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창민에게 휴식을 허하라

[야구공작소 박기태] 간단한 퀴즈 하나. 최근 3년간(2015~2017) KBO리그에서 가장 많은 불펜 이닝을 소화한 투수 1~3위는?

정답은 쉽다. 1위 권혁, 2위 박정진, 3위 송창식이다. KBO리그의 팬이라면 김성근 감독 지휘 하의 한화가 어떤 식으로 투수 운용을 해왔는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문제를 바꿔보자. 같은 기준으로, 최근 3년간 불펜 이닝 최다 10위 이내에 1990년 이후 태어난 선수가 딱 한 명 있는데 누구일까?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팀을 가리지 않고 야구를 열심히 봐온 사람이라면 답을 쉽게 찾았을 것이다. 삼성 라이온즈 심창민(1993년 2월 1일생)이다.

최근 3년간(2015~2017) 구원 이닝 최다 10인

심창민은 2015년 61경기, 2016년 62경기, 그리고 올해 2017년 6월 7일까지 26경기에 출장했다. 소화 이닝은 2015년 67.1이닝, 2016년 72.2이닝, 2017년 31.2이닝이다. 최근 3년간 투구 이닝은 171.2이닝이다. 같은 기간 리그 전체 6위에 해당한다. 현재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올해 대략 78.2이닝을 소화할 예정. 3년간 투구 이닝은 218.2이닝으로 늘어난다.

이 기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먼저, 코치진의 신뢰를 나타내는 훈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심창민이 6위에 오른 3년간 구원 이닝 순위 상위권에는 리그의 내로라하는 ‘믿을맨’들이 가득하다. 1~3위를 차지한 한화의 승리조는 물론이요, 4위 NC 김진성 역시 김경문 감독의 듬직한 승리 계투조 일원이다. 5위 정우람이 리그 최고급 마무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7위 임창민 역시 정우람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미 만 30세가 넘은 이들과 만 24세의 심창민이 함께 있다는 것은, 심창민에 대한 팀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혹사’라는 단어로 압축되는 불편한 진실이다. 신체적 전성기를 한창 보내고 있는 만 24세의 선수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앞둔 선수도 들어있는 명단에 함께하고 있다. 젊은 투수의 어깨와 팔꿈치 보호에 구단들이 지극정성을 다하고 있는 21세기에 말이다. 그런 시대에 아직 20대의 절반도 넘기지 않은 선수가 마구잡이로 공을 던져온 것이다.

혹사라는 단어를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과연 심창민은 정말로 혹사를 당하고 있는가?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의심의 밑에는 눈길을 피할 수 없는 선명한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심창민은 고교 시절 최고 시속 140km 후반대의 공을 던지며 드래프트 1라운드로 지명된 선수다. 입단 후 첫 3년간(2012-2014), 39.1이닝-50.1이닝-38.1이닝을 던지며 그의 팔은 싱싱한 상태를 유지했다. 2014년 평균 시속 144.3km의 빠른 공을 던진 것이 그 증거다. 그러나 그다음 해인 2015년부터 60이닝이 넘는 등판을 소화하며 그 팔이 조금씩 갉아 먹혀 갔다. 2015년 시속 145.2km로 최고점을 찍은 빠른 공 구속은 2016년 시속 144.5km로 한차례 떨어지더니, 올해는 시속 142.7km에 그치고 있다.

2015년 정점을 찍은 구속이 올해 크게 줄어들었다

세부 성적도 혹사의 여파를 강하게 의심하게 한다. 평균자책점은 2015년 4.28, 2016년 2.97에서 올해는 5.97로 엄청나게 치솟았다. 9이닝당 피홈런 개수도 2015년 0.94개, 2016년 0.74개에서 올해 1.71개로 크게 치솟았다. 구위 저하의 증거가 여기저기에 넘쳐나고 있다.

만 24세의 선수가 이토록 많은 공을 던지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단순히 24세 시즌으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22~24세 시즌에 순수 구원 투수로만 200이닝 가까이 공을 던지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다. KBO리그 역사상 22~24세 시즌에 구원 투수로만 200이닝을 넘긴 사례는 단 2명만이 있다. 1998년~2000년 해태와 삼성에서 361이닝을 던진 임창용과 2009년~2011년 KIA에서 249.2이닝을 던진 손영민이다. 3위는 2005년과 2006년 삼성에서 단 2년 동안 178.1이닝을 던진 오승환이다. 현재진행형인 심창민은 4위에 해당한다.

비단 KBO리그뿐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는 희소한 기록이다. 만 22~24세에 200이닝 이상 구원 등판한 선수는 1960년 이후, 단 19명 밖에 없었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12년에서 2014년까지 212.2이닝을 던진 켈빈 에레라다. 물론 메이저리그에 만 22세에 올라가는 선수가 적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어찌 됐든 메이저리그보다 KBO리그의 경기 수가 더 적은 것을 고려해볼 때, 심창민의 어깨에 올려진 무게는 훨씬 무겁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심창민은 올해 과부하 때문인지 어깨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다. 김한수 감독 역시 이를 인지하고 ‘심창민이 자주 나가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 미안함이 진심이었는지, 심창민은 지난 6월 6일 두산전에서 6일이나 휴식을 취한 뒤 등판했다. 올 시즌 가장 오랫동안 주어진 휴식이었다. 안타 하나와 볼넷 하나를 내주긴 했지만, 시속 147km의 빠른 공을 던지고 삼진을 하나 솎아냈다.

‘관리’는 빠를수록 좋다. 6일 휴식 등판은 청신호라 할 수 있다. 심창민에게 걸린 부하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간 것도 아니다. 피홈런과 평균자책점 지표는 나쁘지만, 올해 9이닝당 탈삼진 개수는 13.36개로 오히려 데뷔 이래 가장 뛰어나며, 피안타율도 0.223으로 나쁘지 않은 편이다. 적절한 휴식 속의 기용이 신체적 정점을 향해가는 심창민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기록 출처: STATIZ, Baseball Reference

일러스트: 야구공작소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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