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캠프를 마무리합시다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현서 >

시즌이 끝나도 야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 마무리 캠프가 남았기 때문이다. 마무리 캠프는 KBO 모든 구단이 진행하는 연례행사다. 스프링 캠프가 2월에 열리는 걸 감안했을 때 다음 시즌 준비를 위한 첫 스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약 한 달간 진행되는 마무리 캠프에서 감독들은 하나같이 훈련량 증가를 예고한다. 그 말은 곧 시즌 동안 훈련이 적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팀의 훈련량이 정말 부족했을까? 그리고 마무리 캠프에서 단순히 ‘더’ 훈련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양에만 집착하는 비효율적 훈련 시스템

여전히 많은 국내 지도자가 훈련의 절대적인 양을 중시한다. 엘리트 운동선수 학습권 보장 때문에 요즘 선수 수준이 떨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여러 사례 및 연구 결과들은 ‘얼마나’ 훈련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훈련하는가를 더욱 강조한다.

< 삼성 라이온즈 2023년 스프링 캠프 훈련 스케줄 >

캠프 때마다 국내 구단의 훈련 세션은 대체로 비슷하다. 특별할 것 없이 그저 많이 던지고, 치고, 받을 뿐이다. 매년 언론 기사와 구단 자체 유튜브를 통해 훈련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강도 높은 펑고로 선수들은 파김치가 돼 누워있다. 감독, 코치, 팬 모두 이런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

한화 이글스 수석 트레이너 이지풍 코치는 현행 마무리 캠프가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1시간을 하든 20시간을 하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훈련을 시키면 시간 상관없이 마무리 훈련에 동의하겠다. 하지만 마무리 캠프에서 지금까지와는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훈련을 시킬 건지 물었을 때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2군 선수들은 어차피 1년 내내 2군에서 훈련 강도가 높은데 마무리 훈련에서 같은 훈련을 조금 더 시킨다고 좋아진다는 논리에 납득할 수가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링크)

이는 코치진이 다양한 훈련 방식을 접할 기회 자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본인들도 선수 시절 똑같은 훈련만 반복해 왔고 코치가 되고도 교육의 자리가 부족했다. 물론 KBO는 코치 아카데미를 통해 지도자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다만 이러한 아카데미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 2020 KBO 코치 아카데미 스케줄 >

분명 좋은 내용이지만 응급처치와 재활 트레이닝과 같은 항목은 코치의 역할과 다소 동떨어진 파트다. 또한 교육 대부분이 이론적인 만큼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처럼 빈약한 코치 육성 시스템은 곧 마무리 캠프의 질적 저하로도 이어진다.

즉 현재 KBO는 훈련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상태다. 여기서 단지 훈련 시간만 조금 늘렸을 뿐인 마무리 캠프가 효과적일까? 한번 MLB의 훈련은 어떤 참고해 보자. MLB는 일반적으로 KBO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리그다. KBO는 2024시즌을 앞두고도 MLB에서 시행 중인 제도들을 대거 도입했다. 그만큼 KBO는 MLB를 하나의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훈련 시스템 역시 MLB를 잘 따라 하고 있을까? 

 

지친 몸을 회복하고 각자에게 필요한 걸 선택과 집중

MLB 또한 시즌이 끝나면 유망주들을 소집해 따로 훈련한다. 다만 이때 팀에서 진행하는 훈련은 시즌 때와 달리 특수한 목적을 갖는다. 시애틀 매리너스가 그 예로 2017년부터 ‘High Performance’라는 캠프를 이어오고 있다. 선수들이 멘탈, 리더십, 식이요법, 인성, 근력 등 다양한 파트를 강화하도록 돕는다.

< 캠프에서 직접 음식을 만드는 시애틀 선수들 >

2017년 첫 캠프에서는 근육량 증가가 목표였다. 적절한 식이요법과 운동을 배웠고 그 결과 다음 시즌 참가 선수들의 제지방 근육량(순수 근육)은 4.1%나 늘었다. 또한 아침 식사 전에는 현재 몸 상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예를 들어 선수가 다리 쪽에 불편함을 느끼면 그날은 민첩성 관련 훈련을 생략하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요소까지 데이터로 기록하며 육성에 활용했고 선수들은 높은 만족도를 드러냈다.

수면과 같은 휴식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일주일 동안 누가 가장 많은 잠을 자는지 컨테스트를 열었고 우승자에게는 NBA 티켓을 제공했다. 우승자 호르헤 베니테즈는 하루 평균 무려 11시간을 잤다. 주말에는 다 함께 지역 사회에 봉사활동을 나가며 이타심을 기르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2019년 프로 데뷔 시즌을 보낸 오스틴 셴튼은 캠프 합류 후 기존에 하던 펑고와 타격 연습 등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했다.

“몸이 힘들 때 더 이상 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이곳에 와서 야구 걱정 없이 몸과 마음을 가꾸는 데 집중할 수 있어 기쁩니다. 저는 이 캠프의 팬입니다.” (링크1) (링크2)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KBO도 바뀌어야 한다

다행히 국내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보인다. 지금은 야인이지만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 허문회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대표적이다. 두 감독은 마무리 캠프에서 훈련의 절대적인 양을 강조하지 않았다. 이동욱 감독은 훈련의 질적인 측면을 강조했으며 허문회 감독은 휴식을 핵심 테마로 삼았다. (링크1) (링크2)

훈련 방식 다양화도 눈에 띈다. NC는 2022년 마무리 캠프에서 머신을 이용한 수비 연습을 진행했다. 일반적인 백스핀 펑고 타구와 달리, 실제 땅볼 타구처럼 탑스핀을 만든다는 장점이 있다. 롯데 또한 2023년 마무리 캠프에서 자동으로 토스를 올려주는 장비를 설치했다. 새로 부임한 김태형 감독은 타자들이 애를 먹는 모습에 흡족함을 표했다.

코치라운드 최승표 대표는 이와 같은 더 나은 코칭 문화를 위해 2020년부터 우리야구 컨벤션을 개최해 왔다. 미국 ABCA(American Baseball Coaches Association)를 참고해 야구계 다양한 관계자가 모일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ABCA는 매년 컨벤션에서 여러 드릴을 소개한다. 투구, 타격, 수비 등 실제 현장에서 활용할 만한 연습 방법 등을 공유한다. 이때 누구도 훈련량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선수가 더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 2024 ABCA 컨벤션 >

피츠버그 파이리츠 기술 습득 코디네이터 마타인 나이호프는 왜 훈련 시 드릴의 다양성이 중요한지 설명했다. 그 이유에 대해 “우리는 움직임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에서 생기는 감각 정보로부터 배웁니다. 그렇기에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움직임의 차이가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우리야구 컨벤션과 같은 노력이 당장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 비상식이 현재는 상식으로 바뀐 수많은 사례처럼,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자연스레 많은 게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중 하나로 마무리 캠프의 획기적인 변화도 있지 않을까?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는 야구계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 = 코치라운드, MLB.com,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유튜브, 시애틀 매리너스 트위터,  ABCA 트위터

야구공작소 정세윤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현서

에디터 = 야구공작소 윤형준, 민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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