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재성 >
지난 3월 26일,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롯데 황성빈이 보여준 행동이 논란이 됐다. 당일 경기 5회 초 1사 후 안타로 출루한 황성빈은 5~6번 연속으로 스타트 모션을 취했다. 상대 투수 양현종의 심리를 흔들어 놓으려는 의도로 보였다.
그 모습을 정면으로 지켜보던 양현종은 잠시 언짢은 표정을 지었으나 한 차례의 타임 요청 후 침착하게 투구를 이어갔고,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타임 시간에 1루 베이스 코치와 이야기를 나눈 황성빈은 더 이상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날 경기 이후, 해당 장면은 경기 결과보다 더 큰 화제가 됐다. 야구 하이라이트를 올리는 SNS 계정들은 온통 황성빈 영상으로 도배됐다. 야구팬의 의견은 ‘과했다’와 ‘주자의 역할을 한 것뿐’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대부분은 비판적이었다. 황성빈의 동작은 상대 투수를 기만하는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비칠 수 있었다. 과한 세레머니나 블루투스 타법 등으로 인해 쌓인 ‘비호감 이미지’도 한몫했다. 어떤 기사에서는 이를 두고 ‘깐족 플레이’, 심지어 ‘감독 이미지에 먹칠을 한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태형 롯데 감독은 다음 날 인터뷰에서 “불필요하게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이라며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링크)
< 3월 26일 롯데와 기아의 경기에서 논란이 됐던 장면 >
황성빈의 행동, 상대에 대한 기만이었나
그렇다고 해서 황성빈의 행동이 상대에 대한 기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제로 도루를 시도하지 않더라도 누상에서 스킵 동작이나, 페이크 스타트를 거는 등 상대 배터리를 흔드는 것은 주자의 역할이다. 당연히 규정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KBO 공식야구규칙 6.01(a) 타자 또는 주자에 의한 방해).
2023년 4월 11일 한화와 기아의 광주 1차전 경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연장 10회 초 2사 2, 3루 상황에서 기아 투수 김기훈이 던진 공이 폭투가 되어 한화가 5:4로 앞서나갔다. 문제가 된 장면은 그다음이다. 이어진 승부에서 3루 주자 한화 문현빈이 스타트 후 귀루하는 동작을 반복한 것. 경기가 끝나고 기아 김선빈은 한화 정우람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기아 측은 김선빈이 ‘선수협 총회서 베이스 부근 불필요한 행위로 투수를 자극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다’라고 설명했다.
< 2023시즌 4월 11일 한화와 기아의 광주 1차전 문현빈의 주루플레이 >
중계 화면에 길게 잡히지는 않았지만, 당시 문현빈의 동작은 기아 배터리가 신경 쓸 수밖에 없을 만큼 컸다. 홈스틸을 시도할 게 아니라면 굳이 필요한 동작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동작이 ‘불필요’했는지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한화는 한점이라도 더 도망가야 했고, 상대 투수는 방금 폭투로 실점했다.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이대형 해설은 “지금 3루 주자가 투수의 신경이 쓰이게 하고 있다”라고 언급했고, 경기 후 대화를 나눈 양 팀 주장은 문현빈의 동작이 아무 문제 없는 플레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그 상황을 알고 있던 수베로 전 한화 감독 역시 “그런 동작(페이크 스틸)은 야구의 일부고 굉장히 일상적인 일”이라며, 오히려 “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그는 한화로 오기 이전, 마이너리그에서 수차례 감독직과 밀워키 브루어스의 주루코치를 역임했다. 미국 야구에 잔뼈가 굵은 지도자가 보기에도 아무 문제가 없는 동작이었다.
만약 전혀 도루를 시도할 만한 상황이 아니거나, 현실적으로 도루를 할 수 없는 주자가 이와 같은 행동을 했다면 그것은 상대에 대한 기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황성빈은 언제든 도루를 시도할 수 있는 주자다. 그리고 당시 양 팀 선발투수는 5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고 있었다. 한 점을 뽑는 게 매우 중요했고 실제로 경기는 2:1 한 점 차이로 승패가 결정 났다. 역동작에 걸려 아웃되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상대를 기만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상대 투수 양현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순간 의식되고 신경이 쓰였다”고 하면서도, “그 선수는 투수를 괴롭혀야 하는 입장이고, 그게 그 선수의 할 일이다.”라고 덧붙였다(링크)
야구에 불문율이 존재하는 이유는 상대를 존중하고 불필요한 플레이로 인해 야기되는 부상이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불필요하게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은 그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 상대를 자극하는 동작이 무엇인지, 황성빈의 몇 번째 동작부터가 불필요한 동작인지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다. 더군다나 승부가 접전인 상황에서조차 상대의 기분을 배려해야 한다면, 이는 오히려 야구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마치며
선수들의 플레이를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린다.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웃기고 재밌다는 이유로 비신사적 행동이 용인돼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황성빈의 행동은 분명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 선수의 최선을 다한 플레이가 우스꽝스럽고 평소 이미지가 안 좋다는 이유로 비난과 조롱을 받아선 안 된다. ‘누가 봐도’나 ‘메이저리그였다면’이라는 가정은 그를 비난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못 된다.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고, 팬들은 그 플레이를 볼 권리가 있다.
참고 = 스포츠조선, SPOTV, 국제신문, KBO, 일간스포츠, 스포츠경향
야구공작소 김유민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금강, 민경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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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ㅂㅊㅅ
기준이 참 모호하네요
게릿 콜같으면 걍 빈볼던졌음
문제 없다고 생각은 하는데 기분 나빴으면 빈볼 맞춰도 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