스를 깨뜨리지 않고 상하체 분리에 유리하다. 팔이 과도하게 뻗는 동작이 줄어들기도 해 상체에 가는 부담이 줄어든다.
팔 각도가 내려가면서 스핀 축도 자연스럽게 기울었다. 수평 무브먼트가 전반적으로 늘어났다.
< 팔 각도와 수평 무브먼트 변화 >
공의 움직임이 변하며 구종 구성도 조정했다. 2024년에 전체 투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포심 비중을 2025년 10%p 이상 줄였다. 포심 대신 싱커를 그만큼 많이 던졌다. 올 시즌 크로셰의 싱커는 지난 시즌보다 좌타자 몸쪽으로 파고드는 무브먼트가 커졌다.
< 2024 ~ 2025년 크로셰 구종 구사율 변화 >
다시 만든 운영 패턴
경기 운영에서도 뚜렷한 패턴을 만들었다. 초구에는 포심으로 스트라이크를 잡는다. 크로셰는 포심 존 상단 투구율이 60.4%다. 평균적인 선발 투수보다 존 상단 투구 비율이 약 8% 많았다. 하이 패스트볼로 타자의 심리적 압박과 헛스윙을 유도했다.
< 2025년 크로셰 투구 데이터 >
카운트가 유리해지면 커터와 스위퍼로 타자의 스윙 결정 시간을 줄이고 시야를 좌우로 흔든다. 두 구종은 각각 Stuff+1 120, 150을 자랑한다. 두 구종 모두 선발투수 전체 1위다. 팬그래프에서 Stuff+를 제공한 2020년 이후 21, 22년 코빈 번스의 커터를 제외하면 단일 시즌 선발투수 커터 최고 수치다. 스위퍼는 역대 1위다.
강력한 두 구종은 피치 터널이 상당히 길다. 그러다 커터는 짧게 툭 꺾이고 스위퍼는 길게 쓸어가는 듯한 궤적을 보여 준다. 분리 시점이 매우 늦어 타자들은 하나의 직선이 마지막 순간에 짧거나 길게 나뉘는 것으로 보인다.
< 2025년 크로셰 3D 투구 궤적 >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난 시즌과 달라진 커터의 활용법이다. 지난 시즌보다 더 공격적으로 스트라이크 존 안에 투구했다. 그러면서 커터와 스위퍼의 터널링 효과가 배로 생겼다. 덕분에 빗맞은 타구가 많아져 팝업 타구의 비율도 2.5%p 더 높아졌다. 현재 두 구종은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 2024 ~ 2025년 커터 세부 지표 >
좌타자 몸쪽으로 약 17인치 파고드는 싱커와 체인지업도 구사한다. 커터를 중심으로 좌타자 몸쪽으로 휘는 싱커, 바깥쪽 스위퍼라는 위력적인 수평 터널을 형성한다. 몸쪽에서 떨어지는 체인지업, 바깥쪽에서 떨어지는 스위퍼도 위력적이다. 덕분에 현재 커터는 리그 전체 구종 가치 1위, 스위퍼는 3위에 올랐다. 스위퍼를 100구 이상 던진 투수 중 RV/1002은 4.3으로 1위기도 하다.
< 2025년 커터, 스위퍼 구종 가치 순위>
새로운 크로셰의 과제
크로셰가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부분은 포심이다. 이번 시즌 구속이 1마일 이상 줄었다. 익스텐션도 감소하면서 체감 구속 역시 떨어졌다. 크로셰는 커맨드가 좋은 편도 아니라 하이 패스트볼은 실투로 이어지기 쉽다. 실제로 이번 시즌 크로셰는 하이 패스트볼 구종 가치가 떨어지기도 했다.
시즌 후반까지 활약하기 위해서는 피치 시퀀싱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올해 크로셰는 초구 포심 구사율이 50%를 상회하고 있다. 게다가 단 11구를 제외하면 모두 패스트볼 계열이었다. 초구에 특정 구종이 높은 구사율을 기록하고 있다면 타자들은 그 구종을 노릴 것이다. 크로셰가 포심을 던지지 않더라도 패스트볼 계열의 구종이 구사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타자들은 대처가 비교적 용이할 것이다. 즉 포심을 노리는 것에 대한 리스크가 적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타자들이 초구에 포심을 노렸다. 그리고 초구에 던진 포심의 성적은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타자들의 노림수를 역이용할 필요가 있다. 과감하게 초구에 스위퍼를 구사하거나 커터를 유인구로 사용하면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볼 선언이 되더라도 포심을 더 높이 던질 필요가 있다. 변화구의 구위가 훌륭한 만큼 다음 구종으로 승부를 걸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전체 포심 성적도 경기를 치를수록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것을 감안하면 할만한 전략이다.
< 2024 ~ 2025년 크로셰 포심 성적 >
현재 크로셰의 최대 강점은 커터와 스위퍼다. 그러나 정작 스위퍼의 활용도는 매우 제한적이다. 전체 투구 중 스위퍼의 구사율은 10%에 불과하다. 이 중 약 75%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구사했다. 15%는 0볼 1스트라이크에 던진다.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것이다.
타자의 시각에서 바라보자. 타자들은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2스트라이크에 가기 전 마지막 상황인 1스트라이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초구 하이 패스트볼을 놓치더라도 타자들은 여전히 패스트볼 계열 구종만 신경 쓰면 된다. 크로셰는 좋은 싱커와 커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1스트라이크 상황 성적은 좋지 못하다.
< 2025년 시즌 크로셰 1스트라이크 성적 >
그렇다면 1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스위퍼 구사율을 늘리는 것은 어떨까? 스위퍼는 헛스윙을 유도하기에 최적화된 구종이다. 볼이 될 위험은 있지만 헛스윙률을 늘리고 2스트라이크로 더 끌고 갈 수 있다. 싱커와 커터도 더 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성장한 크로셰
한때 구속으로만 승부하던 크로셰는 이제 경기 운영에 능한 전략가가 되고 있다. 불펜 시절처럼 100마일 강속구를 뿌리진 않지만 영리한 운영을 바탕으로 리그 정상급 선발로 성장했다.
앞으로도 더 진화할 크로셰는 많은 투수에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 연장 계약을 맺은 보스턴에서의 활약 또한 큰 기대를 모은다.
참조 = Baseball Savant, Fangraphs, pitcherlist, Pitch Leaderboard v7
야구공작소 이동건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안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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