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SK 와이번스, KBO리그 사상 최강의 홈런 공장?

[야구공작소 박기태] 외국인 감독의 등장, 매뉴얼 야구를 표방하는 단장, 거침없는 트레이드. 다양한 뉴스 소재를 낳고 있는 2017시즌 SK 와이번스지만, 올해 SK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 ‘홈런’이다.

6월 첫 경기부터 선발 전원 안타를 기록한 대포 군단은 6월 1일 기준, 3명의 두 자릿수 홈런 타자(최정-한동민-김동엽)를 배출하며 리그 팀 홈런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84타석 8홈런이라는 어마어마한 홈런 생산력을 선보이고 있는 외국인 타자 제이미 로맥도 곧 4명째에 합류할 태세다. 2위 삼성과의 홈런 격차는 자그마치 서른 개가 넘는다.

올해 SK 와이번스의 홈런 질주는 KBO리그 역사에서도 본 적이 없는 절정의 페이스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4.30%의 타석당 홈런 비율(HR%)은 종전 최고기록인 2003년 삼성 라이온즈의 4.06%를 뛰어넘는다. 이전까지 KBO리그에서 HR%가 4%를 넘었던 시즌은 2003년 삼성, 1999년 해태 타이거즈 단 두 번 뿐이다.

이제 역사상 세번째, 그리고 역대 최고의 자리를 정조준하고 있는 2017 SK 와이번스 타선과 역대 거포 구단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포 군단

올 시즌 SK를 제외한 역대 1위 2003년 삼성은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인 중심타선을 그대로 갖추고 있었다.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경신한 ‘라이언킹’ 이승엽과 마해영, 양준혁이 공포의 클린업의 주인공이었다. 이 셋을 제외하고도 진갑용, 브리또, 김한수, 박한이가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2003년 삼성은 KBO 역대 최고 홈런 타선 중 가장 삼진과 거리가 멀었다. 03 삼성의 타석당 삼진 비율(K%)은 12.6%였다. HR% 역대 상위 30개 시즌 중 13.0% 이하를 기록한 팀은 2003년 삼성이 유일하다. 당시 리그 평균(14.8%)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았다. 반면 올해 SK는 리그 평균보다 더 많이 삼진을 당하고 있다.

역대 HR% 상위 10개 팀의 삼진 비율과 리그 평균의 차이

다른 팀과 비교했을 때는 어떨까. 리그 K%와 팀 K%의 차이를 기준으로 할 때, HR% 역대 최상위 50개 팀 중에서 SK는 6번째로 삼진이 많은 편이다(리그 평균보다 2.1% 많음).

흔히 많은 삼진은 팀 득점의 걸림돌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SK는 ‘한 방의 힘’을 믿고 삼진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스윙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KIA 타이거즈에 이어 리그 득점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든든한 뒷모습의 한동민. 올해 거포 군단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사진=SK 와이번스)

 

외국인 의존도가 낮은 대포 군단

물론 제이미 로맥이 홈런포에 시동을 걸면서 앞으로 양상은 달라질 전망이다. 그러나, 최소한 6월까지는 SK는 역대 ‘홈런 공장’ 팀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외국인 의존도가 낮은 편이다.

역대 HR% 상위 10개 팀에서 외국인 홈런이 차지한 비중

올해 SK와 외국인 선수 제도가 없던 1997년의 삼성을 제외, 역대 HR% 상위 20개 시즌을 보낸 팀들은 대체로 외국인 선수에 대한 홈런 의존도가 높은 편이었다. KBO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타선을 보유했던 1999년 한화가 대표적이다. 99년의 한화는 댄 로마이어(45개)와 제이 데이비스(30개) 외국인 듀오가 팀 홈런(197개) 전체의 38%를 책임졌다. 20개 시즌에서 외국인 타자가 팀 홈런에 기여한 비중은 평균 18.9%에 달했다.

5월 중순까지 사실상 외국인 타자가 없었던 SK는 올해 팀 홈런 88개 중 9.1%에 불과한 8개만을 외국인 타자의 손으로 뽑아냈다. 역대 HR% 상위 20개 구단 중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외국인 타자 없이 홈런 공장을 꾸린 데는 팀의 기둥과 같은 최정은 물론, 비교적 새로운 얼굴인 한동민(15홈런)과 김동엽(11홈런)의 역할이 매우 컸다. 적은 데다 FA 자격 획득까지 오랜 시간이 남은 두 선수의 각성은 앞으로 오랫동안 SK 와이번스의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SK 와이번스의 기록이 대단하긴 하지만, 외국인 타자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은 최강 대포 군단은 따로 있었다. 박병호와 강정호가 타선을 이끌었던 2014년 넥센 히어로즈다. 2014시즌 넥센에서 외국인 타자의 홈런이 차지한 비중은 199개중 2개로 1.01%에 불과했다.

