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궁.해] 왼쪽으로 돌든, 오른쪽으로 돌든 뭣이 중헌디?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는 현역 야구 심판이 심판에 대한 억울함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야구 심판과 규칙에 대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소에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2024년 4월 7일 광주에서 열린 삼성과 KIA와의 경기 5회초. 1사 상황에서 타석에 나온 김재혁은 평범한 유격수 땅볼을 굴렸는데 이를 유격수 박민이 1루에 미치지 못하는 송구를 범하며 공이 1루수 서건창 뒤로 빠졌다. 김재혁은 송구가 빠진 것을 확인하고 1루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데, 공을 주운 김선빈이 갑작스럽게 태그를 시도했다. 그런데 1루심이었던 구명환 심판은 김재혁에게 아웃을 선고했다. 왜일까?

< 저는 억울해요 >

 

150년 전부터 허용된 1루 오버런

상황을 찬찬히 살펴보자. 김재혁은 유격수 땅볼을 치고 1루에서 살기 위해 전력질주를 했다. 그러나 그는 1루를 밟고 멈추지 않고 약 5미터 정도 더 앞으로 나갔다. 그러면 1루 베이스를 지나친 상태에서 태그 당했기에 아웃인 것일까? 

정답은 ‘아니오’다. 공식야구규칙 5.09(b)(4) [예외]는 ‘타자주자가 1루로 뛰어갈 때는 곧 돌아오는 것을 조건으로 오버런 또는 오버슬라이딩하더라도 태그 아웃되지 않는다’라고 나와 있다. 김재혁은 1루를 제대로 밟고 그 너머로 달렸으며, 곧바로 1루로 돌아오고 있었기에 이 규칙에 따라서 태그 아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규칙은 야구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매우 오래된 규칙이다. 타자주자가 1루를 밟고 지나치는 것이 허용된 첫 순간은 무려 1870년이다. 죽기 싫어서 열심히 달리는 타자가 베이스 앞에서 급하게 멈추기보다는 최고속도를 잠시나마 더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조치가 150년 전부터 도입된 것이다. 1876년 창설된 내셔널 리그(National League)의 첫 규칙집에는 타자주자가 1루를 지나쳐도 되는 상황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내셔널 리그 프로페셔널 야구단 규칙집(Playing Rules of the National League of Professional Base Ball Clubs), 1877

4장 – 주루, 4항. 1루 오버런(Rule VI. – Running the Bases. Sec.4 Overrunning First Base)

The player running to first base shall be at liberty to overrun said base without his being put out for being off the base after first touching it, provided that in so overrunning the base he make no attempt to run to second base. In such case he must return at once and retouch first base…

1루로 달리는 선수는 1루에 우선 닿은 후 베이스를 지나쳐 달릴 수 있으며, 오버런한 것이 2루로 가려는 시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1루에 떨어졌다는 이유로 아웃되지 않는다. 단 그는 곧바로 돌아와 1루에 다시 닿아야 한다. 

옛날옛적에 만들어진 이 규칙은 현대야구에 변화 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앞서 언급한 공식야구규칙 5.09(b)(4)[예외]와 함께 타자주자의 1루 오버런을 다루는 규칙은 공식야구규칙 5.09(b)(11), 그리고 5.09(c)(3)이다. 

공식야구규칙 5.09(b)(11)

다음의 경우 주자는 아웃된다. 주자가 1루를 오버런 또는 오버슬라이딩한 뒤 곧바로 1루로 귀루하지 않았을 경우

  • 이때 주자가 덕아웃이나 자기의 수비위치로 가려고 하였을 경우 야수가 주자 또는 베이스에 태그하고 어필하면 아웃이 된다.
  • 그리고 또 주자가 2루로 진루하려는 행위를 하였을 때 태그당하면 아웃이 된다.

공식야구규칙 5.09(c)(3)

다음의 경우 어필이 있으면 주자는 아웃이 된다.

  • 주자가 1루를 오버런 또는 오버슬라이딩한 뒤 곧바로 되돌아오지 않아 몸 또는 베이스를 태그당하였을 경우

 

아무튼 어필 아웃이 가능합니다

공식야구규칙 5.09(b)(11) 전반부와 5.09(c)(3)에 따르면 ‘주자가 1루를 오버런 또는 오버슬라이딩한 뒤 곧바로 1루로 귀루하지 않았을 때 수비가 주자의 몸 또는 베이스(1루)를 태그하고 어필한 경우’ 아웃이다. 곧바로 1루로 귀루하지 않는 경우는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오버런을 한 타자주자가 그 자리에 멈춰서 자신의 보호장구를 벗는다든가, 아웃당했다 생각해서 덕아웃 쪽으로 들어가든가, 혹은 살았다는 기쁨에 겨워 만세를 부른다든가 등이다. 오버런 혹은 오버슬라이딩을 한 이유로 타자주자가 부상을 당해 1루로 곧바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면 그 순간 타임이 불릴 것이기에 예외다. 

