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재성 >
Case 1 : 포스트 이대호의 방황
한동희(롯데)는 자타공인 ‘포스트 이대호’이다. 포지션, 체형, 우타 장타자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는 한동희에 대해 입단 당시부터 롯데 팬들의 기대는 남달랐다.
이런 기대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입단 1년 차부터 퓨처스리그에서 한동희의 방망이는 뜨거웠다. 142타석에서 .438/.511/.884(이하 타율-출루율-장타율)로 전례 없이 퓨처스리그를 폭격한 것. 적은 타석에서도 퓨처스리그에서 홈런 5위에 오르는 장타력(홈런 15개)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듬해 KBO리그와 퓨처스리그를 오감에도 87타석에서 .375/.471/.583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확실히 한동희에게 퓨처스리그는 너무 작아 보였다.
하지만 이 동안 KBO리그에서 올린 성적은 퓨처스리그의 실적에 비해 초라했다. 2018년과 2019년 한동희가 KBO리그에서 433타석을 소화 하면서의 기록은 .219/.275/.324. wRC+ 또한 54.4로 리그 평균에 한참 못 미쳤다. KBO리그에서 부진 후 퓨처스리그에서의 비약적인 타격, 다시 콜업 후 부진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물론 본 리그와 산하 마이너리그에서의 기록이 차이 나는 것은 KBO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KBO리그에서 두드러진다. 한동희의 경우는 장타력에서 이 부분이 드러난다. 1년 차 퓨처스리그에서 절륜한 장타력을 보여줬던 한동희는, 주전 선수로 자리 잡은 2020년 이후에도 20홈런 시즌을 단 한번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한동희는 2년간의 실패 후 변화구에 대응하기 위해 타격 지점을 뒤에서 형성시켰고, 여기에서 형성된 어프로치는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고 있다.
Case 2 : 31세에서 19세까지
8월 6일 상무 피닉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2024년 1라운드 1번 김서현과 상무의 송승기가 맞붙었다. 한화는 이날 8명의 투수를 투입했지만 4-5로 패배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선수들의 연령대다.
< 표 1 = 8월 6일 상무 vs 한화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투입된 한화 이글스 투수 정보 >
가장 나이가 많은 이민우와 선발 김서현의 나이 차는 12세. 그리고 가장 연차가 높은 윤대경(12년차)과 김서현의 연차 역시 11년이나 차이가 난다. 그리고 이민우, 윤대경, 윤산흠 등은 퓨처스리그를 따로 챙겨 보지 않는 팬들에게도 익숙한 선수다. 퓨처스리그는 이런 고년 차의 선수들과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이제 막 프로 무대에 선 신인들이 혼재된 상황이다.
이렇듯 퓨처스리그는 본 목적인 ‘어린 선수들의 육성’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김서현과 같은 대형 신인의 기량을 끌어낼 만큼의 양질의 리그가 아니다. 그렇다고 기량이 부족한 저년 차 선수들이 프로에 적응할 만큼의 여유를 주는 다층화된 리그도 아니다. 결국 각자 알아서 적응하고 성장해야 하는데, 프로가 적자생존의 세계라고는 하더라도 선수를 육성하는 구단 입장에서는 큰 비효율이다.
퓨처스리그의 수준은?
본격적으로 퓨처스리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퓨처스리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KBO리그의 경우 외국인 선수들을 이용해 유추할 수 있다. 주로 AAA에서 선발투수나 중심타자로 뛸 정도의 역량을 가진 선수들이 KBO리그에 영입되므로 일반적으로 KBO리그는 AA~AAA 정도 수준으로 추정한다.
퓨처스리그의 경우는 외국인선수가 없다. 대안으로 KBO리그를 거치지 않고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복귀하는 국내 선수들을 생각할 수 있으나, 이들은 2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드래프트에 참여하기에 마이너리그 때의 기량을 퓨처스리그에서 보여준다는 가정을 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공백기간이 짧은 예외가 있다. 2년의 유예 기간에 퓨처스리그 군경팀에서 뛴 김선기(키움)와 이대은(전 KT)이 바로 그 경우다.
< 표 2 = 김선기의 해외리그 & 퓨처스리그 지표 >
김선기는 A 레벨에서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면서 2015년 스프링캠프 후 방출되었다. 방출 후 상무 피닉스 입단을 타진한 김선기는 KBO 사무국의 유권 해석으로 2016년부터 퓨처스리그에서 뛸 수 있게 되었다.
