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재성 >
“절대해서는 안 되는 4不(음주운전, 승부조작, 성범죄, 약물복용)을 금지 사항으로 특별히 지켜주길 바란다. 일부 선수의 일탈이 야구계 전체에 엄청난 타격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뼈저리게 체험했다”
– 2022.03.28. 허구연 KBO 총재 서면 취임사 中
허구연 KBO 총재가 취임식에서 음주운전 등 일탈 행위의 위험성을 당부하고, 강정호의 KBO 복귀 시도 실패 후 이른바 ‘강정호 룰’이 도입된 지 약 2년. 코로나19 시국 술자리 파문으로 팬들의 질타를 받은 지 3년. 리그 최초 1,000만 관중 시대를 열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 프로야구는 여전히 음주운전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최근 10년간 프로야구 선수 및 코치 음주운전 적발 사례.1 >
최근 10년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프로야구 선수 및 코치 명단이다. 2018년을 제외한 모든 해에 음주운전이 적발되었다. 총 18명 중 3번째 적발이었던 강정호와 코치 최승준, KBO의 징계를 기다리고 있는 이상영을 뺀 15명의 선수 중 10명이 적발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학주는 적발 당시 선수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KBO의 징계를 받지 않았다.
현역 선수나 코치가 다가 아니다. 은퇴 후 야구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 출연하던 장원삼이 지난 8월 적발되었고, 5월에는 원현식 KBO 심판 위원이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되어 1년 실격 징계를 받았다. 2021년에는 당시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던 봉중근이 만취 상태로 전동 킥보드를 탄 것이 적발됐다. 이들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모두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KBO와 각 구단은 매년 ‘클린 베이스볼’을 외치며 예방 교육을 하고, 선수들은 선후배 선수들의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눈앞에서 지켜보는데도 야구계는 음주운전 논란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강정호 사건’으로 강화된 규정, 무엇이 달라졌나
프로야구 선수는 많은 팬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받는 직업이다. 그들의 음주운전은 자신의 징계를 넘어 소속팀의 분위기와 성적, 나아가 모기업과 야구계 전체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그렇기에 법적 제재와 별개로 리그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를 근거로 제재를 가한다.
< KBO 리그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 >
KBO는 2022년 초 강정호의 복귀 논란 이후,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제재 규정을 개정했다. 당해 6월부터 해당 규정을 기준으로 일관되게 선수들을 징계하되, 신분 관계 혼동을 막기 위해 구단의 자체 징계 제도를 없애기로 모든 구단과 합의했다.
문제는 적발 선수들의 거취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개정 이후 음주운전에 적발된 김기환, 박유연, 배영빈은 구단에서 방출됐다. 그중에서도 박유연과 배영빈은 적발 사실을 구단에 숨겼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를 거쳐 방출됐다. 일종의 ‘괘씸죄’가 적용된 셈. 그런데 비슷한 시기 적발된 하주석과 김기환의 거취는 극과 극이었다. 하주석은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김기환은 방출됐다. 당시 김기환을 방출한 NC 다이노스는 “강화된 사회적 의식을 반영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 KBO 리그 규약 야구선수계약 제15조 제1항>
방출을 구단의 자체 징계라고 볼 수는 없다. 출장정지, 벌금 등 처벌과 다르게 방출은 계약 자체를 해지하는 것으로, 일종의 해고라고 볼 수 있다. 선수가 음주운전에 적발되었을 때, 구단이 더 큰 이미지 추락을 막기 위해 선택적으로 내리는 결정이다. 리그 규약 야구선수계약 제24조 [계약의 해지] ②-5에 따르면, 선수가 제15조 제1항을 위반하여 품위를 훼손하는 행위를 한 경우 구단은 총재의 승인을 얻고 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죄를 지어도 팀마다, 선수마다 거취가 달라지는 실태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팬들에게는 ‘누군 되고 누군 안 된다’는 일관성에 관한 오해를, 그리고 선수들에겐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쓸데없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NC가 김기환을 방출할 때처럼 구단이 KBO 징계와 별개로 선수를 방출하는 것은 현 KBO의 징계 수위가 강화된 사회적 의식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 KBO 리그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 음주운전 개정 전(위), 개정 후(아래)>
개정 전후 비슷한 사건의 징계 수위를 놓고 보면 경각심 고취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2019년 혈중알코올농도 면허 정지 수준으로 접촉 사고를 낸 박한이는 KBO로부터 90경기 출장 정지에 제재금 500만 원, 봉사활동 180시간을 포함하는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개정 후 같은 면허 정지 수준으로 접촉 사고를 내 적발된 김기환은 90경기 출장 정지를 받는 것에 그쳤다. 규정상 징계 기준을 강화한 건 사실이지만, 정작 실제 징계 수위가 강화됐다고 보긴 힘들다.
납득 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징계 필요
징계 수위와 교육을 강화한다고 모든 선수의 일탈을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수년간 사태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를 단지 선수 개개인의 일탈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한때 프로야구가 팬들의 외면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몇몇 선수들의 일탈로 인한 팬들의 실망이었다. 한 선수의 일탈이 프로야구 흥행의 최정상에서 다시 암흑기로 향하는 시발점이 되지 말란 법 없다.
음주운전에 대한 팬들의 인식은 달라졌다. 더 이상 음주운전을 ‘한 번의 실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구단이 자체적인 추가 대처를 고민할 필요도 없도록 사회적 인식 변화에 발맞춘 강화된 제재 규정이 필요하다. 긴 음주운전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정으로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고취하는 납득 가능하고 일관적인 징계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참고 = 국제신문, KBO, 조선일보, 뉴스1
야구공작소 김유민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익명, 당주원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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