한편 여기서 ‘어필 아웃’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필 아웃은 공을 잡은 상태에서 문제를 일으킨 주자를 태그하거나 그 주자가 문제를 일으킨 베이스를 밟아 심판에게 말 그대로 ‘어필’해서 아웃 카운트를 잡는 방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어필 아웃의 사례는 ‘리터치 실패’가 있으며, ‘누의 공과’도 어필 아웃 대상이다. 어필 아웃을 따내기 위해서 수비는 투수가 다음 투구를 하기 전 또는 다른 플레이를 하거나 플레이를 시도하기 전에만 심판에게 아웃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2016년 9월 10일 롯데와 LG의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 3회초 롯데의 당시 신인 포수인 김준태는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친다. 그런데 갑자기 1루를 밟은 김준태가 3루측 덕아웃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걸 본 LG는 런다운 플레이를 진행해 김준태를 1루와 2루 사이에서 잡았다. 

< 맥락을 놓치고 덕아웃으로 향하는 김준태 >

여기서 김준태는 이론상 네 가지 방법으로 죽을 수 있었다. 

① 공식야구규칙 5.09(b)(2)에 따라 주자가 다음 베이스로 가려고 하는 의사를 명백히 포기한 경우 심판이 해당 주자에 아웃을 선고할 수 있음 

공식야구규칙 5.09(b)(4)에 따라 볼 인 플레이 중에 주자가 베이스에서 떨어져 있다가 태그당한 경우 – LG의 선택

공식야구규칙 5.09(b)(11) 전반부에 따라 타자주자가 1루를 오버런한 후 곧바로 1루로 귀루하지 않았을 경우 수비는 어필로 아웃을 확인할 수 있음

④ 공식야구규칙 5.09(b)(11) 후반부에 따라 주자가 2루로 진루하려다가 태그당한 경우  – LG의 선택 

물론 이 네 가지 방법 중 가장 확실하게 아웃을 따는 방법은 베이스에서 떨어진 주자를 태그하는 2번과 4번이다. 1번은 주자가 주루를 포기했다는 심판의 판단이 있어야만 하고 심판이 선제적으로 아웃을 불러야 한다. 3번은 어필 아웃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주자가 덕아웃으로 가는 것처럼 하다가 2루에서 살아버린다면 반대로 수비의 본헤드 플레이라고 모두가 착각할 것이다. 세 번째 방식으로 아웃을 잡으려고 했다면 LG는 협살을 시도하지 않고 공을 잡은 채 1루를 밟고 심판에게 확인을 요청하기만 해도 됐다. 

 

1루에서 오버런하면 무조건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고?

수비가 1루에서 오버런한 타자주자를 죽일 때 적용되는 규칙은 공식야구규칙 5.09(b)(11)의 후반부이다. 왜냐하면 그가 ‘2루로 진루하려는 행위를 하였을 때’는 베이스에서 떨어져 있을 때 태그만 해도 아웃이 되기 때문이다. 서두에 언급한 김재혁이 죽은 이유도 이 조항 때문이다. 

그러면 오버런한 주자가 2루로 진루하려는 행위란 무엇일까? 쉽게 말해서 어떤 위치에서든 2루 방향으로 몸이 이동한 것이다. 고작 반걸음이라도, 혹은 움직이는 척만 해도 조건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물론 타자주자가 2루로 진루를 하려고 했는지 판단하는 건 전적인 심판의 권한이지만, 이 규칙에 대해서는 심판들 사이에서 공통된 기준이 존재한다.

사례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2020년 6월 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LG의 경기. 3회초 지금은 이름을 말하기 어려운 LG의 모 선수가 내야안타를 친 후 1루에 돌아가는 과정에서 죽고 말았다. 이 선수는 1루를 지나친 후 별 큰 동작을 취한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당시 삼성이었던 김상수가 태그하자,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다. 

< 이ㅇㅇ의 왼발을 주목해야 한다 > 

답은 그의 왼발에 있다. 김상수와의 충돌을 피하고 공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하는 것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공이 빠졌다고 생각해 이 선수는 왼발을 잠시나마 2루 쪽으로 향하게 뒀다. 곧바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속도를 멈추는 행동을 하지만, 이미 상황은 뒤바뀌었다. 오버런으로부터 자유로운 주자에서 베이스에 붙어야만 살 수 있는 주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김재혁으로 돌아가자. 