 

뜀박질을 거부한다, 걸어 나가길 좋아하는 타선

‘Three True Outcome(TTO)’이란 용어가 있다. 타석에서 나올 수 있는 결과 중 홈런, 삼진, 볼넷 이렇게 세 가지를 일컫는 말이다. 셋의 공통점은 타자가 열심히 뛸 필요가 없는, 인플레이 타구가 만들어지지 않는 결과라는 데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이 ‘TTO’의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타석에서 TTO가 발생하는 비율은 2012년 처음으로 30%를 돌파해,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33%를 넘어섰다.

올해 SK 타선은 메이저리그의 유행을 따라가듯이 삼진, 볼넷, 홈런을 굉장히 많이 뽑아내고 있다. 타석에서 세 가지 결과가 차지하는 비율, TTO%는 32.5%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리그 최고 수준인 것은 당연하고, 역대 홈런 타선 중에서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역대 HR% 상위 50개 팀 중 SK의 TTO% 순위는 3위에 자리하고 있다. 팬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처럼 ‘뛰기 싫어서 걷는 팀’인 셈이다.

역대 HR% 상위 50개 팀 중, TTO%가 가장 높았던 10개 팀

TTO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투수들의 발전 및 수비 시프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투수들의 구속이 빨라지면서 삼진이 늘어났고, 수비 시프트로 인해 인플레이 타구를 안타로 만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타자들은 삼진을 감수하면서 홈런 한 방을 노리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올해 KBO리그 역시 큰 틀에서 이런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트레이 힐만 감독의 믿음 속에 SK가 선보인 수비 시프트는 이제 KBO리그 모든 구단이 선보이는 전략이 됐다. 또한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지면서 삼진도 더 많아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인플레이 타구 안타 없이 한 점을 뽑아낼 수 있는 홈런의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홈런 비중이 높은 SK로서는 반가운 흐름이다.

SK 타선의 기둥 최정은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 중 TTO% 2위를 기록 중이다(사진=SK 와이번스)

 

SK 와이번스를 보면 탬파베이 레이스가 떠오른다?

높은 TTO%를 기록하고 있는 SK를 보면 메이저리그의 한 구단이 떠오른다. 40%에 달하는 TTO%를 기록하고 있는 탬파베이 레이스다.

삼진, 볼넷, 홈런의 비중이 많은 것 밖에도 탬파베이와 SK는 여러모로 닮아있다. 리그 최고 수준 수비력을 가진 중견수(김강민-케빈 키어마이어)가 있다는 점, 팀 득점에서 홈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 저연봉 선수의 활약이 돋보인다는 점, 팀의 중심을 잡고 있는 3루수(최정-에반 롱고리아)가 있다는 점, 수비 시프트를 리그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구단에 속한다는 점 등이다.

탬파베이는 지난해부터 타자들에게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적인 홈런 스윙’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해 시행착오를 겪은 전략은 올해 한층 다듬어져 드디어 성과를 내고 있다. 탬파베이는 5월까지 메이저리그 전체 홈런 1위, 득점 8위에 올라있다. 연봉 총액 최하위권 구단의 짜릿한 역전극이다.

SK 와이번스 역시 비슷한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라 할 수 있는 최정과 김광현을 붙잡긴 했으나, 그동안 SK는 이렇다 할 외부 FA 영입에 나선 적이 없다. 외국인 선수 영입에도 많은 돈을 투자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올해 새로운 얼굴의 발굴과 기대주 성장에 성공하며 괜찮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탬파베이와 달리 리그에서 재정적인 여건이 괜찮은 SK라면, 앞으로 더 많은 투자를 통해 더 큰 성과를 거둘 가능성도 충분하다.

기록 출처: STATIZ

2 Trackbacks / Pingbacks

  1. SK의 반등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2) - 야구공작소
  2. [야구공작소 17시즌 리뷰] SK 와이번스 - 봄을 알리는 포성 - 야구공작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