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차승윤] 사실상 첫 FA대란이었던 2013년 스토브 리그에서 한화는 정근우와 이용규를 각각 70억, 67억에 영입하며 세간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이제 그로부터 3년이 흐르고 어느덧 이적생들의 계약 마지막 시즌이 시작되었다. 이적 당시 32살이었던 정근우도 어느덧 30대 후반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쇠화가 걱정되는 정근우는 여전히 한화 최고의, 아니 역대 이글스 최고의 2루수이며 한화는 그를 어떻게든 붙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과연 한화의 2루는 계속 평안할 수 있을까?
Living Legend, 정근우
최근 KBO는 전례 없는 2루수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14년 200안타와 MVP를 거머쥔 서건창, 5시즌 통산타율 0.314와 도루 125개를 기록하며 동년배 최고의 리드오프로 자리잡은 박민우, 2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한 박경수 등 각 팀의 주전 2루수들은 다른 어느 포지션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성적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 화려한 2루수 진용 중 가장 베테랑이면서도 이들 못지 않은 성적을 기록한 선수가 바로 정근우다. 그는 2016시즌에도 타율 0.310에 18홈런, 22도루를 기록하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정근우의 화려한 성적은 통산 기록에서 더욱 빛난다. 타율 0.303, 1531안타, 95홈런, 344도루, OPS 0.803에 누적 WAR 45.28라는 정근우의 통산 성적은 지난 2011년 프로야구 30주년 2루수 올스타, 역대 최고의 2루수’였던’ 박정태의 통산 성적(0.296 1141안타 85홈런 22도루 OPS 0.806)을 이미 넘어섰다.
(사진 제공=한화 이글스)
왜 한화는 정근우를 잡았을까
한화가 2013년 겨울 정근우에게 4년 70억을 지불해 영입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이 이유는 이적 동기인 이용규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첫 번째, 한밭구장의 2루는 이글스 창단 이래 포수와 함께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이었다. 장종훈, 이정훈, 송지만, 김태균 등 쟁쟁했던 다른 포지션과 달리 2루는 빙그레 이글스 시절 전대영과 우승 연도의 임수민(99시즌 wRC+ 108.8)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선수를 찾기 어려웠다.
두 번째, 암흑기 동안 한화는 테이블세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2009년 트레이드로 영입된 강동우 정도를 제외하면 리그 평균 수준의 테이블 세터조차 찾기 힘들었다. 4번 타자 김태균이 2회에 선두 타자로 등장하는 것이 한화의 일상이었다. 높은 출루율과 빠른 발로 세 차례 골든 글러브와 SK의 왕조 건설을 이끈 정근우를 한화가 탐내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승을 노리는 구단이 아니었음에도 한화는 정근우에게 거액을 투자했고 정근우 역시 구단의 기대치를 충족시켰다. 지난 3년 동안 정근우는 0.307의 타율과 0.391의 출루율, 75개의 도루로 그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정근우의 영입은 결정적인 한 가지 이유에서 이용규와 달랐다. 바로 세 살 많은 나이. 현 상황에서 한화 구단은 팀의 공수에서 절대적인 주전이자 대체재가 없는 두 선수의 재계약을 포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두 번째 FA를 33세 시즌부터 소화하는 이용규와 달리 정근우의 두 번째 FA시즌은 36세에서 39세까지의 시즌을 포함하고 있다. 과연 30대 후반까지 정근우의 기량이 유지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베테랑 센터라인,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다행인 점은 정근우의 타격 기량은 그다지 감소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3할 근처의 타율과 오히려 지난해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홈런 생산 능력을 볼 때 타격에서 급격한 기량 하락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2루수 포지션의 수비 지속성이다. 타격과 달리 수비 능력은 나이와 함께 급속도로 감소한다. 역대 2루수들을 살펴보면 홈런왕 출신 2루수 김성래는 31세 시즌(1992년)부터 사실상 2루를 떠났고 30-30 2루수 홍현우도 28세 시즌(2000년)부터 3루수로 완전히 전업했다. 박정태조차도 300타석을 소화한 마지막 시즌이 33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근우가 35세 시즌을 2루수로 소화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단순히 나이와 전례만으로 선수의 미래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근 몇 년 간의 부상 문제와 출장 경기수, 감독 스타일과 선수 플레이 스타일 등은 분명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김성근 감독 체제 이래 정근우는 매년 부상 이슈를 경험한 바 있다. 2015년에는 훈련 중 턱 부상으로 4월 말에야 돌아왔으며 2016시즌에도 9월부터 나타난 무릎부상으로 결국 시즌 후 수술대로 향했다.