< 김재혁은 몸 전체가 2루 쪽으로 향했다 >

김재혁이 1루 뒤로 넘어간 공을 볼 때의 위치를 보면 왼발은 3피트 라인의 연장선 안쪽에, 오른발은 3피트 연장선 바깥쪽에 있다. 그러나 잠시 후 그의 몸 전체가 3피트 라인의 연장선과 파울선 사이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재혁 역시 몸이 2루 방향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었다.

혹자는 이런 상황에서 타자주자가 1루로 돌아갈 때 무조건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필자가 김재혁의 상황을 처음 알게 된 유튜브 쇼츠 영상의 제목도 “1루에서 애매할 땐 오른쪽으로 돌아야하는 이유”였고, 해당 영상에 댓글에도 왼쪽으로 돌면 2루로 뛸 의도가 있다고 해서 아웃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둘 다 틀렸다. 타자주자가 어느 방향으로 돌아서 1루로 가는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주자의 오른쪽 회전과 관련해 메이저리그에서는 어떻게 판정을 내렸을까? 

< 옐리치는 자연스럽게 파울라인을 넘었고 그 후 오른쪽으로 돌았다 >  

위 사진은 2021년 7월 10일 밀워키에서 열린 브루어스와 레즈의 경기 장면이다. 타자인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기습번트를 댄 후 1루에서 오버런했는데, 송구가 1루쪽 펜스를 맞고 튕겨 나와 자기 앞에 굴러온 것을 보고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1루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1루심 존 립카는 옐리치에게 아웃을 선고했다. 그가 1루를 지난 후 정면을 본 상태에서 두 다리를 2루 방향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 푸이그는 파울라인도 넘지 못했지만 좌측으로 몸을 옮긴 건 똑같다 >

10년 전인 2014년 5월 1일 다저스의 야시엘 푸이그가 오버런하고 태그당해 죽은 장면에서도 푸이그는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러나 1루로 돌아가기 이전에 푸이그는 2루에 다가갔기 때문에 안전하게 돌아갈 권리를 상실했다. 

2024년 3월 30일 코너 웡의 내야안타 장면은 오버런한 주자가 단순하게 왼쪽으로 돌기만 한다면 아웃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웡은 아웃 판정을 받자 곧바로 비디오판독을 요청하기 위해 자신의 덕아웃을 향해 몸을 왼쪽으로 돌렸다. 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던 2루수 딜런 무어는 1루수 타이 프랑스에게 웡을 태그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웡이 오버런한 후 한 번도 2루와 가까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코너 웡은 1루를 지나가자마자 바로 왼쪽으로 돌았다 >

 

어쩌면 대부분이 잘못 알고 있는 규칙

정리하자면 심판은 타자주자의 움직임으로 2루 진루 의사 여부를 확인한다. 자연스러운 진로에서 조금이라도 틀어지는 모습을 포착해 타자주자의 권리 유지와 상실을 판단하지, 그가 시계방향으로 돌든 반시계방향으로 돌든 어떻게 1루로 돌아가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공식야구규칙 5.09(b)(11)에서는 2루로 진루하려는 행위라는 조건만 나왔지, 타자주자가 오른쪽으로 돌아야 안전하다나 왼쪽으로 돌면 위험에 노출된다는 말이 없다. 

이 규칙은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많은 오해를 사고 있는 규칙이다. 미국 유명 심판 관련 매체인 Umpire Bible에서도, 전 MLB 심판 테드 바렛도 ‘1루에서 오버런한 주자가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다고 지적한다. 2루 방향으로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왼쪽으로 돌아서 1루로 돌아오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데도 여전히 많은 선수와 코치, 그리고 심판 또한 이 규칙을 잘못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오버런한 후 오른쪽으로 돌아서 1루로 귀루하는 것이 괜한 오해를 덜 사겠지만, 오른쪽으로 돌기 전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 야구에서 규칙 적용과 해석이 어려운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규칙책에는 책에 사용된 수많은 용어와 표현에 대한 정의가 부족하다. 오버런에 대한 이 규칙도 마찬가지다. 150년 전 ‘2루로 가려는 시도’라는 조항이 처음 생겼는데, 규칙책 어디에도 주자의 ‘가려는 시도’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정의된 적이 없다. 이제 웬만큼 심판들 사이에서 공통된 기준을 확보한 용어와 표현 정도는 규칙책에 새롭게 추가해 주길 희망한다. 

 

참고: KBZ_Baseball, 비디오머그, Umpire Classroom, 네이버스포츠, Close Call Sports, MLB, Umpire Bible, USA Baseball, Waggoner, G., Moloney, K., & Howard, H. (2000). Spitters, beanballs, and The incredible shrinking strike zone: The stories behind the rules of baseball. Triumph Books;, Miklich, Eric., (2005). The Rules of the Game: A Compilation of the Rules of Baseball 1845-1900. 19cbaseball.com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민경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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