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 재도전?’ 브라이스 하퍼, 무엇이 달라졌는가

[야구공작소 박기태] 2015년 내셔널리그 MVP 브라이스 하퍼(25·워싱턴)가 돌아왔다. 야구계의 ‘선택받은 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그 괴물같은 모습 그대로.

2017시즌 초반, 내셔널리그에서는 괴수들의 각축전이 한창이다. 라이언 짐머맨(33·워싱턴), 에릭 테임즈(31·밀워키), 프레디 프리먼(28·애틀랜타) 등이 물오른 화력을 과시하는 가운데, 하퍼까지 MVP와 홈런왕을 싹쓸이했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5월 4일(한국 시각) 현재 하퍼가 기록하고 있는 타율/출루율/장타율은 무려 0.388/0.512/0.745에 이르고, OPS는 1.257으로 메이저리그 3위에 해당한다.

이처럼 괴력을 선보이고 있는 하퍼지만 사실 한 달 전만 해도 그의 앞길은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최고의 2015년를 보내고 맞이한 지난 시즌, 하퍼는 원인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심각한 부진에 빠졌다. 1.000을 돌파했던 OPS는 0.814까지 폭락했고 홈런 개수는 42개에서 자릿수를 뒤집은 24개로 줄어들었다. 그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도 분분하게 갈렸다. 이것이 하퍼라는 선수가 지닌 역량의 한계라는 주장부터 부진은 단지 어깨 부상의 여파 탓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과 추측들이 오갔다.

물론 부진의 정확한 원인을 짐작할 수 있는 인물은 하퍼 자신 뿐이다. 시즌 중반 한때 하퍼가 어깨 부상을 숨기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으나 더스티 베이커 감독과 구단이 이를 앞장서서 부인하고 나섰다. 하퍼 역시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지 않은 채로 시즌을 끝까지 소화했다. 다만,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서 부진에 대해 아무런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퍼의 부진에는 분명한 ‘증상’이 있었다.

 

하퍼의 부진, 강하게 치지 못했기 때문

강타자의 성적이 떨어질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크게 3가지이다. 첫 번째는 선구안의 퇴보다. 그러나 지난 시즌 하퍼의 선구안은 이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인내심을 진단할 수 있게 해주는 볼에 스윙한 비율(O-Swing%)은 2015시즌과 별 차이가 없었고, 스윙의 정확도를 진단할 수 있는 컨택트 비율의 경우에는 오히려 수치가 더 좋아지기까지 했다.

두 번째 증상은 ‘불운’이다. 지난 시즌, 하퍼는 2015시즌의 0.369에 비해 1할 이상이 떨어진 0.264의 BABIP(인플레이된 타구가 안타가 된 비율)를 기록했다. 홈런을 제외한 나머지 안타가 줄어들었으니 전체 타율은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우 한 타자의 BABIP는 커리어 내내 5푼 정도의 범위 안에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하퍼의 통산 BABIP가 3할 2푼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 시즌의 성적 하락에는 말그대로 ‘재수가 없었다’는 요인도 나름의 비중을 차지했던 셈이다.

그러나 하퍼의 부진을 전부 불운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세 번째 증상인 타구 질의 하락은 부진의 또다른 측면을 설명해준다. 이전만 못한 속도와 각도로 타구를 날리는 선수에게 예전과 동일한 수준의 결과물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퍼의 부진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2016년의 하퍼는 이전처럼 좋은 플라이볼(뜬공) 타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브라이스 하퍼의 플라이볼 타구 비교 (2015~2016)
2015: 타구 속도 시속 92.8마일, 발사 각도 41.6도, ISO 0.636
2016: 타구 속도 시속 89.7마일, 발사 각도 42.0도, ISO 0.266

