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볼소녀들, 미래를 꿈꾸다 – 서울신정고등학교 소프트볼부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신민경 >

2020년 개봉한 영화 “야구소녀”의 주인공 주수인(이주영 분)은 프로야구에 진출해 등판하는 것이 꿈인 투수다. 주변에서 모두 그의 꿈이 불가능하다면서 만류하지만, 그는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한다. 

“전 해보지도 않고 포기 안 해요”

“야구소녀” 속에 주수인은 단 한 명이지만, 2023년 대한민국에는 수십 명의 주수인이 미래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 다만 영화 속 주수인은 KBO리그라는 제법 탄탄한 기반의 스포츠에 도전하지만, 이 글의 주인공들은 우리나라에서 프로스포츠조차 없는 종목에서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소프트볼이 어려운 상태다. 학령 인구의 감소라는 구조적인 문제와 낮은 인지도 속에 신입 선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기존에 소프트볼팀을 운영하던 학교들이 선수 부족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2023년에는 2021년부터 진행된 고교 소프트볼 주말리그마저 열리지 못하면서 각 학교의 경기 숫자는 전년 대비 1/3가량이 줄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계속 소프트볼 선수로 성장하는 꿈을 꾸고 있다. 고등학교를 떠나 대학이나 실업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소프트볼을 계속하고 꿈의 무대인 세계 무대를 희망한다. 차디찬 바람이 몰아친 11월 어느 날, 필자는 포기를 모르는, 하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있는 유일한 고등학교 소프트볼팀 서울신정고등학교를 찾아, 곧 졸업을 앞둔 3학년 두 선수를 만났다. 

필자가 방문한 서울신정고등학교의 시설과 장비들은 예상외로 뛰어났다. 비록 우익수 쪽이 짧아서 정식 규격으로 경기를 치를 수는 없지만, 잘 갖춰진 인조 잔디 구장에서 선수들은 연습할 수 있다. 학교의 지원도 상당했다. 선수들에게 각종 개인 장비를 매년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있다. 연습에 필요한 공을 비롯한 다른 공용 장비도 충분히 갖춰져 있다. 코치진 또한 우리나라 정상급 코치들로 구성되어 있다. 

< 서울신정고등학교 소프트볼부 연습 환경 >

 

티볼로부터 시작된 인연

현수아(3학년)와 김지윤(3학년)은 모두 고등학교 때 소프트볼을 시작했다. 두 선수 모두 친구들과 티볼을 즐겁게 하던 보통의 청소년이었다. 현수아는 중학교 때 티볼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추천을 받고 고등학교 소프트볼 선수가 되었다. 김지윤은 고등학교 2학년까지 클라이밍 선수로 활약하다가 슬럼프 이후 진로를 고민하던 중, 친구와 재미 삼아 티볼을 한 모습이 現 서울신정고등학교 소프트볼부 감독인 유경희 감독에게 포착되어 종목을 변경했다. 

두 선수 모두 2023년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다. 서울신정고등학교는 2023년 제35회 전국종별소프트볼대회와 제104회 전국체육대회 소프트볼 18세 이하 부에서 우승했는데, 팀의 1번타자이자 중견수인 김지윤과 2번타자이자 3루수인 현수아의 공이 컸다. 이 두 선수는 2023년 8월 29일부터 9월 3일까지 중국 핑탄(Pingtan)에서 열린 WBSC U-18 여자 소프트볼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도 국가대표로 출전했으며, 비록 우리나라는 다음 단계로 진출하지 못했지만, 김지윤은 대회 최다 도루를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 현수아(좌), 김지윤(우) >

 

어려운 시작, 하지만 발전하려는 노력

두 선수 모두 고등학생이 되어서 소프트볼을 시작했지만, 소프트볼에 빠져드는 것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두 선수 모두 소프트볼이 가진 역동성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주장했다. 야구가 루간 간격이 90피트(27.4m)라면, 소프트볼은 루간 간격이 60피트(18.3m)이기 때문에 더 빠른 호흡으로 플레이가 진행된다. 소프트볼에서는 주자가 투구 사이에 리드를 할 수 없지만, 주자들은 야구보다 좁은 루간 간격을 활용해 도루를 더욱 자주 시도한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시작은 쉽지 않았다고 답했다. 스스로를 MBTI 성격 분류에서 I라고 주장한 현수아는 고등학교에 들어와 운동과 단체 활동을 처음 시작했기에 감독 및 코치와의 관계, 선배와의 관계 등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역시 I라고 주장한 김지윤 또한 운동을 예전부터 했지만 개인 종목에서 훈련했기에, 단체 스포츠에 적응하고 팀워크를 쌓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유경희 감독의 지휘 아래 팀 운동을 배우면서 두 선수는 단체 훈련을 쉬는 날에는 영상통화를 하면서 서로 스윙을 봐주면서 실력을 키워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다른 나라의 또래들이 어떻게 소프트볼을 연습하고 경기하는지를 시청하면서 의견을 교환했다고 덧붙였다.  

