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는 로리아와 말린스, 그 동행의 역사

[야구공작소 김태근]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세계 최대의 프로스포츠 시장인 메이저리그, 그 중심에 선 이들은 단연 수백억 원의 연봉을 호가하는 스타 선수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뒤에서 실질적으로 리그의 호황을 주도하는 이들은 바로 구단주다.

20세기에 대표적인 구단주로는 뉴욕 양키스를 인수하여 ‘악의 제국(Empire of Evil)’이라는 최고의 브랜드를 탄생시킨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있다. 자신의 성을 따서 구장명을 짓고 조명 시설을 군부대에 기부했던 컵스의 윌리엄 리글리, 사상 최고의 괴짜 구단주였던 오클랜드의 찰스 오스카 핀리 역시 선수 이상의 영향력을 가졌던 구단주로 기억된다.

21세기에는 테오 엡스타인을 파격 발탁한 보스턴의 존 헨리, 자신의 구단에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던 디트로이트의 마이클 일리치, 그리고 NBA 레전드 출신으로 LA 다저스의 공동 구단주인 매직 존슨이 있다.

그리고 여기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마이애미 말린스의 구단주인 제프리 로리아다. 2002년 플로리다 말린스를 1억5800만 달러(약 1800억 원)로 인수한 로리아 구단주는 구단을 제 손아귀에 주무르며 악명을 떨쳤다.

스포츠 산업은 승리와 경제적 이득이라는, 때로는 함께할 수 없는 두 가지 과제를 갖는다. ‘메이저리그는 비즈니스’라는 유명한 말처럼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은 냉철한 계산 하에 구단을 운영하기 때문에 당장의 승리를 포기할 때도 잦다.

로리아는 구단주 중에서도 가장 유별난 인물이었다. 구단 운영의 책임을 맡은 단장과 사장의 의견을 시시때때로 무시하는 것은 기본이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직후 재정적인 이유로 주축 선수들을 팔아 치우는 일을 저지르곤 했다. 승리를 갈구하는 팬들에게 최악의 구단주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로리아가 구단을 매각한다는 놀라운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끝내 최근 마이애미의 매각 소식이 들려왔다. 마이애미의 현지 언론 ‘마이애미 헤럴드’에 따르면, 뉴욕의 벤쳐 사업가 브루스 셔먼을 필두로 데릭 지터와 마이클 조던이 포함된 투자자 그룹이 마이애미 말린스를 인수한 것이다. 금액은 12억 달러(약 1조 3800억 원)으로, 로리아는 초기 투자금을 7배 넘게 불린 셈이다.

올스타전이 마이애미의 홈구장 말린스파크에서 열린 2017년. 짧고도 길었던 로리아의 말린스, 15년의 세월은 끝이 났다. 그 역사를 주요 사건 위주로 풀어본다.

1. 월드시리즈 우승

로리아가 말린스의 구단주로 활동하기 시작한 연도는 2002년. 플로리다는 1년 뒤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주를 기쁘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승이 그의 자금력 덕분은 아니었다(연봉 총액 4500만 달러로 25위).

이전 시즌 79승 83패에 그쳤던 플로리다는 2003년 NL 동부 2위를 차지했다(91승 71패). 이는 프랜차이즈 역사상 단일 시즌 역대 2위의 기록이다.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플로리다는 디비전시리즈에서 100승을 거둔 샌프란시스코를 격파했고, 챔피언십시리즈에선 컵스를 꺾었다. 이윽고 월드시리즈에선 양키스마저 4승 2패로 제치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말린스 프랜차이즈 최고승률 시즌
1. 1997년 0.568 (WS 우승)
2. 2003년 0.562 (WS 우승)
3. 2009년 0.537
4. 2008년 0.522
5. 2005년 0.512

<표=2003 플로리다의 라인업>

낮은 연봉 총액으로 우승권의 전력을 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갓 데뷔한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을 구성한 데 있었다. 실제로 주전 야수들 중 30대는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와 외야수 토드 홀랜스워스뿐이었다. 현재 현역 최고 타자인 미겔 카브레라는 당시 만 20세로 팀 내 최연소 선수였다.