김선기는 상무에서의 두 시즌 모두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했으며 2017시즌에는 리그 수위권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ERA 4.08이 높아 보일 수 있지만 김선기가 뛴 2016-2017시즌 퓨처스리그는 리그 평균 OPS .800을 상회하는 극타고투저였기에 A 레벨에서보다 조금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 표 3 = 이대은의 해외리그 & 퓨처스리그 지표 >
이대은의 경우 다소 셈법이 복잡하다. AA-AAA에서 괜찮은 선발이었던 이대은은 NPB를 거쳐 경찰청에 입대했고 퓨처스리그에서는 리그 1선발급의 성적을 거뒀다. 특히 2017년에는 이닝 전체 3위, 평균자책점 2위, 탈삼진 1위를 차지하며 퓨처스리그 레벨을 아득히 넘어섰음을 증명했다. 당시 퓨처스리그의 극타고투저 성향, 그리고 이대은이 뛰었던 경찰청의 홈구장이 좌우 91m, 중앙 105m의 초소형 구장인 벽제야구장인 것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대은이 AA 레벨의 선발투수들은 월등히 퓨처스리그보다 높은 수준이다.
AA 레벨인 이대은이 리그를 폭격했고 A 레벨인 김선기가 리그 상위권 성적을 거둔 것을 종합해 보면, 퓨처스리그에 갓 진입한 어린 선수들은 A 레벨에 약간 못 미치는 숏리그(Rk ~ A-) 수준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선수들이 AA-AAA 레벨인 KBO리그의 1.5군급 선수들과 같이 뛰고 있다. 이미 기량이 1.5군급으로 올라온 선수들의 경우 숏 리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성장을 도모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엔트리의 끝에 있는 선수들의 경우에는 KBO리그 경험이 많은 선수들을 상대하면서 성장이 막히기도 한다.
어린 선수에게 미래를 찾아주려는 노력들
구단이 이러한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퓨처스리그의 양극단 선수들에게 각자에 맞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왔다. 그중 상위권 선수들을 위한 시도에는 성공적인 것이 있었는데, 바로 호주프로야구리그(ABL)에 한국인 팀인 질롱 코리아를 파견한 것이었다. ABL에는 A~AA의 선수들이 주로 파견되며 팀의 핵심 선수들2023년 MLB 파이프라인 전체 14위 유망주 주니어 카미네로(탬파베이) 또한 올해 초 호주리그에 파견 형식으로 참여했다.
< 그림 1 = ABL 퍼스 히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주니어 카미네로 >
파견 3년 차인 올해 초에는 이런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 KBO리그에서 제구에 어려움을 겪던 장재영(키움)은 ABL 전반기를 소화하며 30이닝 동안 9볼넷을 내주는 등 ERA 3.30으로 전반기 질롱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올해 완전히 개화하지는 못했지만 후반기부터 키움의 로테이션 멤버로 합류하며 입단 시 받았던 기대를 서서히 증명하고 있다. 퓨처스리그 윗 레벨의 타자들과 긴 이닝 동안 상대한 경험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지난해 입단 1년 차로는 이례적으로 개막 엔트리에 등록되었지만 기대에 못 미친 최지민(KIA) 역시 질롱의 수혜자다. 최지민은 시즌 초 KBO 타자들의 선구안에 밸런스가 무너진 여파로 퓨처스리그에서도 38.1이닝 ERA 7.04의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후 질롱에 파견된 최지민은 ABL에서 마무리로 꾸준한 기회를 얻으면서 공격적인 투구 패턴을 장착했다. 올해 최지민은 이견 없는 KIA 불펜의 핵심요원이며,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대표팀으로 선출될 만큼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 그림 2 = 질롱 코리아 3기로 성장을 이뤄내 아시안게임에 발탁된 최지민 >
이렇듯 ABL 파견은 퓨처스리그 육성에서 부족한 점을 채워줄 묘수로 보였다. 먼저 퓨처스리그 레벨에서 조정하기 어려운 유망주들에게 양질의 선수들과 상대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문제점을 개선할 기회를 주었다. 앞서 언급했던 퓨처스리그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었기에 구단들에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는 이제부터 없다. 올해부터 ABL이 8개구단에서 6개구단 체제로 돌아가면서 질롱 코리아의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카미네로의 경우처럼 호주리그의 다른 팀에 파견 형식으로 선수를 보낼 수 있지만 기회의 폭이 대폭 줄어든 것은 분명하다. 돌아오는 겨울부터는 리그 내부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2편에서 계속]
참고 = KBO, STATIZ, baseball reference, 질롱코리아공식 인스타그램, ABL.com
야구공작소 조광은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재성
에디터 = 야구공작소 민경훈, 오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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