 

아쉬움 가득한 한국 소프트볼의 현실

2024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현수아는 단국대학교로 진학이, 김지윤은 대구도시개발공사 입단이 예정되어 있다. 성인 소프트볼팀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두 선수 모두 소프트볼 선수 경력을 각각 대학교와 실업팀에서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두 선수는 물론 고등학교 때 즐겁게 소프트볼을 할 수 있었지만, 안타까운 점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공통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팀이 적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소프트볼부가 있는 고등학교가 적다 보니 다양한 팀과 맞붙기보다는 익숙한 팀하고만 경기할 수 밖에 없고, 자주 연습경기를 진행한 팀과 공식 경기에서도 여러 차례 맞붙을 수밖에 없다. 2023년 서울신정고등학교의 경우 1년 동안 치른 공식 경기 16경기 중 7경기가 또 다른 강팀 일산국제컨벤션고등학교와의 경기였다.  

김지윤은 “비가 와서 경기를 진행하지 못했을 때 추첨으로 결과를 결정한” 순간이 섭섭했다고 말했다. 1년에 선수들이 치를 수 있는 경기는 제한되어 있는데, 대회 운영과 일정의 제약으로 인해 우천 시에는 불가피하게 추첨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소프트볼의 현실이다. 더욱이 현재 진행되는 고등학교 소프트볼 경기가 각 선수가 속한 학교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치러지는 점까지 고려하면 아쉬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멀리, 오래오래 뛰고 싶다

두 선수는 중국에서 치렀던 U-18 대회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내면서 해외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기를 기원했다. 처음 나서보는 국제 대회에서 본인들이 가진 실력을 충분히 대회에서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김지윤은 “상대를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고 느꼈지만,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그는 소프트볼을 늦게 시작한 자신이 대표팀으로 뽑혀서 중국에서 다른 나라와 경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현수아는 “일본 U-18 대표팀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 선수들의 풋워크를 비롯한 기술적인 측면이나 정신적인 측면 모두 우리나라 선수들보다 뛰어나다”며 처음 나간 국제대회의 감상을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1주일 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더 있었다면 좀 더 해볼 만한 경기를 펼치지 않았을까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두 선수의 꿈은 사뭇 달랐지만, 이 운동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는 의지가 드러났다. 현수아는 “몸이 될 때까지 소프트볼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김지윤은 “우리나라에서 소프트볼이 유명해질 때까지 소프트볼 선수로 남아있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소프트볼의 발전을 기원하며

대한민국 소프트볼의 국제 경쟁력은 하락세를 걷고 있다. WBSC가 발표한 랭킹을 기준으로 해 2021년 8월 세계 17위까지 올라간 우리나라 여자 소프트볼의 2023년 11월 랭킹은 세계 30위다. 우리나라 소프트볼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며 무수한 성과를 이뤄낸 이알참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는 “2010년대 중반대가 우리나라 소프트볼의 전성기”였다고 회고했다. 

필자는 2023년 4월에 열린 소프트볼 아시아컵이 대한민국 소프트볼 중흥의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말 오랜만에 우리나라에서 소프트볼 국제대회가 열린 만큼, 많은 사람에게 소프트볼의 재미를 소개할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회는 일반 시민들이 지나가면서라도 경기를 구경하기 어려운 송도 LNG 스포츠타운에서 열렸다. 자연스럽게 대중 및 언론 노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서울 등 우리나라 대도시에 국제 대회를 개회하기에 적합한 구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 2023 소프트볼 아시아컵 현장1 > 

국제대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다. 폭 넓은 선수 및 코치층과 많은 팀, 잘 갖춰진 경기장과 훈련시설, 충분한 숫자의 대회를 운영할 수 있는 행정력과 이를 담당할 수 있는 심판의 숫자, 그리고 국민적 관심 등. 현재 우리나라 소프트볼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조직적 차원에서 진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참고 =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신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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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프트볼장이 아닌 야구장에 경기장을 만든 이유로 피칭 서클의 위치, 내외야 구분 흙 위치가 틀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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