*2003 플로리다 영건 선발진
1. 칼 파바노(27세) 12승13패 201이닝 ERA 4.30
2. 브래드 페니(25세) 14승10패 196.1이닝 ERA 4.13
3. 마크 레드먼(29세) 14승9패 190.2이닝 ERA 3.59
4. 돈트렐 윌리스(21세) 14승6패 160.2이닝 ERA 3.30
5. 조시 베켓(23세) 9승8패 142이닝 ERA 3.04

선발투수진은 더욱 호화로웠다. 칼 파바노-브래드 페니-마크 레드먼-돈트렐 윌리스-조시 베켓으로 구성된 평균 연령 25세의 선발진은 우승의 일등공신이었다. 이해 마이애미 선발투수들이 거둔 75승의 선발승(NL 1위, 전체 2위)의 비중은 팀 전체 승리의 82%에 달했다.

당시 플로리다의 주력인 파바노(이전 소속팀: 몬트리올), 데릭 리(샌디에이고), 마이크 로웰(뉴욕 양키스), 페니(애리조나), 윌리스(컵스), 후안 피에르(콜로라도)는 트레이드의 산물이었다. 알렉스 곤잘레스, 루이스 카스티요, 카브레라는 마이애미가 직접 발굴한 해외 출신 유망주였고, 베켓은 1999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데려온 선수였다. 주력 멤버 중 FA로 영입한 선수는 포수 로드리게스밖에 없었다(1년 계약).

2. 실패한 파이어세일

이렇게 산뜻한 출발을 한 ‘로리아 호’였지만, 직후 벌어진 행보는 빛나는 미래와는 180도 반대되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로리아에게 팀의 승리는 뒷전으로 하는, 돈만 좇는 구단주라는 이미지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젊고 유망한 전력을 갖춘 플로리다는 내부 단속만 한다면 더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었다. 그러나 로리아는 이들을 전부 잡아놓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FA가 다가온 선수들의 파이어세일(타다 남은 물건을 헐값에 팔아 치움)에 나섰다. 장기 집권을 염원하던 팬들과 선수들에게는 힘이 빠지는 일이었다.

우승 직후 FA 자격을 얻은 이반 로드리게스는 디트로이트로 이적했다. 이어 FA가 다가오는 주축 선수들도 트레이드됐다. 2003년 겨울에는 주전 1루수 데릭 리를 시카고 컵스로, 10승 투수 마크 레드먼을 오클랜드로 보냈다. FA로 연장계약을 한 선수는 2루수 루이스 카스티요 뿐이었다(하지만 카스티요도 2년 후 미네소타로 트레이드된다). 이후에도 브래드 페니(다저스), 후안 피에르(컵스), 조시 베켓과 마이크 로웰(이상 보스턴)이 차례차례 팀을 떠났다.

플로리다의 이상은 Again 2003이었다. 2003시즌 우승 전력을 트레이드로 완성한 것을 재현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파이어세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트레이드를 통해 핸리 라미레스, 아니발 산체스, 리키 놀라스코 등 미래의 올스타로 평가 받은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이탈한 전력을 메우긴 역부족이었다.

파이어세일의 여파가 잠잠해지기도 전에 로리아는 카를로스 델가도 트레이드 사건을 일으켰다. 토론토에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거포 1루수로 활약한 델가도는 2004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얻었다. 뉴욕 메츠에게 강력히 러브콜을 받았지만, 뉴욕을 싫어한 그는 말린스로 4년 5200만 달러에 이적했다. 추운 뉴욕과 달리 따뜻한 플로리다의 기후와 고향인 푸에르토리코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것이 이적 이유였다.