부상이 반드시 선수의 내구도가 약하다는 결론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172cm, 75kg의 작은 체구, 11년 연속 20도루와 전매특허인 다이빙 캐치에서 알 수 있는 적극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고려한다면 늘어가는 부상 이력은 선수 생명에 불안한 신호일 수밖에 없다.
(사진 제공=한화 이글스)
FA 4년차 정근우, 붙잡을 수밖에 없는 한화
한화가 첫 번째 FA기간이 끝나면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2루수를 영입한 것은 그를 10년을 맡길 주전으로 봤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당장 즉시 전력이 됨은 물론이고 그의 계약기간 동안 적어도 다음을 기대할 새로운 희망 정도는 키울 수 있을 것이라 계획했으리라.
하지만 어느덧 계약 4년차에 다다른 지금에도 한화는 여전히 정근우 다음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한화 역시 내야 유망주들을 뽑아가며 노력했다. 조정원, 이창열, 강경학, 박한결 등 90년대생 내야 유망주들이 지난 3년간 정근우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백업 자리를 다퉜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고, 그나마 강경학이 가능성을 보였지만 송구 불안과 미완의 타격으로 주전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올 시즌이 끝난 뒤 정근우와 FA 재계약을 한다면 약간의 시간 연장은 가능하겠지만 재계약 기간 동안 정근우가 계속 2루수로 활약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만 30세 미만 내야수들과 정근우의 4년간(2014~17) 누적 기록 비교(17년 5월 6일 기준). 대체자들의 기록은 정근우에 턱없이 부족하다.
한화 2루, 선택지도 시간도 없다
2루수로는 많은 나이, 타 구단으로 이적하기에 걸림돌이 되는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정근우는 FA 재계약에서 구단에게 크게 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근우에게 좋은 대우의 이적이 어려운 것 이상으로 한화에게 정근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팀 내에 정근우를 대체할 유망주도 없는 데다 다른 주전급 FA 2루수도 존재하지 않기에 한화는 무조건 정근우를 눌러 앉혀야 한다.
문제는 재계약 이후다. 정근우는 이호준처럼 지명타자로 남을 수 있는 거포도 아니고, 3살 어린 FA 동기 이용규와 달리 두 번째 FA에서 4년 모두 야수로 활약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즉 설령 재계약에 성공하더라도 한화는 다음 2루수를 찾을 시간적 여유를 얻을 뿐 2루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했다고 볼 수는 없는 셈이다. 대부분의 유격수, 2루수 선배들이 35, 36세에 커리어를 마친 것을 감안한다면 정근우에게, 아니 한화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2,3년으로 보인다.
신인을 뽑아 2년 만에 주전급으로 키운다는 것은 구단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2루뿐 아니라 한화가 취약 포지션 육성에 약점을 보인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1라운드 전체 1번으로서 드디어 이름값을 하기 시작한 하주석을 제외하면 한화의 센터라인 유망주 육성 상황은 절망적인 수준이며, 이는 21세기 내내 한화의 고질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2014시즌 정근우와 이용규 영입, 조인성의 트레이드로 일시적으로 메꿨을 뿐, 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서산구장은 이들의 대체재를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3년간 퓨처스리그에서 100타석 이상(2017년 제외), OPS 0.800 이상을 기록한 한화 2루수/유격수/3루수. 경찰에서 뛰는 윤승열, 현역 복무 중인 조정원을 제외하면 1년만에 빠르게 성장할만한 유망주가 보이지 않는다.
박종훈 체제, 서산을 바꿀 수 있을까
이글스 최초의 신인왕 이정훈 감독이 한화 퓨처스 감독으로 부임한 뒤 화려하진 않지만 서산에도 나름의 뎁스가 갖춰진다며 팬들이 기대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 체제 이후 오준혁, 노수광, 김민수, 최영환, 임기영, 박한길 등 수많은 유망주들이 타팀으로 이적했고 현재 한화는 소수의 중심 유망주를 제외하면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비록 감독과 충돌로 팀 내 불안감을 낳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박종훈 단장의 행보가 중요하고 또 기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종훈 단장은 실패한 한화 육성 체제의 내부자가 아닌 육성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외부 출신이다. 김성근 감독과의 충돌도 결국 퓨쳐스 투수 로테이션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나아가 퓨처스 육성 체계를 흔들리지 않게 만들겠다는 단장의 강한 의지 표명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누구보다 ‘한화’적이지 않은 인물이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현재 한화의 현실이다.
다가오는 정근우의 계약 만료, 물음표투성이의 유망주 육성은 난제임에 분명하다. 정근우가 언제 어떻게 한화를 떠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이적 혹은 은퇴를 할 그날, 과연 구단과 팬들은 웃으면서 그를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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