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안혜원 >
종목을 불문하고 스포츠 팬이라면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을 한 장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같은 팀 팬을 만났을 때 유니폼 얘기는 빠지지 않는 주제다.
특히 최근에는 대기록 달성 선수나 은퇴 선수를 위한 스페셜 유니폼 등이 출시되면서 그 종류도 많아지고 있다. 종류가 많아진다는 건 구단에는 다양한 수익원이 되고, 팬들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안혜원 >
하지만 유니폼 종류가 많아지고 자주 출시할수록 비슷한 유니폼이 생겨날 위험도 커진다. 과거 우리 히어로즈는 일본 프로야구팀 라쿠텐 이글스 유니폼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최근 한화 이글스 썸머 유니폼과 메이저리그 팀 뉴욕 메츠 유니폼의 유사성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 삼성 라이온즈, 세이부 라이온즈의 스트라이프 유니폼 등 해외 프로팀 유니폼과의 유사성 문제는 종종 언급되는 편이다.
아직 비슷한 유니폼을 가지고 일어난 국내 분쟁 사례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문제가 될 여지가 없어서 조용한 걸까. 문제가 될 수 있음에도 암묵적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일까.
유사한 유니폼에 대해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유니폼 유사성에 적용할 만한 권리로는 상표권이 있다. 흔히 상표권과 특허를 혼동하곤 한다. 특허는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 발명 수준이 고도화된 것을 말한다. 반면 상표법에 따르면 ‘상표’란 자기의 상품과 타인의 상품을 식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장을 말한다. 상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식별할 수 있는 표장에 큰 가치를 두는 점에서 발명품을 보호하는 특허와는 구별된다.
상표권에서 보호하는 표장은 기호, 문자, 색채 등과 같은 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소리, 냄새 등 비시각적 요소까지 포함한다. 상표등록요건에 맞게 표장을 등록하면 상표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를 등록한 사람이나 회사에만 그 상표를 사용할 권리가 생긴다는 점에서 독점적이지만, 계약서 등을 통해 상표권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
KBO리그 구단 중 상표권의 피양도인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된 사안이 있다. 야구 관련 상품을 제작 및 판매하는 두 회사 A, B가 기아 타이거즈의 상표권을 가지고 다퉜다. 이 사안에 대한 법원의 입장을 보면 유니폼에서 표장이 될 수 있는 유형을 알 수 있다. 기아 타이거즈와 두 회사가 체결한 상표사용계약서의 내용을 보면 구단 명칭, 문자로고, 엠블럼, 캐릭터 등을 제조 및 판매 대상으로 정하였다. 본 사건 원고의 주장과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유니폼 원단 자체도 상표권이 표장이 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이는 구단을 상징하는 디자인이나 심지어는 원단의 색까지도 상표권의 보호범위에 들어올 가능성을 말한다고 본다. (2016나1981, 2017.3.23 판결)
또 다른 적용 가능성
이외에도 디자인 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이하 부경법), 저작권법 등을 적용받을 수 있다. 디자인 보호법에서는 디자인 등록을 받기만 하면 20년간 보호가 되지만, 프로구단 유니폼이 디자인으로써 인정받을지는 등록승인권을 가진 특허청에 달렸다. 부경법은 3년으로 보호기간이 너무 짧다는 단점이 있다.
이 점에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저작권법을 적용받는 것이다. 저작권의 보호기간은 원작자 사후 70년까지로 매우 길다. 또한 저작권은 따로 등록을 요하지 않는다. 즉, 저작권을 인정받을 만한 창작물이 구체적 형태를 갖게 된 때에 즉시 저작권이 발생한다.
미국에서는 야구 유니폼은 아니지만 유사한 성격을 가진 치어리더 유니폼에서 의상 저작권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와 저작권 법제에 차이가 있을 것이기에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유사한 치어리더 유니폼 분쟁, 이에 야구 유니폼은?
한 치어리더 유니폼과 비슷한 패턴과 무늬를 지닌 타 치어리더 유니폼을 저작권 침해로 인정하였다. 이때 판단의 핵심 기준은 ‘분리 가능성(separability)’이었다. 유니폼이라는 상품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이 저작권법 보호 대상 요건을 충족하면 그 부분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니폼과 별개의 독자적인 2차원 또는 3차원 디자인 요소인지, 그리고 해당 디자인 요소가 유니폼의 실용적 측면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했다. 이때 치어리더 유니폼에 나타난 패턴이 독립적으로 일반 셔츠와 같은 보통 의복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고 하여 첫 번째 기준을 충족했다. 또한 사람들은 패턴 디자인을 보고 치어리더임을 알게 되며 실용적 측면과 양립 할 수 있어 두 번째 기준도 충족했다. 이렇듯 치어리더 유니폼의 패턴 문양이 저작권법 보호대상이 된 미국 판례가 있다.
< 위 미국 판례에서 문제가 된 복장 >
우리나라 저작권법상 응용미술저작물은 분리가능성 개념을 간접적으로 적용한 예시로 볼 수 있다. 응용미술저작물은 저작권법 제2조 15호에 따르면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될 수 있는 미술저작물로서 그 이용된 물품과 구분되어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개념상 위에서 말한 구단 로고, 엠블럼, 캐릭터 등이 해당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히딩크넥타이 판례에서 넥타이 문양이 응용미술작품성을 인정받은 사례도 있다. (2003도7572, 2004.07.22 판결)
하지만 개인적으로 유니폼의 요소들은 이에 해당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인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다. 히딩크 넥타이는 문양의 고유성과 함께 월드컵대회 승리를 기원한다는 사상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하지만 구단이나 선수의 기념비적인 날을 기념하는 스페셜 유니폼이 아니라면 보통 홈 어웨이 유니폼에 이와 같은 사상이나 감정을 인정해 줄지 의문이 든다.
상표권, 최후의 보루
이에 적용가능한 권리는 상표권뿐인 것 같다. 하지만 상표권도 쉽지 않다.
상표권은 속지주의를 따른다. 다시 말해, 상표가 등록된 곳에서만 보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 등록된 상표가 미국에서 침해되더라도 속지주의에 따르면 이를 처벌할 방법이 없다. 즉, 메이저리그 구단의 유니폼이 KBO 구단 유니폼의 디자인을 따라하더라도 상표법으로 처벌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세계화가 진행됐고 우리는 상품의 국제적 유통이 당연시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특히 야구 시장이 점차 확대되다 보면 미국 야구 시장, 한국 야구 시장, 일본, 중남미, 유럽 등 야구 시장의 연결성이 강화될 것이다. 국가 간 이해관계도 치밀하게 연결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상표권의 속지주의를 완화하자는 의견과 움직임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 국내 상표권의 간접 침해를 구성하는 물건이나 상품을 외국의 이용자에게 제공하거나, 반대로 해외에서 국내의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표권의 간접 침해 개념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렇듯 상표권의 속지주의는 점차 완화될 수밖에 없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당장은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마땅하지는 않아 보이더라도 유니폼 개발에는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너무 유사하지는 않더라도 한화 이글스 썸머 유니폼같이 타팀과의 이미지 연결을 통한 베네핏을 얻어가는 디자인을 고민해 보고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참고 = 상표법, 저작권법, CDAS
야구공작소 유승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안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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