그는 이적 첫해 MVP 6위에 오르는 특급활약을 했다(.301/.399/.582 33홈런 115타점). 그러나 소속팀 플로리다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83승 79패). 로리아는 델가도를 돌연 메츠로 트레이드했다. 심지어 그가 델가도의 에이전트에게 “트레이드는 없다”고 안심시킨 뒤였다.

트레이드의 배후에는 델가도가 맺은 독특한 연봉 계약이 있었다. 말린스는 그에게 첫해 400만 달러의 연봉만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을 이후 3년간 지급하는 지불유예 형식의 계약을 맺었다. 이에 몸값이 올라가는 2년차가 되자 미련 없이 그를 유망주들(유스메이로 페티트 외 2인)과 바꿔버렸다. 트레이드 거부권을 보장받지 못한 그는 뒤통수가 얼얼한 채로 꼼짝없이 뉴욕으로 이적해야 했다.

3. 마이애미 시대 개막과 ‘패닉 바이’

2012시즌에 들어가면서 말린스는 팀 이름을 ‘플로리다’에서 ‘마이애미’로 변경했다. 말린스 파크라는 이름이 붙은 신축구장으로의 이전도 진행됐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을 떠올린 것일까, 로리아는 돌연 이전과 다른 행보를 펼쳤다. 선수들을 팔기만 한다는 이미지를 가졌던 그가 FA시장에서 대어 선수들을 쓸어 담은 것이다.

2011 NL 타격왕인 호세 레이예스(6년 1억600만), 11년 연속 10승-200이닝의 마크 벌리(4년 5800만), 3년 연속 40세이브를 거둔 히스 벨(3년 2700만)을 FA로 영입했다. 여기에 C.J. 윌슨과 알버트 푸홀스와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다. 결국 영입엔 실패했지만 마이애미는 윌슨에게 6년 9900만 달러, 푸홀스에게 10년 2억 7500만 달러를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1시즌 5770만 달러였던 말린스의 팀 연봉총액은 한겨울 사이에 1억1800만 달러로 뛰었다(연봉 총액 24위→7위). 과감한 전력 보강에 성공한 마이애미는 많은 이들에게 가을야구 경쟁의 다크호스로 여겨졌다.

그러나 마이애미는 예상 밖의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4월 한 달간 8승 14패로 출발선에서 주춤했다. 5월에 21승 8패로 반등에 성공했지만, 이후 40승 71패로 끝없이 추락했다. 결국 2억 달러를 투자한 마이애미의 승수는 72승에서 69승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시즌이 끝난 뒤 로리아의 마이애미는 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년만에 벨, 레이예스와 벌리를 트레이드하며 곧바로 리빌딩 체제로 회귀한 것이다. 그의 이미지는 다시 야구를 비즈니스로만 여기는 사업가로 돌아갔고 마이애미의 미래는 다시 알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4. 3억 달러의 벽을 무너뜨리다

마이애미 시대에 접어든 말린스는 한번도 5할 승률 시즌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한 명의 슈퍼스타를 탄생시켰다. 바로 지안카를로 스탠튼이다.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마이애미가 2라운드 전체 76순위로 지명한 그는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엄청난 파워를 지닌 마이애미의 최고 유망주로 꼽혔다.

마이애미는 그를 2010년 여름에 데뷔시켰다. 주전 자리를 꿰찬 그는 22홈런으로 훌륭한 루키 시즌을 보냈고 이듬해 30홈런을 돌파한 후, 2012년 내셔널리그 올스타로 선정되며 빠르게 스타로 자리잡았다. 2013 WBC에 미국 대표로도 출전했다.

2014시즌엔 당시 투고타저 성향을 보이던 메이저리그에서 그는 시즌 내내 40홈런 페이스를 보이며 클레이튼 커쇼와 NL MVP 경쟁을 벌였다. 경쟁이 치열하던 9월 11일, 머리에 사구를 맞아 시즌 아웃되며 MVP 2위로 밀렸음에도 그는 생애 첫 100타점 시즌을 만들어내며 커리어하이를 달성했다.