장타자들의 성적 하락은 높은 확률로 이전만큼 타구를 띄우지 못하게 되는 현상을 동반한다. 하지만 하퍼의 부진 양상은 이와는 사뭇 달랐다. 지난 시즌에도 하퍼의 플라이볼 타구 비중은 20% 수준으로 2015년과 비슷했다. 심지어 플라이볼의 대척점에 있는 땅볼 타구의 비중은 2015년의 52.6%에서 50.9%로 더욱 줄어들기까지 했다. 진짜 문제는 플라이볼 타구의 양이 아닌 질에 있었다. 위의 자료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처럼, 지난 시즌의 하퍼가 날린 플라이볼 타구는 한 해 사이에 시속 3마일가량의 속도를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플라이볼은 ‘모 아니면 도’의 성격을 띤다. 강한 플라이볼 타구는 홈런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외야수에게 잡히는 평범한 타구로 전락하고 만다. 2015 시즌의 하퍼가 날린 플라이볼은 상당수가 전자였지만 2016시즌에는 후자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실제로 하퍼가 날린 플라이볼 타구의 타율은 1년 사이에 0.303에서 0.172까지 줄어들었고, 순수장타율(ISO)은 0.636에서 0.266으로 한층 심각한 하락세를 보였다. 타구 속도와 발사 각도를 토대로 계산하는 플라이볼 타구의 ‘예상 타율(xBA)’ 또한 한 해 사이에 0.220에서 0.166으로 줄어들었던 만큼, 이를 단순히 운이 없었던 탓이라고 일축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하퍼의 부진에는 불운 이전에 본인이 자초한 영역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 이유가 부상 때문에 온전히 힘을 내지 못한 것이었든, 스윙 밸런스를 잃어버린 탓이었든 간에 말이다.

 

‘2017’하퍼는 ‘2015’ 하퍼의 강렬한 스윙을 되찾았다. (사진=Wikimedia Commons, CC BY SA 2.0)

 

파워 스윙을 되찾다

그러나 올 시즌의 하퍼는 2015년으로 회귀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브라이스 하퍼의 플라이볼 타구 비교 (2017)
2017: 타구 속도 시속 95.1마일, 발사 각도 38.0도, ISO 0.947

발사 각도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예전의 괴물 같은 타구 속도가 돌아왔다. 시속 95마일의 빠르기로 날아가는 플라이볼은 안타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실제로 타구 속도와 발사 각도를 토대로 계산된 올 시즌 하퍼의 플라이볼 예상 타율은 무려 0.364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플라이볼의 리그 평균 타율인 0.254를 훨씬 뛰어넘는다. 어지간한 A급 타자의 OPS 두 배에 가까운 1.316의 플라이볼 장타율은 ‘돌아온’ 하퍼가 어느 정도의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다만 하퍼가 4 할에 가까운 지금의 타율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공행진 중인 타율의 이면에는 통산 성적을 큰 폭으로 상회하는 0.426의 BABIP가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BABIP가 커리어 평균에 회귀하면서 하퍼의 타율도 낮아질 것이다.

예상 수치보다 훨씬 높은 라인드라이브 타구의 타율 역시 지금의 성적이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보탠다. 올해 라인드라이브 타구의 메이저리그 평균 예상 타율은 0.600을 조금 웃돌지만, 하퍼의 라인드라이브 타구들은 올 시즌 현재까지 그보다 1할 이상 높은 0.778의 실제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리그 전체로 시선을 돌리면 라인드라이브 타구의 예상 타율과 실제 타율 사이의 간극은 1푼이 채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하퍼에게 꽤나 운이 따라주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하퍼가 만들어내고 있는 라인드라이브 타구의 질 자체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 시속 97.6마일의 평균 타구 속도는 여전히 리그 수위권이다. 지난 2년에 비해 발사 각도가 낮아지면서 순수 장타율에서는 상당한 손해를 봤지만, 플라이볼 타구의 질을 끌어올리면서 얻은 이득을 감안하면 종합적인 손실은 그리 크지 않다.

브라이스 하퍼의 라인드라이브 타구 비교 (2015~2017)
2015: 타구 속도 시속 101.1마일, 발사 각도 20.4도, ISO 1.193
2016: 타구 속도 시속 98.9마일, 발사 각도 20.1도, ISO 0.803
2017: 타구 속도 시속 97.6마일, 발사 각도 14.7도, ISO 0.333

앞으로의 성패는 지금의 스윙 밸런스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지에 달렸다. 지난 시즌에도 하퍼는 4월 동안 1.121의 어마어마한 OPS를 기록하면서 개막을 맞이했던 전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 투수들의 계속된 집중 견제에 자신의 스윙을 잃어버렸고, 결국 5월 이후로는 0.759의 실망스러운 OPS를 기록하면서 시즌을 마쳤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팬들이 아직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의 좋은 모습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면, 트라웃과 자웅을 겨루던 2015년의 그 선수로 돌아오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참조: Baseball Savant, Fangrap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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