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을 이끄는 다국적 파워, 그리고 선구자들

[야구공작소 오상진] 2017년 4월 26일(현지시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홈구장 PNC 파크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 4회초 대수비로 나선 피츠버그 내야수 기프트 은고페이가 그라운드를 밟으면서 14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아프리카 출신 선수가 탄생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은고페이는 2008년 9월 피츠버그와 계약을 맺은 뒤 약 9년 만에 꿈에 그리던 빅리그 무대를 밟았고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메이저리거’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프리카 최초의 메이저리거 기프트 은고페이(사진=flickr Bryan Green)>

현재 메이저리그는 약 20여 개국의 선수들이 나라를 대표해 활약하고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수엘라, 쿠바, 푸에르토리코 등 중남미의 야구 강국들 외에도 유럽, 아시아까지 다양한 출신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지역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모이게 된 것은 세계 최고의 리그에 먼저 발을 디뎠던 선구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를 이끄는 ‘라틴 파워’의 선구자

미국 프로 무대에서 뛴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출신 선수는 스티브 벨란으로 알려져 있다. 쿠바 출신의 벨란은 1871년 내셔널 어소시에이션 소속 트로이 헤이메이커스에 입단했고 1873년 뉴욕 뮤츄얼스까지 3시즌 동안 선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벨란이 뛰었던 시기는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의 양대 리그 체제가 자리잡기 훨씬 이전이었다. 이후 1902년 콜롬비아 출신의 루 카스트로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지만 출생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같은 해 8월 데뷔한 칙 페드로에스는 앞서 데뷔한 벨란과 같은 쿠바 출신이지만 출생지만 쿠바일 뿐 너무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와 사실상 미국인에 가까웠다. 때문에 일부 야구역사학자들은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메이저리그 진출 시점을 1911년으로 보고 있다. 그 해 신시내티 레즈에 동시에 입단한 라파엘 알메이다와 아만도 마산스는 모두 쿠바 출신으로 알메이다는 신시내티에서만 3시즌을 뛰었고 마산스는 세인트루이스 테리어스와 뉴욕 양키스를 거치면서 8시즌을 뛰며 통산 655경기 타율 .269, 2홈런 221타점을 기록했다.

쿠바로부터 시작된 라틴 아메리칸의 메이저리그 진출의 계보는 멕시코가 이어받았다. 멕시코 출신의 외야수 멜 알마다는 1933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데뷔해 워싱턴 세너터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브루클린 다저스를 거치면서 7시즌을 뛰었다. 그는 통산 646경기 타율 .284, 15홈런 197타점 56도루를 기록했다.

알마다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939년에는 베네수엘라 출신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탄생했다. 워싱턴 세너터스에서 데뷔한 우완투수 알렉스 카라스켈은 1943년 11승을 비롯해 통산 8시즌 동안 50승 39패 평균자책점 3.73의 좋은 기록을 남겼다. 그는 194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마지막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는데 1년 뒤 같은 팀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그의 조카 치코 카라스켈은 1951년 라틴 아메리카 출신 최초로 올스타전 무대를 밟기도 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수 비율을 차지하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많이 늦은 편이었다. 1956년 뉴욕 자이언츠에서 데뷔한 최초의 도미니칸 메이저리거 아지 버질은 9시즌 동안 5개의 팀에서 뛰었다. 그의 주 포지션은 3루수였지만 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뛴 경험이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그의 통산 기록은 324경기 타율 .231, 14홈런 73타점으로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1958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최초의 흑인 선수로 팀의 인종 장벽을 허무는 데 기여했다.

<라틴 아메리카 선구자들의 통산 성적>

아시아를 넘어 빅리그로

<아시아 최초의 메이저리거 무라카미 마사노리(사진=flickr jcccnc)>

일본 최초의 메이저리거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노모 히데오를 떠올릴 것이다. 노모는 1995년 데뷔해 독특한 투구 폼과 위력적인 포크볼로 돌풍을 일으키며 내셔널리그 신인왕까지 차지하는 등 개척자의 역할은 했지만 사실 최초의 일본인 메이저리거는 아니었다. 일본 그리고 아시아 최초의 빅리거는 그보다 31년이나 앞선 1964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데뷔한 투수 무라카미 마사노리다.

그는 1963년 난카이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프로에 데뷔했고 이듬해 샌프란시스코 산하 싱글 A팀 프레스노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마이너에서 11승 7패 평균자책점 1.78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기록했고 그 해 9월 1일 뉴욕 메츠와 원정경기에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다. 그는 데뷔 첫 해 9경기에서 1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80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듬해에도 45경기 4승 1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3.75로 불펜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원 소속팀 난카이와의 계약 문제 때문에 짧은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복귀했다. 무라카미는 메이저리그 2시즌 동안 54경기에 등판해 5승 1패 9세이브 평균자책점 3.43의 좋은 기록을 남겼다. 아마 그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아시아 출신 선수들의 빅리그의 도전 시기가 좀 더 당겨졌을 지도 모른다.