*말린스 타자의 첫 8년 bWAR 순위
1. 지안카를로 스탠튼 32.4
2. 핸리 라미레스 26.8
3. 미겔 카브레라 18.2
4. 크리스티안 옐리치 16.4
5. 댄 어글라 15.6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슬러거로 성장한 그에게도 어느덧 FA 자격이 다가왔다. 많은 이들이, 심지어 말린스 팬들조차도 그의 미래는 마이애미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로리아는 그를 구단의 구심점으로 삼길 원했고, 그에게 초대형 연장계약을 선사했다.

계약 규모는 무려 13년 3억2500만 달러. 2007년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10년 2억7500만 달러를 훌쩍 넘는 역대 1위의 규모였으며 최초의 3억 달러 계약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 구단 상대 트레이드 거부권 조항을 포함시킨 것이다. 로리아를 아는 많은 팬들은 이 행보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역대 메이저리그 대형 계약 TOP 5
1. 지안카를로 스탠튼 13년 3억2500만
2. 알렉스 로드리게스 10년 2억7500만
3. 알렉스 로드리게스 10년 2억5200만
4. 미겔 카브레라 8년 2억4800만
5. 알버트 푸홀스 10년 2억4000만
5. 로빈슨 카노 10년 2억4000만

5. 호세 페르난데스의 요절
2013년 호세 페르난데스는 NL 신인왕과 사이영상 3위를 차지하며 마이애미의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그는 데뷔 이후 38승 17패 ERA 2.58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투수였다. 특히 평균 95마일을 상회하는 패스트볼과 낙차 큰 슬러브를 주무기로 닥터K로 군림했다. 11.25개의 K/9과 31.2%의 K%는 2013~2016년 450이닝 이상을 던진 선발투수 중에서 전체 2위에 해당한다.

*2013~2016 메이저리그 선발투수 순위 (450이닝 이상)
<ERA>
1. 클레이튼 커쇼 1.88
2. 호세 페르난데스 2.58
3. 제이크 아리에타 2.69
4. 잭 그레인키 2.73
5. 제이콥 디그롬 2.74

<ERA+>
1. 클레이튼 커쇼 194
2. 호세 페르난데스 150
3. 제이크 아리에타 144
4. 자니 쿠에토 140
5. 제이콥 디그롬 138

<FIP>
1. 클레이튼 커쇼 2.03
2. 호세 페르난데스 2.44
3. 맷 하비 2.73
4. 제이콥 디그롬 2.88
5. 맥스 슈어져 2.90

페르난데스는 스탠튼과 더불어 마이애미의 투타 중심축이었다. 2014시즌 중반 토미존 수술로 잠시 전열에서 이탈했지만, 복귀 후 첫 풀타임 시즌인 2016년에도 순조로운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16승 8패 ERA 2.86). 특히 fWAR은 6.1로 당시 투수 1위를 기록, 강력한 사이영상 후보 중 한 명이었다.

그러던 2016년 9월 25일,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휴식일에 친구들과 보트를 탄 그는 보트가 뒤집히면서 사망하고 말았다. 사고 당일은 원래 그의 등판 예정일이었다. 돈 매팅리 감독이 배려 차원에서 부여한 추가 휴식일에 사고를 당하게 되어 수많은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메이저리그는 충격에 빠졌고 모든 야구팬과 선수, 언론은 그를 추모했다. 사고 이튿날에 열린 마이애미와 메츠의 경기는 추모 경기가 되었다. 구단은 그의 등번호인 16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하루아침에 에이스를 잃어버린 마이애미는 동력을 잃어버렸고 중흥 재건도 수포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페르난데스의 죽음은 로리아에게 큰 슬픔을 안겼고 그의 구단 매각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야구공작소
김태근 칼럼니스트

출처: Wikipedia, Baseball-Reference, Fangrap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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