 

< 코리안 특급 박찬호(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무라카미가 데뷔한지 30년 뒤인 1994년, 아시아 출신으로는 2번째이자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코리안 특급 박찬호였다. 그는 한양대 시절 국제대회에서의 활약으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었고 1994년 1월 LA 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 해 4월 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데뷔전을 치르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17번째로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빅리그로 직행한 선수가 됐다. 1996년부터 잠재력을 꽃피우기 시작한 그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며 다저스의 특급 선발 투수로 자리잡았다. 이후 굴곡이 있었지만 2010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17시즌을 보내며 아시아 출신 최다승인 124승의 기록을 남겼다.

박찬호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발을 디딘 뒤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추신수 등이 배턴을 이어받으면서 한국 선수에 대한 평가는 점점 더 높아졌다. 이후 KBO 리그에서 오랜 시간 활약한 류현진, 강정호, 오승환, 김현수 등이 연착륙에 성공하며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의 또 다른 야구 강국 대만 출신 선수의 메이저리그 입성은 일본과 한국에 비해 많이 늦었다. 대만 최초의 메이저리거 첸진펑은 1998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9년 다저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는 싱글 A부터 트리플 A까지 단계를 밟은 뒤 2002년 9월 14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 대타로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인내의 시간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는 4시즌(2002-2005) 동안 19경기에 출전해 타율 .091(22타수 2안타) 2타점의 초라한 성적만을 남긴 채 대만 프로야구로 복귀했다. 대만은 이후 아시아 투수 한 시즌 최다 승(19승)을 기록한 왕첸밍, 현재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선발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첸웨이인 등 몇몇 투수들은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타자 쪽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둔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 선구자들의 통산 성적>

야구의 불모지에서 온 선구자들

야구의 불모지라고 하면 보통 유럽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유럽 출신 선수들은 1900년대 이전부터 꾸준히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아왔다. 축구 등 다른 종목에 비해 인기가 없었을 뿐 생각보다 오랜 야구 역사를 지닌 곳도 적지 않다. 지금부터 소개될 선수들의 출신지는 야구와 정말 관계가 없어 보이는 나라이다.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메이저리거 은고페이가 데뷔하기 이틀 전 피츠버그는 또 다른 최초의 선수를 탄생시켰다. 동유럽 연안에 위치한 리투아니아 출신 최초의 메이저리거 도비다스 네브로스카스는 4월 24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4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며 감격스러운 데뷔전을 치렀다. 2이닝 2피안타 1삼진 1실점을 기록한 네브로스카스는 이틀 뒤 은고페이가 승격될 때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면서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의 데뷔는 리투아니아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 됐다.

세계 최고의 육상 강국 자메이카 출신의 메이저리그는 역사상 단 4명뿐이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빅리그 무대를 밟은 선수는 올스타 3회 선정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칠리 데이비스다. 1981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데뷔한 그는 풀타임 첫해인 1982년부터 16시즌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이라는 위대한 기록을 세웠다. 그는 빅리그에서 통산 19시즌 2436경기를 뛰며 350홈런 1372타점 142도루 OPS .811의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 축구의 나라 브라질 출신의 얀 곰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축구의 나라 브라질은 지금까지 3명의 메이저리거를 배출했는데 가장 먼저 빅리그에 데뷔한 선수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포수 얀 곰스다. 브라질 상파울루 출신인 곰스는 어린 시절 축구가 전부인 동네에서 우연히 쿠바 출신 유소년 야구코치를 만나 야구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그는 2012년 5월 17일 뉴욕 양키스전에 출전하면서 최초의 브라질 출신 메이저리거가 됐다. 2014년에는 21홈런을 기록하며 실버슬러거를 수상하기도 했으며, 올해도 여전히 클리블랜드의 주전 포수로 뛰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야구의 세계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창설, 해외에서의 메이저리그 경기 개최 등 야구 팬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외를 거점으로 유망주 센터를 설립해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인재들을 발굴함으로써 유망주 육성과 동시에 야구에 관심이 없던 나라들도 자국 출신 선수가 활약하는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점차 결실을 맺었고 아시아,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 최초의 선수까지 등장했다. 최근에는 잠재적으로 세계 최고 시장이 될 수 있는 중국의 투수 유망주가 피츠버그와 계약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처럼 세계화를 향한 메이저리그의 노력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더 많은 나라에서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출처 : Baseball-Reference, Baseball-almanac.com, 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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